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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평점 :
기억하기는 애도하기, 그리고 인간이길 다짐하는 일
《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책읽는고양이] (2023)
인간은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종이지만 동시에 취약하고 어두운 존재이기도 하다. 올해 100주기를 맞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이하 간토학살)은 인간이 지닌 어두운 면을 일깨워주는 역사다. 《백년 동안의 증언》을 읽으며 ‘그 시각, 그 공간에 내가 있었다면’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간토학살을 목격한 유학생들이 느꼈을, 아찔한 감각이 느껴지는 듯했다. ‘15엔 50전’이라는 일본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나 역시 아라카와 강변의 땅속 어디엔가 묻혀 흙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간토학살은 국가의 비호아래 자행된 ‘국가 폭력’이다. 당시 학살에 참여했던 나라시노 기병 연대의 한 병사가 증언했던 것처럼, 이 사건은 ‘조선인 사냥’에 다름 아니었다. ‘불령선인’에 대한 단속과 ‘조선인 보호’라는 명목은 오히려 조선인 학살을 허가 하는 국가 공인 ‘살인 면허’였던 셈이다. 여기에 더하여 같은 일본인임에도 사회주의자나 노동조합원을 탄압하고 학살한 행위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자국의 장애인과 ‘불순분자’들을 잡아들여 수용소로 보냈던 나치독일의 만행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가 20년 넘게 관련 자료를 모으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간토학살을 경험한 조선인과 일본인들의 증언이나 시 또는 소설 등을 통해 사건을 기억해온 노력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다. 여기에 간토학살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희생자들을 추모해온 후손들의 노력도 담겨 있다. 내겐 이 책이 저자가 마음을 다해 치르는 애도 의식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해야만 한다’는 말을 뻔한 물음에 구태의연한 답변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간토학살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미야카와 야스히코가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고, 50년 동안 매년 추도식을 하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간토학살과 희생자를 기억해온 일본인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기억하려 했을까? 이제 간토학살 이후 한 세기가 지났다. 여전히 변함없는 일본 지배층과 한일 양국 정부의 태도를 보며 깨닫게 된 것 한 가지는, 우리의 냉소와 망각이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는 비극을 조장하고, 심지어 동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전망이다.
간토학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작품 《총구》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한다. 조선인도 일본인도 체온을 가진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165)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간토학살은 소수 집단을 대상화하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함으로써 가능했다. 인간을 사물화 하는 행위는 행위 주체의 인간성도 파괴하고야 만다. 나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비국민’이라는 문제의식과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남긴 유산에서도 발견한다. 그가 설립한 자유법조단이 여전히 인권 변호사들의 모임으로 남아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저자는 간토학살에 관한 증언과 기억을 명확히 밝히고 있지만, 무엇보다 양국의 화해를 추구한다. 사건의 진상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은 혐오나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기억하기’야말로 화해를 위한 첫 걸음인 까닭이다. 이런 의미에서 목숨을 걸고 간토학살의 진상을 조사하고 조선인들을 변호한 후세 다쓰지나 오야마 레이지 목사의 부단한 ‘사죄 운동’에 주목한다. 남아 있는 자들에게 ‘기억하기’란,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애도할 시공간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 간 화해 전망이 암울하기만한 지금,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당한 이들을 위한 애도를 양국의 시민들이 함께 이어가길 희망한다.
간토학살은 일본 정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축소·은폐되고 왜곡되어 왔다. 한국과 일본의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저항했다. 이들의 모든 노력이 비록 희미해 보이더라도, 나는 여기에서 작은 희망의 빛 조각들을 발견한다. 물론 과거를 기억하는 일만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와 고통을 다 벌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기억함으로써 무고하게 희생된 이들을 애도해야 한다. 잊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위한 애도는 우리가 ‘같은 인간’임을 애써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이 책은 일본 시민들이 꾸준히 이어온 화해의 요청을 보여준다. 한국 독자로서 나 역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답하고 싶다. 한국과 일본에서 빛을 내는 작은 조각들이 모여 과거와 우리 안의 어둠을 환하게 밝힐 수 있도록. 그리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될 가능성을 조금 더 줄일 수 있도록 말이다.
