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비행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초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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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 도약 

- 마법의 비행


(원제) Flights of Fancy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 야나 렌초바(Jana Lenzova)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



 

지난 5(202285)에 날아올랐던 대한민국 최초의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가 순항중이라고 한다. 달에 도착하면 달 궤도를 돌면서 탐사활동을 하게 된다. 다누리를 탑재한 로켓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면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의 흑백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의 비상 장면을 떠올렸다. 꽤나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장면이었다. 마침 이번에 생물학자이자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가의 마법의 비행을 읽으면서, 그가 비행을 중력으로부터 새로운 차원으로의 탈출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생물학자로서, 도킨스는 수많은 육상 동물뿐만 하늘을 나는 동물들(, 곤충 등)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간직했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마법의 비행은 비행에 대한 저자의 호기심과 설레임이 담긴 책이 아닐까하는 인상을 받았다. 창조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진화론을 강력하게 옹호해온 과학자로서, 그에게 이번 책은 비행이라는 키워드 아래 동물의 비행과 인간이 쌓아 올린 비행으로의 도전 과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이 책을 엔지니어이자 테슬라 자동차의 창업자,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에게 헌정한 것도 어쩌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처음 던지는 질문은 생물들에게 비행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진화적 관점에서 비행이 지니는 이점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생물들이 날아다니게 된 것일까. 우선 주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생존을 위해 이주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구는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해 일정한 각도로 기울어져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돈다. 이것이 주기적인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말은 지구상의 지역에 따라 거주 동물의 서식 환경이 변화한다는 의미다. 이 때 비행은 생물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북국제비갈매기의 사례를 보자. 이 새는 두 달 간 북극권에서 남극권 사이를 오가며 매년 겨울 없이 여름만 두 번 보낸다고 한다. 날개가 있다는 것따라서 비행은 특정 생물이 환경 변화에 대해 융통성 있게 대응하도록 해주었다.

 


이와 달리 어느 지역 환경이 좋아서 생물이 이주할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특히 천적이 없고 이동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았던 새는 날아다닐 필요가 없게 된다고 도킨스는 말한다. 한 사례로, 날개가 있지만 날 필요가 없게 된모리셔스 섬의 도도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이 새는 비둘기과의 대형조류로 유럽에서 온 선원들에 의해 17세기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도와 마찬가지로 날 필요가 없게 된 새에는 날개가 퇴화해버린 뉴질랜드의 국조 키위, 아프리가의 타조, 남아메리카의 레아, 호주의 에뮤, 지금은 멸종해버린 뉴질랜드의 모아, 그리고 역시 멸종한 마다가스카르의 코끼리새가 있다. 도도를 제외하고 지금 언급한 새들은 모두 날지 못하지만 튼튼한 다리로 달리기를 잘하는 주금류(ratite, 走禽類)에 속한다.


 

여기에서 다시 궁금해지는 것은 북극제비갈매기와 도도가 모두 날개를 지니고 있지만, 어느 종은 날개의 기능을 다 하지만 또 다른 종에게 날개의 기능이 퇴화되는 이유다. 비둘기과에 속한다는 도도의 선조가 날 수 있었다면, 멸종하던 시기의 도도는 왜 날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냥 나는 기능을 유지하면 되는 것 아닐까싶은데 말이다. 저자는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을 던지고 있다. 도킨스에 따르면, 비행이라는 것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진화적 관점에서 생물이 비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이 점을 짚고 가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행은 생물들에게 보기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기능이다. 생물이 이 기능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 깃털처럼 가벼운 벌새의 경우, 정지비행을 비롯한 정교한 비행 기술을 펼치기 위해서 몸집에 비해 매우 큰 용골돌기(가슴뼈)와 잘 발달된 날개근육을 필요로 한다. 반면 날개가 있는 여왕개미나 흰 개미 여왕은 평생 한 번 하는 짝짓기 후 자신의 날개를 떼어내는 행동을 한다(64, 67). 이들에게 날개가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도구일지를 보여준다. 새뿐만 아니라 말벌도 비행을 위한 날갯짓에 엄청난 당을 태워야 한다. 게다가, 튼튼한 날개를 자라게 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결국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65). 따라서 모리셔스 섬의 도도처럼 날개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도, 생존을 위해 날아야 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는 비행에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하여 이를 번식과 종족 보존에 더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곧 종의 생존 과정에는 한정된 자원과 생존을 위해 이 자원을 사용한 무기 장착 과정 사이의 경제학이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해 쓰곤 한다”(114)라고 한 이유를 검토해볼 수 있다. 예컨대, 칼새는 알을 낳고 품을 때만 지상에 내려오는 반면 짝찟기를 비롯하여 일생 대부분을 하늘에서 보낸다. 이렇게 에너지가 훨씬 많이 드는 비행을 칼새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반면, 갈비뼈가 양옆으로 나온 구조를 활공에 사용하는 날도마뱀이나(290) 갈비뼈를 양옆으로 내밀어 몸 전체를 납작하게 만들고 30미터를 활공하는 날뱀(309), 가슴의 겉뼈대가 자라 갖추어진 곤충의 날개(183)처럼 생물은 생존에 필요한 몸의 특정 기능을 새로 만들어내기 보다는 기존의 해부학적 구조를 변형 또는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고자 하지만, 조류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변형된 것(119)이라는 설명은 여러 생물들이 자연의 제약 조건 아래에서 비행을 향해 보여주는 진화 과정(수렴 진화)을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개체, 혹은 종이 갖추게 된 생존전략의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물들은 거창하게 생존을 위한 장치부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변형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변이를 통해 생존 확률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다. 물론 다양성을 갖추게 되는 변이의 과정이 이를 위한 목적을 갖추고 여기에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양성을 갖춘 변이를 통해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들이 결과적으로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환경이 주는 선택압과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총동원하여 필요한 기능을 갖추되, 이를 이루기 위한 균형점을 찾는 융통성이 필요하게 된다. 이처럼 진화의 관점에서 생물의 비행은 생존에 필요한 경우 몸을 변형시켜서라도 갖추게 되지만, 어떤 이유로 필요 없어지면 곧바로 퇴화해버리는 값비싼 기능이었던 셈이다.


