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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
브라이언 크레그.애덤 댄트 지음, 이종필 옮김 / 김영사 / 2022년 7월
평점 :
우리는 과학 속에 산다
- 《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
브라이언 클레그(글), 애덤 댄트(그림)
이종필 옮김 [김영사] (2022)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P. Feynman)은 자신의 강의록을 담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에서 별의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했다. 시인들은 으레 과학자들이 ‘별은 단순히 기체 원자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음’을 이야기하며 별의 아름다움을 앗아가 버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인 자신 역시 사막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여기에 더하여 별들의 패턴과 형성 원리, 존재의 이유를 더 숙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취지로 언급했다. 그러니 과학자들은 자연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제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더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 뿐이다.
현대인은 방대한 인터넷의 바다에서 무한에 가까운 정보를 검색하고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무제한에 가까운 방대한 사전을 곁에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 꽤나 특이한 종류의 과학 사전이 있다. 빽빽하게 그림이 채워진 페이지를 지나면 그림의 각 부분에 관계된 과학 현상이나 과학 법칙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사전이다. ‘내 방에서 우주 끝까지, 세상의 온갖 법칙과 현상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달린 《그림으로 보는 모든 순간의 과학》(이후 《모든 순간의 과학》)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 저술가 브라이언 클레그와 수차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고 MoMA(뉴욕현대미술관)나 리옹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 경력을 갖고 있는 예술가 애덤 댄트가 힘을 모아 만든 과학 사전이다. 저자들은 이 방대한 인터넷 기술의 시대에 왜 이러한 형태의 과학 사전을 만들었을까? 앞에서 언급한 파인만의 말에서 한 가지 실마리를 떠올리자면, 그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하고 인식을 확장할 수 있을 때 우리 주변의 모든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보다 깊게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우선 이 책의 주요 특징을 살펴보자. ‘모든 순간의 과학’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부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에서 시작하여 대우주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자연 현상과 과학법칙을 책 속의 그림과 더불어 간단히 설명해놓았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각 장의 첫 페이지에 배치되어 있는 전면 그림을 찬찬히,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본다. 예를 들어 4장 과학관 편을 보자. 그림의 한 가운데에 물리학자 파인만의 초상이 신전 모양의 구조물 지붕에 올라가 있다. 각 장마다 주요 과학자 한 명씩 등장하는데, 4장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바로 파인만이었다. 책의 부록을 참고하면 파인만에 대해 좀 더 자세한 프로필이 나와 있다. 프로필 설명을 보면 그의 주요 업적으로 ‘빛과 물질에 대한 과학’인 양자전기역학(QED)를 개발한 공로를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는 파인만이 개발한 ‘파인만 도형’ 그림과 함께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표제어를 간단히 설명해놓았다(45면). 물론 이 설명만으로 관련 표제어의 내용에 대해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학생 혹은 일반 독자들은 이 표제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시작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독자들에게 분명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다. (아래 사진 참조)
여러 장면이 빼곡하게 들어찬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들어간 경우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액자 속에서 호랑이가 나오는 장면을 찾아보자(40-41면). 이 그림은 어떤 과학 현상 혹은 법칙을 염두에 두고 그려졌을까? 알쏭달쏭하다. 책장을 넘기면 전체 그림 가운데 특정 부분을 가져와 설명해놓은 부분이 나온다(44면). 내가 궁금해 했던 이 그림은 바로 레이저로 3차원 영상을 만드는 ‘홀로그램’이라는 표제어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또 이 책이 과학사전인만큼 앞에서부터 끝까지 책을 읽어나갈 필요는 없겠다. 무엇보다 이 책의 묘미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나 장면이 과학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있다. 아울러 추가적인 공부에 대한 확장 가능성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책을 즐기는 법 하나는 각 장의 처음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어떤 과학이 관련되어 있을지 상상해보는 일에서 지적 탐험을 시작해볼 수 있다.
반면 《모든 순간의 과학》을 통해 어떤 과학 법칙이나 현상에 대해 곧바로 이해하기에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아쉬움은 있다. 각 개념에 대해 상당히 간결하고 핵심적인 설명만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과 용도는 오히려 분명하다. 일상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을 과학과 연관 짓고, 이를 발견하여 새로운 앎으로 나아가도록 해주는 마중물이 되는 일이다. 본문을 볼 때 여기에 소개된 번역 용어들의 원어도 함께 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 뒤의 색인을 보니 우리말 용어를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고 여기에 영어로 된 용어가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해당 표제어를 출발점삼아 관련 사항을 더 찾아보려고 할 때 검색의 실마리로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이 책은 이 한 권으로 과학에 대해 지식을 습득하도록 의도된 책이 아니다. 반면 독자의 호기심과 지식의 확장을 준비하는 여정에 출발점이 되어주는 책이라고 그 성격을 규정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여러 과학 영역을 넘나들며 주요 핵심 용어들을 담고 있다. 각 과학 영역은 인간이 정한 기준에 따라 나눈 것일 뿐이다. 자연은 그 스스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나누지 않는다. 또 우리의 소소한 일상 한 가운데에 과학이 존재한다. 과학은 어느 순간, 어느 장소든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천체 물리학자이자 작가였던 칼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인간의 이성, 그 중에서도 과학이 이루어낸 성취를 집대성했다. 인류의 조상이 자연과 우주와 만난 어느 시점에서 과학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주술에서 마술로, 그리고 마술이 다시 과학으로 말이다. 《모든 순간의 과학》은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지닌 독자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던 과정을 직관적으로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림의 어느 부분에서 호기심이 일었다면 해당 그림에 대한 항목을 찾아보고 궁금증을 풀어갈 실마리를 얻는 것이다. 그림으로 가득한 이 과학책이 내게 준 메시지가 하나 있다면 그건 ‘우리가 과학 속에 살고 있다’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깨달음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때, 대상에 대한 아름다움을 감수하는 능력도 더욱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