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알마 인코그니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 알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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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어긋남과 파국적 운명에 관한 우화

-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알마] (2024)

 



이 투툼한 분량의 책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 것일까? 간단히 말한다는 것은 커다란 벽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몇 페이지가 지나도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문장이 이어지는 만연체는 이 벽을 무한히 늘리는 느낌이다. 거대한 우주의 먼지 하나와 같은 인물들의 내면에서 흘러가는 의식을 몽롱한 상태로 따라간다. 그럼에도 눈에 들어오는 실마리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건 여러 등장인물들이 맺는 관계들이었다. 소설의 인물들이 서로 맺는 관계가 하나같이 소통에 실패하고 파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다중우주의 세계가, 한 점에서 만나 응축된 상태로 스쳐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은 헝가리의 어느 중소도시다. 남작 벵크하임 벨러는 청소년기에 이곳에서 살다가 가족을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고, 46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에 10대 시절 잠시 벵크하임과 썸을 타던 여인 머리커가 이야기 구조상 눈에 들어오는 중심인물이다. 두 사람은 결국 재회하지만, 남작은 머리커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토록 만나보고 싶었던 상대를 앞에 두고 마치 다른 사람에게 하듯 머리커를 향해 머리커에 대한 고백을 전하는 남작. 아무리 반세기가 지났다고 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옛 연인과 마주하면 실망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치 치매 증상을 겪는 가족을 앞에 둔 가족의 심정이 이러하지 않을까. 두 사람 사이의 소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상태다. 마주보고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언어로는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떠올리게 해주는 듯한 장면이다.


 

또 다른 문제는 남작의 귀향으로 고향 도시 전체가 들썩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도시의 시장이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투사하여 만들어 낸 착각과 확증편향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 전체가 집단 망상에 빠져든 것 같은 상황이다. 한편 남작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우연의 유희를 즐기는 귀빈의 성향’(240)이라고 표현한 도박벽이었다. 그의 귀향을 재촉하게 했던 것도 어느 정도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도박판에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남작은 그야말로 빈털터리 상태였다. 반면 시장은 남작이 말년에 거액의 재산을 고향으로 가져와 환원하는 것이라 굳게 믿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작의 귀향 목적은 자신이 어릴 때 걷던 공원과 추억의 장소들을 마지막으로 거닐어보는 것이었다. 도박벽으로 몰락한 상황과는 다르게 남작의 소망은 소박하고 순수하기까지 하다. 오래전의 두 연인은 결국 재회했지만 그들이 어긋나버린 관계만큼이나, 이 도시나 시장과 남작과의 관계는 결국 거대한 파국에 이르게 될 운명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맺는 관계가 이처럼 파국적으로어긋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작가가 정답처럼 제시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내가 처음 주목해본 실마리는 남작의 오래전 연인 머리커에서 우선 찾아본다. 남작의 귀향 목적 그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오로지 그가 가장 사랑했던 이 도시를 걷고, 그곳에 있던 옛 연일을 만나보는 것이었으니까. 이 소망만큼은 천박하거나 속물적이지 않다. 머리커 역시, 옛 연인이 귀향하여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받고서 설레는 감정으로 행복하기까지 했다. 이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솔직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닌가. 여기까지도 큰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소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만큼 복잡한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이 무한한 행복을 누군가와, 친척이나 지인과 나누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나눌 사람을 아무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도러에게는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고 이렌조차도 이것을, 그녀 영혼의 유일한 비밀을 감당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니...”(276)


 

머리커가 자신의 내밀한 행복감을 나눌 사람이 없다고 여긴 대목은, 머리커가 매우 고독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준다. 그녀는 자신의 피붙이였던 손녀딸 도러나 15년 이상 사귄 친구 이렌과도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나누고 공유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을 고립된 섬처럼 느꼈다. 이런 모습에서 머리커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고독을 부각시켜주는 인물로 보인다. ‘고립된 섬으로서의 인간, 나아가 고독한 현대인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설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주제 하나는, 고독한 존재인 인간들이 서로 맺는 관계와 어긋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해준다.


