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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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속에서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인간의 모습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읽고


 

우리는 지구라는 환경에 맞추어 태어나 살아간다. 지역이나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환경에서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다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은 지구라는 환경에 한해 유효하다.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과 믿음은 지구를 벗어나면 곧바로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세계에 대한 앎이 끊임없이 도전을 받고 전진과 후퇴를 반복한 역사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단편 소설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과학 분야 지식의 거장들이 새로운 발견으로 기존의 앎이 도전을 받았던 순간, 무지(無知)의 지()와 마주했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만약 당신이 평생 믿어온 신념과 지식체계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어떻겠는가?


새벽녘에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이 파국을 발견한 것 같다고 말했다.”(70)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에서 물리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는 군병원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었지만,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같은 병원에서 회복 중이던 젊은 수학자 리하르트 쿠란트와 만나 밤새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고백을 한다.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대한 정확한 답을 처음 얻은 인물이다. 그가 쿠란트에게 파국을 발견했다고 말했을 때, 이 파국은 특이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될 수 있는 블랙홀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계산해냈음을 의미했다. 빛마저도 탈출할 수 없는 이 영역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결코 정의되지 않았다. 이것이 위대한 천문학자, 수학자이기도 했던 슈바르츠실트가 맹점과도 같은 이 특이점의 존재를 두려워했던 이유다. 이 지점에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법칙도, 나아가 물리학도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슈바르츠실트에게 특이점 발견이란 지적 파국의 순간이 있었다면, 20세기 초의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에게는 심장의 심장이라고 부른 실체가 있었다. 또 양자역학의 기초를 놓은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순수한 수학만으로 행렬에 기반을 둔 양자 역학을 구축했다. 슈뢰딩거의 양자 역학이 파동성에 토대를 두고 있는 반면, 하이젠베르크의 체계는 입자성에 토대를 두었다. 그동안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식체계였던 뉴턴역학이 원자의 세계에서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놓였는데, 이 파국의 한 가운데에 자신이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분야의 토대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고 여기게 되어 괴로워했다. 슈바르츠실트나 그로텐디크,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모두 자신들이 발견한 모순들에 두려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신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국의 순간에 사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슈바르츠실트의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발견한 시공간 구조의 균열을 보수하고 우주를 파국적 중력 붕괴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감독한 독가스 공격으로 전장에서 많은 군인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인 이머바르는 분노와 절망을 안고 자살했다. 그녀 역시 화학박사였기에 남편이 관여한 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이었던 하버가 알아낸 지식이 절멸 수용소의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데 활용되었고, 그가 개발한 질소 고정법이 수백만 명을 죽인 화약과 폭약 제조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파국이었다. 반면 같은 기술이 비료 생산에 적용되어 수많은 이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고 세계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나아가 슈바르츠실트가 물질이 낳을 수 있는 파국이 인간의 정신과도 관계가 있을지 자문하는 대목은 자뭇 섬뜩하다. “인간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71) 이러한 장면에 대해 저자는 마지막 단편 밤의 정원사에서 화자의 입을 빌어 독자에게 메시지를 건네는 듯하다. 하나는 과학자들조차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몬 나무가 죽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정원사의 말에 따르면, 레몬 나무는 무수한 열매가 초과 중량으로 한꺼번에 익어 가지가 부러지고 죽어간다. 우리의 앎에 비판적인 성찰이 결여되어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파국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할 때, 우리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 믿음이 붕괴되는 파국의 순간에 우리는 세계와의 연대가 끊어지고 고립감을 느낄 것이다. 술집에 있던 한 사람이 하이젠베르크에게 말해봐요, 교수양반. 이 모든 광기는 어디서 시작됐지요? 언제부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춘 겁니까?”(211)라고 물었던 것은, 우리가 세계와의 관계가 끊어질 때 광기가 시작된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 같다. 특이점처럼 그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도, 정의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수학자 그로텐디크가 수학을 하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다”(99)고 말한 것처럼, 파국을 둘러싼 상황은 사랑과 관계의 경우에도 다를 바 없을 법하다. 나와 세계, 나와 너 사이의 관계에서 때론 불가피하게 파국을 맞는다. 우리가 이러한 파국을 두려워하여 세계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단한다면 그야말로 관계회복의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사랑과 관계 회복의 본질에 대한 실마리를 숨은 변수처럼 감춰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아낌없이 불태우다 마주한 파국 속에서도 다시 사랑하고, 관계 또는 삶을 회복하는 인간의 모습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조건은 아닐까.

 

 

 

 

 

 

[1] "새벽녘에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이 파국을 발견한 것 같다고 말했다."(70)

"진짜 두려운 것은 특이점이 맹점이며 기본적으로 불가지라는 사실이라고 그는 말했다."(70)

[2] "빛은 특이점에서 결코 탈출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눈은 특이점을 볼 수 없다. 우리의 정신 또한 특이점을 이해할 수 없다. 특이점에서는 일반상대성 법칙이 여지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물리학은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71)

[3] "그로텐디크는 다른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다. 그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웠는데, 그것은 이 남자가 어떤 인간과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93)
- 수학자 그로텐디크 자신이 바로 정의되지 않는 특이점같은 존재가 아닐까.


[4] "내가 추구하는 총체적 이해로부터 어떤 새로운 참상이 벌어질까?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97)

[5] "하이젠베르크는 이 분야의 토대에 근본적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 결함이란 아이작 뉴턴의 시대 이래로 거시 세계에 그토록 완벽하게 들어맞던 법칙들이 원자 내부에만 적용할라치면 와르르 무너진다는 사실이었다."(122)

[6] "그(하이젠베르크)는 비유를 전혀 동원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수학만 이용하여 뉴턴이 태양계를 묘사한 것처럼 아원자 세계를 묘사했다."(138)

[7] "드 브로이는 파동 함수를 존재의 확률 밀도로 번역했다. 흐릿한 이미지, 희미한 존재, 확산하고 막연한 것.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의 모호한 윤곽."(206)

[8] "하나를 더 정확히 파악할수록 다른 하나는 더 불확실해졌다."(215)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서술.

"양자의 실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217)

[9] "과학자들조차 더는 세계를 이용하지 못한다."(252)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253)
-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말했을 법한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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