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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ㅣ 버지니아 울프 전집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나는 당신을 모른다’로부터 문학은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박희진 옮김, 솔출판사, 2019
마침내,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과 만났다. 쉽게 읽힌 책은 아니었다.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 가운데, 1부에서는 램지 씨네 가족이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저명한 교수인 듯 보이지만 아내/여성으로부터 인정과 관심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램지 씨와 그의 부인 램지가 주로 등장한다. 이들은 매년 스코틀랜드의 서쪽에 있는 어느 섬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
램지 부인은 바다 건너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에 가보고 싶어 하는 아들을 세워두고, 등대에 갈 경우 등대지기 아들에게 줄 양말을 짜는 장면이 나온다. 부인은 아들을 모델로 양말 길이를 어림해 보는 중이다. 짜던 양말 길이를 꼼지락거리는 어린 아들의 몸에 대보는 잠깐의 시간 동안, 램지 부인의 의식은 확장되어 몇 페이지나 이어진다. 몇 페이지나 지났을까, 부인은 다시 생각에서 벗어나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들을 타박하고는, 다시 양말의 길이를 잰다. 소설의 화자는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어느 순간 바뀌어 있다. 각 화자의 내밀한 의식이 제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러니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은 타인들에 의해 파악된 일부 특징들이 단서가 될 뿐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을 규정하는 방식이 늘 이렇지 않은가.
영문학 전공자들은 울프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울프 입문자가 처음부터 문장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기회가 되면 원문으로도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다. 단 울프의 소설에 대한 첫인상은, 울프의 실험적인 문체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점이다. 램지 부인이 바라보는 풍경처럼 화자의 의식이 불현 듯 확장되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의식이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런 의도를 염두에 둔다면 울프의 문체는 정말 탁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어가 익숙해서 문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램지 부인은 가족을 위해 이타적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인간적인 내밀한 욕망과 소망을 간직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잊기 쉽다. 가족의 일을 정신없이 돌보는 가운데 내밀한 그녀의 바램이 스쳐지나간다.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혼자 남아 사색에 잠기는 것’이라고 말이다. 사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작가는 램지 부인의 욕구와 자의식을 주목하고 있었다.
반면 소설에는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더 놀라운 부분은, 램지 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한 문장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심지어 결혼한 딸이 출산에서 죽은 사건과 참전한 아들(작품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소설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시기에 집필되었다.)이 전사한 사건도 한 문장으로 처리할 뿐이다. 작가에게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섭리였음에도, 그녀는 작품에서 아주 간결하게, 마치 일상의 루틴처럼 처리하고 있어 오히려 충격을 준다. 이에 비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면은 여러 인물의 내면이 파도 위의 돛단배처럼 표류하는 과정이 이루고 있다. 2부에서는 여러 등장 인물들의 죽음이 아주 간결하게 처리되며 축소되어 있다. 무엇보다 1부와 3부를 잇는 전환점으로서의 역할이 더 클 것 같다.
3부는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램지 가문의 지인인 화가 릴리 브리스코우는 이들 가족의 여름 별장에 초대받은 식객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침내 등대를 향해 배를 타고 간 램지 씨와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건 인물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면의 스크린을 비추는 작업에 초점이 맞추어진 듯하다. 아이들과 함께 부산하던 램지 가족이 등대로 떠나고, 램지 씨로부터 무언의 청혼 압력을 받던 릴리는 비로소 ‘혼자’남게 된다. 이제 오래전 사망한 램지 부인의 초상화 작업을 다시 시도한다. 등대로 가는 배를 바라보던 릴리는 캔버스를 향해 돌아서서 자신이 무언가 시도한 흔적을 알아본다. 이 무언가를‘알아차린’ 순간이 그녀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게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그림의 한가운데에 선 하나를 그려 넣으며 “나는 드디어 통찰력을 획득했어(I have had my vision)."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뱉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난다. 우리는 릴리가 알아차린 통찰력 혹은 시각이 무엇인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역자는 해설에서 이 소설의 서사가 ‘이기적 세계에서 이타적 세계로의 여정’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이타적 세계에서 이기적 세계’로의 여정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개인의 발견과 자아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다. 단독자로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 그 순간 순간의 표류하는 여정, 혹은 그 순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릴리가 마주하는 이 에피파니의 순간이 내게는 동시에 인간 존재가 헤쳐 나가야 하는 삶의 무목적성과 공허, 타자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홀로 고립되어 있고,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등대’로 나아가는 램지와 아이들의 배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여정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듯 해서다. 아울러 램지 부인이 남편의 결핍과 단점을 알아보면서도 남편의 훌륭한 점들 또한 함께 생각해 보는 장면은, 모든 존재를 한 가지로 규정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는 물론 작가 울프의 인간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이었기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인적성 검사니, MBTI니 하면서 이런 잣대만으로 처음 보는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인식과 가벼움을 거부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나를 모른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우리는 이 ‘모른다’로 만나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울프가 창조한 인물들이 타자를 생각할 때, 이들의 의식이 끊임없이 표류하면서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기도 하는 과정이, 마치 램지 씨와 아이들이 작은 배를 타고 등대로 나아가면서도 때론 조류에 떠밀리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런 존재임을 자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처음 만난 버지니아 울프가 내게 가르쳐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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