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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평점 :
진행 중인 대멸종을 살아가는 지구인의 보고서
- 《우리에게 남은 시간》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
몇 년 전에 본 뉴스 중에 인도 북부의 히말라야 지대에서 발생한 홍수 기사가 기억난다.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기후 온난화로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내리면서 호수가 커지게 되었는데, 물이 점점 증가하면서 제방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홍수가 난 것이었다. 산에서 한꺼번에 내려온 물이 산간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고, 마을 주민 2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파괴된 마을 영상만 보더라도 충격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자연 재해가 수년 전부터 이미 예견되어 왔으며, 앞으로 계속 예상되리라는 점이다.
환경 및 생태 분야 전문 PD인 최평순의 책 《우리에게 남은 시간》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는데, 이런 형태의 재난을 ‘빙하 홍수’라고 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저자는 이 재난이 발생하기 수년 전에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를 제작하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미 ‘경고’한 바 있었다. 실제로 이런 사태가 발생하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37)고 회고하는 부분이 뇌리에 남았다. 게다가 불과 2개월 전인 2023년 10월에도 인도의 또 다른 빙하호의 둑이 터져 82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한다.
기후 이상에 의한 재해는 전 지구적으로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미디어에서 개별적인 사건으로 재난 뉴스를 접하지만, 이 모든 자연 재해는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피쿼드호에 타고 있다. 피쿼드호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서 화자 이슈메일이 탔던 포경선이다. 서구 백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고래를 포획하고, 그 산물로 자본을 축적했다. 또한 소설에서 백인들이 멸족시킨 미국 원주민 부족 ‘피쿼드’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기상 이변의 시대에 중요한 건 우리가 한 배에 탄 운명 공동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과 사물을 모두 포함된다. 현재 인류는 진행중인 ‘여섯 번째 대멸종’을 살아가는 피쿼드호의 선원들인 셈이다. 소설에서 피쿼드 호는 ‘모비 딕’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다. 이슈메일처럼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살아남을 것이지만, 이후의 삶은 결코 전과 다를 것이다.
앞에서는 인도 지역에서 인간의 영향으로 발생한 ‘빙하 홍수’를 떠올렸지만, 남태평양의 작은 국가 ‘투발루’는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해발 고도가 4.6미터에 불과한 이 국가는 현재 해수면 상승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9개의 섬 지역 중에서 2개 섬이 이미 물속에 잠겼다. 우리는 기후 이상 현상의 결과를 피부로 덜 느낄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체감되고 있다. 기후 위기를 공포로 위장하고 과장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고고학과 지질학 연구에 따르면 1만 2천년 즈음 전에 우리의 서해는 바다 없이 땅으로 중국대륙과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이런 해수면 변화는 지질학적 변동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의 속도’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 문제의 요지다. 투발루의 해수면은 매년 1센티미터 이상 오르고 있고(59), 인도의 히말라야 산간 지대의 호수는 수십 년 사이 5-6배가 커져버렸다(38). 여기에 야생 동식물의 멸종 속도는 자연 속도보다 ‘100배에서 최대 1000배 정도 빨라졌다.’(123) 다시 말해 ‘자연스럽지 못한’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저자는 환경 문제를 직접 확인하기위해 전 세계의 현장을 취재하고, 각 계의 전문가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무엇보다 그가 기후 문제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진단에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언론이 공론장에서 담론화할 수 있는 역할이 부족하다는 그의 비판이 인상 깊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기후 문해력 교육이 반드시 필요할 시점이기도 하다. 자라나는 세대가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살아가야 할 세계이므로. 안타까운 점은 시스템 차원의 문제인 기후 위기 관련 사안이 석유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도덕성과 규범 준수에 호소할 일이 아니라 공동의 정치적 대응이 필요한 시스템의 문제다. 여기에 정치적인 활동의 과정으로서 사회 구성원들에 의한 합의도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과정이 간과된 우리나라의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발화하지 못했던 속내를 책에서 내보이고 있었다.
