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날, 길에 떨어져 있던 초록색 인형을 보았다.
이 인형은 어떻게 찬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아이가 들고 가다가 놓쳤던 것일까.
아니면 초록색 인형이 종량제 봉투에서 탈출한 것일까.
새 해의 첫 날부터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나와 관계를 맺고 있던 존재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공상에 빠져본다.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둘째치고,
버림받은 이 느낌이 어떻게 전해질까,
그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궁리도 해본다.
박노해 시인의 ‘경운기를 보내며’란 시가 생각났다.
23년간 고쳐 썼던 경운기 한 대를
폐차장에 보내는 가장의 마음이 생각나서다.
야가 그 긴 세월 열세 마직 논밭을 다 갈고
그 많은 짐을 싣고 나랑 같이 늙어왔네 그려
덕분에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키고
고맙네 먼저 가소 고생 많이 하셨네
김씨는 경운기에 막걸리 한 잔을 따라준 뒤
폐차장을 향해서 붉은 노을 속으로 떠나간다.
– 박노해 시 ‘경운기를 보내며’ 중에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해 가족들에게 여전히 핀잔받곤 하는 나는
어떤 물건과 함께 보낸 시간이 떠오르면 쓰레기통으로 가다가도
다시 서랍을 열곤 한다. 언젠간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것이다.
안다. 경운기와 어느 아이의 인형과 같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난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경운기가 가장에게 지녔던 의미와,
인형이 어떤 아이의 가슴 속에서 차지했던 의미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큰 마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인형은 아이에게 부모 다음으로 세상의 전부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오늘은 도로에 떨어져 있던 인형의 마음 혹은 사라진 인형을 찾고 있을 지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을, 그리고 경운기를 몰고 폐차장으로 가는 가장의 마음을 생각하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