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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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Sam Kean) 지음 |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





원자 스파이에서 보리스 패시가 이끌던 알소스 부대의 활약(?)이 자세히 소개된다. 나치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두려움은 유럽 전역과 미국의 긴장을 야기했다. 이를 막기 위해 얼마나 미국과 영국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을 투입했는지 엿볼 수 있다. 보리스 패시 대령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하여 맨해튼 프로젝트의 정보를 적에게 넘겨줄 수 있는 인물을 집요하게 뒷조사하는 인물로 나온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총괄하던 그로브스 장군도 군부 내에서도 아웃사이더에 속했던 패시를 성가셔하고, 지나친 뒷조사를 막고 패시가 잘 할 수 있는 첩보 임무를 맡겨 유럽으로 보내버린다. 패시가 유럽에 가서 한 일이 바로 알소스 부대로 이름 붙은 첩보 부대를 이끌며 나치 과학자들을 납치하여 데려오거나, 소련에 두뇌가 유출되는 일을 막는 임무였다.  

  


(188) 발터 보테가 실험을 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는지 몰라도, 졸리오(그리고 파리에서 다시 만난 이렌)는 고통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파리는 시간이 갈수록 물자 부족 사태가 심해지면서 점점 더 우울한 곳으로 변해갔다. 세상에서 손꼽히는 이 식도락 도시에서 사람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길고양이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먹은 설취류 때문에 전염병에 걸릴 위험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막지 못했다. 나치는 또한 군수 공장 가동을 위해 모든 연료를 징발해갔다.

 



(552)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 관련) 긴급 속보가 끝나갈 때, (양자 스핀을 처음 발견한 물리학자) 가우드스밋에게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몇 달 전에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이 한참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안 뒤, 가우드스밋은 그로브스의 한 부관에게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아주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원자폭탄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부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 우리에게 그런 무기가 있다면, 우린 그걸 사용할 거요. 그 예언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 핵무기를 보유한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무기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위협이 사라지자, 단순히 방어 무기로 사용한다는 개념도 사라졌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지만 불가피하게 원자폭탄은 다른 성격의 무기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무기 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리란 것을 가우드스밋은 직감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맨해튼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고, 일주일 후에 독일은 항복을 하게 된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이 났지만, 이 상황은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나치의 핵개발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우월한 카드를 손에 넣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독일에 대항하여 무기를 사용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아직 결사항전을 하고 있었으나, 당시 정세를 파악하던 정치 및 군부 인사들은 대부분 일본의 항복이 눈앞에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독일이 항복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은 기뻐했으나, 오펜하이머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실제 핵무기의 사용 여부가 그 나름의 명분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트리니티 테스트로 시연을 하는 것으로 일본의 항복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믿었지만, 상당수의 군부 및 정계에서는 원자폭탄을 사용하자는 입장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맥아더와 아이젠하워는 이미 패색이 짙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데 반대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며는 생전에 UN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핵무기 사용 협약을 통해 전쟁에서 원자폭탄 사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트루먼 대통령(게리 올드먼 연기)이 오펜하이머에게 실망한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570)  전쟁 전에 물리학자들은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더 큰 세계의 일에는 아무 관심없이 온순하게 연구실에서 빈둥거리며 살아갔고, 세상 사람들도 그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후에는 (크게는 원지폭탄 때문에) 물리학은 너무나도 중요한 분야가 되어 물리학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장군과 정치인이 물리학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연간 예산은 수백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가우드스밋의 표현을 빌리면, 값싸고 부실한 재료로 실험을 하던 실과 봉랍 시절, 그리고 두 엉뚱한 대학원생이 양자 스핀과 같은 기본적인 발견을 우연히 하던 시절은 먼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가우드스밋의 한 동료는 샘은 전쟁 전에 재미있고 편안하게 하던 일로 결코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라고 말했는데, 졸리오-퀴리 부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모 버그, 케네디가 사람 등을 비롯해 원자 첩보전에 휘말린 사람들은 거의 다 그랬다.



(571) 핵분열은 20세기 물리학의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였지만, 그것은 단지 중요한 과학 현상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미치광이의 수중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는 절박한 노력에서 연합국 과학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광기를 뿜어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말할 것도 없고, 중수 공장 습격, 지질 조사를 위한 특공대, 암살과 방사능 치약에 이르기까지 그 광기가 온갖 것으로 뻗어나갔다. 모든 단계에서 관련 당사자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원자를 쪼갬으로써 그들은 세상을 분열시켰다.




