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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
사울 레이터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평점 :
표지사진: (c)사울 레이터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운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
-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
(원제: The Unseen Saul Leiter)
사울 레이터(사진), 마깃 어브 & 마이클 파릴로(편집/글) | [윌북] (2022)
언젠가 뉴욕 맨해튼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도시의 모습이 궁금하여 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랬다. 제한된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대략 18시간을, 도시의 사람들을 지켜보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북쪽의 200번가에서 무역센터가 무너졌던 남쪽의 그라운드제로까지, 그리고 강 건너 브루클린까지 말이다. 12시가 다 되어 가던 맨해튼의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후드 티를 입고 마주 오던 사람과 지나칠 때 등골이 서늘했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일부러 이런 경험을 하진 마시길.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제는 시간과 돈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다니질 못할 테지만, 그 때는 내게 그런 절실함이 있었던 것 같다.
마천루 사이로 비치는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떠다니던 하얀 구름들, 군데군데 영원히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도시의 보수공사 현장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던 하안 연기들, 도로 위로 아치의 일부처럼 뻗어 있던 노란 신호등 기둥과 여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신호등, 노란 택시,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던 집과 가게의 실내, 빨간 색의 우체통과 코카콜라 광고, 붉은 벽돌집, 차이나타운의 붉은 글씨나 가게 천막, 가끔 볼 수 있는 붉은 코트나 드레스를 입은 여인, 아일랜드와 이탈리아계 사람들이 많이 쓰던 초록색 등등. 내가 기억하던 도시의 색이 있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도시의 색은 대략 흰색,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이 모든 색들을 사울 레이터의 슬라이드 사진집 《사울 레이터 더 가까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소 빛이 바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내 기억 속의 맨해튼과 여러 색들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은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에 출간된 사진집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과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이미 공개되어 있던 그의 대표작을 보여주는 도록 같은 느낌에 흑백 사진이 섞여 있어서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컬러 사진집은 1만장이 넘는 슬라이드 사진 가운데 76장이 선별되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책 전체는 마치 레이터의 사진을 환등기에 꽂아서 그가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 사진집은 좀 더 사진집다운 모습을 갖추어 더 마음이 간다. 사울 레이터가 생전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환등기로 비추어 보여주길 좋아했다는 편집자의 글을 보니, 다른 이들도 사진집을 펼치면 환등기로 슬라이드 사진을 보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지금까지 공개된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면, 그가 깨어 있던 시간이라면 줄곧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면밀히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다. 철학자들처럼 삶을 추상적으로 통찰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오감과 직관을 총 동원하여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주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차 안에서 창밖을 보거나,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반사된 상과 만나는 새로운 형태를 찾아낸다. 혹은 거리의 난간 뒤에서 숨죽이며 바라보았을 사진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사울 레이터가 분수대에서 물이 솟구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양산을 든 여인이 멀리서 지나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사진을 보자(98면). 현상되어 마운트에 끼워진 필름을 라이트박스 위에 올려놓고 웅크린 채 루페(loupe)로 이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사진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분명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놀라워했으리라.
레이터의 사진에 남아 있는 빛바랜 뉴욕의 색은 눈 오는 길거리에서 차가 지나가는 사진(27)에도 남아 있다. 형체가 분명하진 않지만 노란색과 초록색이 있는 전경의 차와 원경의 빨간 차가, 그리고 길게 늘어진 흰 눈의 이미지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다. 이어지는 몇 장의 사진들도 마찬가지다. 거리의 붉은 리본과 노란색 차나 빨간색 글자, 어느 가을날 거리 벤치에 앉아 연인에게 키스하는, 빨간 코트를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내가 기억하던 맨해튼의 색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강렬하지만 오래된 코다크롬 필름 특유의 빛바랜 상태로 말이다. 20대에 입성하여 집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해외 전시나 강연을 제외하고는 거의 뉴욕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레이터에게 이 지역은 익숙한 장소, 익숙한 거리였을 테다. 하지만 업으로 패션 사진을 찍던 사람의 눈이 거리로 향했을 때, 그 눈은 뻔해 보이는 일상에서 새로움을 지치지 않고 발견해나갔다.
