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전기

옌스 안데르센(Astrid Lindgren) 지음 | 김경희 옮김 | [창비]

 


한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며

 - ‘아이들은 영혼에 바르는 연고임을 잊지 말라

 

나는 결혼할 때 텔레비전을 사지 않았다. 여러 집을 전전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에는 부엌에 인터넷으로 연결된 테블릿 크기의 티비가 설치되어 있어서 가끔씩 주방에 앉아 TV를 본다. 보통 TV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가끔 뉴스를 볼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지 깨닫고 놀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뉴스를 볼 때마다 충격을 많이 받고, 심리적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 한 아이가 학대받아 사망한 일로 수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다. 나는 어제 저녁에나 뉴스를 보면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제 본 뉴스시간에는 아이의 죽음뿐만 아니라, 차에 묶여 끌려 다니다 죽은 강아지에 대한 뉴스, 음주 운전 차에 치여 열심히 내일을 준비하던 젊은 여성이 사망한 사건 등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요즘 TV를 볼 때마다 나는 지금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닌지 착각할 정도가 되었다. 매일 TV를 통해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런 뉴스에 익숙해져있겠지만, 가끔씩 TV를 보는 사람이 이런 뉴스를, 그것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꺼번에 접하게 얼마나 충격을 받고 스트레스를 받을지 상상해보라. 어제는 뉴스를 보면서 정말 숨을 쉬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원래 새해가 되면 삐삐롱 스타킹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전기에 대해 좀 밝은 독후기를 작성해볼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에 겪은 개인적인 아픔과 시련을 딛고 많은 이들이 존경할만한 삶을 살았던 작가로서 말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충격적인 죽음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 다시금 린드그렌을 떠올렸다. 그녀는 보통의 부모들처럼 아이들의 심정과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하던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린드그렌은 단순히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캐릭터 삐삐를 창조한 아동문학 작가로 정리되는 인물이 아니다. 이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읽고나면, 린드그렌이 인간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매일 용감하고 진실하게 삶을 살았으며, 아이와 젊은이들의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했던 어른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의 작가 옌스 안데르센은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전기와 프레데릭 왕세자의 전기를 쓰기도 했던 덴마크의 전기 작가라고 한다.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성과 같아서 그의 후손이거나 친척이 아닐까 추축해본다.

 

뉴스를 통해 한 아이의 안타까운 사망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이 책이 생각났고, 책의 제목이 된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이란 문구를 떠올렸다. 전기에 따르면 이 문구는 린드그렌의 동화 미오, 나의 미오에서 주인공들이 당면한 위험이나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기적을 기대하며 암송하는 기도문의 일부였다. 사망하기 전까지 학대받았던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매순간 여기를 벗어나게 해달라는 바램만을 갖지 않았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볼 뿐이다. 아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듣는 일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의 기도를 외면했던 침묵의 카르텔의 일부라고 해도 변명하기 힘들 것 같다.

 

린드그렌은 아동을 위한 작품에서도 삶의 주요 문제들, 이를테면 고독, 고립, 어둠, 죽음, 슬픔과 같은 삶의 보편적인 고민들을 담아, 아이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른으로서 우리가 염려하듯이 아이들이니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르다’, 라고 동화에서 배제해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린드그렌은 합당한 방식으로 이런 주제들을 다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 이들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하고, 아이들이 이런 충격에도 각자 나름대로 이를 소화해 나간다는 믿음을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린드그렌의 견해에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반대할 교육자들도 분명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을 단순히 미성숙한 인간으로만 보는 시각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보다도 더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었던 조상들의 삶을 떠올려보자. 아이들이라도 늘 부모나, 형제자매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일이다. 이에 대해 린드그렌의 생각을 좀 더 들어보자.

 

예술적으로 합당한 방법이라면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라는 주제도 진솔하게 다룰 수 있으며, 이를 소화해 내는 것은 어린이의 몫이다. 죽음과 사랑은 나이를 막론하고 인류의 경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예술을 통한 충격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은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다. 누구나 이따금 눈물 흘리고 두려움에 떨 필요가 있다.”(337)

 