  개인적으로원자 스파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모 버그가 나치 과학자들을 만나 미국으로 데려오거나 최소한 소련으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막는 첩보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치의 핵개발을 책임지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만나 암살을 시도할지 고민하던 에피소드였다. 만약 하이젠베르크를 만났던 인물이 앞서 언급했던 보리스 패시(오펜하이머와 주변 인물들을 집요하게 뒷조사 했던 정보장교)이었다면, 인정사정없이 하이젠베르크를 암살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패시 같은 인물에겐 노벨상 수상 경력은 무의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새뮤얼 가우드스밋에 관한 에피소드도 소설 못지 않다. 부모님은 나치 집단 수용소에서 학살당했고, 전쟁으로 다른 편에 서게 되었던 그는 하이젠베르크와의 우정도 끝나 더 고립된 삶을 살게 되었다. 물리학자가 참여한 나치 과학자 납치 임무에 가우드스밋 같은 물리학자가 함께 참여하여 적진을 뚫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원자 스파이는 여타의 역사서에 나오지 않는 배경과 인물들에 관해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와 함께 미국이 나치의 핵개발에 대항하여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사료다.


 

 흥미있게 책을 읽었지만 특히 마지막 문장 "원자를 쪼갬으로써 그들은 세상을 분열시켰다."(571)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양자 스핀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물리학자 새뮤얼 가우드스밋. 나치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첩보 활동에 참여했다.


한 때 가우드스밋(왼쪽)과 우정을 나누던 독일의 핵개발 책임자 베르터 하이젠베르크(가운데),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활약한 엔리코 페르미(오른쪽에서 두 번째)



[1] "발터 보테가 실험을 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는지 몰라도, 졸리오(그리고 파리에서 다시 만난 이렌)는 고통스러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파리는 시간이 갈수록 물자 부족 사태가 심해지면서 점점 더 우울한 곳으로 변해갔다. 세상에서 손꼽히는 이 식도락 도시에서 사람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길고양이까지 잡아먹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먹은 설취류 때문에 전염병에 걸릴 위험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을 막지 못했다. 나치는 또한 군수 공장 가동을 위해 모든 연료를 징발해갔다."(188)

[2] (552)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 관련) 긴급 속보가 끝나갈 때, (양자 스핀을 처음 발견한 물리학자) 가우드스밋에게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몇 달 전에 독일의 원자폭탄 계획이 한참 뒤쳐져 있다는 사실을 안 뒤, 가우드스밋은 그로브스의 한 부관에게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아주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원자폭탄도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라고 말했다."(552)

[3] " 부관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샘, 우리에게 그런 무기가 있다면, 우린 그걸 사용할 거요." 그 예언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 원자폭탄은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즉, 핵무기를 보유한 독일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무기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위협이 사라지자, 단순히 방어 무기로 사용한다는 개념도 사라졌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하지만 불가피하게 원자폭탄은 다른 성격의 무기 —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무기 — 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리란 것을 가우드스밋은 직감했다."(552)

[4] "전쟁 전에 물리학자들은 존재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더 큰 세계의 일에는 아무 관심없이 온순하게 연구실에서 빈둥거리며 살아갔고, 세상 사람들도 그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 후에는 (크게는 원지폭탄 때문에) 물리학은 너무나도 중요한 분야가 되어 물리학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장군과 정치인이 물리학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연간 예산은 수백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570)

[5] "가우드스밋의 표현을 빌리면, 값싸고 부실한 재료로 실험을 하던 ‘실과 봉랍’ 시절, 그리고 두 엉뚱한 대학원생이 양자 스핀과 같은 기본적인 발견을 우연히 하던 시절은 먼 과거의 일이 되고 말았다. 가우드스밋의 한 동료는 "샘은 전쟁 전에 재미있고 편안하게 하던 일로 결코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라고 말했는데, 졸리오-퀴리 부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모 버그, 케네디가 사람 등을 비롯해 원자 첩보전에 휘말린 사람들은 거의 다 그랬다."(570)

[6] (571) "핵분열은 20세기 물리학의 획기적인 발견 중 하나였지만, 그것은 단지 중요한 과학 현상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미치광이의 수중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는 절박한 노력에서 연합국 과학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광기를 뿜어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말할 것도 없고, 중수 공장 습격, 지질 조사를 위한 특공대, 암살과 방사능 치약에 이르기까지 그 광기가 온갖 것으로 뻗어나갔다. 모든 단계에서 관련 당사자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원자를 쪼갬으로써 그들은 세상을 분열시켰다."(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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