[책 속으로]
[1] "발음 하나를 듣고 사람의 목숨을 따진다는 것은 희극적 비극이요, 광기의 오락이었다."(70)
[2] "서사시적 정신이란, 어떤 현실적인 어둠에 압도되지 않고, 아울러 어떤 어둠도 밝혀내는 광원을, 현실과 서로 관련지어, 그것과 격투하면서, 시인 자신을 주체로서 창조하여, 장치하는 정신이다."(72) - 간토학살을 다룬 시인 쓰보이 시게지의 평론 「두 가지 조선 서사시에 대하여」중에서
[3] "(조선인 ‘보호’ 수용 방침과) ‘후테이센징(불령선인)’에 대한 ‘단속과 보호’라는 이중적인 지시는 사실 학살령과 다름없었다."(89)
[4] "어른들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간에게 진정한 어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상상도 못할 텐데, 그 공포는 인간의 정기를 빼앗는다."(97) - 세계적인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가 13세 때 발생한 간토대지진 당시 자신에게 죽창을 쥐어준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한 생각
[5] "비극의 역사를 삭제한다면, 그 비극의 결과를 모르는 이들에 의해 비슷한 집단적 폭력이 다시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104)
[6] "불순한 무정부주의자들이 대지진으로 혼란한 틈을 타서 정부를 전복시키려 하기에 살해했습니다."(137) -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를 살해한 용의자 아마카스 마사히코 헌병 대위의 재판 증언
[7] "그래도 이놈은 조선 사람인걸요. (...)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조선 사람도 같은 인간이야. (...) 남자의 체온이 류타의 손에 따뜻하게 느껴졌다. (...) 역시 부모도 형제도 있겠지. 세이다로오가 말한 ‘같은 인간이다’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류타의 가슴에 와닿았다."(164) -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총구》의 문장 재인용
[8] "어떤 말로 추모하더라도 조선 동포 6000명의 유령은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184) -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1923년 12월 간토학살 조사 후 결과 보고로 쓴 문장
"일본인으로서 전 조선 형제에게 사죄합니다."(185) - 후세 다쓰지가 1926년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보낸 사과문
[9] "일본이 어느 정도 사죄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큰 범죄를 한국에 범했습니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고 있습니다."(196) - 오에 겐자부로가 2015년에 한 말
[10] "일본국 안에 들어오지 못한 오키나와인과 재일조선인은 차별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 오키나와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많은 조선인이 미국의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학살당했다."(205)
[11] "쉽게 한국에 사과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정치가처럼 혀로 사과한다고 하지 말고, 그 시간이 있으면 한국을 공부하세요. 한국을 공부하는 것이 사과하는 태도입니다."(223) - 오무라 마스오 교수가 한국 문화 기행을 함께 한 와세다 대학생들에게 한 말
[12] "이 사건의 진실을 아는 것은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민족 차별을 없애고, 인권을 존중하며, 선린우호와 평화의 큰 길을 개척하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228) - 일조협회를 세운 미야카와 야스히코의 말
[13] "우리들 일본인은, (...) 우선 국모를 죽이고, 토지를 빼앗고, 아름다움을 빼앗았고, 이름을 빼앗고, 언어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고,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나아가 여성을 일본군의 위안부로서 징용해,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신사 참배를 강요해,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투옥해, 고문을 가했습니다. 이 사실을 많은 일본인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며, 저희 일본인은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247) - ‘사죄 운동’을 했던 오야마 레이지 목사의 말
[14] "사회와 화해를 통해 우리는 더 자유를 느끼고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국가와 국가 사이만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남편과 아내, 사장과 노동자가 끊임없이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257)
[15] "사회의 삼각형 제일 위에 천황이 있고 가장 아래는 천민이 위치하는 등 수직적 관계가 견고히 형성되어 있다. 이 종속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 거주자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262) - 일본의 종사회(다테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말
[16]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라고 했다. 백년을 제대로 기억하려면, 호주 총리나 독일 총리처럼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해야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법적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277)
[17] "한일 사이의 백년을 기억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기회다. 간토대진재 조선인 학살, 강제 징용,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은 인류의 문제다. 백년을 기억하는 것은 피해 의식이나 자학적 태도가 아니다. 구원의 방법은 이미 과거에 있으며, 진정한 희망은 과거의 기억에서 나온다."(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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