 

이처럼 작품의 이야기가 수많은 관계들의 어긋남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 점이 이야기의 전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점을 생각해보다 화자가 언급한 칸토어의 원에 관한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소설에서 언급된 칸토어는 수학에 집합 개념을 도입하고, 무한에 대한 탐구를 했던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를 가리킨다. 그가 했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칸토어가 자신의 답을 제시한 문제는 모든 것이 원을 그리며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칸토어, 상트페테르부르크 할레의 이 불운한 혜성과 함께 우리는 수만 번 출발한 그 지점으로, 수만 번 돌아간 그 지점으로 돌아가는 거야...”(473)


 

원에서는 어느 한 점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정신병원에서 고독하게 죽었던 칸토어. 그가 이야기한 처럼, 원은 무언지 모를 신비함을 품고 있는 듯하다. 특히 출발점으로 회귀하는 모티프는 고대 지중해 지역의 신비주의 전통을 떠올리게도 한다. 다만, 회귀의 특성이 기하학의 원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연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현실에서의 삶은 기하학처럼 정확히 출발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세계에는 늘 우연성이 개입하는 까닭이다. 이 세계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우연성, 혹은 불확실성의 요소는 우리의 삶을 오히려 출발점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요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의 인물들이 맺는 관계의 총체적 어긋남 역시 현실 속의 우연성때문이 아닐까. 달리 표현하면, 현실은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려는 운명의 힘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우연성의 힘이 겨루는 장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 비가역적인 현실의 역설을, 인물들이 맺는 파국적 관계로부터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소설이나 현실에서 인물들이, 혹은 존재 자체가 서로 맺는 수많은 관계가 어긋나고, 때로는 파국에 이르게 된다. 이는 모든 존재가 본질적으로 고립되었다는 것, 존재의 고독감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마치 칸토어 이론에서처럼 모든 존재가 스스로를 가두는 감각의 거품과도 같은 세계 속에서 서로가 하나의 접점을 공유하며 돌아가는 원과 같은 존재로 이해해볼 수는 없을까. 각각의 존재는 이 우연성의 요소 때문에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상태다. 존재는 본질적인 고립 속에서 소통 불능이라는, 이미 불가피한 상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 현실을 극복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까? 이처럼 질문해볼 수 있겠다. 따라서 소설이 내게 말하고 있는 바는, 본질적인 관계의 파국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정말 지내고 있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정리해보자. 소설에서 내가 느꼈던 것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들의 맺는 관계는 늘 어긋나고 결국 파국에 이른다. ‘고립된 섬으로서의 존재들은 결국 이 운명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은 칸토어의 명제처럼 돌고 돌아 수동적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존재일 뿐일까 하는 문제가 걸린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어쩌면 지극히 상투적인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고독한 존재로서 무기력하게만 느껴지는 이 상황을 바꿀 여지는 없는가. 나는 무모해보이긴 해도, 벵크하임 남작의 고백에서 극복의 가능성을 찾아보기로 한다.

 


나의 능력 중에서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것 단 하나가 있는데, (...) 이 도시 안에서 당신을, 마리에타를 떠올릴 때 그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오. 이제 나는 예순 다섯이 넘었소, 어쩌면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내 삶을 지탱한 두 가지를 고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소만 그것은 내가 한 도시를 알았고 그 도시에서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또한 털어놓을 수 있는바 내게 이것의 의미는 오직 하나라는 것으로, 그것은 이 생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이 도시,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당신이라는 것이니 내가 여기서 무슨 대단한 비밀을 실토하는 것이 아님을 당신도 분명히 알 터인데,...”(223-224)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문장 속에서도 남작의 고백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외롭고 고독한 존재들이 각자의 무거운 삶을 지탱해갈 수 있게 한 힘이란 어쩌면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담겨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남작은 곧바로 나에게도 묻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남작의 경우, 그 대상은 결코 거대한 재산은 분명히 아니었다. 모든 재산을 도박판에서 다 잃고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놓지 않게 해주는 무엇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작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던 도시’,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 머리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커의 미소와 그녀가 미소지을 때 볼에 패이는 보조개와 같은 구체적인 기억이 남작 자신을 지탱하게 해주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친애하는 부인-정말이지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저를 살아 있게 했습니다, 그 미소가요, 마리에타에 대한 저의 사랑 말고는 제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무엇 하나 가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어떤 학식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예술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는데, 언제나 그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368)


 

