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이희철 지음 / 리수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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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균형 잡힌 역사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 제국

 


이희철 지음 [리수] (2024)

 




책을 펼치지 않은 이들도 중간세계사가 역사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중간이라는 의미를 묻는다면 곧바로 답하지 못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저자는 이 표현이 역사학자 타밈 안사리가 제안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안사리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저술한 현대의 명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다. 이 책은 널리 알려진, 이슬람 세계의 안내서이기도 하다. 안사리가 제안한 중간세계에 대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중간세계사의 저자 이희철 역시 동양과 서양으로 알려진, 이분법적인 세계 구도를 탈피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저자가 조망하는 지점, 그가 역사가로서 발을 딛고 서 있는 지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사의 기준점과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우리는 서구 유럽, 백인 학자들의 정체성으로 바라보고 조망해온 역사에 이미 익숙하기에 중간세계라는 표현이 낯선 것이다. 중간 세계사는 우리가 그동안 동·서양이라는 이분법으로부터, ‘암흑의 시대라고 부르던 중세 유럽의 관점을 벗어나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인 셈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암흑의 시대라는 표현이 신 중심의 세계관 때문이라 지적한다. 기독교 국가였던 서로마제국이 5세기에 멸망하고 기독교 세계가 중세동안 위축되어버린 정황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마제국이 지구 위의 모든 세계사의 중심이거나, 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근 1000년 간, 동로마제국은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기독교과 결합된 전통을 지니고 이를 유지했다. 이후 15세기에 이르러 투르크족의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말이다. 분명한 것은, 세계사적 맥락에서 서로마제국의 바깥에는 보다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간세계사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인 세계사를 보다 균형 있게 바라보고자 한 저자의 의지가 드러나는 역사서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는 우선 나부터 중간세계사의 대상이 된 바깥의 대상들에 대한 무지부터 인정해야 했다. ‘잃어버린 시대라고도 여겨지기도 했던 중세 시대에 많은 서구의 학자들이 간과했던 중간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최근에 보다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 책의 부제에도 나와 있듯이, 서술의 큰 흐름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5세기에 동로마제국이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존재를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시기에 이슬람 세력이 팽창을 거듭하다 비잔티움을 무너뜨리고 이슬람국가인 오스만제국으로 이어지는 15세기까지를 주요 논의 대상으로 다룬다.


중간세계에 대한 나의 무지만큼이나 궁금한 것들도 많았다. 생소한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다사다난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다만 정보가 많다보니 중간에 길을 여러 번 잃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작은 수확도 있었다. 화려하고도 정교한 예술과 학문을 마련했던 비잔틴 세계에 대한 감을 조금 얻었다는 것, 그리고 중세 르네상스를 예비하고 있었던 이슬람의 황금시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한때 학문의 발전과 정보가 쌓이고 전수될 수 있었던 것도, 책 수집이나 배움을 매우 중시했던 초기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들 같은 지도자가 있었다는 점이 흥미를 더했다. 특히 책 수집광이었다는 칼리프 알 만수르나 알 라시드가 책 수집을 위해 여행 다녔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고전 도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다녔다는 지도자를 둔 이슬람의 황금시대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세의 어느 중간 지대에서 지식에 대한 열망과 책 수집에 대한 열정으로 여행 다닌 이들의 이야기도 언젠가 듣고 싶어졌다. 이들은 단순히 호전적인 성전(지하드)만을 외치는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간세계사는 나의 무지와 편견을 흔들어주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나의 앎을 다시 의심하고 점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출장차 이스탄불과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는 지금보다도 이 세계에 대해 더 무지했음은 물론이다. 다만 내게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이 있는데, 공항에서 본 장면들이었다. 많은 무슬림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와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이들의 짐은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매끈한 여행 가방이 아니라 박스에 비닐을 덮어 포장테이프로 칭칭 감아 놓은 것이었다. 당시에 튀르키예의 동부가 IS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소식이 있었기에 공항에서 만나는 무슬림들의 짐마다 혹시 화물 폭탄은 아닐까하는, 나의 편견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편견은 공항 내에서 중무장한 채 돌아다니던 군인들 때문에 아마도 확증편향된 것일 테다. 이것은 내 편견의 결과일 테지만, 그 당시에는 나의 편견을 검토하고 점검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 방문 시에도 잠시 가자지구를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방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측에서 서로 기관총으로 응사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처음 눈으로 보게 되었던 셈이다. 공교롭지만 이 때의 두 방문지는 5세기 후반에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이 양분된 이후의 동로마제국의 영역에 속한 지역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의 모습은 바로 어제의 씨앗이 싹을 틔운 결과임을 몸소 체험한 기억이다.


오늘날 튀르키예와 중동문제, 그리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씨앗이 되는 역사를, 바로 중간세계사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다. 내가 몇 년 전에 이 책을 먼저 만나 두 지역을 방문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중세 기독교 세계와 동방정교회의 중심이었던 이 지역을 보다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서만 바라보았던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교회가 바로 비잔티움 세계의 최대 성전이었음을 알고 보았을 테고, 교회 주위에 서있는 네 개의 첨탑이 동방정교의 예배당에서 이슬람의 모스크로 전환된 이후 추가되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암흑시대로 여겨졌던 중세에도, 비잔티움 세계에서처럼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며, 사랑과 미움을 주고받기도 하며 부단하게 살아갔음을 상상해보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돌아와 묻게 되는 주제는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 우리 인간이란, 그리고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고 인간이 발명해 낸믿음 체계, 곧 종교라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가 지니게 된 세세한 내용, 교리의 차이 등등을 별개로 하더라도 이 종교라는 주제야말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야말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단서인 셈이다. 인간의 종교야말로 존재의 본질을, 또는 종의 특수성을 잘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역사서를 읽을 때면 책에 실린 엄청난 정보의 홍수에 빠져 자주 허우적거리고 길을 잃곤 한다. 하지만 드물긴 해도 이제는 흔적으로 남은 존재들의 사람을 쫓아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일은 단지 이전 세대로부터 교훈만을 얻기 위함은 아닌 것 같다. 나와 다르지 않지만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욕망과 좌절, 고난과 성취를 따라가며 나 역시 거대한 시간의 한 부분에 속해 있다는 연결된 감각,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엄밀한 학문 연구자가 아니라 역사서의 평범한 독자로서, 나는 이처럼 내가 겪지 못했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상상과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틀림없이 또 다시 역사책을 들쳐보게 될 것이다. 중간세계사는 내게 오랜만에 이런 감각을 다시 일깨워준 역사서다.

 

 




 

.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수정 또는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주석이 미주에 있지 않고, 해당 페이지에 바로 제시되어 읽는 흐름을 많이 고려한 점이 마음에 든다. 다만 이 주석이 페이지의 안쪽(책등에 가까운 쪽)에 있다보니 독자로서는 책을 반듯하게 펼쳐지는 형식이 아닌 이상 읽기가 불편하다는 점이다. 특히 눈이 나빠지고 있는 독자로서는 보다 작은 글씨를 페이지의 안쪽을 살피며 읽기는 불편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개선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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