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까치] (2026)
언제인가 세상의 고전으로 꼽히는 《종의 기원》을 읽어보려 시도한 적이 있다. 성공했다면 번번이 아는 척을 했겠지만 나는 그때마다 중간에서 책을 덮었다. 책의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일상이 그만큼 번잡하고 산만했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깜빡이는 배너 광고와 SNS에서 날아오는 알림을 확인하는 일이 밤에는 진정이 되지만, 이번에는 스포츠와 가수의 영상이 넘쳐나는 온라인 플랫폼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는다. 나이가 들면서 노안 문제를 제외하곤 그나마 꾸준히 책을 읽어온 내가 책을 읽는 일이 점점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책읽기 활동으로부터 점점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 가운데 《종의 기원》은 여전히 내가 읽고 싶은 책 리스트 가운데 상위권에 올라 있지만,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나도 모르겠다. 책읽기 과정에서 파악한 나는 머뭇거리고 미루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는(이하 《읽은 척》) 나의 게으름과 미루기 신공을 보완해 줄 비결이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고민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단 먼저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부지런한 독자들에게 이 《읽은 척》은 다윈의 저서를 읽기 위한 워밍업 내지는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책 《읽은 척》이 단순히 《종의 기원》을 자세히 요약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 과학이 오류로 판명된 다윈의 설명들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윈의 오류를 알고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된 진화의 지식을 갖추고 다윈의 저서를 읽는 일은 그 반대로 시도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나처럼 ‘미루기 신공’의 마스터들에게 이 《읽은 척》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다윈의 삶과 진화론을 전공하는 연구자가 아닌 다음에야, 《읽은 척》을 읽는다면 정말 《종의 기원》을 읽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보상이 있다. 제목대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와 같은 ‘미루기 신공’족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다. 단 이 《읽은 척》을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서 ‘미루기 신공’족들이 결코 미루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내가 ‘읽은 척’을 시연할 대상을 명석하게 가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개팅에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을 하려 한다면 우선 상대방의 전공이 적어도 생물학 전공은 아닌지 부터 확인 하고 시도할 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일승은 할 수 있을 게다. 여기에 더하여, 소개팅 상대방이 얼마나 폭넓은 교양을 지니고 있는지 다방면으로 질문하고 파악할 것. 상대가 음대생이라고 해도, 매우 희박한 확률로 내셔널 지오그래피나 동물의 왕국과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 덕후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혹은 부모님이 생물학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말이다.
한편 소개팅 자리에서 이 모든 ‘읽은 척’의 시도가 성공적이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는 것은 있다. 상대방에게 시도하는 ‘읽은 척’이 효과가 있을지 알아내는 동안 상대방에게 던진 다양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좀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알겠는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되거나 상대방의 호감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읽은 척》은 우선 다윈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종의 기원》을 읽어 내기 위한 워밍업을 보장하는 안내서가 될 수 있겠다. 혹은 읽지 않아도 좋을 만큼 최신의 과학 지식으로 업데이트 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훌륭한 참고 문헌을 얻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도 해당이 안 된다고 해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 것. 당신이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종의 기원》을 ‘읽은 척’하여 내가 지적으로 보이도록 도와주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와일드카드로 기능할 수 있고, 동시에 ‘읽은 척’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 공세로 상대방을 보다 잘 알게 되고 더불어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는 필살기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읽은 척》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장점들을 장착하고 있다. 비용대비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읽은 척》을 다 읽지 않아도 ‘읽은 척’함으로써 한 번 더 책을 열어보고 고민하게 되니 얼마나 건전한 ‘읽은 척’인가. 게다가 이 책을 구입함으로써 출판계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건 굿즈와 함께 따라오는 예기치 못한 덤이 아닌가.
#종의기원을읽은척할수있는책 #사라시나이사오 #이진원번역가 #까치 #종의기원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