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의 탄생 103주년을 지나며
- 《주기율표》를 읽고
언젠가 나탈리아 긴츠부르크의 《가족어 사전》을 읽다가 긴츠부르크의 친정이 레비(Levi) 가문이라는 대목을 보게 되었다. 그럼 혹시 긴츠부르크 가문이 프리모 레비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히 긴츠부르크와 프리모 레비의 가문이 이탈리아 북부(각각 밀라노와 토리노)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럴듯해 보였다. 한동안 이 궁금증을 잊고 있었는데,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라는 책에서 우연히도 답을 얻었다. 책 뒤에 실린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프리모 레비는 긴츠부르크와 친하고 교류가 있었긴 하지만 자신의 가문이 긴츠부르크의 친정은 아니라고 답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사소해보이는 문제에 대해 나 말고도 궁금해 하거나 물어본 이들이 또 있었던 모양이다.
긴츠부르크 가문이든 프리모 레비의 가문이든 이들은 20세기 전반기의 엄혹한 시대를 겪어 냈다. 특히 《주기율표》는 아직 레비의 책을 몇 권 읽지 않았음에도, 읽기 시작하자마자 반해버린 작품이다. 비가 내리는 7월의 마지막 날에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다시 떠올린 것은, 오늘(7월 31일)이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폭력성에 대항하여 빨치산 활동을 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레비는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료 중 누군가의 밀고로 1943년 12월 13일에 파시스트공화국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포로가 되었다. 명망 있는 토리노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화학자가 된 그가 주기율표의 원소를 제목삼아, 에세이 같은 단편 소설을 핍진성 있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주기율표》다.
원소 ‘금’을 제목으로 한 글에서 레비는 자신의 경험과 모습을 글로 묘사했다. 당시에 포로가 되어 감방에 있던 화자(혹은 레비)가 생리적인 활동 외에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 바로 독서였다.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197) 그러면서 이 일을 겪을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매우 용기 있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모든 일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인간적인 경험들을 하고 싶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201) 또 화자는 수용소에서 자신의 소중한 추억과 죽음에 대한 공포 보다 더 가까이 있던 것은 바로 굶주림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경계에서 위태로운 삶을 경험했던 프리모 레비를 상상해본다. 그는 실력 있는 화학자였기에 구술시험을 거쳐 수용소 내의 화학실험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화자는 수용소에서 살기위해, 빵과 바꿀 수 있는 라이터 부싯돌을 ‘이리들처럼 도둑질했다’라고 고백하는데, 아마 실제 레비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싶다.
프리모 레비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렇듯 서경식 교수의 저작을 통해서였다. 그 중에서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박광현 옮김, 창비, 2006)는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서경식은 이 책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인물로서, 나치 독일의 야만적 행적을 증언하며, 이 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인상적인 소설 작품을 남겼던 인물이 왜 자살로 생을 마쳤을까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이 책에서 그를 따라가며 그가 품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레비가 했던 여러 생각들 가운데 한 가지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이 《주기율표》의 「크롬」이라는 제목의 글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인간들이 아우슈비츠를 지었고 아우슈비츠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내 많은 친구들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집어삼켜버렸기 때문이다.”(222)
아마도 이 말은 레비가 했던 고뇌의 일부, 거대한 빙산의 일부일 뿐이라 생각한다.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수치심’, ‘염치’라고 간단히 바꾸어 놓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표현 역시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서경식이 토리노의 레비 자택을 찾아가보고자 했던 당시, 서경식의 삶 역시 휘청거리고 너덜너덜했던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가족은 정치적인 상황으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고, 고난을 겪던 두 아들의 구명을 위해 애쓰셨던 모친이 아들의 귀환을 끝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뜬 상황. 당장 본인은 직장 없이 불안한 앞날을 끌어안고 있던 암울한 상황이었다. 이 배경은 서경식을 읽고 영향을 받거나 그와 교유해온 여러 문인들, 지인들의 글을 모아 출간한 《서경식 다시 읽기》(연립서가, 2022)에도 그 정황이 어느 정도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고 난 후에도 프리모 레비가 왜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인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직 나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지금 단계에서 레비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단정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서경식이 쓴 ‘작품해설’에서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로 인해 ‘유대인’이 되었다’는 대목이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주기율표》에는 흥미로운 단편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바나듐」 편이 인상 깊었다. 이 글은 화자 ‘나’(혹은 레비 자신)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화학 실험실에서 함께 일하던 독일 장교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의 어디 까지가 소설적인 부분이고 어디 까지가 사실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화자는 단지 함께 일했던 독일 장교에 대한 적의나 보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자의 태도는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특히 수용소 시절에 상관이었던 독일인을 이해하고자 했다. 나아가 당시 독일 장교의 ‘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감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화자는 이 전직 장교에게, 그리고 독일인들에게 자신들이 같은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아는가라고 묻고 그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시라. 묘한 여운을 주는 단편이다.
