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9] 설교 (The Serman)


 

[9장의 기본 줄거리]


고래잡이 예배당 들어온 매플 목사가 배의 선두 모양을 설교단위로 올라간 이후 예배가 시작되었다. 자리정리를 하고 기도를 목사는 요나의 이야기를 담은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시작한다.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요나가 구원받은 이야기 통해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기쁨을 얻을 것을 주문한다.

 




이번 9장의 배경은 고래잡이 예배당이며, 매플 목사는 구약 성서의 요나서 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찬송가를 부르며 설교를 시작한다. 설교의 소재는 역시 요나서 나온 이야기이다. 목사는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려던 요나의 구원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 통해 교훈을 주고자 한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은 요나에게 어서 도시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외쳐라 주문한다. 요나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하늘의 명에 복종하지 않고 오히려 도망치려 했다. ‘인간이 만든 타고 머나먼 카디스(오늘날의 스페인에 위치) 떠나고자 했던 것이다. 요나가 하느님을 피해 배를 타고 도망치려던 부두는 요파(Joppa)’라고 되어 있다. 매플 목사는 요파가 현대의 자파(Jaffa)’라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자파라고 하면 가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자파에 얽힌 이야기


자파(Jaffa) 현재의 지도상으로 지중해의 동쪽 해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도시로 북쪽의 대도시 하이파(Haifa) 남쪽 이집트 경계 근처의 가자(Gaza) 지구 사이의 중앙에 위치한 해변 도시다. 아래 지도를 보면 이스라엘의 지중해 해안에 자파(Jaffa) 확인할 있으며, 지중해의 서쪽 반대편에 스페인이 있음을 있다. 상당한 거리다. 요나는 이렇게 곳이라면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래 사진들은 내가 올해 출장업무로 잠시 들렀던 이스라엘의 자파 지역 해변가 모습이다. 해변의 남쪽은 자파의 지역(해안 절벽이 있는 부분) 위치하고, 해변의 북쪽은 여러 나라의 대사관들과 호텔이 모여 있는 현대적인 관광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방문한 시기는 2월이었으므로 북반구의 겨울이었지만, 이곳에는 커다란 야자나무가 있었고 이스라엘 사람은 이곳이 겨울에 풍요롭다고 했다. 들판은 푸르렀다. 대신 여름에는 메마르고 황량하다고 했다. 방문한 자파지역은 날씨가 맑았지만 비가 왔다가 해가 비치기를 반복했다. 이곳의 기후는 으레 그렇다고 한다. 변덕스러운 기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법하다







 

'야파' 혹은 '자파'라는 지명을 듣고 지명이 등장하는 문헌이 생각났다. 독일 작가 W.G. 제발트의 이민자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174-180) 보면 지명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화자 할아버지의 비망록에 나온 행적을 따라가는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터키를 지나 레바논 지역을 지나는 대목이었다. 기억으로는 서쪽 항구도시 자파 지역에서 동쪽의 예루살렘까지 차로 2시간 정도면 있었는데, 아델바르트는 말을 빌려 12시간을 달렸다고 나온다. 아마 제대로 길이 없고, 언덕과 계곡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랬을 법하다. 이들이 쓰레기로 즐비하며 똥을 밟으며 걸어갈 밖에 없다라고 묘사하는 예루살렘의 거리는 자파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낮은 언덕들이 많았다. 소설의 화자는 언덕 사이의 협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오늘날 협곡들은 대부분 천년의 역사가 남겨놓은 폐기물로 가득하다. 어디서나 오물들이 흘러 든다. 그래서 수많은 우물의 물은 이제 마실 없게 되어버렸다. 한때 실로암의 못으로 불렸던 샘물은 이제 썩은 웅덩이나 오물 구덩이에 지나지 않으며, 수렁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온다. 매년 여름 도시를 덮치는 전염병의 원인이 바로 독기일 것이다. 코즈모는 도시가 너무 역겹다고 거듭 말한다.” 


