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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H2O인가? - 증거, 실재론, 다원주의
장하석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평점 :
《물은 H2O인가?》
장하석 지음 | 전대호 옮김 | [김영사]
[독서일기] 장하석 교수의 《물은 H2O인가?》를 읽는 중입니다
장하석 교수의 《물은 H2O인가?》를 아주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100자 정도로 책에 대한 인상을 남겨보려 했는데, 끄적거리다가 100자를 넘기게 되었네요. 그래서 두서없지만 좀 더 살을 붙여보기로 합니다.
이 책은 다른 대중과학철학서(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과학철학자 팀 르윈스의 저서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MID, 2016와 같은 책)에서 이미 여러 번 언급된 책이기도 해서 번역되어 나오면 흥미롭겠다고 여기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책입니다. 몇 년이 지나서 번역이 되었네요.
제가 잠시 장비회사에서 물건을 팔러 다닐 때 취급했던 장비가 전기분해를 이용한 장비였습니다. 그 때 살균효과에 중요한 발생 성분이 '염소'였구요, 그래서 이와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다시 발견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2장과 3장에 걸쳐 논의되는 ‘전기분해’와 ‘물은 H2O인가?’라는 주제에 가장 관심이 갑니다. 이 책에서는 아마도 물이 H2O인가를 의심하고 이를 따지는 부분이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를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만, 저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2장부터 흥미 있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기분해 장비를 취급할 때, 영업에 필요한 홍보자료를 만들면서 학술적으로도 우리가 전기분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모호한 상태인지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전기분해'의 과정 및 결과는 그동안 학계와 다수에 의해 '이렇게 믿기로 하자'라고 ‘잠정적’으로 합의된 지식이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작 반응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정확이 아는바가 없다는 것이죠. 물론 당시에는 일이 바쁘니 더 이상의 질문을 하며 나름의 답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이제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전체적인 인상을 이야기하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만 책에 대한 '첫 인상'을 남겨볼 수는 있겠죠. 물론 책을 읽다보니 제가 막연하게 짐작했던 부분 중에 책의 의도에서 많이 어긋난 부분도 있긴 합니다. 앞서 게시했던 《물은 H2O인가?》에 대한 기대평에서 제가 모호하게 알고 있거나 오해한 부분은 책을 읽으면서 다시 정리해봐야 겠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장하석 교수가 특히 강조하는 '다원주의'는 제가 막연하게 예상했던 개념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원리로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공기와 물의 정체성을 파악하던 과학혁명 당시 혹은 그 전후의 화학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현대 과학사/과학철학서와는 달리 접근성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나 읽기가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긴 합니다. 저자의 생각과 논리를 잘 따라가야 하는 숙제가 남습니다. 또 책의 두께가 주는 압박이 있지만 원서의 페이지수와는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번역서의 글자가 크고 한 페이지에 포함되는 글자 수가 적은 편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튼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읽어도 피로감을 덜할 것 같습니다.
책을 천천히 읽다보니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마음에 들어서, 아예 간단히 첫인상을 기록해두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무래도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나 이해의 폭이 확장된 제 모습을 발견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제가 파악하는 책의 성격은 이 책이 과학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옳은 것 일까?를 묻고 있습니다. 각 장의 시작은 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 역사적인 맥락을 전달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전개합니다. 그런 다음 저자는 주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차근차근 꺼내놓습니다. 그러니까 책의 이해를 위한 배경으로 과학지식(양자역학 같은 지식을 포함하여)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자의 주장을 잘 따라가며 읽는 것이 관건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은 H2O지'라고 믿고 있는 우리에게 '과연 그런가?'라고 저자는 묻습니다. 이에 저자는 과학사의 여러 장면 전후를 들여다보면서 집요하게 우리의 믿음 체계를 공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읽기에 가볍고 부담 없는 도서를 많이 찾게 되는 요즈음, 장하석 교수의 책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하고 생각해볼만한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과학혁명의 구조》를 썼던 토마스 쿤으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았기에, 저자는 토마스 쿤을 비롯한 선배 학자들의 연구까지 보다 폭넓게 고려하며 고찰합니다. 그러니 《물은 H2O인가?》를 읽는 것은 《과학혁명의 구조》와 같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의 고전을 보다 깊이 읽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이번 장하석 교수의 신간은 특히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믿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지 못하는 학자들, 상대방과 학문적인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경직된 국내 학계를 비롯해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과학 지식을 얻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과정도 제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분들의 독서 활동과 기록을 통해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이 책 역시 그런 질문을 끌어안고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책을 읽는 중이긴 하지만, 이 책 이야기를 다시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책을 다 읽게 되면 읽기 전의 저와는 분명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중요한 책이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하는 책입니다. 다 읽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