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 - 돌봄과 상실, 부모의 나이듦에 관하여
폴커 키츠 지음, 윤진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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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외투

-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

: 돌봄과 상실, 부모의 나이듦에 관하여


 

폴커 키츠(Volker Kitz) 지음

윤진희 옮김 [김영사] (2025)





 

올 여름 매미가 뜨겁게 울던 어느 날 집안 어른 한 분을 떠나보냈다. 한 인간이 아프고 삶이 무너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인간의 나이듦과 돌봄에 초점이 맞추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나의 생계를 접어두고 환자의 수족이 되어 환자를 보살핀 것도 아니기에 나의 무력감과 부끄러움이 상처를 더 쿡쿡 건드리고 상실의 아픔을 더 생생하게 자각하게 해주었다. 공허한 감정이나마 달래보려 어렵지 않은 책을 읽어보려 했으나 그것마저도 제대로 해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안절부절하던 마음이 우연히 머물게 된 책이 당신에게 끝까지 다정하기로 했다였다.

 


저자 폴커 키츠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 연구자이면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도 활동하는 작가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노년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곁에서 그를 보살피고 떠나보내는 과정을 담은 책이 바로 내가 긴 여름의 끝에 우연히 만난 이 책이다. 특히 우리 사회도 경험한 바와 같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하루하루가 황금 같은 무게를 지녔을 저자와 아버지의 시간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삶을 경험하는 이라면 누구든 반드시 노화를 겪는다. 그리고 누구나 단 한 번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 엄정한 진실을 우리는 어떻게 마주하는가? 올해는 내게 이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화두가 되어버렸다. 부모의 노화에 더하여, 저자의 아버지와 같이 치매라는 질병은 돌보는 가족을 더더욱 아프게 한다. 치매가 당사자와 그를 돌보는 이들에게 주는 무게는 단순히 기억을 잃어가는 것에만 놓여 있지 않다. 저자 폴커 키츠는 치매로 나날이 변화하는 아버지를 돌보고 곁에서 지켜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 자신을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29)라고. 치매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과정이다. 가족과의 추억이며 한 개인을 둘러싼 역사가 사라진다.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개인이자 사회적인 한 존재가 지워지는 듯한 상실감을 남긴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거나, 음식을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먹을지, 용변을 어떻게 혹은 어디서 보아야 할지 등등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점차 힘들어지게 한다. 가족들은 마치 한 사람의 존재가 서서히 지워는 모습을 봐야하는, 잔인한 형벌을 받은 느낌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의 아버지도 결국 레지던스라고 부르는 일종의 요양 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자주 방문하고 곁에서 대화를 이어가지만, 자신의 세계와 점점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세계를 깨닫게 될 뿐이다. 저자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주하는 변화를 감지하고, 보호자로서 느끼는 당혹감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감을 책의 곳곳에서 이야기한다. 심리학, 법학, 경영학 등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분야의 책을 20여 권 쓴 바 있는 저자는 이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는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 된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을 꺼내보고 있었다.

 


올 여름 나는 병원 가는 길이나 집에 돌아오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이따금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메모장에 두서없이 적어두곤 했다. 하지만 49제도 지난 지금도 이 메모들을 아직 들추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저자가 아버지와의 추억이나 자신의 감정들을 담담하게 남겨 놓는 대목을 읽다보니, 올 여름 내가 느꼈던 현실적인 문제들뿐만 아니라 그날의 고민이나 감정들을 저자가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어 놀랐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가 이토록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그만 위안을 받았다. 어쩌면 우리 현대인의 삶에서 나이듦과 돌봄,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본질에는 결국 공통점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사람이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가족은 누구나 한번쯤 무력감을 느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종종 돌보는 이 자신의 부족함이나 후회로 인한 수치심도 느끼는 듯하다. 여기서 그는 이런 수치심이나 죄책감이야말로 글쓰기의 강력한 원동력일 수 있음을 말한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글쓰기 행위 자체에 머물고자 하는 점이 인상 깊다. 그는 단어들이 나를 보호한다. 문장과 페이지, 마침표와 느낌표로 된 외투에 싸여 있으면, 나는 덜 두렵다.(238)라고 언급한다. 한 사람이 지면에 내려 적는 단어들이 마치 우리를 보호하는 외투 같은 역할을 한다니. 그러고 보면 올 여름 내가 적었던 단어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를 지탱해준 것이야말로 바로 이 단어들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개인의 슬픔이나 고통, 불안이나 두려움과 마주하여 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게 해주는 듯하다. 우리 안의 막연한 감정들을 가시화하는 행위가 글쓰기 일 것이다. 이해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삶의 진실들을 언어로 변환시키고, 이로써 이 주제들을 마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던 커다란 문제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여유를 글 쓰는 이에게 부여한다. 누군가의 삶이 종착역에 다다르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 새삼 깨닫는다. ‘죽음이 결코 스스로 완성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이 과정은 늘 타인의 인정과 인지 없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삶의 도도한 과정에서 모든 이들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과정에서 글쓰기는 삶의 거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가져다 줄 고독의 한 가운데에 머무를 수 있는 보호막을 만들어준다.


