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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37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우리가 ‘개별성’을 잃는다면, 우리는/나는 누구인가?
- 《우리들》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 지음
석영중 옮김 [열린책들] (1996/2006)
“매일 아침 육륜(六輪)의 정확성으로 동일한 시간, 동일한 분에 우리 - 수백만의 우리는 마치 한 사람처럼 기상한다.”(18)
29세기의 지구를 지배하는 ‘단일제국’의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매일 오전 7시에 단일제국 찬가를 합창하며 기상한다. 이들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반면, ‘녹색의 벽’ 너머에는 불투명한 ‘고대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다. 이곳은 200년에 걸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전쟁으로 삶의 공간이 파괴된 곳이다. 하지만 단일제국의 하루는 일사분란하다. 마치 여섯 개의 바퀴에 의지한 채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거대한 증기 기관차처럼 말이다. 이들의 취침 시간은 정확히 22와 2분의 1시(오후 10시 30분)이다. 그러고 보니 이들의 생활 패턴이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군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이러한 풍경을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러시아 작가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은 디스토피아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당시 36세의 젊은 작가는 러시아 혁명 직후인 1920년에 집필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작품 전체를 통해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이 전면에 등장하기에 당시 러시아 국내에서 출간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스탈린 집권 이전에 집필되었기에, 오웰의 <동물농장>처럼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 보다는, 경제 체제의 지배와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독해가 더 설득력이 있다. 특히 거대한 생산 라인의 부품처럼 최대의 효율성을 위해 일하도록 ‘길들여진’ 구성원들의 소외와 자유의 박탈 문제를 꽤나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자본을 가진 거대 기업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지금 시대의 현실과 더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단일제국의 구성원들은 녹색의 벽 너머의 인간들처럼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거대한 유리 반구로 경계 지워져 있는 이 곳에서 이름 대신 여자는 알파벳 모음, 남자는 자음 한 자로 시작하는 번호로 불린다. 이를테면, 소설의 화자는 D-503이고, 화자와 ‘맺어진’ 연인은 O-90으로 불리는 식이다. 이 곳의 구성원들은 개인성 자체를 의식하도록 길들여진 듯하다. 획일적이고 평균적인 존재로 살아갈 뿐이다. 반면 단일제국을 지배하는 존재는 번호 대신 ‘은혜로운 분’으로 불린다. 이는 특정한 ‘이름’이 부여된 인간과 달리, 막연하고 불가해한 이름으로 불림으로서 스스로를 구별 짓고 있다.
“우리는 심지어 생각까지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개인’이 아닌 ‘...중의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동일한 것이다.”(12) 그러므로 각자가 자각하는 자신은 언제나 “나이며 동시에 내가 아닌”(8) 상태에 머물 뿐이다.
수백 년 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인간들의 ‘고대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처럼 건물들이 ‘불투명’하다. 반면 단일제국의 건물들은 모두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다. 상상이 되는가? 7시에 기상하여 눈길을 옆으로 돌리면 옆집 사람이 무엇을 하는 지 볼 수 있고, 때론 눈길도 마주친다. 말하자면 이들에게는평소에 ‘사생활’ 없이 살아간다. 단, 사랑을 나눌 때에만 국가에 신고를 하고 이를 증명하는 분홍색 감찰을 얻어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이때에야 비로소 커튼을 내릴 수 있는 허가가 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사람들은 성생활까지도 국가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나아가 사랑에 있어서 희열(분모)/질투(분자)로 정의되는 ‘행복의 공식’에서, 질투를 무한히 작게 만들면 행복을 무한히 증대시킬 수 있다는, 기계적이고 우려스러운 믿음을 신봉한다. 이때 질투를 무한히 작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국가’는 모든 파트너의 자유로운 공유를 제도화한 것이다. 100여 년 전의 소설 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제도가 보다 구체적이고 파격적으로 설정되어 이어지는 모습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사람과 깊이 맺는 인간적인 관계가 오히려 의심스럽고 불순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작품 속 화자인 D-503은 단일제국의 수학자이면서, 건조중인 우주선 ‘인쩨그랄’의 조선 담당 기사이다. 학창 시절 친구이자 시인이기도 한 흑인 R-13은 여인 O-90와도 파트너다. 곧 이 세 사람은 삼각관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인간들과는 달리 이 세 명 사이에는 서로에게 질투를 품지는 않는다. 화자는 오히려 자신들의 관계를 ‘완벽한 삼각형’이라고 만족하기까지 한다. 이들 각자는 단일제국의 업무를 분담하는 ‘개미’ 혹은 거대한 기계의 규격 부품과 같은 의무를 다하고자 할뿐이다.
