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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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자기만의 시간들

- 금지된 일기장

(Forbidden Notebook)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한길사] (2025)

 




어느 영어 관련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기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들 중 joy/pleasure/delight가 있는데, 이걸 구분할 수 있는지 물으셨다. 결론부터 말하면(내 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 적어본다면) joy는 보편적이고 즉각적인 즐거움과 관련이 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사이다를 마실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기쁨을 떠올릴 수 있다. 이와 달리 pleasure는 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이 있다. 보다 목적성이 뚜렷하다고 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얻는 쾌감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이어서 delight의 경우는 더 나아가 어떤 노력이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정의 결과 얻지는 보다 수행적인 의미가 강조되어 있는 느낌이다. 따라서 delight이란 단어는 종교인이 고된 수행을 통해 얻는 희열에 더 가깝다. 이렇게 기쁨을 뜻하는 여러 단어들이 담고 있는 뉘앙스는 이렇게나 차이가 크다.


 

쿠바 대사였던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을 읽으며 나는 이 기쁨을 의미하는 여러 단어들을 떠올렸다. 일기 형식의 이 소설에서 화자이자 43세의 주부 발레리아는 일기장을 산 소소한 기쁨(joy)에서 시작하여 몰래 일기 쓰는 시간에 대한 기쁨(pleasure),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기쁨(delight)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솜씨로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화는 그녀가 우발적으로 산 일기장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위해 꽃을 사고 싶어 들어간 상점에서 우연히 검은 노트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이렇게 삶은 우연과 필연이 직조되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가족은 남편 미켈레, 법학도인 큰 아들 리카르도와 딸 미렐라로 이루어진 단란한 중산층이었다. 가족들 몰래 간직하게 된 노트를 자신만의 비밀로 하면서 발레리아의 생활에 변화도 생겼다. 23년간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자리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노트의 존재가 가족에게 들킬세라 그녀는 2주 동안 한 글자도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도대체 일기 쓰기가 뭐라고 새벽 2시에 가족 몰래 고단한 몸을 일으켜 일기장을 펼치게 되었을까. 그렇다고 그녀가 더 행복해졌던가? 화자인 발레리아는 그렇지는 않다고 일기장에 고백한다. 삶에 비밀이 생기고, 새로운 활력도 생긴 듯 느껴지지만 부작용도 함께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즐거웠던 일만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괴로운 일을 상기하고, 그럼으로써 그 기억이 더 오래 남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나마 다락방 한 구석이라도 있었으면 마음 편히 쓸 수도 있으련만, 그럴 호사까지 누릴 처지도 아니었다. 부엌에서 조심스럽게 써가는 일기일지언정 발레리아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직감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연으로 시작했으나 그녀는 일기를 쓰게 될 운명이었다.


 

발레리아에게 일기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선 자신에게 비밀을 만들어준 물건이다. 곧 그녀는 혼자서 무언가를 써서 채워 넣고 싶다는 욕구, 잠깐의 평화를 조금씩 욕망하게 되었다. 물론 23년이란 시간이 누르고 있는 관성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을 터였다. 처음에는 고단한 일상 외에는 쓸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저녁에 침대에 눕는 순간 밀려오는 피로감이 평안의 원천이다.”(35)라는 한 문장이 장황한 설명을 대신한다. 이 과정에서 발레리아는 자신의 처지와 존재에 대해 가격지심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일기를 쓰기 전에 그녀는 항상 자신의 삶을 하찮게 생각했다. 결혼과 출산 빼고는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 그리고 양육과 가정을 돌보는 일처럼 특별한 것이 있을까. 어쨌든 20세기 중반을 살아간 여성이 가정을 돌보는 관습에서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21세기 현재, 우리 사회의 가정은 어떤가. 여전히 엄마는 늘 고단한 존재. 이 소설에는 100여 년 전에 태어난 유럽 작가의 삶이 녹아 있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닿아 있는 듯하다. 발레리아의 일기장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못 다한 말들을 쓰는 빈 서판으로 기능하기도하고, 성인이 된 딸 사이의 긴장과 삐걱거리는 관계에 대해 불만과 고민을 성토하는 고해소가 되기도 했다. 일기장의 곳곳에서는 삶의 여러 국면들이 교차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삶에 따라오는 불안과 혼란스러움 까지도 번번이 등장하고 있다. “일요일 한낮의 적막에 싸인 빈집에 홀로 앉아 있자니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67)는 고백처럼,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일은 이전의 생활과는 다른 고독과 불안의 순간에 적응하는 일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몰래 쓰는 일기는 가족이 모두 잠든 시간, ‘여기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을, 보다 주체적으로 향유하게 해주었다.

 


일기장의 새하얀 백지는 나를 매혹하고, 혼란스럽게 만든다. 혼자 거리를 거닐 때처럼 말이다. (...) 이렇게 늦은 시간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결혼한 지 23년 만에 처음으로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했다.”(94)


곧 발레리아에게 일기쓰기란, 그녀 자신을 규정하고 제약하는 관습의 경계를 넘어 그 바깥을 경험하게 하는 행위로 볼 수 도 있겠다. 목적지 없이 혼자 혼잡한 거리를 걸었던 경험을 떠올려 본다. 발걸음이 늦춰지고 주위의 시야가 눈에 들어온다. 발레리아도 일기를 쓰면서 때론 무의식적으로 침투하는 생각들을 따라 길을 잃기도 했을 테다. 오히려 그녀의 일기 쓰기는 의도적인 길 잃기로의 초대이기도 했다. 이처럼 실수로 산 일기장은 그녀에게 살아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괴로운 기억과 마주해야 했지만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의 삶이 일기 쓰기 전과 후가 분명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일기를 씀으로써 일기를 떠 쓰고 싶은 욕망을 발견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계획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딸의 생일 파티 계획을 세우고 싶다는 소망과 더불어 처녀 시절처럼 들뜬 기분도 느낄 수 있게 된 것. 이런 내밀한 기쁨들은 기쁨의 단어 중에서 pleasure에 가깝지 않을까.


 

그럼에도 매일 같이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은밀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길일 것”(50)이라는 깨달음도 얻는다. 친정 엄마와 자신과의 관계를 떠올리다 딸 미렐라와의 삐걱거리는 관계를 돌아보며 딸의 행동을 좀 더 이해하는 길로도 나아간다. 특히 딸을 생각하며 쓴 기록은 시간의 세례를 받으며 숙성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이 보인다. -부인-엄마로서 한 여성의 삶이 성숙해가는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가족이 함께 모여 마치 하나가 된 듯한 순간을 만끽한 발레리아의 심정은 다름 아닌 delight의 감정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기쁨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니었으므로.

 



저자 알바 데 세스페데스는 일기 형식의 이 소설을 통해, 마치 모노드라마 연극의 배우처럼 여성으로서의 삶을 내밀하게 구성해 놓았다. 비록 70여 년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시대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작품에 녹여 내었다. 현실의 삶에서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도 하며 투옥되었던 작가로서, 그만큼 현실의 삶도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작가가 화자로 내세운 발레리아는 파시즘은 아니지만, 또 다른 사회의 관성에 글쓰기로 저항하는 인물이다. 작가의 또 다른 분신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발레리아에게 일기장은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었으며,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이기도 했다. 나아가 삶이라는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戰場)이기도 했다. 일기장은 과거의 시간 단위가 분절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연결되며 연속성을 갖게 해주는 공간이기도 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가정을 지켜내면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숭고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한 인간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삶의 시간들이 이토록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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