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2명이 모여서 <뉴욕 타임즈>에서 오랫동안 서평가로 활동해온 일본계 미국인 미치코 가쿠타니의 신간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 대한 간단한 합평회를 가지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8월 오프 모임을 시도했을 때는 무산되었지만,
이번에는 한 분이 참여하여 모임이 성사되었습니다.^^

조촐하지만 2명이서 간단히 책에 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각자 써온 서평/리뷰글을 다시 읽어보고 글쓰기를 할 때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미치코 가쿠타니는 막연하게 '진실(truth)'이라고 하는 개념과 '사실(fact)'이라고 하는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두 개념을 혼용하여 모호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는 책에 인용된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이의 
말에서 그가 말하는 '의견'이 가쿠타니가 말하는 '진실'에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15면)

물론 가쿠타니가 이 두 개념을 혼동할리 만무하지만, 가쿠타니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했던 (반면 정희진 선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언급한) '진실'이 저자에게는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다소 모호하거나 오해의 여지를 만들어 두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또 책의 내용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동일한 텍스트에 대해 
서로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도 발견했는데요, 아마도 제가 언급된 인물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급하게 읽어서 오독을 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좀더 비판적이고 면밀한 독서를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구요.

정희진 선생은 해제에서 가쿠타니가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아'와 주관성이 대두되어 해석의 다원성, 다원주의를 가져온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 비해, 저자 가쿠타니는 확고부동하고 보편적인 진실, 파편화된 이야기가 아닌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그리고 동시에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된  '거대 서사', '거대 담론'이 존재한다고 보는 태도를 '모더니즘의 관점'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경우 '가짜/진짜'프레임에 빠진다는 것은 모두에게 보편적인 준거가 있다는 믿음으로 이 기준에 비추어 '진위'를 판단하게 되는 함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정희진 선생이 책의 후반에 실은 해제에서 언급된 '진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도출된 결론이라는 것이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합평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은 정희진 선생의 해제 일부분이 일간신문 칼럼에 '디지털 치매'란 키워드로 기고되었던 글 일부 단락에 사용된 것이 보입니다.

[참고]  
경향신문 정희진 칼럼 - '생각을 빼앗긴 세계'의 디지털 치매

물론 본인의 글이므로 문제가 될 것은 없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해제를 읽을 때 다소 뜽금없는 '디지털 치매'나 '가짜 기부왕 행세하는 이'나 '어느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부분이 왜 나왔을까, 글의 전개상 다소 어색하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위에 게제된 칼럼에서 몇 단락을 그대로 가져와 본 저서의 해제에 활용했었네요. 영향력있는 여성학 연구자로서 해제를 쓸 때, 좀 더 진지한 자세와 태도로 완성도 있는 글을 보여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과 실망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합평회회 준비를 하고 책에 관한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나누다보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 오독이 있던 부분, 글쓰기에 대한 것들을 좀 더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읽고나서 책에 언급된 도서들 중에서 제게는 중요해보이고 읽어볼만하다고 생각되는 2차 도서 목록을 정리해봤습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1] <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 지음
[2] <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회고록
[3] <1984> 조지 오웰
[4] <미국의 민주주의> 또는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알렉시스 토크빌
[5] <이미지와 환상> 다니엘 부어스틴
[6] <픽션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7]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8] <중력의 무지개> 토머스 핀천
[9] <나는 증언할 것이다> 빅터 클렘퍼러의 일기
[10] <죽도록 즐기기> 닐 포스트먼
[11]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12] <라쇼몽> 또는 <나생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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