단일제국의 철학은 테일러 주의(Tayorism)와 포드주의(Fordism)이라는 표현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메커니즘의 아름다움이란 진자와 같이 정확하고 불변하는 리듬에 있다. 그러나 사실 어려서부터 테일러 시스템에 의해 길러진 당신들은 진자처럼 정확하게 되지 않았는가? (...) 메커니즘에는 환각증이 없다.”(175) 단일제국에 스며들어 있는 공기에서는 ‘미래와 이성에 대한 낙관을, 오차 없는 기계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감지할 수 있다. 생산성과 효율의 극대화를 위해 노동자들(그러니까 각각의 번호들)은 밤에 반드시 잠을 자야 한다. 이것은 의무이기에, 밤에 수면을 취하지 않은 것은 심지어 범죄가 된다. 이 단일제국의 번호들에게는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의무는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 추구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생산 목표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개인의 개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와 달리 ‘영혼’이 내면에 형성된 번호들,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여겨지는 ‘꿈을 꾼 이들’, 제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불순분자들’은 ‘환각증’을 가진 사람들로 진단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단일제국은 이들에 대한 ‘처리’ 방법을 알고 있다. 환각증을 가진 사람들은 소위 ‘위대한 수술’을 받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위대한 수술이란, 간단하다. 엑스레이로 대뇌 하부의 뇌신경 마디를 3회에 걸쳐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면 수술 받은 번호들은 결국 화자처럼,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만을 가진 ‘본래의’ D-503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단일제국의 번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체의 일부’로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데 머문다. 어쩌면 화자가 건조에 참여중인 우주선 ‘인쩨그랄’의 이름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명칭은 영어의 인티그럴(integral)에 해당할 텐데, 이 용어야말로 ‘전체의 일부로서 필요불가결한’, ‘완전한’이라는 의미를 지니면서, 분수(fraction)에 대항하는 정수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인티그럴’이 ‘총체’라는 의미나 적분, 혹은 적분 기호로의 의미도 함의한다는 점에서 우주선 ‘인쩨그랄’의 명칭 하나에도 소설 전반이나 화자와 관계된 다의적인 상징성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설은 다양한 상징성을 구현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수 있는 특징은, 화자 D-503의 의식 변화다. 그는 동질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는 데 머물지 않고, 어느 순간 점점 더 ‘혼자됨’을 자각해간다. ‘나는 혼자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꽤 많이 반복된다. 그리고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내가 정말 나인지 알 수 있다면.”(69)이라고 말할 정도로 화자의 내면은 자아분열에 가까운 균열과 정처 없음을 경험한다. 결국 그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의식은 질병’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고유한 개인으로 드러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사회의 관습이라는 것이 그렇듯, 관습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단일제국의 의사는 화자의 내부에 ‘영혼’이 형성된 것이 틀림없으며, 자연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린다. 따라서 이 ‘환각증’을 제거하려면 ‘수술’을 받는 길밖에 없다는 처방을 내린다. 이 수술은 앞에서 언급한 신경 마디를 태우는 수술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도 화자 D-503은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 자신을 의식하고 결국 “나는 단독체”(153)라는 자각에 이르는 것이다.