‘인류세’는 이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게 된 용어다. 인간의 영향에 의한 ‘대멸종은 현재진행 중인 사건’(124)인 것이다. 물론 당장 몇 년 후에 인류가 공멸하는 것이 아니다. 지질학적 시간과 비교하여 훨씬 빠르게 그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는 균일하게 다가오지 않을 테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보호막 없고 무방비인 사람들의 삶이 더 취약’해질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더하여 ‘기상 이변이 재난의 일상화’로 이어질 것(54)이라는 저자의 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언젠가 ‘기후 온난화가 진행되면 우리 집 에어컨을 더 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던 초등학생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아이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에게는 보다 진지한 ‘기후 문해력 교육’이 필요하다. 저자는 ‘왜 우리가 지구 반대편의 기후 문제를 알아야 하는지’를 묻는 이들에게, ‘우리가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184)고 대답한다. 우리는 지구라는 ‘피쿼드호’에 함께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진행 중인 기상 이변의 피해 현장을 직접 목격해왔던 저자가 대중에게 전하는 ‘경고’이자 보고서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지구의 환경을 바꾸고 비인간 존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간에게 ‘기상 이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에게는 인류세에 대비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인식의 부족을 새로 채울 수 있는 ‘언어’를 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상상력의 예로는 예술 활동을 수행할 수도 있겠다.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바닷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돌과 같은 산업화의 잔재로 전시를 하는 예술가, 기후 우울의 감정을 공유하고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웹툰 작가의 작업들에서 영감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에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인식 제고와 공감을 얻기 위한 예술 활동도 인류세를 대비하는 상상력을 구체화한 사례로 보였다. 인류세와 갑작스럽게 마주한 인류의 부족한 상상력을 채울 무형·유형의 언어로서 말이다.
또한 저자는 인류세 위기를 알리고 이 시대를 살아갈 방안을 알아보고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 가스의 정체를 규명하여 노벨상을 수상했던 파울 크뤼천 박사는 인류세라는 용어를 널리 알린 사람이기도 했다. 생명다양성 개념을 보다 친근하고 중요한 개념으로 소개했던 에드워드 윌슨 교수 같은 인물도 있다. 여기에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가 ‘생존’이란 키워드로 발전시킨 ‘무해’의 개념에 대한 논의, 홍성욱 교수가 적극적 실천이 바탕이 되는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우리 사회의 실정을 고려하여 문제를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데 좋은 틀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한다.
이 가운데 인류세를 헤쳐나갈 감수성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을 언급하는 대목을 소개해보며 마무리할까 한다. 홍성욱 교수에 의하면, 포스트휴머니즘의 개념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인간 중심주의를 버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비인간-무생물 존재 모두가 지구라는 피쿼드호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내 위치를 다른 존재들과 바꾸어 보는 일이 필요하단다. 이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지구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확장 적용된 개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밖에서 한 겨울 추위에 떨고 있거나 고통 받고 있는 고양이라면? 혹은 나무나 숲이 반사되어 보이는 건물이나 방음벽 주위를 날아다니는 새라면? 한번 쯤, 아니 일상에서 자주 생각해볼 수 있는 감수성이다. 타자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내 기준으로만 타자를 판단해버리는 과정을 늦추거나 판단을 중단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모든 관계의 총체가 바로 ‘나’라는 관점을 말한다.