자파든 예루살렘이든 황량하고 불결한 여름에 특히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을 거역하고 예수를 죽이는데 일조했다고 비난받았던 유대인들에게 불결한 삶의 조건과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징벌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일까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의 원형이라는 영감을 제공했던 이탈리아의 문인이자 정치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의 평전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글항아리](815)에서도 자파 나폴레옹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폴레옹은 1798 이집트 원정을 떠나 인근 지방을 공략했는데, 바로 자파에서 페스트가 돌아 프랑스 병사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1799 3 11 전염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접 병원을 방문, 희생자들을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평전의 저자 루시 휴스핼릿은 나폴레옹이 실제로 희생자들을 만지거나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퇴각하여 희생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한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나폴레옹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이야기로 자주 회자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나폴레옹의 측근 혹은 숭배자들, 후대인들이 만들어낸 신화임을 우리는 알지만, 서구인들에게는 유명한 이야기이고, 여러 문헌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다. 동양의 고사성어에 배경이 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후대의 단눈치오가 사례를 지도자가 자신을 광고하는데 기가막히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홍보의 달인단눈치오가 이야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궁금해진다.  평전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에서 부분을 인용해본다.

 

(단눈치오) 페스트가 피우메에 창궐했을 태연히 병원을 방문함으로써 일찍이 자파에서 나폴레옹이 그랬듯이 질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서 명성을 날린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814)

 


이탈리아 정부와 대항하여 북부의 피우메 지역에서 자신만의 도시를 세우고 일종의 괴뢰정부의 우두머리가 되었던 단눈치오. 이탈리아 역사상, 아니 세계사적으로도 특이하고 독특한 인물의 행보에도 나폴레옹 얽힌 이야기를 자신에게 활용하는 천재성을 지녔다. 그리고 배경에 바로 자파 관련한 이야기가 있었다



 

자파라는 지역에서 있었던 나폴레옹과 페스트의 이야기는 롤랑 바르트의 저서에도 등장한다.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에 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기록인 밝은방에서 스쳐가듯 나폴레옹의 자파 이야기 언급한다.

 

예컨대 보나파르트가 방금 자파의 페스트 환자들을 만졌다. 그가 손을 떼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진은 순간적인 작용을 이용하여 빠른 장면을 결정적인 순간 속에 부동화한다.”(49)

 


밝은방현장에서 포착하기 제목의 14장에서 바르트는 사진을 감상자에게 상처를 주는 요소인 푼크툼과는 다른 충격 주는 요소를 이야기한다. 사진이 전해주는 놀라움 충격이라는 범주를 다섯가지로 정리했다. 중에서 시야의 일부에만 초점을 있는 인간의 주시성과 다른 사진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자파와 나폴레옹의 이야기 언급한 것이다. 사진을 보면 사진가가 주목한 대상, 예컨대 나폴레옹이 페스트 환자를 만지고 손을 떼는 장면 외에 인화를 시야의 구석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회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알려진 이라고 바르트는 이야기하지만 회화와 사진의 기본적인 차이는 시간성의 전개가 개입되어 있는지의 여부가 것이다. 화가는 바르트가 누멘(영력)이라고 표현한 능력으로 순간의 동작을 표현하지만, 과정에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어 있다. 반면 사진에는 순간에 모든 것이 고착화되어 인화물에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개입되지 않는다. 다만 회화나 사진에서는 사람의 눈이 주시할 있는 영역을 벗어난 부분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이질감과 같은 놀라움의 충격 주는 것인데, 바르트는 사진의 이러한 특성을 고찰하면서 자파와 나폴레옹의 유명한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이다.

