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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시대 -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평점 :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일
- 백승종의《제국의 시대》(2022)
역사가들은 왜 끊임없이 역사책을 쓸까? 우선 과거의 행적을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며 이를 평가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역사는 현재를 성찰할 때 유용한 기준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이게 역사학의 효용이다. 역사에 동일한 사건은 없지만, 과거의 사건은 현재 당면한 과제에 판단의 근거가 되고,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거나 계획할 때 영감을 불어 넣는다.
미시사를 전공한 백승종 교수는 《제국의 시대》를 쓰면서 다양한 제국의 역사를 가로지른다. 1차 사료를 비롯한 다양한 자료로부터 관심을 갖는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구체적인 생활상을 재구성하던 관점을 넘어,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제국의 운명을 들여다보았다. 로마 제국을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는 2000여 년의 통시적 관점과 현재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공시적 관점이 접목되고 있다. 급격히 변하는 국제사회의 질서를 고려하면, 이 책은 역사가가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보고 다시 써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제국’이란 황제가 지배하는 국가를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보다 넓은 의미로 제국의 개념을 사용한다. 어느 국가의 영향력이 자국 영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경우, 제국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가 ‘제국’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현대 러시아나 중국에서 국가 원수의 권력은 과거 전통적인 어떤 제국의 황제보다 막강하다. 이 책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원고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면에서 이를 예견하고 있어서 마지막으로 가면서 특히 실감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이 전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미국은 세계 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세계에 부상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확대하고자 했던 구 소련과 대립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구성하여 소련의 확장 야욕을 견제했는데, 이 때 형성된 기본 구도가 현재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NATO의 존재가 ‘팍스 아메리카나’를 가장 뚜렷하게 상징한다고 말한다. 20세기에 미국은 세계 경찰의 역할을 자임하며 단연코 세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미국무부의 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이란 제목이 상징하듯,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세계를 하나의 게임장처럼 보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의 씨앗을 심은 것은 서방 세계의 NATO 설립과 연결되고 있으며, 여기에 가장 책임이 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인 셈이다.
1992년에 당시 미국의 국무차관보 폴 울포위츠가 작성한 미국의 전략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적대 세력이 지배권을 쥐지 못하게 막는 것이 미국의 목표다.” (396)
울포위츠의 보고서는 1991년에 구 소련이 붕괴 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지배 전략을 개편하면서 마련된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조 바이든은 1992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는데, 이 전략이 실효성이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례처럼, 미국 혹은 미국 중심의 세계 연합 체제는 한 강대국이 주변국을 위협에 몰아넣어도 이를 제재할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당시 미국은 중국이 훗날 세계 2위의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로 자임하며 외교·정치·경제 영역의 패권을 유지해왔다. 반면 로마 제국의 사례와 같이 세계 주요 지점에 군대를 주둔시킨 것은 오늘날 재정 적자에 허덕이게 한 주요 원인이었다.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미국의 국가 채무는 코로나19로 인해 연간 총생산량보다 많아진 상태라고 한다. 저자가 “오늘날 미국은 고대 로마공화정이 붕괴하던 때와 많이 닮았다.”(413)고 지적하는 이유도 국가의 재정난과 극심해지는 양극화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과거의 제국들이 국가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전쟁을 일으켜왔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일부 역사가들이 앞으로 20년 내에 제3차 대전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거 없는 예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뿐 아니라 현재의 러시아나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몰락한 제국 러시아는 여전히 막대한 군사력과 자원을 등에 업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모양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점차 노골화되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미국은 인도 편을 들어 국경의 긴장을 조성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하는 행보를 보인다. 히말라야 국경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대립하고 무기가 배치된 상황 뒤에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이는 전 세계가 단합하지 못하고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분열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 냉전’이란 용어를 굳이 붙일 필요도 없다. 이 대립 양상은 ‘편나누기’를 기본적인 존재양식으로 삼는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전염병 및 기후 변화 문제와 같이 국경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인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나가는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0여 년 간 역사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제국들과 현대의 제국들 9개국을 선별하여 이들의 운명을 검토했다. 여기에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6가지를 키워드(전쟁, 지정학적 위치, 종교 및 정치사상, 지도자 및 시민의 역할, 전염병 및 기후변화)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제국의 운명에 지정학적 위치의 영향력이 예전보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남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강대국의 세력 싸움에 한국 전쟁이라는 세계사적 사건 역시 상징적이다. 한반도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이념의 대리 전장(戰場)이 되었고, 전후 일본의 부흥이 여기에 직접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한반도에서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여전히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과거의 사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몽골 제국을 거쳐 ‘100년 전의 동아시아 3국’에 이르자 답답한 마음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부상했던 반면, 청나라와 조선은 외세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쇠락해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양세력과 중국의 대립으로 시작된 아편전쟁이 청나라의 몰락을 자초하고, 일본에게 대륙 진출을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은 뼈아픈 교훈이다. 이 역사의 한 장면에서 조선은 패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한반도가 유린되었다. 이렇게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보면 아편 전쟁과 한반도의 역사, 나아가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역사 갈등은 모두 연결 되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역시 세계사와의 관련 속에서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되었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일본은 200여 년에 걸쳐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어냈다. 이와 달리 조선 사회는 너무나 폐쇄적이고 침체되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사회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 과정에서 무능한 조선 조정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일본이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할 구실을 주었다.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한반도에서 긴장의 수위를 높였고, 결국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모두 이긴 일본이 한반도를 삼켰던 것은 이들에게 당연히 따르는 절차였을 뿐이다.
지정학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일본과 우리나라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이 만나는 길목에 있다. 여러 강대국이 대립하는 경계에 있는 것이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원자폭탄이 일본에 떨어졌다. 일본인은 패전국으로서 희생당했지만, 함께 희생당했던 외국인들(조선인 포함)은 전쟁과 무관한 상태에서 희생당해야 했다. 천만 명의 이산가족과 수백만 명의 목숨이 사라진 한국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얼마든지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다’(319)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만약에 동북아시아에서 다시 전쟁의 불길이 타오른다면 그 무대는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318)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앞에서 역사가가 역사책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이들이 끊임없이 역사를 연구하고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의 삶에 대한 앎이 그 목적일 것이다. 삶의 판단 근거로서 말이다. 이는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선택하는데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또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앎이 지혜로 바뀌는 순간이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이번 독서에서는 여러 제국들이 겪은 흥망성쇠의 모습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가 놓인 상황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갈등 뒤에는 ‘21세기의 로마 제국’이라는 미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드러난 것처럼, 전염병과 기후 변화 문제는 전 세계 국가의 결속과 유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의 불확실하고 해체된 연대의 모습만을 확인하고 있다. 이제 이 문제의 해결은 지구에 사는 모든 이가 어떻게 힘을 모을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망망대해에 띄운 한 척의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다. 우리가 안고 있는 공동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지구인의 운명이 달려 있다. 역사가는 당대의 절실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저술로 남긴다. 독자는 이로부터 가장 절실한 교훈을 얻어낸다. 이 모든 행위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