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전에 읽었던 시인의 중에서 기억에 특히 남았던 부분은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체에 대한 부분이었다. 저자인 전영애(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 선생과의 따뜻한 만남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쿤체 시인이 방한하여 한국 학생들과의 교감을 나눈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쿤체 시인이 어느 한국 학생의 질문을 받고 대답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학생은 쿤체 시인이 지은  <자살>이라는 시를 언급하며 죽음 대한 시인의 생각을 물었다. <자살>이라는 짧은 시의 전문은 이렇다.

 


모든 문들 마지막

그렇지만 아직 번도

모든 문을 두드려본 없다.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시는, 자신을 자신을 자제하기 위한, 자신을 엄격히 지켜보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렇게 아마 다른 분들께도 격려가 있지 않을까요. 누구도 이미 모든 문을 두드려 보지는 않았거든요. 인생은 본질적으로 아주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정은 오로지 고달픔입니다. 그런데 길을 자꾸 가노라면 사는 것이 만하게, 값지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옵니다. 지점들 사이의 구간이 길면 길수록 힘들게 느껴지지만, 삶이 살만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그만큼 소중하고 값지게 다가옵니다.시인의 (199)

 


시인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경험을 지켜보면서 자살 대한 태도를 짧은, 어쩌면 하이쿠를 닮은 절제된 문장에 온전히 담았다. 젊은 나이에 자살한 사람들은 인생의 여정 앞에 닫혀 있는 문들 뒤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과 기대를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시인은 시를 읽는 이들에게 고달픈 여정에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문을 한번씩 두드려보길 제안하고 있다. 죽음을 이야기했던 시인이 이제 인생의 행복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더한다.

 


정말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백분의 초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특히 남녀가 함께 산다는 것은 백분의 초에 다가가고자 함께 노력하고, 백분의 초를 향해 살아가고, 백분의 초를 위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해당되지 않는 순간이 있기는 합니다. 몹시 나이가 들었거나 불치의 병이 들었을 말이지요. 외에는 그런 순간은 언제나 계속 있습니다. 순간을 위해서 일하고 살고 생각해야 것입니다.시인의 (199)

 


우리는 나이가 들거나 불치병에 걸렸을 비로소 우리 삶에 그동안 행복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지 깨닫게 되지 않을까?   행복한 순간은 카메라 셔터 속도 만큼이나 짧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짧은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사는 방법은 순간을 위해 일하고 살고 생각하는 이라고 이해해도 될지 모르겠다. 쿤체의 부인 엘리자베트 쿤체는 체코 출신의 의사였는데, 사람의 소설같은 만남과 아름다운 인연을 가꾸어온 이야기를 모처럼 읽었다. 책에서 쿤체 시인과 부인에 대해 부분을 읽노라면 이들 부부처럼 시를 사랑하고, 시인을 극진히 대하며, 인간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여주었던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정도다. 해를 마무리하며, 12월이 시작하는 삶에 대한 진실한 애정이 담긴 쿤체 시인의 말로 시작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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