 



자파와 관련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다시 매플 목사의 설교로 돌아가본다. 자파 부두에서 배를 타고 하느님으로부터 벗어나려던 요나는 우여곡절 끝에 뱃삯을 내고 타르시시로 달아나려 했다. 타르시시는 오늘날 카디스라고 부르는 지브롤터 해협, 그러니까 요나는 지중해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인 스페인 남쪽으로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다(지도 참조). 아무런 짐도 없던 요나로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선원들은 요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멜빌은 매플 목사의 설교를 빌어 당시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황금만능주의라는 세상의 원리를 비판하고 있다. 매플 목사는 선장은 상대가 무일푼일 때만 사람의 범죄를 폭로하는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하며, ‘ 세상에는 죄인도 돈만 내면 여권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있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마침내 요나는 통상 운임의 배를 요구하는 선장에게 운임을 치르고 승선한다. 참고로 구약 성경의 요나서에는 이렇게 자세한 사항은 나오지 않는다. 설교자의 상상이 가미된 이야기로 보면 되겠다.


 

소설 속에 묘사된 요나는 비싼 운임을 냈지만, 선장은 문이 잠기지 않는 데다 홀수선보다 밑에 있는 구멍같은 좁은 방을 요나에게 배정한다. 홀수선은 배의 수위를 알아보는 표시로, 여기서 요나가 배정받은 홀수선 아래의 방은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방이라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창문도 없이 외부의 풍경도 없는 방이기도 하다. 이윽고 출항한 배는 무서운 폭풍우를 만나 요동치고, 깊은 잠에 빠졌던 요나를 선장이 깨운다. 배의 선원들은 이들이 처한 모든 위기가 도망자 혹은 죄인이라는 의혹이 있는 요나 때문임을 의심한다. 요나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과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은 사실을 고백한다. 선원들은 요나를 동정하면서도  폭풍우가 가져온 난국이 요나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결국 요나는 선원들에 의해 바다에 내던져지게 된다. 매플 목사의 해석에 따르면 고래의 모습으로 변한 하느님이 요나를 삼키고 바다 한가운데 데려가는 것이다. 고래 뱃속에서 회개한 요나는 지옥의 있다가 고래가 다시 공기와 땅이 있는 곳으로 올라와 요나를 밷어버린다. 홀수선 아래(심연의 세계) 있던 요나는  폭풍우 속에서 바다로 내던져지고, 이어서 고래 속에 삼켜진 요나는 다시 바라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바다라는 심연 공간, 회개의 공간, 지옥의 공간에서 세속의 세계, 빛이 있는 육지, 구원의 공간으로 나오는 구조에 주목해볼 있다


 

이제 매플 목사의 설교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게 화가 있을 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동시에 오직 주님을 받드는 이에게 최고의 기쁨 함께 한다고 말하며 신에게 귀의하라는 교훈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이제 조만간 각자 목숨을 기나긴 고래잡이 생활을 시작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매플 목사가 신에게 모든 것을 믿고 신에게 귀의하라는 설교는 유일하게 기댈 있는 안식처가 것이다. 이들은 목사의 설교를 의심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의 구원과 기쁨을 통해 오히려 이들의 운명을 책임지는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가지 , 지난 8장에서 나는 매플 목사의 설교단 뒤에 걸려있던 폭풍우 그림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 그림과 많이 닮았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폭풍우 그림은 이번 (9)에서 목사가 이야기하는 설교 (성경의 요나서’) 격랑의 바다에 던져진 요나의 이야기와 연결이 되고 있으며, 다시 병들거나 죽은 흑인 노예들이 바다로 던져지는 장면이 담긴 터너의 그림을 연상케한다. 물론 이러한 모티프는 작품으로서 모비딕 결말과도 연결되며 일종의 복선으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짐작해볼 있겠다.

 


 



 

참고서적


[1] 모비딕 허먼 멜빌 지음/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2]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루시 휴스핼릿 지음/장문석 옮김 [글항아리]

[3]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 [대한성서공회]  요나서

[4] 이민자들 W.G. 제발트 지음/이재영 옮김 [창비]

[5] 밝은방 롤랑 바르트 지음/김웅권 옮김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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