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가족에 관한 글쓰기 - 가족 가면 벗기기
양혜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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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노는 마당이 필요하다


박완서 가족에 관한 글쓰기

: 가족 가면 벗기기

 

양혜원 지음 [책읽는고양이] (2026)

 




가족이란 어휘처럼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을까. 박완서 연구자, 여성학 연구자, 번역가, 교수 등 다양한 역할로 활동을 해온 양혜원 작가의 글을 읽으며 처음 든 생각이었다. 저자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한 편씩 읽으며 작가의 출발점이자 글쓰기의 모태가 된 가족에 대한 글과 시선에 주목한다.

 


전쟁이나 시대의 불운과 같은 불가항력이 불시에 가져다주는 불행과 고통 다음으로 깊은 고통과 시련을 던져주는 것이 가족은 아닐까. 그만큼 제도로서의 가족은 인생사에서 개개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원천이기도 하다. ‘노력하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인내하고 양보해라와 같은 말은 집안 어른들의 덕담이나 결혼식 주례사에서 늘 듣는 말이 아니던가. 이러한 덕목을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삶에 자신을 던져 넣어야 했던 부모님 세대 혹은 그 이전의 여성들은 대부분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현실에서의 삶은 늘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한 가족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저자는 이 불완전한 가족 신화의 이면을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자장 속에 있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한편으로 후배 작가/독자로서 박완서 작가의 노는 마당을 다시 방문하고 그의 글을 읽어온 기록이다.


 

애초에 가족이란 제도는 왜 생겼을까, 의문이 들다가도 고라니와 같은 다른 동물들을 떠올려본다.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일어서서 걸어 다니고 곧이어 뛰어다닐 수 있는 고라니 새끼들과 달리, 너무나 미숙한 존재로 태어나는 인간은 보살핌을 제공하는 안식처가 오랜 기간 필요했다. 굳이 억지로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이 걸리는 육아를 책임지는 최소한의 공동체로서 가족은 어쨌거나 필요할 수밖에. 하지만 가족의 구별짓기를 위한 필요는 어쩌면 더 큰 공동체의 출현, 그리고 이 작은 공동체의 연합을 연결하기 위한 행정적 필요가 어느 시기에는발명되어야 했을 법하다. 제로도로서의 가족이 탄생한 시기가 있지 않았을까.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제도가 지닌 문제점들을 일일이 열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 이전의 본질적인 기능을 일부러 무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나는 지금껏 외로움이란 감정에 강한 편이라고 스스로 평가를 내리곤 했지만, 웬걸, 시간이 지나면서 나라는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가 참으로 고독한 존재구나 싶다. 심지어 어떤 날은 아직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심각한 외로움이 불쑥 찾아올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인간이라는 글자에 담긴 의미만큼이나 서로에게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에게 울타리로서의 가족이 온전히 기능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으련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은가보다.


 

제도 그 자체로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하는 가족을 낭만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간은 지극히 문화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스스로 만들어 낸 모든 인공적인양식(문화)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중독되는 존재다. 문화는 결코 혼자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말 그대로 인간은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온 존재가 아닌가. 박완서 작가의 작품 중에서처럼 볼품없이 늙어버린 남편의 모습에 극한 혐오감을 느끼는 부인처럼, 선택에 의해 구성되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공간을 점유하는 현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은 쳐다보기도 싫어진 구성원을 돌보아야한다는 의무에 얽매여 지옥이 되기도 하니까. 가족이란 제도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인간은 한편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모기 물린 자국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앙상한 남편의 정강이에도 손을 뻗어 쓰다듬어 보기도 하는 존재다. 저자는 모순적인 가족에 대해 쓴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따라가면서, 가부장의 사회적 의무에 얽매인 인간의 초상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도 읽어낸다.


