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19년 8월 1일),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이 태어난 지 200주년 되는 날이네요. 다소 늦은 시기에 책을 읽기 시작하여, <모비 딕>을 만난 게 작년이었는데요, 읽으면서 <모비 딕>이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 읽으면서 뭔가 천천히 읽되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135장 전체를 읽으며 각 장마다 독후 기록을 남겨보자하고 제 나름대로 이름붙인 '모비딕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비딕 마라톤'이 끝나게되면 최소한 135편의 독후 기록이 남게 되는 셈이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쓸모없어 보이기에 오히려 흥미가 생깁니다. 오늘은 멜빌의 200주년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동안 중단하고 있었던 <모비 딕>을 천천히 읽고 쓰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개인적인 일들로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고 할까요. 이제는 다시 시간을 내보려고 합니다. '모비딕 마라톤'은 제 개인적인 독서 경험에 대한 반응의 기록입니다. 한 줄을 읽다가 딴 생각이 나면 딴 생각을 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소설 속에서 사소해보이는 것들이 제게 말을 걸어오면 그 대상에 한눈팔던 기록을 남기는 겁니다. '모비딕 마라톤'은 이런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책 한권이라는 '심연'을 두고 허우적대고, 삼천포로 빠졌다가 다시 길을 찾아오는 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독서 경험의 기록이 되겟죠. <모비 딕> 전체가 135장으로 되어 있고, 매주 한 장에 대한 독후 기록을 작성한다고 해도 2년이 넘게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 될 겁니다. 제게는 <모비 딕>이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 대한 각자 나름의 취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입니다.
《모비 딕 Moby-Dick or, The Whale》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오늘은 미국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전역에서 계획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2019년 8월 1일이 《모비 딕》의 저자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한글본 《모비 딕》에 보면, 작가의 연보가 나옵니다. 뉴욕의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멜빌은 어머니의 가문 또한 네덜란드의 귀족 가문 출신에 칼뱅주의자의 배경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영국군에 대항하여 미국의 독립을 지지하고 전쟁에 참여한 인물들이며, 뉴욕 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통해 배와 바다에 익숙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차분하게 《모비 딕》을 읽을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들었는데요, 다시 멜빌의 탄생 200주년을 기점으로 《모비 딕》의 세계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모비 딕 마라톤’, 곧 135장 전체를 다시 천천히 읽으며 각 장에 대한 인상과 저의 반응 그리고 다른 맥락으로의 연결짓기를 다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3장]까지 읽다가 집중을 하지 못했는데요, 오늘은 멜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잠깐 [1장]에서 생각을 덧붙이려 했던 부분을 추가하며 다시 ‘모비딕 마라톤’을 시작해봅니다. |
【‘모비 딕 마라톤’ - 다시 [1장]에 더하여】
1장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계속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35면)”고 한 대목이다. 여기에서 멜빌이 주목했을 ‘계급의식’, ‘계급문제’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앞서 2장을 읽고 옮긴이의 주석을 참조했지만, 멜빌은 유복한 개신교 집안의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재기를 못하게 되어 집안이 몰락한 후, 생계문제를 해결하고 집안을 돕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여 일을 시작하게 된다. 멜빌은 화물선의 급사가 되어 선원 생활을 시작하기도 하고 21세 때 포경기지 뉴베드포드에서 포경선의 일반 선원으로 고용된 기록이 보인다. 분명 31살의 나이에 《모비 딕》을 집필했을 때 이미 글쓰기에 없어서는 안될 주요한 경험을 한 상태였던 것이다. 특히 2장에서 멜빌이 일개 선원으로 바다로 나가는 젊은이들이 뉴베드포드를 왜 선호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사실상 개인적인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다시 1장에서 멜빌이 언급했던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사람이 있는가?’라는 명제로 돌아가본다. 멜빌은 1장에서 뜬금없이 ‘노예’와 관련하여 당시에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한 표현을 소설의 초입부터 밀어넣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부분은 분명 나의 소심한 호기심과는 달리 저자의 머리와 의식 속에서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를 지속적으로 붙들고 불편하게 하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모비 딕》을 집필하던 시기의 미국 사회는 어떠했을까. 이 점을 상상해보면 멜빌이 뜬금없이 ‘노예’문제를 거대한 소설의 1장부터 언급했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멜빌이 《모비 딕》을 집필하던 1850년 여름을 전후한 미국 사회는 지금 못지 않게 역시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모비 딕》집필 당시 미국 사회를 생각해보며 】
당시 미국사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미 겪으며 몸살을 앓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옮긴이의 추가적인 설명에 따르면 1837년에 미국 최초의 금융공황이 발생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서 이렇게 설명했는지는 모르지만 미국내 금융공황의 발생 시점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는 연구자도 있다. 버지니아 유뱅크스의 《자동화된 불평등》에서는 ‘토지로 인한 과도한 금융 대출을 규제하면서 발생한 금융공황’이 1819년, 그러니까 멜빌이 태어난 해에 이미 미국 내에서, 그것도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문제점’이라고 강조했던 자본주의의 폐해를 겪고 있었고 어쩌면 상인의 집안이었던 멜빌 가문 역시 이러한 자본주의가 영향력을 장악하던 시대에 보다 민감하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프랑스에서 제품을 수입하던 멜빌의 아버지 였으니, 멜빌 집안의 부침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1789년 프랑스 혁명(부르주아 혁명)이후,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이 부르주아 계급에서 귀족, 그리고 다시 황제의 권위로 넘어가는 등 다양한 정치 세력과 사상이 끊어오를 준비를 하던 때 아닌가. 유럽 사회(특히 프랑스)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던 1848년 당시 미국에서는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여 현재의 대륙처럼 양쪽에 바다를 둔 영토를 확보한 시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국을 들끊게 만들었다. 이른바 ‘골드러시’의 서막을 알리기 시작한 때에 멜빌은《모비 딕》의 집필을 구상했던 것이다. 이 헛된 희망과 사회의 암울함이 뒤섞인 미국사회를 바라보며 멜빌의 관점에 이렇든 어느 정도의 냉소와 비판의식 또한 포함되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작가라면 사회의 모습을 보다 면밀하고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을 터이다.
