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림책

야콥 폰 윅스퀼 지음

정지은 옮김 [도서출판b] (2012)





동물행동학자 야콥 폰 윅스퀼의 <동물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정지은 옮김, 도서출판b, 2012)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저자 윅스퀼은 에토니아 출신의 독일 생물학자로 현대적인 생태학을 제시한 과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생물학자로서 윅스퀼은 생명체가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1934년에 제안한 움벨트(umwelt)라는 용어는주변 세계’(um: 주위/주변 + welt: 세계)정도로 해석된다. 윅스퀼은 감각이 가능한 모든 생명체(짚신벌레, 아메바, 진드기 등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가 각 생물종의 감각기관에 의해 인지된 세계를 의도했다. 따라서 그의 움벨트는 불변하고 어느 생물종에게나 동일한 세계가 아니었다. 각 생물종의 고유한 감각기관에 의해 재구성된, 주관적인 세계의 존재를 인정한 셈이다. 곧 각 생물종에게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하나의 객관적인 세계/우주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모든 생물종에게는 각 개체에 의해 파악된 고유한주관적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그의움벨트개념은 주관적인 세계이자 전체 우주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다.


 

윅스퀼은 각 생물종에게서 형성된움벨트가 크게 두 가지 작용을 거쳐 순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는 이 관계의 과정을기능적 원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기능적 원환과정에는, 우선 외부 자극을 감각하고 이 자극을 수용하는 과정, 그리고 신경계를 통해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작동적) 과정의 두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체가 체온이나 체내의 이온농도를 조절하듯, 생명체의 생존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음의 피드백(되먹임)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의 과학 저술가 에드 용은 자신의 책 <이토록 굉장한 세계 An Immense World>에서 본격적으로 여러 동물의 감각에 대해 주목한다. 그가 처음부터 윅스퀼의 움벨트개념을 소개하는 점이 흥미롭다. 에드 용은 이 개념에 대응하는 자신의 용어로,‘감각거품(sensory bubble)이란 참신한 표현을 사용한다. 각 생물종이 고유하게 인지한 세계 영역을 은유한 표현으로 그럴듯하지 않은가?

 
















윅스퀼의 사상은 세계를 이해하는 기존의 큰 틀인 기계론(mechanism)과 물활론(animism)의 관점을 벗어나며 동시에 인간중심적인 의인주의를 벗어나고자 했다. 큰 틀에서 움벨트개념은 모든 생명체가 나름의움벨트를 지니는 주체라는 인식에서 칸트주의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기존의 인간중심적/인간우월적인 시각을 탈피하여 모든 생명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비인간의 대상까지 고려하여 확장하게 해주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 지점은 현재 모든 생물종이 무생물과 관계 맺고 서로 얽히는 존재로의 시각 전환 및 확장을 시도하는 현대의 철학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윅스퀼의 사상을 간단히 다시 정리해보면, 그는 하나의 주체로서 인정한 생물(주로 동물에 해당)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 그리고 이 관계에서 발생하는 의미에 주목했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각 생물(동물) 주체의 지각(감각) 공간과 행위(동작) 공간으로 구성된 틀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했다. 이번 책읽기에서는 윅스퀼이 제시한 다양한 동물들의 주변 세계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고, 타자에 대한 이해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다.


 

사실 윅스퀼이 제안한 용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물루 밀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자신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 언급한, <자연에 이름 붙이기>란 책에서였다. 이 책은 미국계 진화생물학자 캐럴 계숙 윤의 분류학에 관한 역사를 다룬 책이었다. 이 책의 초반부터 캐럴은 윅스퀼의 움벨트개념을 소개하며, 18세기 초의 카를 린나이우스가 <자연의 체계>를 발표하며 동식물에 관한 이명법을 정립한 이야기를 한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자연을 분류하고 이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인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 안의움벨트가 크게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캐럴의 책에서는 린나이우스 이후 현대 분류학에 이르는 역사를 통해, 인간의 감각을 불신하고 배제해온 여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을 우리의 감각을 배제함으로써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은 동시에, 우리는 자연과의 단절을 격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캐럴은 윅스퀼이 90년 전에 모든 생물체를 하나의 주체로 인정했던 것처럼, 세계를 보는 틀이자 시선인 우리 안의 움벨트를 거부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에서 다시 자연과의 연결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러면 거의 90년 전에 한 생물학자가 제기한 개념을 우리가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은, 최근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로봇/AI/포스트휴먼과 관련한 시선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윅스퀼은 짚신벌레, 진드기 한 개체에도 주체의 지위를 부여했는데, 우리는 로봇이나 AI에게 주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현재의 상황에서는 없을 것 같다. 주체에게 기대되는 책임이라는 윤리적법률적 관점 또한 AI나 로봇에게 온전히 기대할 수는 없는 단계라고 이해한다. 이를테면, AI로 구동되는 자율주행 차량이 오작동을 일으켜 인명 사고를 내거나 운전자가 사망한 사례를 접하곤 한다. 이런 경우, 정확히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의 법적 문제를 판단하는 일도 무를 자르듯 간단명료하게 결론이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인류가 처음 겪는 중이다.


 

한편 윅스퀼이 주로 동물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감각과 자극의 인지는 신체/을 통하지 않고서 생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달리 말하면, 신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가 세계를 인식하고 체험할 수 있을까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로서는 AI나 로봇이 우리가 보는 외장이 아닌 진정한 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주체의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AI나 이 능력을 장착한 로봇이 자신의 몸을 감각하고 인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겠다.


 

이번 책읽기에서는 각각의 독립된 주변 세계를 형성한 주체가 다른 주체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지, 곧 타자에 대한 이해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았다. 사실 이 논의의 명확한 결론보다는, ‘움벨트가 이러한 논의와 노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함께 했더랬다. 한 참석자는 기존에 잘 알려진 서사를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 인간종 가운데에서도 서로 얼마나 몰이해와 오해 속에서 살고 있는지 깨닫곤 한다. 아울러 타자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반적인 감각뿐만 아니라 체험치, 그러니까 경험적인 움벨트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는 말을 더한 의견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책에서는 환경 세계의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시작한 장을 꺼내 이야기해 보기도 했다. 윅스퀼이 떡갈나무를 예로 든 부분이 나온다. 삼림 관리인이 이 나무를 바라볼 때 그에게는 이 나무가 목재나 땔감으로 보일 것이라 말한다. 반면 어느 여자아이에게는 떡갈나무가 요정이나 악령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고, 여우나 올빼미에게는 각각 뿌리 부분이나 줄기가 안식처를 제공하며보호라는 내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새들에게는 가지가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안식처(보호)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 말한다. 이런 상황을 이해했다면, 우리의 삶에서도 이 움벨트가 지니는 고유한 특징 혹은 제한을 염두에 두고 타자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타자를 이해하는 일이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자와의 접점을 부지런히 마련하고, 우리 각자의 움벨트 영역을 타자의 그것에 대입해 보려는 노력이 따라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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