화자가 스스로를 단독체로 자각하는 분열과 고뇌의 양상은 화자가 여성 I-110과 만난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I는 단일제국의 구성원들에게 존중을 받는 인물이지만, 벽 너머 인간들의 장소인 불투명한 ‘고대관’에서 금지된 술과 담배를 하며 화자를 유혹한다. 물론 화자를 유혹한 주된 이유는 화자가 참여하는 우주선 ‘인쩨그랄’을 탈취하고자 하는 혁명 활동의 포섭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I는 혁명 세력의 일원이었다. 우주선 ‘인쩨그랄’을 탈취하여 단일제국의 우주 진출을 막으려는 계획에 참여해왔던 것이다.
소설에서 예기치 못한 반전을 꼽는다면, I가 참여하는 혁명 활동이 다이나믹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흐지부지 실패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I에 단단히 빠져 있던 화자는 혁명 활동에 참여하는 듯 했지만, ‘인쩨그랄’ 탈취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며, 결국 어처구니없이 실패하고 만다. 급기야 화자 D-503은 국가로부터 ‘수술’까지 받아 마치 새로운 인격으로 거듭난다. 화자는 단일제국의 충실한 개인이 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내게는 극적인 반전도, 기대도 개의치 않는 듯한 반전이었지만 결국은 디스토피아적인 마무리다. 마치 ‘녹색의 벽’ 너머 인간의 세계로 넘어갈 것만 같았던 화자가 다시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고 ‘은혜로운 분’의 영향력 아래 복귀하는 설정. 내겐 오히려 상투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현실에 어떤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지만, 현실에서 패배하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어쩌면 오히려 더 실감나는 정서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작가 자먀찐은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전체주의적 사회 속 개인의 문제를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하나 된 전체로서의 개인을 강요하는 공동체에서 오히려 극도로 소외된 인간 존재에 대해 고찰했다. 5월의, 제국 상공의 푸른 하늘과 ‘녹색의 벽’, 그리고 노란 꽃가루가 넘어오는 인간들의 사회, 불투명한 ‘고대관’의 모습을 상상하다보니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렸던 이탈리아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초기 작품을 떠올렸다. 특히 키리코의 그림 ‘이탈리아 광장’(1913)처럼 고독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장면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혹은 그의 그림 가운데 마찬가지로 인기척 없는 광장 풍경을 담은 그림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소설 속의 묘사처럼, ‘마졸리카 도자기’를 닮은 파란 하늘 아래 누런 흙바닥이 있는 광장,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원형의 성이 있는 풍경처럼 말이다. 그리고 늦은 오후인 듯 길게 들어진 동상의 그림자. 그림의 광장은 소설에서 불투명한 건물이 늘어서 있는 ‘고대관’의 모습을 닮은 듯했다. 인기척뿐만 아니라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 왠지 모르게 황량하고 고독해 보이는 세계,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이 팽배한 그림이 소설의 분위기와도 꽤나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비밀 없이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 작품 속의 사회에서 개인은 균일한 부품으로, 전체의 일부로서만 존재한다. 투명한 다이아몬드처럼 말이다. 반면 ‘녹색의 벽’ 너머의 인간 거주 구역에서 모든 건물은 불투명하다. 이들의 존재 조건은 불투명한 흑연을 닮아 있다. 하지만 이로써 각자에게는 사생활이란 것이 생겨나고, 이로부터 사람들은 ‘혼자됨의 시간’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일단 개인성을 자각하게 되면, 그는 ‘단독체’로서 다시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테다. 화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혼자됨’을 자각하는 인물이었다. 