기후 이변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저자는 인류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섣부른 희망을 전해주지는 않는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보다 먼저 재난의 현장을 목격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대화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해진다. 그의 심정이 이어진다. “나는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울지 그때는 몰랐다.”(248)고. 나는 이 말로 저자의 생각을 짐작해볼 뿐이다. 그는 책을 마무리하며 앞으로의 지구가 “더 가혹하게 인류를, 대한민국 국민을 위협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252)라는 메시지도 남긴다. 다큐멘터리 작업, 대중 강연과 책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저자는 여전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알리고자 동분서주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변화와 대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서로 연결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연대를 출발점 삼아 실천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저자 한 사람의 바람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라는 피쿼드호에 탄 모든 존재가 다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육지에 안착할 것인가는 지금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1] "흔히 제3의 극지라 불리는 히말라야는 인류세 현장이 되어버렸다. (...) 빙하가 녹으며 생기는 물로 인해 없던 빙하 호수가 생기고, 있던 빙하 호수가 거대해진다. 호수의 자연제방이 강해지는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져버려 호수의 물과 흙이 쓰나미처럼 산 밑 마을을 덮친다. 이 현상을 ‘비하 홍수’, 영어 약어로는 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라고 부른다."(37)
[2] "절망적인 건 지금 당장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 순간 1.5도 상승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현재까지 배출한 온실가스가 앞으로 30-40년은 영향을 미칠 테니, 21세기 중반에 평균 기온이 1.5도 상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46)
"인류세적 재난이 체감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재난의 예고에서 발생까지 진행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56)
[3] "도나 해러웨이는 긴급성의 시대에 우리는 사유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 긴급성의 시대는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시간이다."(66)
"재난을 하나의 이벤트가 아니라 긴 과정으로 보고, 여러 요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67)
[4] "인류세 시대에는 ‘중립적인 재난’도, ‘순수하게 자연적인 재난’도 없다고 단언한다. 인류세 현장은 누적된 산업화의 결과일 뿐 아니라, 재난의 전조를 방기한 사회의 공동 책임이기도 하다."(67)
[5] "독일 젊은이들은 2019년 12월에 제정된 독일 기후 보호법이 2030년까지의 단기 목표만 설정한 것이 불충분하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독일 헌법제판소는 2012년 4월,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91)
[6] "(기후 위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고 정치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니까요."(110) -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원 진민정 박사의 말
[7] "육지에서 바다로 되돌아간 포유류 ‘고래류’와 뭍에 올라온 적이 없는 ‘고등어류’가 진화의 관점에서 멀리 있듯이, 우리가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145) -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만 서식하는 포유류 고래인 상괭이의 수난과 관련한 인식 부족에 대해 이야기하며
[8] "자연이 알아서 제 갈 길을 찾아가도록 두고, 야생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길 도모하는 것이죠."(178) - ‘활생(Feral)‘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여 알리고 있는 김산하 박사의 말.
[9]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고 나서였죠. 그 사고 후에 진짜 내 삶이 바뀔 수 있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어요."(191) - 바닷가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돌을 전시하는 예술가 장한나의 말.
[10] "석유화학이 주력 산업인 대한민국에서 경제 성장과 지구 위기 담론은 양립하기 어렵다. (...)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제적 손해는 금기어고 자유주의 사회에서 욕망의 절제는 터부시된다."(196)
[11] "내가 누리는 경제 시스템의 풍요가 지구 시스템을 고장내 파국으로 흘러가는 시대. 재난적 상황은 우리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기후 우울’은 기후 위기로 인한 걱정으로 불안, 슬픔, 무력감 등 정서적 고통을 겪는 우울 장애다."(198)
[12] "한국의 20세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생존’이죠. 우리나라처럼 생존을 위해 모든 가치를 변형시킨 사회가 없어요."(210) -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가 ‘무해’개념에 대해 설명하며 덧붙인 말.
[13] "무해의 욕망은 지구의 위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임과 동시에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다. 나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임과 동시에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태도다."(211)
"무해의 욕망은 지구를 떠나지 않고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이다."(215)
[14] "무해한 삶의 태도와 실천적 연대가 함께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무사히 착륙할지도 모른다."(234)
[15] "우리는 끊임없이 시스템을 의심하고 변화와 대책을 요구하며 연결되어야 한다. (...) 주변 사람 및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자기의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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