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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온 - 살인 단백질의 네 가지 얼굴
D. T.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년 8월
평점 :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프리온 질환
- 《프리온》를 읽고
D.T. 맥스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2)
2000년대 후반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제기된 미국산 수입 소고기의 위험성 문제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에 나는 논란의 핵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뉴스를 통해 90년대에 영국과 미국에서 소들이 주저앉고,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질병의 원인이나 위험성은 제대로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프리온》을 만나고 나서야 이 질환에 담겨 있는 배경과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편집자를 거쳐 작가로 활동하는 D.T. 맥스가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관련 질병을 포괄적으로 조사·정리한 결과물이다. 책이 지닌 특별한 점은 저자 자신이 프리온 질환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신경근육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온이란 단어는 199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스탠리 프루시너가 처음 제안한 용어다. 그는 ‘우형 해면상 뇌병증(광우병, BSE),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양의 스크래피(scrapie) 등을 일으키는 감염성 병원체가 무생물 단백질임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감염성 병원체를 통칭하여 '프리온(prion)'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 병원체는 일반 세균(박테리아)이나 그보다 작다고 알려진 바이러스보다도 더 작은 단백질 알갱이다. 프리온은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킨다. 우선 이탈리아 베니스 근교에 기반을 둔 어느 가문의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FI)처럼, 대물림(유전)되는 경우가 있다. 희생자 모두 프리온이 갉아 먹은 뇌로 숙면을 취할 능력을 상실하고 기진맥진해서 죽음에 이르렀다. 이 가문이 겪은 역사와 고통은 저자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과 마찬가지로 병을 이해해보고자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원서의 제목(The Family that couldn't sleep)이 암시하듯, 이 책에서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또 다른 발병 경로는 우연히 발생하는 경우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이 그 예다. 책에서는 이 경우를 ‘산발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프리온 질환은 잠복기가 대체로 길기 때문에(수년에서 수십 년), 세 번째 발병 경로인 외부 감염의 사례와 구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990년대에 세계를 흔들어 놓은 광우병이 대표적인 감염사례다. 여기에는 50년대에 파푸아뉴기니의 포레이족에게 들이닥친 쿠루(kuru)병도 포함된다. 포레이족이 겪은 재앙은 이들이 50년대에 시작한 식인풍습에 기인한다. 포레이족에 관한 이야기는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의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나 저널리스트 작가 리처드 로즈의 《죽음의 향연》에도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쿠루병을 통해 인류가 새롭게 얻은 통찰은 무엇보다 인류가 인간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에세이집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에서도 지적하듯, 인류는 모두 한때 식인종이었다. 식인 풍습은 초기 인류사의 어느 시기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었다. 저자의 말대로 ‘인류가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 물론 인류는 그 대가를 만만치 않게 치러야 했다. 식인풍습에 의한 프리온 질환이 인간 사회에 유행하여 높은 사망률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가 식인풍습을 버리게 한 어떤 계기나 행위로 80만 년 후 우리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이 경이롭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프리온 질환은 여러 발병 경로를 거칠 수 있다. 그 원인이 무생물 단백질인 만큼 일반적인 발병의 특징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신체는 외부의 침입자에 의해 감염되었을 때 면역반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는 생명체의 신비하고 놀라운 기능이지만, 생명체는 프리온을 감지하지 못한다. 어떤 원인(유전자의 변형에 영향을 주는 원인)에 의해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몸에서 만들어지고 나면, 이 단백질이 신체 내부의 다른 정상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변형된 단백질로 사멸한 세포의 뒤엔 텅 빈 공간을 남기게 된다. 프리온 질환에 걸린 양이나 소, 고양이, 인간의 뇌에 구멍이 숭숭 남아 있는 이유다. 결국 면역 체계가 작동하지도 않는 상태(발열이 없다)에서 감염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적은 바로 생명체 내부에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정상적인 유전자 발현에 의해 프리온 단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변형되는 경우 단백질은 생명체 자체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프리온은 생명체의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인 단백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의 기운과 인구 급증으로 생존의 압박이 사회 전반에 가해졌다. 농업생산성 향상도 빠른 시일 내에 요구되었다. 18세기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한 축산업자가 적은 사료로 더 많은 양고기와 양모를 얻기 위해 동종교배 기법을 도입했다. 인간의 눈에 유리한 특징을 지닌 양은 끊임없이 자손을 낳아야 했다. 그 결과 발생한 프리온 질병이 바로 ‘스크래피’다. 양뿐만 아니라 영국의 소에도 인간의 손길이 닿았다. 광우병은 인간이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를 비롯한 다른 동물을 갈아 넣은 동물 사료를 소들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우유를 생산하려면 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단백질보다 더 많이 필요했다. 이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양이나 소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위험한 육종 방식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도입되었다. 그 결과는 21세기인 지금,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인간은 프리온 질병에 대해 그동안 쌓은 지식을 통합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어느 이탈리아 가문의 유전병, 포레이족이 겪은 쿠루병, 알츠하이머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등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90년대 광우병 문제는 거대축산업의 발달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산업 사회의 무리한 요구로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하자 정부는 사태를 감추는 데만 급급했다. 자국의 쇠고기와 우유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수많은 소가 살처분 되었다. 미국에서 광우병 증세가 보고되었을 때도 정부, 특히 미국 농무부(USDA)는 영국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모든 소에 대한 검사 요구를 중단시키고, 태만과 비밀주의로 문제를 더 키웠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와 미국정부가 보여준 대응 방식은 많은 시민과 산업뿐만 아니라 결국 국가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으며,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불신을 주었다. 