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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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이 지닌 얼굴을 찾아가는 여정

- 고독한 얼굴를 읽고

 



제임스 설터(James Salter) 지음 |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

 



책을 덮으니 그 산은 마치 거대한 오벨리스크 같다라는 문장이 주는 이미지가 또렷이 떠오른다. 전투기 조종사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작가 제임스 설터가 54세 때 발표한 장편 소설 고독한 얼굴은 이처럼 산의 선명한 이미지들로 넘쳐난다. 이 작품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채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암벽과 이를 오르는 사람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야자나무가 있는 로스엔젤레스의 해안가에서 건물 지붕을 수리하며 살아가는 버넌 랜드라는 인물이다. 20대 중반으로 등장하는 랜드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멕시코계 여인의 집 창고 하나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언뜻 보기에 구차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랜드가 암벽을 타다가 이전에 함께 등반했던 동료 캐벗을 만나 다른 삶을 향하게 된다. 샤모니에 가보라는 캐벗의 말에 랜드는 자신이 속해 있던 곳을 떠나게 된다.

 


프랑스의 알프스 산지에 있는 샤모니에 도착한 랜드는 확고한 기쁨, 충만한 행복감을 다시 느낀다. 산악인에게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충만한 행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책을 읽는 동안 줄곧 궁금했다. 호락호락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바위처럼 내게는 그저 낯선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혹한 바위는 자연 조건과 사투를 벌이며 정상을 정복한 이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으로 보상한다. 랜드 역시 거대한 오벨리스크같다고 표현한 짙은 빛깔의 화강암 암벽 드뤼를 정복하고 만다. 함께 오른 캐벗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는 등 위험한 고비를 극복하고 말이다.


 

하늘로 치솟은 얼음 암벽에 오른 이들의 내부에는 생명력이 넘쳐흐르고 파괴할 수 없는 거대한 행복이 채워진다.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산이란 열정을 불어넣어주고 생명력을 전하는 존재다. 다만 암벽은 이들에게 그만한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산악인들은 자신의 손과 발을 지탱해주는 홀드를 붙든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추락하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자포자기의 심정 및 자기 번민과 반드시 싸워야 한다. 산악인들에게 자포자기의 심정은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의지가 고갈된다는 것은 곧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딛고 있는 홀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했다.


 

이제 랜드는 거대한 첨탑같은 드뤼를 정복하고, 이곳에서 조난당한 이탈리아 산악인을 구조하는 등의 활약으로 산악계에서 유명해지고 영웅이 된다. 그는 이곳에서 알게 된 카트린이란 여성과 파리로 와서 자신의 유명세를 즐기기 시작한다. 파리의 아늑함과 행복 속에서 이따금 샤모니를 생각하던 랜드는 이곳 생활과 기만적인 자신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낀다. 한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유명세에서 생명력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결국 다시 샤모니로 돌아와 이전에 등정했던 드뤼보다 두 배 높고 험한 워커에 오르고자 했다. 하지만 파리 생활로 무뎌진 열정을 안고 워커에 오르게 된 랜드에게 암벽이 호락호락 자신을 내어줄 리 없었다. 한 인간의 내부에는 이미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는 마음이 교차하고 충돌하고 있었다.



 

최초의 인간이 지닌 얼굴을 찾아서

 


두려움과 의지의 고갈은 산악인에게 치명적이다. ‘넌 할 수 있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도 결국 랜드의 내면은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만다. 그는 암벽에서 물러난다. 상상하기조차 아찔한 이 뾰족한 암벽을 도대체 왜 오르는 것일까? 그리고 이 존재가 어떻게 인간에게 그토록 확고한 기쁨과 열정을 불어넣어 주는 것일까, 궁금했다. 상상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길은 없지만 산악인들이 느낀 충만한 행복감의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 몇 가지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항상 가장 먼저 나서는 것이, 앞장서는 것이 운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삶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 사람은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최초의 인간이다.”(188)


 

소설의 제목이 고독한 얼굴(Solo Faces)이기도 하지만, 산악인이 마주한 암벽 역시 'face'로 표현된다는 점은 소설이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될 여지를 준다. 샤모니에 우뚝 솟아 있는 험난한 암벽들은 각자 문명 이전의 고유한 남성성의 원형을 간직한 존재이자 장소로 읽을 수 있겠다. 샤모니의 암벽 드뤼를 가리킬 때 희고 거대한 존재’, ‘거대한 오벨리스크로 표현한 점은 떠올려보면 그렇다. 제임스 설터는 이 최초의 인간이 지녔을 법한 얼굴이 바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 그리고 이런 존재 자체가 바로 생명력을 지닌 인간의 모습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세상사에는 숨겨진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길이 있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은 짐승의 지혜를 익히는 것이다.”(270) 여기에서 짐승의 지혜를 갖는 것은 대상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에 집중하고 존재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암벽과 마주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홀드 하나에 걸고,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산악인들에게 산을 오르는 일은 바로 문명 이전의 인간 원형에 가 닿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 일에는 파리에서 만난 여인 콜레트가 말했듯 누구나 대가를 치러야했다. 산악인들이 대가를 치루는 곳은 암벽이었다. 눈과 얼음에 덮여 가려진 준엄한 바위 암벽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다. 이를 마주하고 오르는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한다. 곧 암벽은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최초의 인간들이 문명을 일으키자, 문명은 이 인간의 본성을 광기로 규정하고, 이를 도덕과 규범으로 억압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여기에 길들여졌다. 문명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된 인간들은 열정을 잃고 생명력을 강탈당했다최고의 등반에 용기 이상의 것, 영감과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언급과 달리, 문명은 인간에게서 상상력마저 앗아가 버렸던 것이다. 산악인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지만, 각자의 마음 속 보다 깊은 곳에는 최초의 인간이 지닌 생명력 넘치는 얼굴을 되찾고자 하는 본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산의 암벽은 산악인들로 대표되는 인간이 문명으로 잃어버린 남성성 혹은 인간의 원형을 회복하고자 넘어서야 하는 경계이자 전장(戰場)으로 읽힌다.


