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국가 - 19세기 후반 일본 사진(들)의 시작
김계원 지음 / 현실문화A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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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가

: 19세기 후반, 일본 사진()의 시작

김계원 지음 | [현실문화A] | (2023)




이 책의 의의를 간단히 표현해보자면, 일본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사진의 쓸모 알아보고 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해 탐구한 작업이라 하겠다. 사진이 기록과 보존의 역할을 담당하며 계급의 위계를 구분하고, 타민족을 타자화하는 과정에 활용된 역사가 담겨있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기에, 책에서 주목한 문제의식에 흥미를 가질 독자들이 많을 .


 

또 하나 주목해보는 부분은, 일본의 근대화 초기에 이루어진 홋카이도 개척 사업 미연방 농업국의 위원을 지낸 미국인 기술 전문가가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사진가 도로시아 랭이 농업안정국(FSA) 의뢰를 받아 미국 시골지역의 농부와 광부들과 이들의 삶에 대해 조사하려는 목적으로 사진을 이용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사진 및 사진술의 역사를 하나의 축으로 미국의 식민-제국주의의 물결이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와 닿은 과정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런 맥락에서 과거를 다루는 역사는 여전한 현재진행형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사진사(박주석 지음, 문학동네, 2021) 역시 사진 국가에서 탐구한 일본 사진술의 전개과정과 연관지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진사의 선구자들은 상당수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에 사진술은 서양문물에 대한 접근성이 좋았던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빛에 대한 물리적 이해, 카메라 구조와 작동에 대한 기계적 이해, 현상과 인화의 화학적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진 및 사진의 역사, 식민주의, 이미지 매체의 역할 등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에겐 흥미로울 책이다.



1857년에 제직된 이 목판화에는 일본 사진의 선구자들이 대형카메라를 설치하고 인물 사진을 찍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현재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1857년 촬영) 다게레오타입의 사진





1878년 일본 육군성이 올린 경기구 사진(시아노타입)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처럼 홋카이도 개척은 미 서부 정착 사업을 모델로 삼았다. (...)

  역사학자 데이비드 하월(David L. Howell)은 홋카이도의 공격적인 이주 정책이 아이누 고유의 정체성을 말살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주권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깨끗이 삭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한다.(277)



근대화의 이상과 낭만적 미래가 홋카이도에 투사되면서 북방 곧 기회의 땅을 의미했다.(278)



외국인 자문단의 역할은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구미-일본-아이누의 발전 단계를 시각화하는 프로그램에 복무했다. (...)

  카메라는 일부러 수유하는 장면을 찍어 아이누 여성을 자연이나 비문명으로 타자화하는 반면, 두 명의 문명인 남성에게 아이누 여성을 보호, 통제할 주체의 위치를 부여한다.(279)



요컨대 홋카이도 기록 사진은 20세기 전후까지 엽서, 교과서, 신문, 자료집, 국내외 전시, 잡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복제, 유포되었고, 식민지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표상하는 이미지로 기능했다.(289)



사진은 사실적 재현과 정확한 정보, 신속한 소통의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매체, 즉 근대화의 수사로 미래의 결합했다. 새로운 행정체(개척사)와 새로운 매체(사진술)의 결속이야말로 변방의 식민지를 미래의으로 전시, 홍보, 소비하는 추동력이었다.(291)




[1]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처럼 홋카이도 개척은 미 서부 정착 사업을 모델로 삼았다. (...)

역사학자 데이비드 하월(David L. Howell)은 홋카이도의 공격적인 이주 정책이 아이누 고유의 정체성을 말살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주권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깨끗이 삭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한다."(277)

[2] "근대화의 이상과 낭만적 미래가 홋카이도에 투사되면서 ‘북방’은 곧 기회의 땅을 의미했다."(278)

[3]
"외국인 자문단의 역할은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구미-일본-아이누의 ‘발전’ 단계를 시각화하는 프로그램에 복무했다. (...)

카메라는 일부러 수유하는 장면을 찍어 아이누 여성을 자연이나 비문명으로 타자화하는 반면, 두 명의 ‘문명인’ 남성에게 아이누 여성을 보호, 통제할 주체의 위치를 부여한다."(279)

[4]
"요컨대 홋카이도 기록 사진은 20세기 전후까지 엽서, 교과서, 신문, 자료집, 국내외 전시, 잡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복제, 유포되었고, 식민지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표상하는 이미지로 기능했다."(289)

[5]
"사진은 사실적 재현과 정확한 정보, 신속한 소통의 조건을 확보할 수 있는 매체, 즉 근대화의 수사로 ‘미래의 땅’과 결합했다. 새로운 행정체(개척사)와 새로운 매체(사진술)의 결속이야말로 변방의 식민지를 ‘미래의 땅’으로 전시, 홍보, 소비하는 추동력이었다."(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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