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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지구 -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지구와 인간 공부
김추령 지음 / 종이와빵 / 2026년 5월
평점 :

낯설어진 지구에서 함께 잘 살기위한 공부
《낯선 지구》
: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지구와 인간 공부
김추령 지음 [종이와빵] (2026)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AI에 대한 신기술이 발표되고 인류의 달 거주 계획이나 화성 탐사에 대한 전망을 접하는 시대에 산다. 어느 과학자의 예언 같은 선언처럼, 기술적인 ‘특이점’이 이제 곧 시작될 것만 같다. 너무나 빠른 발전 속도와 생산성, 그리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우려는 반기술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기 쉬운 형국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위를 올려다보는 동안, 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대지와 발아래의 세계는 어느덧 꽤나 낯설어져 버렸다. 사람들의 관심이 이제는 새로운 현실 세계로 편입되어버린 가상공간이나 우주 공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자연과 본래의 현실 세계로부터 오히려 더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낯선 지구>에서 저자는 인간에 의해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된 지구에 주목한다. 곧 이어 인간이라는 존재로 향하는 저자의 시선이 담긴 글쓰기는 지구와 인간 사이의 느슨해진 연대를 확인하고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전망을 담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인간에 주목하지만, 과거의 검은 하늘(우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질계의 역사에 관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한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낯설었다. 달이 없던 태초의 지구를 상상해본 적이 없거니와 인류가 달이 생겨나는 순간을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낯선 지구’의 모습이다. 물론 과학자들의 상상은 지금껏 인류가 축적해온 모든 지식과 보다 많은 파라미터를 사용한 시뮬레이션에 기반하고 있지만 말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생소한 지구의 모습은 지금껏 단 하루도 같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특히 지구와 달의 형성과정에서 우연히 삐딱해진 지구의 자전축이 오늘 지구가 갖춘 모습에 이토록 큰 영향력을 주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만 인간은 너무나 짧은 시간에 칙칙한 회색빛 얼굴을 지구에게 안겨 주고 말았다. 인간이 기후 및 자연 환경의 변화 때문에 나무 아래로 내려와 발을 딛고 살아가기 시작한 터전을 무심하고 거침없이 파헤치고 이용해온 결과다. 인류는 과거에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지구’와 또 다른 지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안내한다.
우선 지구의 부단한 지질활동이야말로 질소나 탄소 같은 주요 원소들의 순환을 견인했다. 이로 인해 빙하기와 해빙기의 순환도 이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물질계의 흐름과 상호작용과 부단한 변화들은 생명의 출현과 이들과의 상호작용으로 더욱 극적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우연히, 한편으로는 필연적으로 대기 산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질학적 시간에서 말하는 다섯 번의 대멸종과는 차원이 다른 대멸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내 주변의 모든 존재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나의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히 나의 존재가 지질시대의 대멸종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1%의 존재에 빚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로부터 나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흐름에 대한 이해의 놀라움은 나를 연대와 새로운 부채의 감각으로도 이끌어주었다.
내 피부에 와 닿도록‘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연대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었던 대상은 바로 ‘나’의 존재였다. 내 몸 안에 무척이나 다양한 개체(미생물/바이러스/남세균 등의 흔적)가 들어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나’혼자만의 고립된 단독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건 감각이 새롭게 환기되는 경험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개체들이 내 몸 안에서 각자 자리를 잡고 상호작용하고 유전자도 교환하며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내 몸의 세포보다 100배나 많은 유전자가 비인간 생명체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은유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서로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언급한 것에서 더 나아가 내 몸이 정말로‘소우주’라고 부를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저자가 초기 지구에서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들려주는 동안 내가 주목했던 부분 한 가지는, 어느 영국 시인의 말대로 ‘인간은 누구도 고립된 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생명체 역시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바다 밑 수 km 아래, 저 심해 바닥의 열수공 주변은 수백 기압의 압력과 수백 도의 극한 환경이지만, 이런 곳에서도 혐기성 생물들은 열수공에서 분출되는 광물질에 의존해 살아간다. 무엇보다 이 세균들마저 나와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가 새삼 낯설게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현재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한 가득 안겨준다. 이를 테면 물질계와 생명계가 서로 촘촘하게 얽혀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진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반면 인간은 지구의 다양한 순환 시스템에 상당한 교란을 일으키는 아마도 거의 유일한 종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드게임 젠가(Jenga) 위에 올라가 있는 존재처럼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발밑에 놓인 나무토막을 하나씩 계속 빼고 있다. 멈추지 않고 호기심에서든 혹은 관성 때문이든 나무토막을 계속 빼려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음에도 발아래 다가온 위험을 직시하거나 멈추기 위한 행동에 옮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운명은 분명하다. 다만 언제 그 운명이 닥쳐올지 모르는 것뿐이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지만, 인류 공동체는 이전과 달리 행동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데 여전히 더디다.