비록 현실의 우연성과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 내미는 손길로 남작은 끔찍한 결말로 세상을 뜨게 되지만, 나는 최소한 그의 인생이 불행했다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으려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에게는 머리커에 대한 기억(미소)과 용서를 구하고자 다시 만나야 겠다는 욕구를 다시 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고독하고 힘겨운 삶의 여정 속에서도 그는 최소한 존재의 고통을 견딜만한 기억하나는 지니고 간 인물이 아닌가. 우리의 삶이 무한히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듯해 보여도, 현실에서 기억을 지닌 존재가 정확히 같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소설의 차례를 보면, 형식상 악보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경고의 전지적 화가가 악단의 지휘자처럼 음을 따라 부르다가 마지막에는 다 카포 알 피네(Da Capo al Fine)’라고 표기해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 카포(Da Capo, 혹은 D.C.)’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다. 알 피네이 표기가 있는 곳에서 곡을 끝내라는 지시라고 한다. 그러므로 목차의 마지막에 도달하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작가는 지시해놓은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소설의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도시 전체가 불타고 있는 상황에서, 고아원 출신의 지체장애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급수탑에 올라 불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들리지 않는 음악에 맞추어 지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지전능한 존재는 지체장애인의 육체, 곧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거대한 소멸혹은 청소를 지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실의 우연성, 혹은 불확정성을 일거에 무화하고 다시 칸토어의 원처럼, 원점으로 되돌아가도록 지휘하는 듯한 장면이다. 실로 그로테스크적인 풍경의 정점을 찍는 장면이면서 압도적인 결말이다. 이번 기회로 작가 라슬로의 작품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 작품 전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암울하고 비극적인 사회 현실과 인간의 고독한 운명을 기괴하거나 때로는 극단적인 과장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점에서는 유럽적인 부조리극의 전통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남작의 사망 전까지는 곳곳에서 희극적인 요소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상황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희극과 비극의 공존을 통해 더욱 그로테스크한 성격이 부각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당신에게는 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살아가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가?’라고 묻는 작품이었다.








[책 속으로]

[1] "나의 능력 중에서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것 단 하나가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이 도시를, 그리고 이 도시 안에서 당신을, 마리에타를 떠올릴 때 그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오. 이제 나는 예순 다섯이 넘었소, 어쩌면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내 삶을 지탱한 두 가지를 고백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소만 그것은 내가 한 도시를 알았고 그 도시에서 당신을 알게 되었다는 것과 또한 털어놓을 수 있는바 내게 이것의 의미는 오직 하나라는 것으로, 그것은 ‘이 생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이 도시,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당신’이라는 것이니 내가 여기서 무슨 대단한 비밀을 실토하는 것이 아님을 당신도 분명히 알 터인데,..."(223-224) - P223

[2] "당신도 알다시피 마리에타, 나는 가장 힘들 때 이 도시를, 그리고 그 속의 당신을 생각하면 언제나 기운이 솟았고 실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당신을 찾아가 직접 이야기하고 싶으니 나의 사랑하는 마리에타, 당신이 있기에-그는 이렇게 썼으나 이제 종이가 피아노 책상 표면을 저절로 미끄러지다시피 하여 쓰레기통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당신의 얼굴, 당신의 미소, 그리고 당신이 미소 지을 때 아담하고 어여쁜 뺨에 생기는 자그마한 보조개 두 개는 내게 무엇보다, 다른 무엇보다 귀중했소."(224) - P224

[3] "그녀(머리커)는 자신이 느끼는 이 무한한 행복을 누군가와, 친척이나 지인과 나누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나눌 사람을 아무도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도러에게는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허사였고 이렌조차도 이것을, 그녀 영혼의 유일한 비밀을 감당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니..."(276) - P276

[4] "그녀가 두 편지 중 하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단연코 아무도 없었던 것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고..."(279) - P279

[5] "하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운 때에 이 일이 자신(머리커)의 삶에서 한 번 더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어서, 그녀는 기적이, 그녀가 언제나 기다렸으나 언제나 실망으로 끝난 기적이 또다시 일어나리라고는 조금도 믿을 수 없었던바..."(279) - P279

[6] "친애하는 부인-정말이지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저를 살아 있게 했습니다, 그 미소가요, 마리에타에 대한 저의 사랑 말고는 제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무엇 하나 가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사업에도 관심이 없었고 어떤 학식에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예술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는데, 언제나 그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368) - P368

[7] "칸토어가 자신의 답을 제시한 문제는 모든 것이 원을 그리며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칸토어, 상트페테르부르크 할레의 이 불운한 혜성과 함께 우리는 수만 번 출발한 그 지점으로, 수만 번 돌아간 그 지점으로 돌아가는 거야,..."(473) - P473

[8] "두려움이 인간 존재를 정의하는 것임은 그것이 단순한 감정이요, 쉽게 없애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인데,..."(483) - P483