인간이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은 유한한 존재이자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 불완전함에 대한 자각, 그리고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들이 비록 실수하고 실패하며 방황을 수반하더라도 자신을 객관화하고 타자에 보다 더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존재의 불투명성은 타자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을 보다 겸손하게 하고, 타자를 이해하고자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극단적이고 경직된 도덕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이 숨 쉴 여지를 남겨 놓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전체와 개인성의 발현, 소외와 고립, 그리고 자유의 문제를 견주어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1] "나이며 동시에 내가 아니다."(8) - P8
[2] "‘녹색의 벽’ 너머, 보이지 않는 황량한 평원에서 달콤한 황색의 꽃가루가 바람에 실려 온다."(9) - P9
[3] "우리는 심지어 생각까지도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개인’이 아닌 ‘... 중의 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토록 동일한 것이다."(12) - P12
[4] "매일 아침 육륜의 정확성으로 동일한 시간, 동일한 분에 우리 - 수백만의 우리는 마치 한 사람처럼 기상한다."(18) - P18
[5] "국가(인류)는 한 개인의 살인은 금지했으되, 수백만을 절반 정도 죽이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 사람을 죽이는 것, 즉 인간 생명의 합산을 50년 축소시키는 것은 범죄이지만 인간 생명의 합산을 5천만 년 축소시키는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는 얘기다."(19) - P19
[6] "다시 말해서 사랑이 조직화되고 수학화된 것이다. (...) 모든 번호에게는 다른 어떤 번호라도 성적 산물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26) - P26
[7] "지고의 희열과 질투란 행복이라 불리는 분수의 분자와 분모라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겠는가."(26) - P26
[8] "이 모든 일은 무엇 때문인가? 어째서 나는 여기 있는가?"(34) - P34
[9] "독창적이란 것은 다른 것들 가운데서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따라서 독창적임은 평등을 깨뜨리는 거죠..."(35) - P35
[10] "우리는 꿈이란 심각한 정신질환임을 안다. (...) 그들(고대인)의 생이란느 것은 전체가 그토록 끔찍한 회전목마가 아니었던가."(38) - P38
[11] "나는 저 거대하고 강력한 단일체의 한 부분으로서 나 자신을 인식한다. 그토록 정확한 아름다움이 또 있을까."(38) - P38
[12] "당신도 아시다시피 당신은 건강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43)
"밤에, 번호들은 반드시 자야 한다. 그것은 의무다. 낮에 일하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낮에 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야 한다. 밤에 자지 않는 것은, 범죄다..."(63) - P63
[13] D-503: "나는 (...)앞으로도 지식을 위해 봉사할 걸세." R-13: "자네의 그 지식이란 것이야말로 비겁함일세. (...) 그러나 벽 너머로 시선 던지기를 두려워하고 있어."(46) - P46
[14] "그래, 수학자 선생.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평균적인, 산술적인 존재들이지..."(49) - P49
[15]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이성적이고 유익한 것들이다."(54) - P54
[16] "창백한 유리 하늘, 녹색 빛이 도는 부동의 밤. 그러나 그 고요하고 서늘한 유리 밑에서 소리 없이 맹렬한 털북숭이의 무언가가, 적자색의 무언가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62) - P62
[17] "털북숭이의 야만적인 제2의 나. (...) 나는 혼자 남았다."(68)
"나는 혼자다. (...) 저 높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내가 정말 나인지 알 수 있다면."(69) - P69
[18] "그대는 안개가 자신보다 강력하기에 두려워해요. 그리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증오하지요. 또 정복할 수 없기에 사랑하지요. 사실상 우리는 정복할 수 없는 것만을 사랑할 수 있죠."(76) - P76
[19] "사실 나는 우리의 이성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유해한 고대의 세계에... 의 세계에 살고 있다."(81) - P81
[20] "인간화한 기계와 기계화한 인간은 결국 동일한 것이다."(86) - P86
[21] "그러나 나는 혼자였다. 난 파도에 떠밀려 무인도로 내팽개쳐진 인간이었다. 나는 찾고 있었다. 청회색의 파도 속에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90) - P90
