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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 '레벤스보른 프로젝트'가 지운 나의 뿌리를 찾아서
잉그리드 폰 울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 2021년 4월
평점 :
'이제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때다'
-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해서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다음 날 몸에 무리가 올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히틀러에게 바쳐진 아이로,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을 지켜나갈 독일인이 되도록 운명 지워진 저자의 뿌리 찾기 여정이 계속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50-60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믿고 살아온 삶의 토대와 믿음이 체계적으로 가려져 있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의 저자 잉그리트 폰 욀하펜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아리아인’ 신화의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이 신화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라고 불렸다. 그녀의 본명은 에리카 마트코. 생후 1년이 되지 않은 시기에 강제로 나치의 군인들에게 납치되어 생이별을 했다. 이 책은 인생의 후반에 15년 이상 지속되었던 자신의 뿌리 찾기 여정을 진솔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수치심을 이겨내고 용감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 개인의 역사이자, 우리가 알아야할 지난 세기의 역사다.
저자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감정을 40년이 다 되도록 철저히 외면했다고 했다. 11세에 자신의 부모가 친부모가 아님을 알았을 때, 그리고 자신이 에리카 마트코라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저자는 52세가 되던 1999년 어느 날 한 적십자 지원의 전화를 받는다. “친부모를 찾고 싶으십니까?” 저자 잉그리트가 ‘그렇다’라고 답한 순간, 그녀는 에리카 마트코를 발견하는 여정의 시작임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동안 묻혀 있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만해도 나는 이 결정이 저자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와 예기치 못할 감정의 기복과 마주해야 하는 과정이었을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20세기 유럽 역사를 휘감았던 소용돌이의 한 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치의 제2인자이자, 히틀러 친위대장 이었던 하인리히 힘러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했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무엇보다 히틀러와 힘러 세력이 부활하려고 했던 ‘인종적 순수성’은 특히 힘러의 신비주의적 믿음이 더해져 종말론적 비전을 갖게 되고, 극도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레벤스보른, 곧 ‘생명의 샘’이라고 불린 이 프로젝트는 다윈의 진화론이 극단적으로 왜곡되어 해석된 19세기 말의 ‘우생학’적 전통에서 극단으로 나아간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수하다는 것, 그래서 우수한 인종이 더 번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과학’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논리는 나아가 ‘열등한’ 인종의 소멸이 자연법칙 상 예견되어 있으며 당연한 결과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했다. 그 결과, ‘열등한’ 이들에 대한 탄압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그 한 예로, 나치 세력은 아리아인의 기준에 미달한 사람들은 불임수술을 통해 씨를 말리는 야만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저자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까지 적어도 32만 명이 법에 따라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한다(111). 이처럼 아리아인의 신화를 실현시킬 야심찬 조직이 바로 레벤스보른이었고, 이 목표의 설계자가 바로 하임리히 힘러였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과거사에 대한 전후 독일 사회의 은폐 분위기였다. 저자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게오르크 릴리엔탈 박사의 도움을 받아 여러 관공서에 자료 문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비협조적으로 대응했다. 이 점은 저자처럼 자신이 레벤스보른의 아이였으며, 자신이 성장했던 환경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마주하게 된 사회의 장벽이었다. 저자는 ‘독일이 통일되었지만, 독일인들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87)라고 이야기하며, 뿌리 찾기에 걸림돌이 되는 외부적 환경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일본과 비교하여 독일은 과거사에 대해 여러 면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그리고 이 사회 속에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안고 살아갔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치의 프로젝트와 연루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본인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레벤스보른의 아이들은 이 프로젝트의 정확한 내막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의 편견과 조롱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적국의 아이를 밴 여성의 아이들이라고 말이다. 이는 지역 사회와 양부모 및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와 상실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 자신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인류사의 커다란 오점이 된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들이 노출된 현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치심은 강력한 감정이다. 그리고 전후 독일의 정치적 분위기에서 친위대처럼 비난과 공포의 대상이던 조직에 연루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152)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이 주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왜 금기시되어 왔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관공서들이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애초에 왜 비협조적으로 나왔는지를 말이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레벤스보른 출신 모임에 나가면서 수수께끼 퍼즐 같던 자신의 과거를 좀 더 맞춰 나갈 수 있었다. 