인류 대부분은 이러한 위기감을 분명 알고 있다. 다만 발아래에 있는 이 위기를 당장은 살짝 눈감고 싶은 불안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해에 더하여 과거와 현재의 몇몇 공동체의 모습들, 사회적인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한 것은 여기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작은 공동체에 존재했던 작은 전통들을 이야기하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캐나다 서부 선주민의 ‘포틀래치’ 전통이나 멜라네시아의 ‘쿨라 링’의 전통이 그렇다. 저자는 이런 전통들에서 인간이 ‘움직이는 동기’가 경제적인 것만 있지 않음을 역설했다. 특히 공동체를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에 주목했다. 저자가 여러 공동체의 전통과 관습에서 읽어내는 것은 구성원 사이의 명예나 존경심, 연대의 가치다. 다만 이러한 가치들이 규모가 훨씬 큰 현대 사회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좀 더 고심해볼 문제다.
이 책의 제목 ‘낯선 지구’는 인간의 편리함, 나아가 성장 위주의 탄소 소비 문명이 지질학적 시간에 비해 얼마나 짧은 시간 만에 지구-자연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분명한 점은 지구상의 어느 종이든 영원히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인류 문명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문명의 운명을 직감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이 과정을 얼마나 빨리 앞당길 것인가는 분명 인류의 손에 달려 있을 터다. 저자는 오래 전 지구 곳곳의 선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연대의 문화에 주목하고 여기에서 일말의 희망을 본다. 지구는 인류에게, 나아가 모든 존재들에게 유일한 공유지이다.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인 문제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진다면 작은 공동체의 사례로부터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실마리로부터 내가 속한 공동체에 맞는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해가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낯선 지구’와 다시 연결되어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며, 작지만 공존을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함께 잘 살기’위해 이제는 낯설어진 지구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제스처이다.


[책속으로]
[1] "지구의 삐딱함이 바로 테이아(달을 만든 외계 천체)와 텔루스(원시 지구)의 충돌로 인한 결과입니다. 테이아와 텔루스의 우연한 충돌로 만들어진 지구의 삐딱함은 지구에 거주하는 많은 생명체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물론 오늘날 인류의 등장도 그 영향을 받았지요." - P16
[2] "지의류, 땅의 옷이라는 뜻입니다. (...) 지의류는 보통 곰팡이와 광합성을 하는 녹조류나 남세균의 공생체예요. (...) 지의류의 특성을 소개할 때 빠질 수 없는 표현이 ‘극한 미생물’입니다." - P54
[3] "지의류는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한계점을 넘을 수도 있는 지구 시스템과 닮았어요. 지의류는 공생이라는 방법으로 슈퍼 생물이 되었습니다." - P59
[4] "1905년 러시아의 생물학자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메레슈코프스키는 한 가지 가설을 주장합니다. ‘진핵세포가 지구에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세포 내에서 공생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1960년대 세포내공생설을 주장했던 린 마굴리스의 발견(세포내공생설)의 원천이 되는 발견을 한 러시아 생물학자 메레슈코프스키의 발견. - P62
[5] "우리는 말 그대로 슈퍼유기체가 아닐까요? 다양한 생물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작동하고 유지되고 번성하는 초유기체 인간. 인간이라는 정의 자체가 공생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 P72
[6] "진화는 생물과 물질적 환경이 서로 얽혀 추는 정교한 춤이며, 그 춤에서 ‘가이아(지구)’라는 존재가 탄생한다." - 데이지꽃 행성 개념을 만든 제임스 러브록의 말 - P92
[7] "모스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오로지 경제적인 동기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의 명예, 자존심, 그리고 사회적 약속이 경제적 이윤보다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가 지구의 여러 공동체로부터 발견한 전통(쿨라 링)과 의미 - P141
[8] "오스트롬이 발견한 작은 공동체의 복작복작하고 시시비비로 시끌벅적한 그 회의장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마을공동체의 자율적인 관리 체계에서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자신의 모습, 낯선 인류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희망이라 불러봅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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