젊은 시절 첫 아이를 낳고 곧바로 고통 속에서 헤어졌던 경험, 사실상 싱글맘으로서 생계를 위해 분투했던 린드그렌의 청년기를 떠올려본다. 이 때의 고통스럽고도 생생한 체험은 이후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린드그린은 앞서 언급한 미오, 나의 미오에서 슬픔새노래새를 언급하는데, “우리 머리 위로 슬픔새가 날아다니지 못하게 할 수는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요”(291)라고 자신의 어린 펜팔 수신인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린드그렌은 어린 상대에게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며 이들이 삶의 진실을 배우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를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린드그린은 특히 아이들에 대해, 그리고 이들의 교육과 미래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세계의 운명은 요람에서 결정 된다’(276)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무엇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지에도 연장되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던 작가였다. 린드그렌이 지녔던 신념, ‘우리는 남들이 우리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그들을 대해야 한다’, 라는 입장은 나이와 지역, 계급 및 시대와 무관하게 진리일 것이다. 이 진리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성립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린드그린에게 글쓰기는 무엇보다 특별했다. 특히 결코 만만치 않았던 그녀의 삶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행복을 주는 행위이기도 했다. 린드그렌은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대는 슬프다. 나는 글을 쓰며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290)라고 했다. 그녀의 동화를 보면 언제나 행복했던 시기를 보낸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 힘든 시련과 2차 대전을 겪은 인물이다. 그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행복을 찾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전기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린드그렌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냥 살아갈 뿐입니다. (...) 나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신나고 풍성해서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고민할 겨를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가져오는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요. 매일을 마치 삶의 마지막 날처럼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 실제로 삶이란 재빠르게 스쳐가는 부조리이며,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커다란 침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짧은 시간 동안에는 최대한 풍성하게 채워야 합니다.”(449)

 

린드그렌의 전기에는 인생의 후반에 작가가 실천적인 활동가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력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녀는 인본주의자로서, 문명비판론자로서, 또 정치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년에는 끊임없이 환경, 여성, 동물복지 등의 문제에 관해 글을 기고하고 사회적인 논의를 끌어낸 인물이기도 했다. 다만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으로서, 그리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작가를 계속 따라가 보려 한다.

 

1973년에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린드그렌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어린이가 최소한 한 명의 어른과 바람직한 정서적 유대를 가져야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삶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383)

 

그녀가 공개적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는데, 아마도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멀리 떨어진 위탁 가정에 맡기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던 몇 년 간의 절실한 체험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내일이 불안한 나날 속에서 매순간 엄마와 떨어져서 지내야 했던 아이의 심정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린드그렌이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전기의 작가 역시 린드그렌 철학의 핵심은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449)이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른과 정서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한 아이, 아니 심지어 학대받고 방치된 아이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다. 이 아이는 린드그렌이 아이들로부터 기대했던, 슬픔과 고독 속에서도 매 순간 (삶에) 집중하면서 우리가 진실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차가운 땅속에 묻힌 아이에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었을까. 린그드렌은 학대를 하고 방치했던 양부모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얻고 웃음을 잃어가던 아이를 외면한 어른들에 대해 분노했을 것 같다. 나아가, 아이에게는 고독과 외로움의 상처에 대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위로해주고 싶어 했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고독 속에 갇혀 있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단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작고 외로운 존재야”(447)라고 말이다. 린드그렌이 창조해낸 삐삐는 어쩌면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방치되고 심지어 학대받은 아이들이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지키려고 했던 생에 대한 의지의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이를 학대하고 방치한 양부모뿐만 아니라, 이를 알고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입양기관, 그리고 신고를 받고도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경찰들, 그리고 아동학대법방지를 위한 법제정에 한동안 무관심했던 국회위원들을 비롯한 기득권을 가진 모든 어른들, 이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우리 어른들은 가해자의 편에 가까운 혹은 그 일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린드그렌의 한 마디를 전해주고 싶다. “아이들은 영혼에 바르는 연고”(368)임을 잊지 말라고. 아이들이야말로 오히려 병든 어른들의 영혼을 치유해줄 수 있는 귀한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한번도 진실로 살아있음과 유대감을 느껴보지 못했을 아이의 죽음을 애도한다.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221) - P221

"교육에서 자유란 안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존중과 애정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는 것입니다."(250) - P250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때는 슬프다. 난 글을 쓰며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290) - P290

"이건 마치 오늘 하루가 일생의 전부인 양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야. 매 순간 집중하면서 우리가 진실로 살아 있음을 느껴야 한다는 거지."(348)
- 열일곱살의 린드그렌에게 작가 엘렌 케이가 해준 토마스 토릴드의 격언 - P348

"모든 어린이가 최소한 한 명의 어른과 바람직한 정서적 유대를 가져야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삶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고 나는 믿습니다."(383) - P383

"우리 모두는 자신의 고독 속에 갇혀 있지. 인간은 누구나 외롭단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작고 외로운 존재야."(447) - P447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 (...) 실제로 삶이란 재빠르게 스쳐 가는 부조리이며,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커다란 침묵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에는 삶을 최대한 풍성하게 채워야 합니다."(449)
-환갑의 린드그렌이 기자에게 해준 말 - P449

"아이들은 영혼에 바르는 연고야"(368)
- 손주들과 함께하던 시기,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쓴 표현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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