이 모임에 오기까지 많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은 예외 없이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받은 상처로 고통 받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라고 여겼던 기젤라가 사망할 때까지 진실을 자신에게 말해주지 않았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슬로베니아(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친부모가 자신을 대신해서 건네받은 아기를 받아들였으며, 이후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이해할 수 없었고, 격한 분노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했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을 만나 이들의 경험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비로소 상처받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과거도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자의 뿌리 찾기 과정을 따라가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레벤스보른 출신들의 모임 ‘레벤스푸렌’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슬로베니아에서 만났던 80대의 생존자들이 모두 ‘자신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보인 점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연관된 오명의 역사와 내면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여 제대로 이해하고, 세상으로 나오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면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기억에 남았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무조건 덮으려는 사람들에 맞선 이들의 용감한 행보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성장했지만, ‘정직하고 떳떳해지려고 몸부림치던 한 세대’(9)의 이야기라는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자신의 후손들에게, 그리고 멀리 아시아에 있는 한 독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가족을 찾고, 역사를 알아간 한 평범한 독일인의 이야기이면서, 의도치 않게 나치 핵심 세력에 연루된 세대를 대변한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인류의 역사에 중요한 한 장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다. 또 상처받은 존재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자기 삶의 궤도를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깨달게 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을 좌절과 슬픔, 그리고 기쁨의 감정과 자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모두 담겨있다. 자신의 삶을 세상에 내놓기 까지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는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역사의 교훈은 우리가 이제껏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 말에 더하여, ‘이제 배워야 할 때’라고 자신이 지나온 여정의 의미를 강조한다. 이제 후손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우리의 이야기는 피로 물든 오명의 그늘에서 자랐지만 정직하려고, 떳떳하려고 몸부림친 한 세대의 이야기다." - P9
"그곳에서 지낸 2년 동안 나는 내가 꿈꾸던 행복한 가족이 어린아이의 환상이었을 뿐임을 깨달았다. (...) 나는 이미 기젤라가 나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 나를 데려왔는지 몰랐다. (...) 나는 그 일 전체를 내 마음 뒤편으로 치워버렸다. 내가 기젤라의 딸이며, 그녀의 가족이라고 믿고 싶었다." - P61
"1960년대 중반 나는 이 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스스로를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라 불렀지만,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에리카 마트코였다." - P71
"나는 수수께끼 같은 어린 시절에 대한 내 감정을 거의 40년간 철저히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 P80
"독일은 그것을 꺼내 흔들 준비도 되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독일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베를린 장벽만이 아니었다. 이제 독일은 통일되었지만, 우리의 집단기억은 여전히 온전치 못했다." - P87
"내가 진짜 잉그리트 폰 욀하펜이 아니라는 사실은 수십 년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한때는 에리카 마트코였다고 믿으면서 그 상처를 달랬다. 그런데 이제 나는 잉그리트도, 에리카도 아니었다. 나는 진짜 아무도 아니었다." - P137
"나는 안전한 내 안식처를 떠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 내 과거로 새로운 여행을 떠났다. 나는 예순한 살이었고, 이제 내 어린 시절을 공부할 시간이었다." - P139
"뮌헨에 자리한 레벤스보른 본부는 추방된 반나치 활동가이자 작가였던 토마스 만의 소유였다." - P143
"이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공유하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깊은 정서적 상처와 수치심이었다." - P151
"어린이 대량 납치. 이게 사실일까? 충격적이지만 사실이었다. 힘러가 사석에서 친위대 장교들에게 이 계획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연설이 녹음된 자료까지 있다." - P158
"나는 ‘총통께 아이를 바치‘는 계획의 일부였다.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다." - P161
"그들은 고령인데도 기억이 또렷했고, 자신들이 겪은 일을 세상이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가 굳었다." - P192
"저는 살해자들의 편에서 자랐어요. 레벤스보른 아이라는 것은 여전히 수치심의 원천이죠." -레벤스보른의 아이 헬가의 증언 - P216
"이 흐릿한 흑백사진들은 나치가 내 가족에게서 나를 훔쳐 간 날의 기록이다.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과장하는 것처럼 들리긴 싫지만 정말 으스스한 떨림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독한 외로움과 무력함이 나를 덮쳤다." - P241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뜻한다. 그건 사람됨의 문제이기도 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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