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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섹타겟돈 - 곤충이 사라진 세계, 지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까,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올리버 밀먼 지음, 황선영 옮김 / 블랙피쉬 / 2022년 12월
평점 :
꽃향기마저 사라진 실낙원을 상상하며
- 《인섹타겟돈》(The Insect Crisis)
올리버 밀먼(Oliver Milman) 지음 | [블랙피쉬] | (2022)
많은 사람들처럼 봄에 연초록 잎과 함께 피어나는 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각별한 기억이 있는 꽃은 아카시아 꽃이다. 입영 통지서를 받고 훈련소에 갔던 때가 5월이었다. 부대 담장을 둘러싸고 흐드러지게 피어 흩날리던 아카시아 꽃과 진한 향기를 아직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의 사랑과 아카시아 향기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훈련소 생활을 견디게 하고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기억과 함께 맡던 아카시아 향기의 기억이 한낱 과거 속 사건으로 영원히 끝나게 된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당장 변해버린 현실을 상상해내기란 어렵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이 상상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 언젠가부터 규모는 작지만 양봉을 하시던 친척의 벌집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꿀벌의 군집이 겨우내 모두 죽어버리거나 벌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꿀벌의 이상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피부로 실감한 것은 바로 친척이 관리하던 벌집 소식이었다. 그러던 중에 지난 달 신문기사를 보고 그 심각성을 다시 한 번 짐작할 수 있었다.
(기사 관련 주소
https://www.khan.co.kr/economy/economy-general/article/202212270936001#)
이 기사는 지방의 한 지역에서 ‘꿀벌 대량 폐사 및 실종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꿀벌에게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숲을 축구장 4700개 면적에 조성한다는 계획을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꿀벌이 대량으로 죽거나 사라지는 사례는 최근 1-2년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카시아 향기와 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카시아 꿀을 구하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게 되어버린 변화를 조심스럽게 감지하게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걸까? 미디어에서는 ‘전자파’의 피해라고 하기도 했다. 또 어느 곳에서는 기후 온난화를 주범으로 들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너무나 흔해보였던 꿀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다. 특히 최근에 환경과 인간의 운명에 관한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책 《여섯 번째 대멸종》을 읽은 후여서 그런지 이 현상은 내게 더욱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서 손에 쥐게 된 책이 바로 《인섹타겟돈》이다. 이 책은 환경 전문 기자 올리버 밀먼이 곤충이 사라지는 현장과 관련 연구자들을 만나 기록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인섹타겟돈’이란 용어는 곤충을 가리키는 ‘인섹트insect'와 ‘대량 멸종’을 시사하는 ‘아마겟돈amageddon’이 더해진 표현이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곤충의 집단 폐사 혹은 소멸 현상을 가리킨다. 과연 곤충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인류가 유입되기만 하면 대형 동물이 사라져버린 사실을 떠올려보면 짐작이 가는 원인 제공자는 있다. 바로 인간 자신이다.
그동안 곤충은 작고 미약하면서도 너무나 개체수가 많기에 큰 우려를 자아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환경 위기를 알리는 대표적 동물인 고래, 북극곰과 같이 ‘카리스마 있는 대형 동물’은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적으로 언급되던 존재였다. 수십 억 마리로 추정될 정도로 많았던 북아메리카의 나그네 비둘기가 수십 년 만에 멸종했던 역사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 땅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인간의 수명으로 한 두세대면 가능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까지 이야기하던 파리나 모기마저도 지구 위의 생태계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저자는 여러 연구자들과 그 결과물을 빌어 일깨워 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관심사였던 꿀벌의 운명에 대한 정보도 더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현재 전 세계에서 대규모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미 미국 전역에서는 4종의 호박벌(bumblebee) 96%가 감소했다고 한다(57). 그럼 과학자들은 꿀벌들의 대량 폐사 원인이 무엇이라고 지목하고 있을까. 자연 생태계는 그 구성원들의 선형적 관계망이 결코 아니다.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는 결코 파악할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유지되는 영역이다. 그 원인을 한 가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 그리고 무분별한 살충제의 사용을 들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거대 제약회사 바이엘이 인수한 몬산토는 ‘라운드업 RoundUp'이라는 제초제로 유명한 기업인데, 전 세계에 이 화학약품을 공급했다. 이 약품의 주요 성분은 글리포세이트인데, 연구에 의하면 벌의 장내 박테리아를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꿀벌이 걸릴 수 있는 노제마(장내 기생충)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벌을 비롯한 곤충을 집적 겨냥한 살충제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가장 효과가 좋은 살충제 성분은 ‘니코틴과 유사한 새로운 살충제’(168)라는 의미를 지닌 ‘네오니코노이드’다. 이 약품은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이 만든 제품으로, 지난 30여 년 간 전 세계에 뿌려졌다고 한다. 이 약품의 위험성은 레이철 카슨의 저서 《침묵의 봄》으로 사용 금지된 살충제 DDT보다 7000배 더 해롭다.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도 큰 문제다. 유충일 때 이 약품에 노출된 벌은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쪼그라든 벌이 된다고 한다. 화학물질 때문에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꿀벌의 먹이 활동에 실패하고, 그 결과 꿀벌 집단은 치명적인 운명 앞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런 상황은 꿀벌에게만 해당하는 현상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해충’이라고 분류한 곤충뿐만 아니라 꿀벌, 그리고 나비, 딱정벌레를 비롯하여 결국 우리 인간에게로 돌아와 그 영향이 미치게 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나비가 대량으로 사라졌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쇠똥구리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생명력 강하다고 알려진 잠자리마저 핀란드에서는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대형동물뿐만 아니라 이 작고 미약한 곤충들에게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 이 와중에도 살충제를 제조하여 판매하는 회사들은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약품을 꼭 사용해야 한다고 홍보한다.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의 위험한 이기심이 인류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권에 로비를 벌이고, 제초제와 암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는 과학자들을 비난하며 이들의 결과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직장에서 쫓아내며 방해하기도 한다. 생물학 교수 데이브 굴슨이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고 “인간이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187)라고 말하지만, 이는 분명히 ‘실수’가 아니다. 이들의 위험한 행보와 일반인들의 ‘무지’는 결코 실수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 더 이상의 ‘실수’가 반복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 인류에게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을까. 이제는 우리가 생태계에 저지른 잘못을 만회할 기회가 남아있기나 한지조차 의문스럽다.
이 책은 곤충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곤충은 작고 미약해보여도 우리 생태계를 지탱하는 먹이그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구성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곤충은 우리 생태계의 근본을 이룬다.’(211) 이 책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곤충들이 사라졌을 때 인류를 기다리게 될 것은 재앙뿐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기후변화나 동물 서식지의 파괴, 살충제와 같은 독성 물질의 사용으로 꿀벌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을 맞게 될까. 그때야말로 모든 이들 앞에는 모든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한 무분별한 투쟁 앞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이런 상황 속에 놓이게 된다면, 타락한 인간 세계에 남은 ‘최후의 인간’은, 5월의 아카시아 향기가 어땠는지 기억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