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원제 Spillover: Animal Infections and the Next Human
Pandemic)
데이비드 콰먼 (David Qaummen) 지음 |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말라리아를 파헤치다’
[독서일기] [3장] 모든 것에는 기원이 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전염병 중에서 보다 익숙한 ‘말라리아’에 대한 내용이다. 이번 장에서 주 무대가 되는 장소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반도 지역 주변이다. 말레이반도 지역은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과 독립적으로 진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립하고 다윈에게도 자신의 논문을 보내기도 했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주로 탐험을 하던 지역이다. 월리스가 남긴 기록에는 빈번히 말라리아에 걸려 배탈, 설사, 고열에 시달렸다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앞서 읽은 헨드라 바이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바이러스가 아니다. 나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저자에 의하면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여러 종류의 ‘원충’이라 불리는 원생생물(‘기생충’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이다. 이제는 상식이 되다시피한 매개체는 물론 여러 종류의 모기다. 그런데 말라리아의 질병 자체를 이해하는데는 꽤 복잡한 측면들이 존재한다. 생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측면, 경제적 측면이 서로 복잡하게 맞물려 있어서 질병 자체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기에 의한 말라리아의 전염 기작은 단순히 모기가 원충이라는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다가, 사람의 피를 빨때 옮겨지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전염 메커니즘이 다소 복잡하지만 간단히 정리하고 넘아가보겠다. 우선 인간을 감염시키는 네 가지 원충이 있는데, 삼일열원충, 열대열원충, 사일열원충, 난형열원충으로 모두 원생생물이다. 이 중 삼일열원충과 열대열원충이 가장 흔하다. 특히 열대열원충은 보건 측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데, 전 세계에서 보고되는 말라리아 사례의 85%가 바로 ‘열대열원충’에 의한 감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원충이 인간의 몸에 들어가서 바로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변태’과정을 거쳐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원충 자체의 생활사가 복잡한 편이다.
우선 모기가 사람을 물 때, 피부를 뚫고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종층’이라는 형태로, 암수 구별이 없는 무성세대에 속한다. 이 종층이 인간의 간으로 가서 ‘낭충’으로 변하는데, 역시 암수 구별이 없는 상태다. 낭충이 간을 나와 이번에는 적혈구에 침투하여 적혈구 내부를 갉아먹으며 성장해서 ‘분열체’로 변한다. 이 분열체가 적혈구를 찢고 쏟아져나와 다시 ‘낭충’이 되어 혈액 속에서 증식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가 말라리아의 특징인 발열이 일어나는 단계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암수로 분화하여 이번에는 유성세대가 시작되는데, 이 때의 원충은 ‘생식모세포’라고 불린다. 이런 상태에서 다른 모기가 감염된 사람을 다시 물면, 혈액 속의 원충이 다시 모기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모기의 장 속으로 들어간 생식모세포는 유성생식을 거쳐 ‘운동접합체’가 된다. 이 운동접합체는 모기의 장벽에 달라붙어 종충으로 가득 찬 알주머니로 변하고, 이 종충이 때가 되면 알주머니를 찢고 나와 모기의 침샘으로 가게 된다. 이 모기가 다시 다른 숙주(사람)의 피를 빨 때까지 모기의 침샘에서 대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좀 더 단순히 이해해보자면, 모기는 인간을 물면서 원충과 생식모세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인간은 원충의 ‘변태’과정에 이용되는 숙주였던 것이다.
저자가 ‘인수공통 감염병’에 관한 기사를 기고할 즈음(2007년)에는 말라리아가 인수공통 감염병이 아니라 단순히 ‘매개체 감염병’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곧 인간 말라리아는 인간만 감염시키며, 모기는 이 병원체를 운반만 하는 존재로서 이해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후의 연구들을 따라가다보며 결국 보다 넓은 의미에서 말라리아는 결국 인수공통 감염병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인류는 지구의 생물역사에서 최근에 등장한 존재인데, 과거 언젠가 다른 동물종 사이에서 종간전파를 일으키던 감염체가 새로 등장한 인류의 조상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도 말라리아는 ‘인수공통 감염병’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말라리아의 보유숙주가 되는 동물을 찾아 볼 수 있다. 1991년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말라리아 원충이 조류에서 인간으로 종간전파를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이 견해는 서서히 설득력을 잃었고, 이후에 침팬지, 보노보, 웨스턴 고릴라와 같은 영장류에서 원충이 발견되었다. 곧 연구자들은 이 동물들을 보유숙주로 보고 말라리아의 기원을 찾으려고 했다. 특히 원숭이열 말라리아 원충인 ‘폴라스모늄 놀레시’의 경우는 분명한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마카크 원숭이가 주요 보유숙주로 인정되고 있다.
써놓고 나니, 원충의 생활사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된 반면, 보유숙주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번 장에서 저자는 여러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집단의 질병 역학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연구자들의 시도들을 더불어 소개한다. 그 내용을 소개하지는 않겠다. 다만 말라리아 연구자들이 어렵게 깨달은 교훈들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모기들이 어떻게 나올까요? 우리가 그토록 많은 서식지를 빼앗고 있으니 모기들은 숲이 줄어드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겠어요?” - 말라리아 연구자 제닛 콕스-싱의 말(202면)
“사람들이 나무를 자르고 화전을 일구며, 야자유를 얻기위한 거대한 농장이나 소규모 가족농장을 만드느라 보르네오의 숲속을 점점 자주 드나들면서, 동시에 마카크 원숭이를 죽이거나 쫓아 버렸기 때문에, 이 모기는 점점 자주 사람을 물게 되었다. 필요와 기회가 모두 증가한 것이다.”(202면)
전염병의 유행을 결정하는 인자로 ‘인구 밀도’가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물론 모기의 밀도와 그 밖에 관련된 요인들이 많지만, 13년 마다 거의 10억의 인구가 늘어나는 지구에서, 완전한 제거가 거의 불가능한 ‘인수공통감염병’은 새로운 질병(곧 강한 독성을 의미)이자 도전이 된다. 기존의 인구와 더불어 새로운 인구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빈번하고 강도 높은 생태계 교란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은 악성 말라리아(열대형 말라리아)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인간에게 이렇게 독성이 높게 작용하는 것은 기존의 원충이 다른 생물과 오래 공존해오던 세계에 비교적 새로 끼어든 신참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말라리아라는 전염병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저자가 혼잣말하듯 집어 넣은 문장 하나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다른 동물로부터 질병을 빌려왔다.”(205면)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도 인간은 끊임없이 전염병의 유행에 직면하게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