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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
양성관 지음 / 히포크라테스 / 2026년 9월
평점 :

죽음에 대한 논의, 충만한 삶의 완성을 위해 필요하다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오래 사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
양성관 지음 [히포크라테스] (2026)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서 생각하곤 한다.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문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 모바일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며 화면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로 열차 안이 가득하다. 긴 지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이 열차에 탄 모든 이들이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흔들리며 함께 가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그로테스크한 장면이긴 하지만, 이 열차에 탄 사람들은 단지 이 순간 병원에 있지 않은 것뿐이지 않은가. 집안에 오랫동안 아픈 환자가 있었던 이들은 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세상이 이렇게나 아픈 사람이 많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니 조심성 없이 밀치면서 지나가던 이들이나 내가 막 앉으려던 자리에 잽싸게 끼어들어 앉고야 마는 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엔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죽음은 태어난 모든 생명체에게 최종 목적지와 같다. 생의 완성인 것이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가 말했듯이 ‘죽음이란 늘 타인의 죽음’이기에, 죽음 이후의 두려움 따위란 무의미하다. 죽음은 누구나 한 번 겪게 되는 운명이지만, 살아 있을 때 경험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갖는 두려움이란 사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일 터다. 여기에는 무엇보다‘고통’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나의 아버지는 딱 지금의 내 나이, 지천명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40을 넘기기 시작한 때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지천명’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이 나이가 되어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교통사고나 전쟁과 같은 문명이 가져온 부작용을 제외한다면 지금껏 인류의 대부분은 ‘자연사’했다. 이제는 각종 의료 기술과 도구의 발달로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어나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죽음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은 절차가 되었다.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이하 《연명치료》)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양성관이 20년에 이르도록 수많은 환자를 진찰하고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저작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에 집안 어르신 두 분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고부터다. 한동안 우리 집안에서 가까운 이의 죽음이 없었으나, 저자가 강조하듯 우리 모두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한 분은 암으로, 또 한 분은 치매를 비롯한 만성 질환을 앓고 사망하셨다. 죽음에 특별한 예외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 《연명치료》에서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임종에 이르는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누구인들 고통이 가득한 반면, 무기력하게 수명을 연장하다 죽음을 맞고 싶겠는가? 저자는 바로 이 문제를 조심스럽지만 진지하게 이 책에서 독자와 우리 사회에 질문하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초등학교 당시만 해도 가족의 죽음이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어느 새 죽음은 그에게 익숙한 자신의 방이 아닌 병실이 되어 버렸다. 저자가 언급하듯, 우리 사회는 1997년의 ‘보라매병원 사건’과 같은 일이 있고부터 본격적으로 ‘죽음의 외주화’를 겪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죽음’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지만 우리에게는 더 이상 투명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죽음은 기피의 대상으로 치부되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회피해야할 소재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생명 존중’의 가치와‘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묻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문득 작년에 돌아가신 어르신도 생전에 늘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다는 게 생각났다. 가족은 모두 공감하고 그러겠노라 했음에도, 막상 돌보는 입장에서 ‘치료 중단’을 요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언급한바와 같이,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담당 의료진에게‘뭐라도 해주세요’라는 절박한 입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기로에 서서 절망한다. 남은 선택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새로운 약으로 항암 치료를 한 번 해보면 어떨까?’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독서에서 한 가지 더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의료진의 입장과 이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경우, 연명의료결정법이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하거나 시행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해 놓고 있기에 임종에 이르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 보다 복잡해지는 모양이다. 여기에 종교계, 법조계, 윤리학계, 시민단체 등이 이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보면, 이제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감지할 수 있다. 이제 현대인의 죽음은 사회가 정한 법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노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고 한다. 특히 가족의 모습이 급격하게 변화되어 온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나의 장래 역시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걱정거리들을 던져 주기도 한다. 나이가 더 들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될 터인데, 여러 가지 사안이 바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핵가족화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나이듦이란 새로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누가 나를 돌보아줄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나의 경제력으로 치료 및 돌봄을 여유 있게 받을 수 있는 기대를 하지 못하는 두려움도 있다. 저자가 일본의 간병 살인 사례를 든 것처럼, 혹시 내 병이 오랜 간병의 절차를 의도하지 않게 필요로 하게 된다면 내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존엄하게 죽음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전한다. 종교계나 법조계 등의 관점도, 환자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제는 좀 더 유연하게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나의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생각해보다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 후르츠>다. 90세 건축가 할아버지는 텃밭이 있는 아담한 집에서 87세의 아내와 함께 살아왔다. 어느 날 아침에 할아버지는 텃밭에 앉아 쉬엄쉬엄 일을 하고는 집에 들어와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곧 낮잠을 자다가 아내 곁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았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였기에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실화였고, 영상도 실제 인물이 나오는 작품이기에 내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내가 정말 바라는 마지막 모습의 롤모델이 이 영화에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이처럼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죽음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개는 질병을 앓고 고통을 받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보통이다.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본가를 다녀온 후 어머니와 통화할 때, 어머니는 이제 막 산책을 나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아프지 않으려면 (그래서 너희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라고 하셨다. 수화기로 넘어온 이 말이 가슴에 쿵 하고 박히고야 만다. 태어난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없으나, 생의 마지막을 상상하고 마지막에 이르는 길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책에 소개된 스위스의 안락사나 화려한 요양병원 시설을 이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 나에게 우리 나라가 OECD국가들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고, 70-80대의 자살률이 10대의 자살률보다 7개 높다는 통계는 충격적이고도 실감나게 다가왔다. 이것은 바로 ‘나의 미래’일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가 책에서 제기하는 다양한 이슈들, 이를 테면 연명 치료 중단이나 완화 치료, 의료조력사망, 그리고 간병과 돌봄의 문제는 막막하게 느껴지던 현실을 좀 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를 주었다. 저자가 “죽음은 단지 의료나 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다. 우리는 묻고 답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120)라고 던진 메시지를 이제는 꼭 붙들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관해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과 진지하고 열린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해야할 때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남아 있는 각자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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