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책 읽기 사이언스 믹서’ 5월 후기

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올해 네 번째 과학책 읽기 모임 사이언스 믹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날은 맑았지만 아침부터 햇볕이 강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부쩍 여름이 온 것만 같네요. 이번 달에는 나쁜 유전자의 제4열등한 유전자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4장은 많이 들어보셨을 우생학의 역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분야의 짧은 역사에 비해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견주어보면 실로 믿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날 오스트리아의 한 백수 청년이 독일 군인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는 그림을 좀 그릴 줄 알았고 특히 웅변에 재주가 있었죠. 또 어느 날은 무장청년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수감되기도 했죠. 그는 비록 실패했지만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 덕분에 얻은 유명세와 그의 유대인 혐오에 힘입어 정권을 잡게 됩니다. 이어서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대인 제거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죠. 짐작하시겠지만 이 청년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이번 읽기에서는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와 말살 정책이 무엇보다 우생학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2차 대전 당시에 유대인만 희생당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뉘른베르크법에 의해 일탈자로 규정되었던 혼혈아, 장애인, 동성애자, 정신질환자들, 그리고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집시들도 모두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분류되어 희생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치의 우생학은 좋은 혈통을 낳는데 부적격인 판정을 받은 여성 수십만 명에게 불임수술을 강제하기도 했습니다. 신체 기형 혹은 백치 판정을 받은 어린이의 운명은 훨씬 가혹했습니다. 이들 어린이들은 약 20만 명 정도가 안락사를 당해야 했습니다. 더 섬뜩한 사실은 나치가 사회에서 제거 대상이 된 이들에 대한 대량 말살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고안된 것이 바로 가스실과 독가스 치클론 B라는 점이죠.

 


이처럼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는데 핵심적인 이론이었던 독일의 우생학은 이미 20여년 동안 미국 사회의 지도층 사이에서 널리 인정과 지지를 받던 이론이기도 했습니다. 철도왕 해리먼, 철강왕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 씨리얼의 왕 켈로그의 이름도 보이고, 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학문적 일대기가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던 스탠퍼드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나 하버드대 총장 애벗 로렌스 로웰도 우생학의 핵심 지지자였습니다.


 

우생학을 지지했던 인물 중 우리를 더 놀라게 하는 이는, 당대에 존경받던 대통령 플랭클린 루즈벨트, 진보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어, 흑인 인권운동가 듀 보이스를 비롯하여 소설가 H.G. 웰스나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 작가이자 사상가 조지 버나드 쇼 등도 있었네요. 실로 수많은 지도층 인사가 우생학을 지지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산아 제한을 원하던 영국의 여성단체도 우생학에 관심을 보이며 단종법을 지지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이처럼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수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정황이 보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오늘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생학을 다시 보게 합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500여년 전의 플라톤 철학(<국가>)에도 이미 우생학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하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우생학의 기본 논리가 우리의 건강 추구 욕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자손을 낳고자하는 부모의 마음을 안다면 사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지점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 논리가 사회 혹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나 공감의 여지없이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될 때 발생하지요. 특히 사회의 관리 주체에 의해 단점으로 규정된 특징을 지닌 구성원들을 사회에서 격리/제거하려는 위생학적인 욕망이 과도할 때 심각한 재앙을 낳게 되는 것 같네요.


 

이에 더하여 유럽의 식민권력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던 우생학의 역사로부터 인류가 큰 희생을 치르고 배운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생학의 전통에서 이제 자유로운 걸까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빠르게 발전해 왔지만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윤리적 문제들도 심심치 않게 드러납니다. 이미 현실에서는 에이즈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아이가 태어났고, 형제의 유전자 치료에 골수를 공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구세주 동생과 같은 존재가 태어난 바 있습니다. 고통 받는 생명을 돌보고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들의 복지를 위해 또 다른 생명이 이용되는 관계 나아가 희생되는 구도는 분명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생학의 흔적과 논리는 여전히 우리의 현살 한 가운데에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우리는 대화에서 농담이나 우스개로 우월한 유전자’, ‘열등한 유전자라는 표현은 망설임 없이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세계에서 어느 유전자가 우월하다거나 열등한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대 유전학/생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우리가 일일이 예측하지 못하는 것만큼 한때의 유리한 유전자가 다른 장소, 혹은 다른 시기의 환경에서는 치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저자는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우월하거나 열등한 구성원이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유전자는 우월함이나 열등함의 원인이 될 수 없으며, 그저 다양함의 원천이라고 말이죠. 우리 모두는 그저 다양한존재이기에,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무시하거나 획일화하는 조건에 저항하고 다양함을 지켜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우생학의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 주변에 잔존해 있는 우생학의 잔재를 발견하고, 다양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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