[22] "인간은 최초로 벽을 세웠을 때에야 비로소 야생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났다. 우리가 녹색의 벽을 세웠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야만인이 아닐 수 있게 되었다. 즉 우리가 녹색의 벽으로 우리의 기계적이고 완벽한 세계를 나무, 새, 짐승 등의 비이성적인 흉측한 세계로부터 격리하게 되었을 때."(95) - P95
[23] "인간이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의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그의 문법에 의문부호가 절대로 없으며 있는 것은 다만 감탄부호, 쉼표, 그리고 마침표일 때에 한해서다."(118) - P118
[24] "나는 유쾌하고 건강하게 결박당한 느낌이었다."(121) - P121
[25] "우리는 늘 아시리아의 기념비에 그려진 투사들처럼 걷고 있었다. 천 개의 머리. 그러나 팔과 다리는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흔들렸다."(124) - P124
[26] "그만해요, 그만./ 그녀는 이미 더 이상 번호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인간이었다. 그녀는 다만 단일제국에 가해진 모욕적인 형이상학적 실체에 불과했다."(125) - P125
[27] "나는 나 자신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 스스로를 느낀다는 것, 스스로의 개인성을 의식한다는 것, 그것은 먼지가 들어간 눈, 종기가 난 손가락, 충치를 의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건강한 눈, 손가락, 이빨은 마치 없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그렇다면 개인적인 의식이란 단지 질병임이 확실하지 않은가."(127) - P127
[28] "모든 것이 특별하고 서럽고 부드럽고 장밋빛이고 축축했다."(128) - P128
[29] "(고대인들은) 어째서 그 모든 비밀이 필요했을까. (...( 우리에겐 숨길 것도 수치스러워 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135) - P135
[30] "나는 끝없는 복도에 혼자 서 있다. 그때의 그 복도 말이다. 말 없는 콘크리트 하늘."(149) - P149
[31] "나는 나였다. 개별적인 존재, 세계, 나는 여느 때처럼 구성 분자가 아니었다. 나는 단독체였다."(153) - P153
[32] "그들의 몸은 털로 뒤덮이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 대신 털 아래에 따뜻한 붉은 피를 보존했어요. 당신의 경우는 훨씬 나빠요. 당신은 숫자로 뒤덮여 있으니까요. 숫자가 마치 이처럼 당신 위를 기어 다니고 있어요. (...) 공포와 기쁨, 불같은 노여움, 추위 때문에 전율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160) - P160
[33] "다양성만이, 체온의 다양성, 열량의 대비만이 생명을 구성한다는 걸요. 만일 우주 도처에 동일하게 차갑거나 동일하게 뜨거운 것만이 있다면 그것은 없어져야만 해요. 불과 폭발과 지옥을 위해서죠."(171) - P171
[34] "‘국가 과학’의 최신 발견에 따르면 환각증의 중심은 대뇌 하부에 있는 보잘 것 없는 뇌신경 마디라는 것이다. 엑스레이로 그 마디를 3회에 걸쳐 태우면 당신들의 환각증을 치유할 수 있다."(175) - P175
[35] "그러나 내게는 구원이란 게 없었다. 나는 구원을 원치 않았다..."(182) - P182
[36]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고 너무도 뜻밖이라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 안에 팽팽하게 조여 있던 용수철이 곧 망가져 버렸다. (...) 나는 그때 개인적 경험을 통해 웃음이 가장 무서운 무기임을 알게 되었다. 웃음으로 모든 걸 죽일 수 있다. 살인까지도 할 수 있다."(206) - P206
[37] "어호, 우린 행동을 개시했어요!/ 우리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215) - P215
[38] "이전에 나는 웃음에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다. 웃음이란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의 먼 메아리일 뿐이다."(216) - P216
[39] "나는 미소 짓는다.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다. 내 머리에서 무슨 가시 같은 걸 뽑아냈으므로 머릿속은 가볍고 텅 비어 있다."(227) - P227
[40] "우리는 40번가의 횡단로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임시 벽을 건축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우리가 승리하길 희망한다. 아니, 그보다 나는 우리가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 이성은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이다."(228)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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