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7장]
예배당(The Chapel)
[7장의 기본 줄거리]
뉴베드퍼드의 일요일 아침,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을 다녀온 이슈메일은 낸터킷으로 떠나기 전날 마지막 일요일인 당일에 예배당에 들른다. 예배당에 앉아 옆 쪽에 미리 와 있던 퀴퀘그를 발견하고, 예배가 시작하기 전의 분위기와 예배당을 둘러보며 죽음과 실체에 대한 생각을 하는 등, 이것 저것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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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터킷으로 가는 배를 타기 전날, 이슈메일은 일요일 아침에 아침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갔다 여인숙에 돌아온다. 이슈메일은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고래잡이 예배당’에 들른다. 진눈깨비가 섞인 강한 바람을 뚫고 들어간 예배당에서 이슈메일은 곧바로 ‘죽음’의 분위기를 감지한다. 예배당에 온 사람들의 표정에서 말못할 이들의 슬픔의 징후를 읽어내며, 예배당 내부에 있는 대리석 추모비를 살펴보며 유족들의 슬픔을 상상해본다. 예배당 내에 있는 추모비에 적힌 이름들의 주인공은 모두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리석의 주인들은 모두 실종상태 였던 것. 이들의 시신이나 뼈도 추스리지 못한 유족들이 예배당에나마 추모비를 세웠다.
“검은 테를 두른 저 대리석 밑에는 한 줌의 재도 들어 있지 않으니, 그 공허는 얼마나 쓰린가!”(70면)
이슈메일은 예배당에 온 사람들의 표정과 추모비를 통해 이들의 심경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이슈메일은 인간의 행동에서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면들, 부조리해 보이는 면들, 무언가 어긋나 있는 행동의 양식들, 인간들의 아이러니를 지적하며 ‘이 모든 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슈메일이 열거한 것들 중 몇 가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보험회사는 무엇 때문에 불멸의 인간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인가. 6천년 전에 죽은 그 옛날의 아담은 아직도 꼼짝하지 못하고 영원히 마비된 채 얼마나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혼수상태 속에 누워 있는가. (…) 이 모든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나는 첫 문장 ‘생명보험회사는 무엇 때문에 불멸의 인간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통해, 생명보험과 노예선에 대해 언급한 서경식 교수의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을 떠올렸다. 이 책에는 영국의 화가 *터너 (J.M.W. Turner, 1775-1851)의 유명한 그림 <비, 증기, 속도>외에
<노예선-다가오는 태풍>이 나오며(터너는 노예폐지론자 였다고 한다) 이어서, 1781년 발생한 ‘종(Zong)호 학살사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당시의 영국에는 노예무역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나,밀무역은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1781년 영국 노예선 종(Zong)호에 아프리카 노예들을 싣고 가는 도중에 종호의 선원들이 살아있는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132명을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배 소유주가 밝힌 이 학살의 주된 이유는 ‘식수부족’이었다고 했다. 식수가 부족한데 왜 노동력이 될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넣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노예가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주는 노예 전체를 부족한 물 때문에 죽게하는 것보다 건강이 나쁜 노예들을 바다에 ‘처분’하고, ‘손실’에 대한 보험금지급을 위해 재판을 청구했던 것이다. 여러 번의 재판을 거쳐 나온 판결은 ‘노예는 가축과 마찬가지로 소유물이므로, 보험회사는 보상금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1780년 후반을 기해 노예폐지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고 하는데, 멜빌 역시 노예폐지를 지지하는 입장을 《모비 딕》에서도 여러 군데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작중의 이슈메일이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처럼 인간의 아이러니와 모순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이 노예와 보험의 역사는 노예가 일종의 ‘생산자본’의 일종으로서 노예의 비인간화 과정을 통해, 수량화될 수 있는 ‘교환 가치’로서 사용된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멜빌이 이 ‘종호 학살사건’을 염두에 두고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슈메일의 지적하듯 이 한 문장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터너: 그러고보니 터너가 사망한 해(1851)는 허먼 멜빌이 《모비 딕》을 출간한 해이기도 하다.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그러나…】
이어서 예배당에 앉아 생각에 잠긴 이슈메일은 ‘죽음/삶’ 과 ‘실체’에 관해 생각을 더해 나간다.
“그래, 고래잡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아차! 하는 순간에 인간을 영원의 세계로 처넣고 마니까.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우리는 이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잘못 생각해온 것 같아. 여기 지구상에서 소위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정한 실체 인지도 몰라.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면서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로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 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분인지도 몰라.”
우울한 분위기의 예배당에서 자신도 고래잡이배를 타러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모험임을 다시금 상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다시 쾌활함을 되찾고, 이를 배를 타라는 ‘운명의 권유’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슈메일은 이렇게 고래잡이배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배당의 침울한 분위기에도 아랑곳 없이 배를 반드시 타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시 다지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굴조개의 비유’는 멜빌이 선원으로서의 경험에 기반한 인간의 어리석은 ‘미망(迷妄)’에 대한 탁월한 비유라고 이해된다. 내 존재의 찌꺼기(흔적)인 내 신체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의 정신보다 하위에 위치한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운명은 아무도 모르는 존재이기에 이슈메일은 ‘(고래잡이가 죽음의 위험이 있다 한들) 아무렴 어떤가?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라는 태도를 갖게 된다.