[9]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에 의해 유도되는가의 문제는 우연성에, 그것도 지독하게 의존하기에 우리는 이 문제를 훨씬 철저히 다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하자면 우연성은 더도 덜도 아닌 우연성이 조건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성질이요, 이제, 사건의 지평선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덩어리로, 하지만 무한하지는 않아도 하느님의 거룩한 사랑 덕에 단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덩어리로 돌아가-여기서는 우리 또한 우주의 일부라고 말해야 하는데..."(487) - P487

[10] "내가 말하고 싶은바 문화를 낳은 것은 바로 두려움과 그 무지막지한 힘이기 때문이니 (...) 네가 이해해야 할 것은 인류 문화의 요람이 황하 유역이나 이집트가 아니라, (...) 두려움 자체라는 것이며..."(489)


"우리가 이해한다면, 모든 인류 문화의 토대가 거짓임을 우리가 정말로 깨닫는다면, (...) 그렇다면 우리의 열정을 자극한 모든 것, 인간의 창조적 정신이 낳은 모든 유일무이한 작품들이 환상에 기대고 있으며 그 환상에서 생겨났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니,..."(491) - P489

[11]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가 아니야,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라고 벵크하임 벨러 남작이 곰곰이 생각하다가..."(494) - P494

[12] "그는 이 착각 덕에 숲을 통째로 독차지하고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고독을 달콤한 맛을 음미할 수 있었으며 이제 다시 이곳에 찾아와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이 길을 다시 한번 거닐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이것은 선물이라며 남작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으나 애석하게도 다시 한번 눈에 눈물이 가득 찬 것을 느꼈는데,..."(509) - P509

[13] "그가 태어나 이 삶을 마지막 나날에 이르기까지 살아야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자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야 했던 것은 왜인가, 그는 이미 몇 차례 그랬듯 걸음을 멈추었는데, 마치 맞은편에서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였으나 아니었고..."(515) - P515

[14] "그렇다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넘어서는 그 무엇도 일어나지 않았고, 또한 그런 정도로는 일어나지 않은 그런 삶은 어떤 삶인가, 그 안에는 사랑이, 세상 안에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이 환상이라는 사실이 만년에야 드러난 것은 그것이 실제로도 환상이고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아마도 결코 존재하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요, 그 대상이 결코 실재일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것이 아마도 결코 존재하지 않은 것은 실재가 아니었기 때문이요, 그 대상이 결코 실재일 수 없었기 때문이지, 그때의 그것, 그리고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한 그것은 처량하고 적막하고 공허하고 기만적이었으니 이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었느냐며 남작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 좋으신 주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죽음은, 침목 사이로 행진하면서 그가 생각하길 ‘여전히’ 지금 당장이라도 올 수 있었으나 오고 싶어 하지 않았던바..."(516) - P516

[15] "인간 본성은 사건, 풍문, 방식, 말하자면 조작으로 빚어지며 이 인간 본성은 연약해요, 에스테르..."(577) - 시립도서관장의 말 - P577

[16] "내 말은 이것일세, 도시관리사업소장이 말하길 하루 이틀만 지나면 다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장담컨대 일주일이 지나면,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악몽의 기억처럼 그 모든 야단법석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야,..."(580) - P580

[17] "시의 공직자 중 하나라도 그들에게 정확한 짓침을 내려주었다는 말은 부정하는 바이니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 또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 어디 있는지 통 모르겠습니다..."(734) - P734

[18] "첫 번째 연사가 이제 다시 묻길 이 시민 지도자라는 자들은, 이렇게 표현해도 괜찮다면 왜 리본을 자르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할 때만 나타나는 것이냐고, 왜 시민 지도자라는 자들은 죄다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누가 말 좀 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735) - P735

[19] "며칠째 아무것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던바 전화도 인터넷도, 죄다 먹통이어서, 바깥세상이 사라져 버렸거나 마치 똑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 나라의 모든 동네, 도시, 주가 세상과 자발적으로 격리된 것 같았으니..."(748) - P748

[20] "하나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하나의 어마어마한 불 공격이, ‘도시 자체보다 훨씬 큰’ 불 공격이 도시를 강타했기에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으며..."(752) - P752

[21] "끝으로 그는 하늘을,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손을 들어 누군가, 아마도 지휘자가 전에 하는 것을 똑똑히 본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 관객에게 몸짓하면서 객석을 향해 활기차게, 자 이제 다 같이."(754) - P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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