또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인데, 전업 작가가 아니었던 레비의 직업에 대한 양가적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특히 생계를 위해 화학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는 밥벌이의 지겨움과 작가로서 글쓰기 활동의 양립이 안 되는 상황을 말하는 대목에 공감이 간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전쟁과 수용소가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기술자로 만족해야 했습니다.”(350) 시대와 현실 속에서 휘청거리는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반면 생계를 책임진 생활인이자, 직업을 가진 작가로서 자신을 비추어보기도 한다.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공장을 감독하느라 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 밀리탄차 덕택에,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해야 했던 그 강제적이거나 명예로운 일들 덕택에 저는 진짜 현실적인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358)
어쩌면 레비의 글이 그토록 힘을 갖게 된 이유도 단지 그가 겪은 극적인 경험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의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균형 감각이 레비의 경험들을 분명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따라서 현실적이고 성숙한 레비의 인식을 마주할 때면, 그가 자살로 생애를 마감했다는 사실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므로, 이 이유 역시 내 맘대로 재단하고 단정하기 않기로 한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결을 내면에 지니고 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프리모 레비가 태어난 지 103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지 후두둑 떨어지는 비 소리를 들으며 생각해본다.
[1] "내게 화학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담은, 무한한 형태의 구름이었다. 이 구름은 내 미래를 번쩍이는 불꽃에 찢기는 검은 소용돌이로 에워쌌는데, 마치 시나이 산을 어둡게 둘러싼 구름과 비슷했다."(35)
[2]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한 편의 시이며,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소화해온 그 어떤 시보다도 고귀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주기율표는 압운까지도 들어맞는다."(64)
[3]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89)
[4]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나는 쉴 새 없이 독서했다."(197) -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방에 있던 화자가 했던 행동.
[5]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졌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다. 인간들이 아우슈비츠를 지었고 아우슈비츠가 수백만의 사람들을, 내 많은 친구들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여인을 집어삼켜버렸기 때문이다."(222)
[6] "이방인을 사랑하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282) - 구약 성경 <신명기> 10장 19절의 글귀 재인용. 유대인이었던 레비에게 이 문장은 누구보다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7] "내 목소리는 약하고 심지어 약간은 세속적이기까지 합니다."(325) - 볼테르가 자신의 시 <오를레앙의 처녀>(1762)에서 잔다르크를 찬양하며 쓴 글귀.
[8] "지금 이 순간 미궁처럼 복잡한 줄거리를 벗어나 내 손으로 하여금 종이 위의 어떤 여정을 따라 달려가며 기호들의 소용돌이를 그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세포다. 위로 아래로, 두 차원의 에너지 사이로 이중 도약을 한 이 세포는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337) - 마지막 문장.
[9] "생각하고 관찰한다는 것이 제 생존의 요인이기도 했어요. (...) 비록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인 경우가 많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특이할 정도로 정신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것 같아요. (...) 사실 저는 제 주위의 세계와 인간들에 대한 기록을 멈춰본 적이 없습니다. (...) 어떤 사람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호기심이었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새로운 환경 속으로 옮겨진 자연주의자의 호기심이었습니다."(348) - 작가 필립 로스와의 대담에서
[10]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공장을 감독하느라 제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 밀리탄차 덕택에, 그리고 거기서 내가 해야 했던 그 강제적이거나 명예로운 일들 덕택에 저는 진짜 현실적인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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