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이지유 외 9명 지음 | [바틀비]
요즘 들어 서평글을 읽는 일이 많아졌다. 우선 그 이유는 내게 익숙한 독후감과 서평과의 차이가 무엇일지 궁금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도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은 느낌 뿐만 아니라, 책에 언급된 사항에 대한 서평자의 생각이 궁금했다. 과학책에 대한 서평을 읽어보는 건 최근에 시도해보는 일이다. 과학도 결국 사람의 일이기에 과학지식이라는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곧바로 인간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 알게 된 과학책방 ‘갈다’(갈릴레이와 다윈에서 따온 말이기도 하고, 밭을 ‘갈다’와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에서 여러 과학자 및 과학 저술가들이 읽은 과학책 혹은 과학에세이에 대한 서평을 모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을 틈틈이 읽고 있다. 오늘은 여러 작가 중에서 과학 논픽션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지유 작가의 서평글을 읽었다. 호프 자런이라는 과학자가 쓴《랩걸》을 읽고 이지유 작가가 쓴 서평이었다. 오늘 내가 이 서평을 선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다른 저자들이 읽은 책들 보다 이 책의 제목을 더 많이 들어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2017년 국내에서 출판된 이 책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식물에 대한 과학적 발견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을 그려내는 스토리텔링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이력을 보니 지구물리학자로 보이는데, 하와이에서 화석삼림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분야에 대한 글쓰기와 여성 과학자라는 모델이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은 것 같다. 아울러 과학자로서 경험을 쌓은 이지유 작가의 이력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기에 더욱 이 책을 주목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지유 작가가 서평에서 관심을 둔 부분은 과학 지식이나 험난한 과학적 발견의 서사, 혹은 여성 과학자로서 어려움을 극복한 승리의 과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지유 작가가 서평에서 언급한 것은 ‘과학자를 과학자로 만들어준 요소’였다. 그 요소는 바로 ‘호기심’이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은 자기를 둘러싼 모든 대상, 모든 세계가 자신에게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도록 하는 감수성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가 당장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야 하고, 쓸모가 있어야 한다면 인류가 달에 갈 수 있었을까? 또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우주의 다양한 기본 입자들에 대한 정보도 여전히 가설로 존재했을 것이다. 쓸모를 갖춘 무언가를 얻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쓸모를 얻는 과정에도 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직 《랩걸》을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이지유 작가가 지적하고 있는 ‘과학자를 과학자로 만들어주는 호기심’에 관한 관점도 염두에 두고 읽게 될 것 같다.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호프 자런의 연구는 ‘돈 되는 연구가 아닌’ 연구라고 한다. 하지만 연구에는 돈이 필요하다. 모든 연구자들에게 공통되고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호기심과 연구비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목표사이에서 고민한다. 호프 자런과 같이 ‘호기심’을 쫓으려면 그만큼 어려운 여건과 비판적인 견해를 극복해야할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앎에 대한 욕구, 의지’ 일 것 같다.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오래되지 않았다. 요새 부쩍 주변 사람들의 자녀들에 대한 고민거리를 많이 듣는다. 학교 현장에 관한 이야기며, 학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듣기만 해도 나의 학창 시절과 또 다른 장면들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에 가서야 삐삐라는 것을 보았던 시절이다. 내가 요즘들어 부쩍 안타까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공부’에 대한 오해다. 내가 의도하는 공부는 ‘시험 공부’가 아니다. 자신을 위한 ‘진짜 공부’를 학창 시절에 맛보았으면 어땠을까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보다 전에 혹은 공부를 하며 스스로가 ‘앎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는 경험이 학창 시절에는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싶다’라거나, ‘평생 이것에 대해 천착해보고 싶다’라는 뜻을 세우고 의지를 두텁게하는 것 말이다. 혹은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명이 물론 학업이 더 필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자신의 뜻’을 발견하고 이를 단단하게 다지는 과정이 더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도 늦었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짜 공부’를 해보고 싶다. 오랜 시간 ‘호기심’이란 영역이 내게는 무관한 영역인 듯 느껴지는데, 이제는 사회 경험과 독서 경험이 다시 ‘호기심’을 되찾게 해주는 것 같다. 내가 겪은 일들, 사회현상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해보면 누군가는 반드시 고민한 발자취를 발견할 것이다. 아마도 거의 예외가 없을 것이다. 나는 다소 늦게 치열하게 살았던 다른 사람들의 발자취를 이제야 발견하고 따라가기 시작했을 뿐이다. 물론 늦게 시작한 것이 아쉽지만, 또 내가 보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지점에 호기심을 갖고 몸을 움직였을지는 의문이다. 이지유 작가가 《랩걸》에서 찾은 ‘호기심’의 요소는 내 인생 후반의 화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