 

도킨스는 진화론의 옹호자로서, 그리고 무신론자로서 줄곧 창조론자들과 논쟁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동료 과학자들과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논쟁을 해온 과학자다. 자신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이나 만들어진 신 비롯한 여러 작업을 통해 거침없고 신랄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면밀한 관찰자로서 도킨스의 섬세한 설명이 돋보이는 부분도 만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동력 비행과 작동방식을 다룬 장에서 비행기 날개가 기류와 만나는 각도가 커져 비행기의 속도와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는 현상(실속)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그는 왜가리나 백로 같은 큰 새가 착륙할 때 일부러 실속(통제된 실속)을 일으킨다고 언급하는데, 이 새들이 내려앉을 때 뒤쪽 깃털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은 바로 이 실속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공기 전문가였다면, 새의 이런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이유를 항공기 날개의 구조와 연관 지어 이처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도킨스의 섬세한 설명과 글쓰기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마법의 비행에서 다소 아쉬운 점 몇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앞부분에서 했던 내용이 뒤에서 여러 번 중복되어 설명되고 있어서 짜임새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나온다. 또 뒤로 갈수록 앞에서 유지되던 글의 힘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아쉬운 점은 이 책에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이 애초에 청소년 대상으로 집필된 책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의 교양과학서에 빠지지 않는 참고도서 목록이 원서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참고도서 목록이 없다는 것은, 독자가 저자의 주장이나 근거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비행이라는 기능에 도달하고자 했던 노력을 종합하며 흥미 있게 전달한다. 생물학자의 관점에서 비행을 둘러싼 자연의 제약과 생존 전략 사이의 균형을 찾아온 자연의 사례를 흥미롭게 제시했다. 말벌이나 여왕개미와 같은 곤충의 날개나 흰 개미 여왕의 날개, 날다람쥐의 활공을 돕는 비막이나 박쥐의 날개 사례는 서로 독자적으로 몸의 일부 구조를 변형 또는 보완하여 비행이라는 기능을 갖춘 자연의 수렴진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에게 달 궤도 탐사선의 비상이 갖는 의미처럼, 인류에게 비행은 중력을 극복하여 인류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 도약을 의미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인간의 이성에 기반 한 과학 활동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이에 저자는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322)고 과학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수정 건의]

(41) ‘태양을 기준으로 을 수 없다 을 수 없다

(70) “한편 비둘기의 몸집은 점점 커졌다.” 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비둘기를 언급하는데, 이 부분은 도도가 비둘기(pigeon & dove)를 포함하는 과(family)에 속하기 때문에 도킨스가 도도를 the pigeon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를 추가적으로 달지 않는 한, ‘비둘기를 그냥 도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혼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외딴섬은 대체로 포유류가 아니라 조류의 세상이다."(54)
- 모리셔스 섬의 도도와 이웃 섬의 날지 못하는 새(특히 주금류)에 대한 언급을 하며

[2]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 기존의 것을 땜질해 쓰곤 한다."(114)

"진화는 기계 설계자처럼 처음부터 새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설계를 조금씩 하나하나 변형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 변형 단계에서 번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278)

[3] "깃털은 세계의 경이 중 하나다. 공중에 띄울 수 있을 만치 튼튼하면서 뼈보다 딱딱하지 않은 경이로운 장치다."(116)

[4] "복잡한 기관과 행동은 많은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단순한 규칙을 따를 때 출현한다. 즉, 복잡성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출현한다."(193)
- 찌르레기들의 군무와 창발(emergence)의 원리에 대한 언급.

[5] "나는 과학 자체를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영웅적인 비행이라고 여긴다."(322)

"비행이 중력으로부터 세 번째 차원으로의 탈출인 것처럼, 과학은 일상생활의 평범함으로부터 나선을 그리면서 상상력이 점점 희박해지는 높이까지 탈출하는 것이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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