사울 레이터 재단의 이사장이면서 이번 사진집 제작에 참여했던 마이클 파릴로는 레이터를 “아주 평범한 것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즐겁다”(67)라고 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화가의 재능을 지니기도 했던 레이터가 나에게 일러주는 삶의 깨달음은 일상의 삶 속에 놀라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분수사진에서처럼 서로 무관한 사건, 이를테면 멀리서 양산을 들고 가는 여인의 이미지와 가까운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분수사이의 우발적인 관계로부터 새로움을 발견하듯 말이다. 하지만 분수사진은 전통적인 흑백 사진의 문법이 강하게 엿보인다.
여기에 ‘색’이라는 요소가 더해진다. 레이터의 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어보면, 대부분의 사진에서 느껴지는 발견의 즐거움이나 잔잔한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반면 나와는 무관한 대상들을 찍었지만 오래된 슬라이드 필름 특유의 빛바랜 사진들은 내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아픔의 기억이나 상처를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이 작용이 레이터의 사진과 내가 연결되고 내가 비로소 그의 사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색은 추상적인 요소다. 누군가에겐 우리의 유한한 삶의 덧없음을 일깨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에겐 흑백사진의 명암 변화에 버금가는 사진의 정서와 분위기를 더해주며 컬러 사진을 완결하기도 한다. 내겐 사울 레이터의 아름다운 컬러 사진들이 바로 그렇다.
물론 이 사진집은 사울 레이터가 직접 편집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감은 있다. 하지만 그가 우선 골라놓은 사진 중에서 사진가를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선별한 것이기에 같은 사진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 차이가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독자가 레이터의 사진으로부터 받는 즐거움과 감동이 덜하진 않을 것이다. 문자텍스트로 이루어진 다른 책들의 운명처럼 원고 혹은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이를 즐기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것이 레이터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사진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하는 일을 거절했던 이유일 테다.
10여 년 전에 사울 레이터를 알지 못했지만, 그의 말년에 그가 살던 장소, 그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도시 거리를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신기한 느낌이 든다. 어디로 가야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고 방황했던 시절, 그의 존재를 알았다면 필름 카메라를 메고 한번쯤 그를 찾아가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레이터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띠고 대뜸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나도 필름카메라를 꽤 오래 썼지.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로 써. 디카로 찍기 시작한지 한 10년쯤 되었을 거야. 필름카메라로 찍고 결과물을 볼 때가 더 재미있긴 했었어. 필름카메라를 쓰고 있다면 익숙한 주변에서 계속 찍어 보라구. 시간은 사진가의 편이니까!*’(마지막 문장은 사울 레이터가 한 말(98)에서 인용함.)
[번역에 관한 사항]
121면에 사울 레이터가 <에스콰이어> 작업용으로 촬영한 슬라이드 500여 장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어서 재즈 연주자 찰리 파커에 관한 기사 ‘새의 발라드(Ballad of the Bird, 1957)’를 언급하는데, 아마 번역가는 찰리 파커의 별명이 ‘새(the Bird)’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 같지만 여기에 주석을 더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왜 ‘the Bird'를 단순히 ‘새’로 번역했는지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새’ 대신 ‘찰리’라고 번역해두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단순히 ‘새’라고 번역을 해두면 이 ‘새’가 찰리 파커와 무슨 상관인지 그 뉘앙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번역자와 편집자의 결정일 테다. 아쉬운 것은 모든 독자가 이런 점을 알지 못할 테니, 주석을 달아 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1] "우리는 색채의 세상에서, 색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67)
[2] "어째서 색을 홀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색은 삶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며, 사진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합니다."(67) - 2002년 뉴욕 유대인 박물관 강연에서 사울 레이터가 ‘색’에 대해 한 말
[3] "아주 평범한 것들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게 즐겁다."(67) - 내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
[4] "컬러 슬라이드는 벽에 영사해 볼 수도 있고, 인화해 볼 수도 있어요. 네거티브 필름과는 다르죠. 라이트테이블에 올려만 놓아도 그 고유하고 특별한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인 컬러 슬라이드는 라이트테이블 위에 올리는 순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입니다."(68)
[5]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는 그 나름의 고귀함이 있습니다."(68) - 아마도 이 말의 진의는 사진의 본질 외에 사진을 꾸미려고 의도하거나 감상자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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