《모비 딕》을 출간(1851년)하고 10년 후, 미국 사회는 거대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미국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남북전쟁은 1861년 발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쟁의 중심에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 특히 ‘노예제도’와 관련한 사항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좀더 범위를 좁혀 검토해보자면, 1850년 ‘도망노예법’이 미국 내에서 통과가 되었던 사건에 주목해보게 된다. 이 법은 미국 내에서 탈주 노예가 발각되면 상부에 넘기는 일을 강제하는 법률이었다. 당시 남부의 면화 농장 등에서 도망친 노예들은 결국 북쪽으로 대거 이동해와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월경을 하곤 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남부의 멕시코-미국 국경에 높은 담을 만들어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합법적인 절차를 통하지 않은 경우 통제를 하고 있는 것처럼, 19세기 중엽에는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미국을 떠나려고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갔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회 속에서 멜빌은《모비 딕》을 집필하던 시기(1850년 여름)에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과 노예주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노예’의 존재 자체 뿐 아니라 ‘노예’의 주요 수요지였던 남부의 면화 농업은 결국 자본주의 번성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상기해볼 수 있다. 특히나 면화 산업은 지극히 미국적인 자본주의의 주요 특징으로 삼을 수 있다. 물론 당시 미국 사회는 흑인들에게만 힘겨웠던 것이 아니라 공황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이미 일반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둘만 하다. 멜빌이 처음 대서양을 오가는 상선의 선원으로 배를 타게된 1841년처럼, 1장에서 이슈메일이 교사직을 그만두고(멜빌도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고래잡이 배를 타기로 결정하는 장면은 당시 경제가 어려웠던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가려는 젊은이들의 보편적인 출구이자 로망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배에서 고된 일을 정직하게 하고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는 청교도적인 윤리의식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다른 문인이 평가하는 멜빌과 《모비 딕》에 관한 짧은 만남 】
한 가지 주목해보는 것은 멜빌이 1장에서 이슈메일의 입을 통해 자신이 바다로 가서 고래잡이 배를 타려고 하는지를 다소 신비적인 운명 혹은 신의 섭리 같은 소재를 처음부터 이끌어가는 부분이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청교도적인 배경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점도 이해는 되지만, 흥미로운 것은 《채털리부인의 연인》의 작가 D. H. 로렌스에게도 멜빌이 신비스러움에 의지하는 서두를 상당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미국 고전문학 연구》는 ‘위대한 책’ 《모비 딕》의 문체가 거슬린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설픈 설교를 늘어놓는 멜빌을 가리켜 ‘자신감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게다가 이 설교가 참 아마추어적이라고 한 방을 더 날리고 있다. 로렌스에 의하면 ‘인간 멜빌’은 지긋지긋한 뉴잉글랜드 도덕주의자-신비주의자-초월주의자 부류에 속한다고 평한다. 에머슨, 롱펠로, 호손 등의 그 부류 말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로렌스는 ‘예술가 멜빌’의 위대성을 인정하고 있다. 로렌스가 남긴 에세이의 마지막에서는 결국 《모비 딕》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경이로운 책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참고도서 및 자료]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자동화된 불평등》, 버지니아 유뱅크스 지음, 김영선 옮김 [북트리거]
《미국 고전문학 연구》, D. H. 로렌스 지음, 김정아 옮김, [아카넷]
《사악한 책, 모비딕》, 너새니얼 필브릭 지음, 홍한별 옮김 [저녁의책]
《생명을 짜 넣는 노동》, 고병권 지음 [북바이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