【여기서 ‘원문(영어)’과 관련하여 몇 가지 발견한 사항들】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원문을 보면 흥미로운 표현이 나온다.
‘여기 지구상에서 소위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정한 실체 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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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hinks that what they call my shadow
here on earth is my true substance.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그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바라보면서 흐린 물을 가장 맑은 공기로 생각하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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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hinks that
in looking at things spiritual, we are too much like oysters observing the sun
through the water, and thinking that thick water the thinnest of air.
‘내 몸뚱이는 더 나은 내 존재의 찌꺼기일 분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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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hinks my body is but the lees of my
better being.
멜빌이 《모비 딕》을
집필하던
시기는
1850년 여름부터이다. 당시에 사용되던 영어 중에서 Methinks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단어는 물론 ‘me + think’('나는 ~라 생각한다/내 생각에는~'과 같은 정도가 될 것 같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이 단어가 멜빌이 《모비 딕》을
집필하기
전에
탐독했던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아
의도적으로
구성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실제로 멜빌이 셰익스피어를 알게된 것은 그에게 정말 큰 변화를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멜빌은 이 단어와 용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나는 이 문장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일종의 숨은 오마주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좀더 신빙성과 이해를 더하자면, 작가정신에서 나온 《모비 딕》의 김석희 번역가가 쓴 ‘옮긴이의 말’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작품을 집필할 무렵 멜빌의 독서량은 놀랄 만큼 늘어났고, 앞에서 말한 고전 작가들 이외에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와의 결정적인 만남이 있었다. 이 만남이 없었다면 《모비 딕》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비교할 만한 동시대 작가라고 멜빌 자신이 평가한 내서니얼 호손과의 만남이 있다.”
추가로 이에 대한 근거는 이 단어에 대해 찾아보다가 발견한 두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보완된다.
하나는 1591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III.i)에 다음의 문장이 보이기 때문이다.
“methinks the truth should live from age to
age,”
다른 하나는 1599년 역시,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3막 2장)에도 다음의 표현이 나온다고 한다.
“The lady doth protest too much, methinks.”
다시 정리하면, 완전한 문장의 앞에 흔히 쓰이거나, 종종 완전한 문장의 마지막에 덧붙이는 형태로 셰익스피어가 쓴 기록이 보인다. 옮긴이의 지적대로 멜빌은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탐독했을 것이고, 17-18세기 당시의 문어체를 사용하였기에, 영어 전공을 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사실 읽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부 문장을 접해보고 받은 인상은 멜빌이 《모비 딕》에서 써나갔던 문장들이 상당히 리듬감이 있고, 시를
읽는 듯한 느낌 혹은 래퍼가 가사를 읊는 느낌마저 들 때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지엽적인 번역문제이긴 하나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다가 노트하게 되었다.
두 번째 영문에서 ‘thick
water’와
‘thinnest of air’에 대한 우리말 표현에 대한 생각이다. 물론 나는 번역의 오역이나 틀린 점을 수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판단하기에 다른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를 고민해보았다.
우선 ‘굴조개의 비유’ 표현에서, 작가정신 버전의 김석희 번역가는 ‘thick
water’를
‘흐린 물’로, ‘thinnest of air’를 ‘맑은 공기’로 표현한 반면, 문학동네 버전의 황유원 번역가는 ‘thick
water’를
‘뿌연 물’로, ‘thinnest of air’를 ‘맑은 대기’로 표현했다.
일단 이 표현들이 서로 대응하는 구조임을 생각해볼 때, 나라면 ‘water와 air’를 각각 ‘물과 공기’(자연의 기본 요소로서의 대상) 내지는 ‘바다와 대기’(지구 구조의 한 부분으로서의 존재)가 한 쌍이 되도록 맞추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thin
air라는
표현을
생각할
때,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대기가 ‘희박해지는’ 상황을 떠올려보면, ‘밀도’라는 구심점으로 이 상반되는 표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thick water’를 ‘짙은 바다’로, ‘thinnest
of air’를
‘희박한 대기’로 말이다. 이렇게 표현해 놓고 보니, 사실 번역가들의 표현이 더 무난해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분명히 번역가들은 이런 표현 하나에도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간단한 표현 하나를 붙잡고 생각만 해보아도, 앞으론 내가 직접 검토해보기 전에는 번역가들의 작업에 무턱대로 번역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특히나 현대 영어가 아닌 표현들이 많이 보이는 《모비 딕》과 같은 작품들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참고문헌】
[1] 《모비 딕》 - 허먼 멜빌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2] 《일러스트 모비 딕》 -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3] 《나의 영국 인문 기행》 - 서경식 지음 | 최재혁 옮김 | [반비]
[4] 《Moby-Dick or, The Whale》 – Herman
melville지음
| [Penguin Classics]
[5] ‘Methinks’에 대한 출처: https://en.m.wiktionary.org/wiki/methinks#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