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피노키오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카를로 콜로디 지음, 엔리코 마잔티 그림, 이시연 옮김 / 더스토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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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피노키오(Pinocchio)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 지음 | 엔리코 마잔티(Enrico Mazzanti) 그림

이시연 옮김 | [더스토리]

 

 

성인이 되어 읽는 피노키오


 

어렸을 때 읽던 동화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어떤 점이 다르게 느껴질까? 초판본 피노키오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한번은 읽어보았을 이 책의 내용을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에서 구체적인 사항들을 기억하여 비교할 수는 없지만, 거짓말을 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잘 알려진 모티브 외에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내용도 여러 가지 보인다.


우선 저자인 카를로 콜로디의 프로필을 간단히 살펴본다. 동생과 함께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참가하고 풍자적인 정기 간행물을 만들었다는 이력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신문 기자로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어린 독자를 주 대상으로 연재한 피노키오같은 책을 여러 권 발표했다. 간단히 정리된 콜로디의 행보를 보면서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떠올렸다. 카잔차키스 역시 정치운동에 깊이 참여했고, 정치적인 성격의 정기간행물을 만들었으며, 유럽 전역을 다니며 기자로 활발한 언론인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카잔차키스는 젊은 독자를 위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소설을 연재하여 책으로 펴낸바 있다. 두 작가의 행보를 볼 때 이들은 당대의 지성인으로서 여러 모로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문체 모두 때론 다소 투박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작품이 주는 생명력, 혹은 힘이 느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성인이 되어 읽은 피노키오에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는 점이 새삼스럽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어린 독자들을 일깨워주려는 저자의 소박한 촌평 또한 정감이 간다. 간결한 이야기 속에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통찰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본다. 이를테면 피노키오가 자신의 금화를 훔쳐간 강도(고양이와 여우)를 고소하기 위해 판사에게 간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동화는 가식적이고 겉치레를 중시하는 기성사회를 이렇게 풍자한다. “판사는 큰 원숭이였습니다. 늙은 큰 원숭이는 그의 많은 나이와 하얀 수염, 특별히 그의 유리 없는 금테 안경 때문에 존경받는 인물 같았어요.”(114)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어린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언어유희의 장면들도 나온다. 예를 들면 사기꾼 고양이와 여우가 빨간 가재여관에서 고양이는 위장이 아파서 빨간 숭어 서른다섯 마리와 파르마산 치즈로 요리한 소고기 요리를 사 인분밖에 먹지 못했다고 하는 대목이다.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들만한 재미있는 상황이다. 또 피노키오가 두 사기꾼에게 속아 죽을 고비에 처해 있을 때, 요정이 불러온 돌팔이 의사들이 피노키오를 진찰하고 진단을 내리는 장면이 있다. 선생님들의 소견이 알고 싶다는 요정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는 식이다. “제 소견으로는 꼭두각시 인형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죽은 게 아니라면 아마도 살아 있다는 확실한 징후겠지요!”(93) 이 대목은 풍자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어린 독자들의 시선에서 이상하게 보일 것이 확신하지만 어른들은 무시하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모순을 조롱한다.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만든 직후부터, 피노키오는 뭐든 자기 멋대로 하는 존재다. 아직 충분한 교육과 분별력을 갖지 않아 줏대도 없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의 유혹과 감언이설에 쉽게 영향을 받아 문제를 일으키고, 고생을 겪는 단초가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이들이 악하기만 하거나 애초에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보다 유연한 시선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작품 전반에 고려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보답을 기대하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독자들은 친절을 베풀 수 있을 때 베푼다면 언젠간 그와 같은 친절을 받을 수 있다”(243)는 귀뚜라미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서양 문화는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데, 피노키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적 사랑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저자가 이야기 중간에 개입하여 전달하는 교훈들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윤리관을 반영하는 내용이 많다. ‘훔친 돈은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거나 부모와 가족을 공경하고 존중하라는 언급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또 제페토 할아버지와 피노키오가 거대한 상어의 뱃속에서 만나는 장면도 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상어 뱃속 장면은 성경의 요나서에서 영향을 받았음직하다. 성경에서 요나는 하느님의 눈을 피해 배를 타고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려한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손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피노키오 역시 할아버지로부터 달아나든, 주변 인물들에 의해 한눈을 팔아 새로운 모험으로 이어지든, 언제나 파란 머리 요정의 손길이 피노키오의 주변에 언제나 머물고 있다. 이렇게 신과 같은 요정의 보살핌은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는 과정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피노키오가 겪는 수많은 모험과 고통은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는 배움이 주가 되는 성장의 시기에 성실하고 부지런해질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각자 일을 가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는 여러 조건들을 제시한다. 물론 지금의 가치관에 잘 어울리지 않는 가치관일 수 있지만, 동화가 쓰인 시간적, 공간적 배경 속에서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는 덕목을 일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피노키오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피노키오가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특징이다. 하지만 책에는 거짓말을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방법에는 길어지는 코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다리가 짧아지는현상이다. 이 책에는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종류(?)의 거짓말만 등장한다. 다리가 짧아지는 유형의 거짓말이 어떤 것인지는 이야기에 나와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짧아지는 것과 코가 길어지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싫어할까? 갑자기 어린 독자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피노키오는 대략 140년 전에 쓰인 동화다. 단테와 보카치오와 같은 문인들을 배출한 피렌체 출신의 작가에 의해 바로 이 지역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원래 성인을 위한 도서로 기획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피노키오가 작품 속에서 겪는 모험에는 사회의 모순과 이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반영되어 있다. 많은 동화가 그렇듯이 다소 잔인해 보이는 장면도 등장한다. 물론 나중에 아동을 위한 도서로 용도 변경(?)이 이루어지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모험적인 요소와 교훈적인 요소가 균형 있게 포함되었을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이 동화는 당시 이탈리아인들이 공유하던 세계관과 윤리적 가치관, 집단의 무의식적 측면도 읽어낼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무형의 가치들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대 사람들인 우리가 여전히 이런 고전 동화를 읽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앎을 확장하는 활동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아동일 테지만, 성인이 되어 피노키오를 읽는다는 것은 아동의 눈높이를 이해하고, 우리의 과거와 만나며,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재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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