 

산과 달리 파리로 대변되는 문명은 인간을 도덕과 규범으로 길들인 곳이다. 대신 길들여진 인간에게 아늑함을 제공하고 쾌락과 명성 같은 피상적인 행복을 건넨다. 그 결과 많은 인간들이 순수한 열정을 잃어버렸다. 본질적인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된 이들에게 생겨난 공허함은 단지 랜드가 파리에서 만끽했던 물질적 보상 같은 다른 기호로 끊임없이 대체될 뿐이었다. 니콜을 비롯하여 파리에서 만난 이들에게서,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운전하던 차의 백미러를 통해 갑자기 늙어버린 얼굴을 발견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 역시 문명 속에서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소모된 삶이라는 질병에 걸린 셈이다. 이 늙어버린 얼굴이야말로 문명에 길들여진 최후의 인간이 지닌 모습일 것이다.

 


랜드는 산에서 추락하여 하반신 마비가 된 캐벗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가 권총으로 자신과 캐벗을 상대로 러시안 룰렛을 감행한 까닭 역시 캐벗이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최초의 인간이 지녔던 얼굴을 되찾을 수 있길 요구하는 메시지였을 테다. 동료의 얼굴에 생명력과 충만한 행복감이 다시 넘칠 수 있도록 말이다. 현대 문명이 거세해버린 남성성은 소설 앞부분에서 설터가 스치듯 설정해 두었던 D.H. 로런스의 사진과도 연결된다. 이 사진은 랜드와 동거하던 여인 루이즈가 잡지에서 오려 붙인 것이었다. 로런스의 소설에서 엿보이는 주제 의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산업 문명으로 손상을 입은 남성성의 문제, 그리고 회복에의 갈망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강요하고 억누른 인간들은 매일 같이 패배하고 바수어진 채, 뿌리 없이 부유하는 존재들이다. 랜드가 찌그러지고 못쓰게 된 차들을 취급하는 폐차장을 운영한다는 설정도 이 주제 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폐차장으로 들어온 차들은 모두 거세된 남성성혹은 최초의 인간이 지닌 얼굴을 잃은 문명인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바로 문명에 의해 내상을 입고, 생명력을 상실한 인간들 말이다.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낮은 곳으로 추락한 랜드는 날개를 잃은 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랜드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다시금 고독과 태양을 즐기고 있다. 여기에 설터는 랜드가 뭔가로부터 회복하는 중이었다. 병으로부터,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중이었다.”(278)라고 씀으로써 그가 언젠가는 다시 최초의 인간이 지닌 얼굴을 되찾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현재 그의 삶이 미식축구 선수가 실수로 떨어뜨린 펌블 같은 상태일 지라도, 그 공을 다시 집어들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다. 랜드가 새 연인 폴라에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견디는 거예요. (...) 두려워 하지 말고.”(281)라고 한 말은, 꼰대스러운 남자가 여자에게 충고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독백이었다. 이 말은 그가 기자들에게 나는 (산이 아닌) 삶을 사랑합니다라고 했던 말과 다르지 않게 들린다. 희망은 여전히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1] "바위는 따뜻하고 낯설었으며, 아직 호락호락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다."
"바위는 바다의 표면과 같아서, 일정하긴 하나 결코 똑같지는 않다. 동일한 루트를 오르는 두 명의 등반가가 있다면 각자 다른 방식으로 등반할 것이다. 그들의 능력은 같지 않고, 자신감도 욕망도 같지 않다."(32)

[2] "침대에 누운 그는 육체적인 차분함보다는 훨씬 더 깊은 어떤 것, 삶 자체의 고동 같은 것을 느꼈다. 확고한 기쁨이, 따뜻함과 충만한 행복감이 차올랐다.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47)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이 이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진 적이 없는 것 같았다."(57)


[3] "산들은 희고 거대했다."(85)

"그 산은 마치 거대한 오벨리스크 같다."(87)
: 거대하고 험난한 봉우리 드뤼에 대한 표현


[4] "등반하는 사람을 벽에 매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믿음이다."(108)

[5] "산을 오를 때면 그의 내부에서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그의 야망은 예전에는 평범했으나 드뤼 이후 달라졌다. 파괴할 수 없는 거대한 행복이 그를 가득 채웠다. 자신의 삶을 찾은 것이었다."(120)

[6] "항상 가장 먼저 나서는 것이, 앞장서는 것이 운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삶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런 사람은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최초의 인간이다.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든 남보다 앞서 배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힘을 주고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188)

[7] "파리, 그곳은 랜드가 이미 떠나고 있는 거대한 터미널 같았다. (...) 그는 잠시 그들의 주의를 끌었던 것에 불과했다. (...) 파리는 그를 버렸다."(216)

[8] "인간의 얼굴은 항상 변하지만 완전히 완벽해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 모습을 갖춘 것이다. 그것은 불변의 얼굴이다."(227)

[9] "그는 뭔가로부터 회복하는 중이었다. 병으로부터, 상처로부터 회복하는 중이었다."(278)

[10]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견디는 거예요. (...) 두려워 하지 말고."(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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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9-26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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