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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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궤적

- 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다산책방] (2025)

 





김주혜 작가의 밤새들의 도시를 읽은 지 몇 달이 지나 가물가물하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은 나탈리아다. 그녀는 러시아의 수석 발레리나가 된 인물이다. 이야기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 시절과 그의 탄생 이후 발레에 우연히 입문하게 된 사연과 성장기가 가족사와 더불어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하며 나아간다.

 


어느 분야든 정상의 자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 타인의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물, 나아가 자신의 완성을 열망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한편 이 여정은 다른 경쟁자와의 대결이면서 결국엔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이른다. 작가의 전작 작은 땅의 야수들에서 내뿜는 에너지와 사뭇 다른 이번 작품은 예술 분야, 특히 발레에서 한 재능 있는 발레리나가 정상에 오르는 과정과 내리막길의 서사를 담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는 일은 치열한 자기 탐구의 시간을 요한다. 이 여정을 통과하는 이는 결국 자신이라는 존재를 자신이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순간이 오고야 만다. 이를테면 자기 인정의 과정이 통과의례처럼 기다리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예술의 완성이라는 목표가 삶과 하나가 되어야 가능한 단계가 아닐까 싶다. 나탈리아 주변의 모든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들은 각자 자신의 여정에서 예술적 지향점을 향한 열망이 가득한 존재들이다.

 


문제는 이 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나탈리아를 비롯한 동료 발레리나들은 모두 정상혹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치 구름에 가린 에베레스트처럼 가까이 다가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인간이 각자 나름의 지향점을 열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정답은 없다. 구도자와도 같은 이들의 무의식 속에 각자 나름의 의미를 찾는 기대와 욕구가 있을 텐데, 이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가끔 예술 활동이란 것이, 죽게 마련인 인간 존재들이 수행하는 일종의 구원 행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이는 정상급 예술가의 예술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삶의 구원을 향한 일상의 행위 역시 예술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작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의 독립 영웅들에 모티브를 얻은 작품었다.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인 작가의 한국적 소재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탐구가 반갑다. 다만 한국인으로서 이 책에 활용된 이야기들은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온 독립 영웅들의 이야기가 겹쳐 있어 어떤 부분은 이미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외국인들에게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정서를 좀 더 내밀하게 소개하는 소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소개된 밤새들의 도시가 좋았다. 작은 땅의 야수들이 작가 자신의 특수성과 정체성을 붙들고 탐구한 작업의 결과물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보다 많은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을 소재로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성을 담고 있다. 또한 영화는 아니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가 특히 좋았다. 아마도 작가의 예술, 특히 발레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느껴져서일 수도 있겠다.


 

학술적으로 정립된 개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소설의 흐름을 구분하는 두 가지 영역이 있다. 하나는 톨스토이 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의 소설은 작가의 친절하고 치밀한 묘사와 설명이 풍부하다. 묘사가 디테일한 작품이 많다. 이중 가끔은 톨스토이처럼 글에 담긴 정보나 흐름의 방식이 TMI라고 느껴지는 대목도 종종 만나게 된다. 반면 이와 대척점을 이루는 소설의 스타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분위기로 성취해내는 작품들이다. 이른바 체호프 스타일이다. 대체로 큰 사건이나 변곡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대화와 대화 사이, 장면의 분위기를 통해 인물의 심리가, 고뇌가 보이는 듯한 소설이 그것이다. 이 스타일의 대표 작가라면 레이먼드 카버와 같은 이들이다.

 


이 두 가지 소설 스타일 중에서 김주혜 작가의 스타일은 톨스토이 스타일과 체호프 스타일 사이의 어디인가로 느끼는데, 내겐 톨스토이 스타일에 좀 더 가까운 것처럼 느낀다. 대신 작가의 문장은 TMI라고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반면 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섬세한 묘사가 압권이라 여겨질 때가 있다. 이런 특징이 전작 보다는 밤새들의 도시에서 만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특히 책읽기를 늦게 시작한 나에게 작가의 작품은 첫 작품부터 지켜보며 함께 나이드는 기분이라 남다른 느낌을 받는다. 세월이 지나 세계적인 대작가로 인정받게 되면 좋겠다. 그때는 나도 작가의 모든 작품을 세월과 함께 다 읽어가고 있지 않을까.

 


소설의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밤새들의 도시의 책장을 덮은 후의 감흥은 아직 남아 있다. 세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존재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맑은 하늘을 마구 가로지르는 비행운들처럼 걸려 있는 소설이다.






"용기를 가지시오. 신이 결정하였다면 우리의 갈 길은 누구도 빼앗지 못하니."
- 나탈리아의 생부 니콜라이가 재인용한 단테의 문장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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