 

인간은 사회의 규범과 제도의 지배 아래 살아간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는 각각의 인간이 사회에서 나름의 역할을 부여받고, 이 역할을 잘 해내도록 요구받는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속 어느 남편처럼 부부의 정도 사라진지 오래된 터에 가족을 위한 역할에 얽매인 인간으로 살다가 생을 마치게 되는 가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 속 인물에 대한 묘사 이긴 하지만, 작가가 남긴 작품은 대부분 본인이 겪은 일들이 작품에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이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면 삶이 몇 배나 더 고달파지던 시대에 남편들 역시 가부장의 의무에 얽혀 평생을 살아갔던 모습을 보노라면 인간의 삶이 이게 다인가, 싶기도 하다. 결혼은 일이기에, 현실이기에 더욱더 상대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순서가 뒤바뀐(?) 듯한 표현에 더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한편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 속의 한 남편은 부인의 혐오가 담긴 시선을 받으면서도 가부장의 의무에 집착한다. 아무리 공감력이 떨어지는 남자라 해도 혐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감지하지 못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쩌면 이시대의 많은 남편은 이러한 사회적 역할에서만이 스스로의 쓸모와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반문해본다. 저자가 어머니가 되는 것은 학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28)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 되기도 사회적 의무와 가정에서의 역할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워야할 일이다. 결국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남편과 부인 되기의 공간과 시간이 각자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면 남편들도 가족의 외부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야 문제가 많은 제도로서의 가족에 최소한 숨 쉴 틈이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감지할 수 있는 박완서 작가의 가족에 대한 태도는, 가족이라는 제도의 모순을 또렷하게 감각해내면서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세심하게 견지하는 모습 같은 것이다. 또한 의연하고 한편으로는 가족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에 가깝다. 어쩌면 박완서 작가에게 가족의 문제는, ‘철저한 개별성을 지닌 현상으로 보았던 죽음의 문제처럼, 지극히 개별적인 사정으로 이해되었을 법하다. 그렇기에 글쓰기라는 절차를 통해 결국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관점을 볼 수 있는 또다른 에피소드가 <저물녁의 황홀>에 등장하는 화초 할머니이야기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지극히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 어느 날 침투한 불청객이었다. 반면 화초 할머니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가 해낸 역할 뺨치는 연기로 가장의 임종을 지킴과 동시에 유산도 받고 이 가족으로부터 유유히 떠나는 인물이다. 그 과정의 장면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져 보였던 것이다. 화초 할머니는 불완전하고 모순적 제도인 가족의 맹점 한 군데를 파고든다. 그녀의 역할은 모순적인 제도에 대한 통쾌한 업신여김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저자의 인물 해석에도 공감이 갔다. 자녀나 본처가 생의 마지막까지 가장에게 주지 못한 역할을 화초 할머니가 연기를 하면서도 해냈다는 점 말이다.


 

더 나아가 화자의 친할머니와 화초 할머니 사이의 관계를 여성 사이의 연대와 인류애로 읽어낸 시선 역시 인상 깊다. 이런 마음은 어쩌면 우리 세대 이후에 더 발견하기 힘든 덕목으로 남을 것 같다. 누구는 화초 할머니 캐릭터 혹은 혼신의 힘을 다한 그녀의 연기를 비난할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비루한 연기나마, 결과적으로는 한 인간(할아버지)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었던 화초 할머니야말로 유산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싶은 것이다. 아무리 눈속임 연기라고 해도, 연기란 그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과 진정성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립된 한 인간의 마음과 처지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마음을 나도 배우고 싶다.


 

저자는 박완서 연구자이면서 후배 작가로서 박완서 작가의 유산을 되짚어보고 다시 읽기를 했다. 이어지는 에필로그에서는 저자 본인의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방향을 들려준다.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저자는 글이 서툴더라도 AI를 사용하기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진실하게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요즘 이 AI 시대에 진실함이 없다면 글쓰기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차였다. 저자의 글쓰기 이야기를 듣게 되니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누구나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아무나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발견하고 글로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AI는 이 과정을 초보 작가로부터 빼앗아가기 쉬운 까닭이다. 저자는 박완서 작가가 평생 피와 땀으로 쓴 글을 정성껏 읽으며 발견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 책의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박완서 작가를 다시 읽어내며 놀았던 저자의 또 다른 마당임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작은 목소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가족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넘어서 보다큰 이야기를 남겨준 박완서 작가를 모범으로 삼을 수 있겠다. 나 역시 서툴더라도 나의 목소리를 찾아내기까지 계속 읽고 쓸 수 있길 바란다. 저자처럼까지는 아니고, ‘이라도 흘릴 수 있는 나의노는 마당에서 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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