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시간 - 길 잃은 물고기와 지구, 인간에 관하여
마크 쿨란스키 지음,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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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인간의 운명을 알려주는 지표다

- 연어의 시간를 읽고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 지음 | 안기순 옮김 | [디플롯] | (2023)

 




연어의 조상은 약 1억 년 전, 공룡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인간의 조상은 현생 인류를 넘어 유인원까지 포함하더라도 200-300백만 년에 불과하다. 인류는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공룡들을 본 적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인간이 불과 몇 세기만에 선배인 연어의 생존마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환경 및 역사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해온 작가 마크 쿨란스키는 연어의 시간에서 민물과 바다를 오가는 대표적인 소하성 어류인 연어를 고찰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현생 인류가 출현했을 때 이들은 자연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풍요로움도 만끽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으로 도달하기 힘든,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연어를 이야기해준 대목이 인상적이다. 켈트족에 따르면, 연어는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마다 더 많은 지식을 얻는다. 연어는 이미강과 바다를 모두 정복한 존재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니는 존재였다는 믿음이었다. 내게 이러한 믿음은 자연의 존재에 대한 신뢰와 경이, 존중이 담긴 상호관계성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모든 환경·생태 문제들은 인간의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오만해지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존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은 이제 자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연어의 시간에서 저자는 유럽의 백인들로 대표되는 인간이 유럽 본토를 포함, 신대륙(특히 북아메리카 대륙)을 어떻게 유린하고 황폐하게 만들어갔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백인은 물고기를 식량과 거름으로 사용하다가 급기야 (강에) 댐을 세우고, 나중에는 빌레리카 운하를 건설하고, 로웰에 공장을 세우면서 물고기 이동(연어/섀드/에일와이프 등)에 종지부를 찍었다.”(139)


 

이 대목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39년 메리맥강에서 형과 함께 카누를 타면서 연어의 회유 경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고 적은 기록이다. 이 기록만 보더라도 인간이 연어의 생존에 위협을 가한 시기는 적어도 200년은 족히 된 셈이다. 미국 역사에서 1848년은 세계사적인 시점이자 하나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바로 캘리포니아주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 세계에서 약 30만 명이 사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해는 연어에게 암울한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강에서 사금을 채취하고, 광산을 개발하면서 연어 서식지가 급속하게 파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크라멘토강에서는 사금찾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나자 연어 떼가 사라지기도 했다. 소로가 살던 시기에 그가 보았던 문제들은 어쩌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가 안고 있는 보다 큰 문제는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행보에 머뭇거림 없이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운명은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의 풍요로운 자연을 목격한 15세기 말 이후, 자연에서 나오는 산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유럽으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이미 암울한 전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북미 지역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연어 회유장소나 다름없던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템스강도 연어가 회유하던 곳이었으나 이곳에서 연어가 잡혔다는 기록은 1833년 이후 남아 있지 않다. 책에서 저자는 자기고백적인 태도로 다음과 같이 고찰한다.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성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내가 발견한 이 책의 진가이기도 하다. 저자의 관점은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도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연어가 강과 호수, 바다 모두를 정복한존재이기에, 연어가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 연어를 살리고 되돌아오게 하려면 강을 깨끗하게 하면 되는 걸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 연어는 무엇보다 우거진 숲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은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야 한다. 저자가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연어의 경이로움에 관한 책이면서 인간과 연어의 관계에 관한 역사, 특히 인간에 의한 연어 수난사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연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연어를 바라보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비판적인 안목으로 재검토한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신념은 연어의 남획과 환경파괴로 인한 연어 개체수의 감소를 초래했다. 이러한 신념이 이제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마저 위협하고 있다. 인간은 종족의 생존이 시험대에 오를 때마다 지혜를 모아, 난국을 극복해왔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활동에 의해 야생 연어의 개체수가 감소했지만, 양어장을 구축하면 줄어든 개체수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기기만이다. 뿐만 아니라 긴밀하고 복잡하게 연결되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기도 하다.


 

현재 연어의 개체수는 19세기 초반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북반구에는 수많은 연어 어장이 있었다고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여파, 벌목과 관개 등의 개발활동과 산업 활동 등으로 숲과 강이 훼손되어 이제는 수많은 강에서 연어가 사라져버렸다. 러시아, 일본, 미국의 원주민이 식민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어업권을 박탈당하는 동안 연어도 고향을 잃어간 셈이다. 이 책은 연어를 통해 이들이 자연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생명체이며, 우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위협적이거나 자극적인 자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단호하지만 차분히 우리가 선택하여 나아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책이다



[1]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연어가 살아남지 못하면 지구 또한 생존할 희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37)

[2] "연어는 북반구에만 서식하지만 늘 지구의 건강을 가늠하는 일종의 지표였다. (...) 연어를 통해 인간이 환경에 가한 폭력의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37)


[3] "어째서 연어는 이토록 많은 종으로 진화했을까? 끊임없이 적응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연어는 환경 변화에 맞춰 유전적 특성을 조정한다."(60)

"같은 종이면서 다른 강에서 태어난 두 연어의 DNA차이는 두 사람의 DNA 차이보다 훨씬 크다."(61)

"갈 곳을 잃고 표류하던 연어가 새로운 강에 들어가면 그곳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62)

[4] "연어와 강 그리고 숲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다."(73)

[5] "네덜란드는 남획뿐 아니라 수력발전 댐을 건설해 강을 오염시켰다. 네덜란드가 유럽 최대 어획량을 달성한지 100년이 지나자 라인강에는 연어가 귀해졌다."(119)

[6] "바다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풍부한 광산보다 낫다."(131)
- 뉴잉글랜드 정착을 추진했던 존 스미스 선장의 말.

[7] "벌목꾼, 소몰이꾼,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석유업자를 비롯해 환경을 파괴하는 거칠고 용감한 남성을 미화한 이야기는 미국 문화에서 흔하다."(141)

[8] "16세기까지 (일본의) 아이누족은 연어를 낚으며 전통적인 삶을 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낚시에 대한 권리와 접근성이 서서히 줄어들었고, 1872년 아이누족의 소유지는 없다는 법이 공표되었다. 1899년 교묘하게 말을 꾸며 완곡하게 표현한 ‘홋카이도구 원주민 보호법’은 아이누족이 일본에 완전히 동화되어 비민족(nonpeople)이 되었으므로 땅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158)

[9]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강대국이 되었고, 뉴잉글랜드는 영국에 버금갔다. 오염되고, 숲은 벌거벗고, 강에 유독물이 흐르고, 물고기는 죽었다. 하지만 중요한 목표는 달성했다. 유럽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과정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유럽인은 식민주의자들이었다. 심지어 반식민주의 미국인들도 제국주의 정복자들이었다."(164)

[10] "명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다루면 거의 틀림없이 실패한다. 자연법칙은 언뜻보면 단순하지만, 항상 결과를 추측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226)

[11] "양어장 운영 방향은 잘못됐다. 야생 물고기를 잃은 만큼 양어장 개체가 그 부족분을 항상 상쇄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258)

[12] "우리는 경제를 번영시킬 때 자연에 더 많은 손해를 가한다."(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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