 

나아가 글쓰기가 우리 삶의 일상이 되고 루틴 속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습관에 대해 사회학자 야노슈 쇼빈의 말을 인용한다. ‘습관이 우리에게 무한에 대한 허구를 제공한다. 나아가 이 허구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이다. 따라서 글쓰기가 우리의 일상이 되고 루틴이 될 때 인간의 죽음도 보편적인 경험으로써 공유되고 그 무게가 경감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의 과정으로서 규칙적인 글쓰기, 루틴이 된 글쓰기가 하나의 의식(ritual)이 되면, 마치 예방주사를 맞듯,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마주할만한 사건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 살아 있는 누구든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내게는 글쓰기가 타인의 죽음이라는 경험을 상상하게 하고 두려움을 마주하게 해주는 의식으로서 소중하다.



[책속으로]


[1] "‘돌봄’은 이제 우리 세대를 드러내는 단어다." - P25

[2]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 자신을 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 P29

[3] "아버지의 변화는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 P74

[4] "아버지는 이제 레지던스에서 지낸다. 나에게 가까이 왔지만, 아버지의 세계는 멀리 있다." - P91

[5] "아버지의 기억에 내 모습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남을까 봐 몹시 두렵다. (...) 다음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나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해서 현장이 그 상태 그대로 봉인되어버릴까 봐 두렵다." - P171

[6] "사회학자 야노슈 쇼빈은 습관이 우리에게 ‘무한에 대한 허구’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 허구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일상의 루틴, 거듭되는 비슷한 패턴 그리고 같은 사람들과의 규칙적인 만남은 우리의 행동을 무한히 수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P176

[7] "(도나) 해러웨이는 자신의 책 《불안 속에 머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복잡성을 담아내고, 경계선을 열어두고,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예상치 못한 연결을 향한 갈망을 유지해주는 커다란 이야기(그리고 이론)가 필요하다.’" - P208

[8] "아버지는 종종 죽기를 원했지만, 여전히 살고 싶어 했다." - P209

[9] "누구의 자녀가 동성애자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당신이 원하는 삶과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도 자신처럼 평범한 가정을 꾸리길 바랐을 것이다." - P231

[10] "아기였을 때 자신을 돌봐준 부모님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개인적 의무감과 사회적 기대에 어긋난다. 그와 더불어 우리가 그 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죄책감이 더해진다." - P236

[11] "단어들이 나를 보호한다. 문장과 페이지, 마침표와 느낌표로 된 외투에 싸여 있으면, 나는 덜 두렵다." - P238

[12] "나에게는 자녀가 없으니, 자녀가 나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돌봐줄까?" - P255

[13] "(도나 해러웨이는)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는 창의적인 친족 관계를 만들고, 현재 안에서 함께 잘 살고 잘 죽을 수 있는 학습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것이 바로 해러웨이가 말하는 ‘촉수적 사고’다. (...) 이는 친구놀이를 뜻한다." - P257

[14] "불꽃이 사방으로 번진다. 재와 불꽃, 연기, 나무 타는 소리 그리고 속삭임. 그곳은 붙잡을 수도, 측정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한순간, 불꽃 속에서 문어가 솟아오른다. 문어는 촉수를 펼치며 탐색하고 느끼고 뭔가를 찾는다."(267, 마지막 문장)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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