어느 경우든 커다란 이해가 달린 시장을 지키기 위해 취한 조치가 자국민들과 세계를 위험에 몰아넣었다. 이는 예고된 인재였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3년이 넘도록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감염증의 특징은 원래 다른 종의 동물로부터 왔다는 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간 경계를 넘어 형태와 독성이 변해온 인수공통 감염병이다. 프리온 질환 단백질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기능상 자기 복제를 한다는 점에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유사성을 갖는다. 저자는 프리온 단백질의 경우, ‘종의 장벽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283)고 언급하지만, 이 또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프리온도 종간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형태와 독성이 변할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광우병(우형 해면상 뇌병증, BSE)이 염소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또 BSE는 음식을 통해 고양이도 감염시키기도 했다. 물론 인간에게도 영향을 준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프리온이 드물더라도 양이나 소, 고양이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인간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프리온 질환을 일으키는 잠재적 감염원을 살펴보면 채식주의자가 프리온 질환, 특히 광우병에 걸릴 수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하는 감염원은 프리온 질환에 걸린 사람이 모르고 한 혈액을 수혈 받는 경우, 단백질 보충제나 의약품에 사용되는 소 단백질, 소 부산물로 만든 화장품 등이 있다. 인간광우병(CJD)은 사람의 뇌하수체에서 추출한 성장호르몬을 맞고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의료 치료 가정에서 채식주의자가 고대 인류의 식인풍습으로 영향을 받았던 프리온 질환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긴 해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권위도 확고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크로이츠펠트 자코뱅당원)의 슬로건처럼,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317)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문명이 고도화·산업화되면서 인간은 그로부터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만, 프리온 질환에도 걸릴 수 있는 여지는 여러 방식으로 남아있다. 우리 문명은 여전히 초기 인류의 ‘식인풍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올리버 색스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라고까지 언급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처럼 말이다. 인류는 이제 첨단과학기술의 발달로 스스로의 편의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프리온 질환을 끊임없이 초대하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저자 역시 프리온 질환과 유사하게 단백질 구조 이상에서 비롯된 질병을 앓고 있다. 다만 그의 증세는 이탈리아 가족이 겪고 있는 급성 신경변성질환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하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신경근육질환이다. 유전자 가운데 어느 한 부분에 변이가 일어나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기 신호를 보내는 데 필요한 단백질 구조나 양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자신의 병과 마주하여 이를 이해하고자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울러 200년 넘게 가문의 저주라고 불리는 불면증으로 기진맥진한 상태로 사망에 이르는 질병을 프리온 질환의 큰 범주에서 이해해보고자 한 시도이기도 하다. 분명 자신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이탈리아 가문에 대한 사명감도 저자의 절실한 글쓰기를 해나가게 해준 원동력일 듯싶다. 프리온 질병을 이해하고자 한 글쓰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민낯을 그대로 비추어 준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 무제한적인 경제 성장에 대한 요구라고 하면 우리와는 무관한 거창한 명분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르게 말해 ‘우리에게 편한 삶’을 누리고자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분명 프리온 질환의 원인이 된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프리온 질병에 대한 이해가 늘어나고 자신의 병도 언젠가는 치료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기도 한다. 당장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어떤 모습을 지닌 존재인지 보여주는 거울처럼 다가왔다.
[1]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창조하고 변화시키는 존재다."(46)
[2]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을 비롯한 많은 신경병증 및 신경근육질환은 전통적인 의미의 감염이나 면역반응이 아니라, 프리온 질환처럼 단백질 구조 이상에 의한 질병이다."(47)
[3] "프리온은 정확히 인간의 야망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48)
[4] "우리는 지식이 완벽함을 향해 빠르게 진보하는 분주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자연과학은 모든 분야가 새로운 발견과 진보로 충만하다."(72) -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의 말
[5] "포레이족의 식인풍습에 관해 꼭 기억할 것은 인육을 맛있는 음식으로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즐겼던 거죠."(인류학자 셜리 글래스의 말)
"이들은 죽은 이들을 사랑했고, 먼저 애도 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애도 기간이 지나면 먹는 일로 돌아갔다."(146)
"쿠루는 유전병이 아니라 감염병이었다."(157)
"초기 인류가 죽은 이를 매장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서로를 먹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288)
[6] "(프리온은) 외부에서 희생자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194)
"(프리온은) 희생자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치명적 단백질이었다."(195)
[7] "원래 초식동물인 가축에게 억지로 다른 가축의 고기를 먹인 행위는 결과적으로 이들을 동종포식 동물로 만든 셈이었다."(248)
[8] "프리온 질환에서는 결정화crystallization 비슷한 과정, 즉 하나의 변형된 단백질이 다른 단백질과 접촉해 변형을 일으키는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 건강한 프리온 단백질이 병원성 단백질로 전환된다. 알츠하이머 단백질도 역시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269)
[9] "단일한 질병이 아니라 단일한 발병 원리를 보았던 것이다."(270) - 연구자들의 연구를 통해 프리온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단백질 유전자가 다른 염색체에서 발견되었으며, 두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도 달랐음을 밝히며 정리한 말.두 질병은 별개의 것이지만 같은 발병 원리를 보인다는 의미.
[10] "생명이란 핵형성이며, 형태 변화이며, 복제다."(275) - 1976년 쿠루병 관련한 연구로 197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가이듀섹의 말
[11] "광우병이 이윤추구에서 비롯되었다면, CWD는 명예욕이 문제였다. 이 병은 사슴과 엘크를 침범하며, 현재 미국 내 대여섯 주와 캐나다 및 한국의 동물 집단에서 발견된다."(307)
[12] "하필 내가 변형된 신경근육질환에 걸려야 할 이유는 없지만, 걸리지 않을 이유도 없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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