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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테라 인코그니타 Terra Incognita》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고고학은 현재 진행형이다’ - 《테라 인코그니타》를 읽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고고학이란 학문이 단순히 새로운 유물을 발굴하고, 기록되어 있는 역사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나의 편견은 보기 좋게 깨져버렸다.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자기계발과 기업인문학이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업화된 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인문학의 본질은 외면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내 고고학자가 써내려간 《테라 인코그니타》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고고학이란 학문 자체에 대한 나의 무지와 만나는 과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이란 학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새롭게 환기시켜 주었다. 이 책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저자가 국내 일간지에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연재했던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고찰하는 시도를 한다. 우선 1부에서는 강자의 역사가 어떻게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통해 편견을 심어 놓았는지 이야기한다. 특히 식인 풍습에 관한 사례들이 흥미로웠다. 2부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보다 구체적인 진실에 접근한다. 온돌이나 고조선의 모피, 그리고 흉노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최근에 드러난 유물과 연구 결과를 통해 교과서에서 배운 우리 역사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열어준다. 3부에서는 역사 속에서 상상과 신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세계문명사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아틀란티스의 신화를 비롯하여 근대의 히틀러가 남긴 편견의 틀을 보여준다. 여기에선 인류의 무지가 어떻게 신화와 결합되어 당대의 삶을 규정했으며,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4부에서는 3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고학이란 학문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이용되어왔는지, 그리고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된 구체적인 사례가 모두 흥미로웠지만, 과거의 국가들이 차별과 배제의 장치를 어떻게 이용해왔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었던 지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로빈 던바 교수가 언급했던 것처럼, ‘정치적’인 인류는 역사를 통틀어 신화와 종교의 의식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타심과 이기심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둘은 하나의 쌍으로 언제나 공존하는 듯하다. 개인 혹은 집단이라는 ‘경계’를 기준으로 이들의 관심이 그 경계의 안에 머물면 이타심일 수 있는 반면, 경계 밖의 존재에게 경계 안에 있는 존재의 행위는 이기적 행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개체가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희생함으로써 공동체의 생존가능성을 늘릴 수 있다면, 공동체 전체에 있어 이득일 것이다. 이런 공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되는 서양인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시각뿐만 아니라 카니발리즘이란 표현은 저자의 지적대로 지극히 악의적인 왜곡에 기반 한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오랜 시간동안 고착되어 후대의 삶에도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식인풍습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흥미로운 대목을 읽다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 나오는 한 장면을 떠올렸다. 소설에서 화자 이슈메일은 여인숙에서 작살잡이 퀴퀘그와 같은 침대를 쓰게 된 상황이었다. 한 침대를 쓰게 된 ‘문명인’ 이슈메일은 식인종이자 ‘야만인’ 귀퀘그를 관찰하면서 ‘저 남자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 (...) 술 취한 기독교인과 같은 침대를 쓰느니 정신 멀쩡한 식인종이랑 자는 게 낫지’ 라고 말한다. 지금이야 충격이 덜 할지 모르나, 1850년대 미국의 백인이 이 말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상당히 도발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모비 딕》의 발췌문에 나온 것처럼 허먼 멜빌은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었을 것이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몽테뉴가 이미 500년 전에 식인종과 직접 대화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세이에 식인 풍습에 대해 편견을 걷어 내고 기록해놓았다는 점이다. 몽테뉴는 자신이 속한 문명인들이 보여주는 ‘우리 자신의 야만 행위’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고고학자의 역할이란 결국은 500년 전의 몽테뉴처럼 편견을 줄이기 위해 ‘경계’의 안과 밖을 공평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 강인욱 역시 ‘식인 풍습은 미개한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식인 풍습이 드물긴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증오심에서 보다는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에게 체화되길 바라는 ‘사랑의 발로’에서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이런 식인 풍습이 점차 문명이 형성되고 신화와 종교라는 이데올로기가 더해져서 적대감으로 인간을 죽이게 되고, 나아가 대량학살에 이르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조명한다. 이 과정에서 카니발리즘이란 표현은 “실제 식인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비하하여 붙여진 이름”(70)이라고 일러준다. 루쉰은 중국 역사에서 발견되는 식인 풍습에 대해 ‘인육의 잔치는 지금도 베풀어지고 있다’라고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카니발리즘이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기작에 활용되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루쉰의 관점은 자신의 역사에 대한 비하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 주제에 관한 한, 다소 편협했거나 무지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식인 풍습을 비롯하여 다채로운 소재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줄곧 고고학이란 학문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는 고고학이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문화재를 강탈하면서 발달한 근대 이후의 학문”(278)이라는 고고학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대 국가 사이의 분쟁과 약탈의 행보를 살펴보면 고고학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곧 ‘우리의 고고학’은 서양이 규정해 놓은 차별과 배제의 프레임을 벗어나 이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아울러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이 만들어 놓은 왜곡되고 자기모순적인(나는 ‘엽기적’이라고 표현한다) 역사관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에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오래된 유물과 유적을 발굴해내는 작업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역사’란 이미 상당히 검증을 거쳐 정립된 분야가 아닌가하고 말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현재를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단정해버렸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강대국이 규정해버린 편견과 역사관을 어떤 의심이나 비판적인 검토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제는 고고학이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인 학문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또 고고학은 우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도끼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고학은 이 땅 위에 살다간 수많은 세대, 겹겹이 쌓인 삶의 흔적을 한 겹 씩 들어내어 인간의 삶을 정리하고 이해하는 작업일 것이다. 절대 다수가 문자로 기록된 역사보다도 유물과 유적이라는 물성으로서만 남아 그 안에 수많은 진실을 간직하고 있으며 더 폭넓은 인류의 역사를 비쳐줄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후대인의 목적에 맞게 왜곡되어 해석되고 이용될 여지도 다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테라 인코그니타》에서 고고학은 우리의 역사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각 지역과 서로 활발히 상호작용하고 연결되어 있던 역사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존의 고고학적 자료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고고학의 방향과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풍부한 사료와 함께 보여주었다. 나아가 자국 중심의 역사를 넘어 보편성에 근거하여 세계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를 위해 나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타자를 배제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선입견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과 ‘새로운 자료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당부를 기억해두기로 한다.
"4대 문명론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전세계를 활보할 때 만들어졌다." - P22
"카니발리즘은 실제 식인하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비하하며 붙여진 이름이었다." (70)
"식인 풍습은 미개함과 관련이 없다." (72) - P70
"문명을 유지하고 번성하는 가장 큰 관건은 외모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었다." - P155
"고대에 사람들이 교류하고 공존했던 사실을 현대 국가의 영토로 치환하여 논하는 것은 오히려 고대 한국 문화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본군국주의 논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일이다." - P298
"실제로 형제국가라는 표현은 터키 건국 직후 일본이 세운 ‘만주국‘과 친선관계를 수립하면서 등장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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