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과 문학 (Luftkrieg und Literatur)

W. G. 제발트 (W. G. Sebald) 지음 |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독후기록-메모]

 공중전과 문학 (Luftkrieg und Literatur) 》을 읽고 메모한 사항들

 


이 책에는 크게 두 편의 글이 실려 있다. 하나는 <공중전과 문학>, 다른 하나는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라는 제목의 글이다. 옮긴이의 소개에 따르면 <공중전과 문학>1997년 취리히 대학의 초청으로 네 번에 걸쳐 작가로서 강연한 내용을 후기와 함께 묶은 것이며,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1993년 세계문학 계간지에 발표한 논문을 수록한 것이라고 한다. 우선 배경정보를 비롯하여 익숙하지 않은 이 강연원고와 처음 들어보는 독일 문학 원로 안더쉬에 대한 강도높은 비판을 담은 읽을 때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40년대에 연합군에 의해 독일의 주요 도시에 대대적인 폭격이 이루어진 전모에 대해 사실 처음으로, 그 실상에 대해 피부로 느꼈다. 일본의 히로시마아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보다 대략 6배 이상되는 사망자를 낸 이 대대적인 폭격으로 전후 독일 시민들의 집단 기억 속에 어떤 모습으로 이 사건이 방치되었는지를 조금 생각해본 기회가 되었다


나는 표면상 독일인들이 그대로 일본인들과는 달리 세계2차 대전 중에 유대인들에게 가한 홀로코스트의 만행에 깊이 반성하고 전후 이를 기억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해온 것으로 이해했으나, 아웃사이더 독일 작가 제발트의 비판과 지적을 통해 전후 독일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 어떤 불편함이 있었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죄책감을 느끼지만 이를 드러내어 반성하고 후손에게 이야기해주지 않는 독일인들의 행태에 제발트는 염증을 느꼈던 모양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기회마져도 전무하다시피 했다는데 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 <공중전과 문학>에서 제발트는 독일 정신분석학자 미처리히 부부의 표현대로 전후 독일 사회가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력에 빠져 있었음을 환기시키고, 독일 사회, 지식인들의 행태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옮긴이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제발트는 고통의 시대, 절망의 시대에 문학의 본령은 역사적 현실을 기록하고 탐구하고 애도하는 있다고 본다.(209) 정리해준 표현에 제발트의 행방을 가늠해 있겠다. 번째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는 독일 문단의 원로 안더쉬를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그의 작품과 함께 소개되는 안더쉬의 경력에는 공산당 청년연맹에서 활동하다가 나치 정권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된이력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력만 본다면 안더쉬는 나치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지성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발트의 눈에 비친 인간 안더쉬는 시대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유리한 상을 만들어낸 타협주의자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유대인 안겔리카 알베르트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꾸렸지만, 19422월부터 부인 안게리카와 두 딸과 별거한 후 곧바로 이혼을 강요하여 194336일 이혼 절차를 마무리 한 사건 정황을 들여다보면 안더쉬의 면모를 좀더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안더쉬는 이혼 절차가 마무리 되기 직전인 1943216나치스 제국문예부에 입회하기 위해 신청서를 내며 가족관계 항에 이미 이혼이라고 기재했던 것이다. 제발트에 의하면 입회 구비 서류에는 반드시 배우자 출신증명서가 첨부되어야 했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안더쉬의 개인적인 재능을 별도로 하고, 안더쉬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나치정권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된 이력만으로 한 인물을 판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40년대 초에 나치 정권의 권력이 정점에 있을 때, 안더쉬가 내친 유대인 부인 알겔리카와 두 딸의 운명은 제발트의 표현대로 어떤 위험이 닥쳤을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일테다(160). 이미 19426월에 안더쉬의 장모는 뮌헨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체코의 테레진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돌아올 수 없는 길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안더쉬의 동생 마르틴 안더쉬도 형에 대해 자신의 개인적 발전을 더 중요시했다(161)는 표현을 사용한 정황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안더쉬라는 인물이 좀 더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제발트는 안더쉬에 대한 비판을 마무리하며 한 방 더 먹이고야 만다.

 

안더쉬는 기본적으로 항상 후방에 있는 남자였다. 그러니 1970년대 초에 그가 스위스인이 된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193)

문학작품은 내면생활을 감싼 외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저급한 안감은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법이다.(194)  

 

안더쉬가 전후 자신의 소설에서 유대인들을 내세워서 이들의 문제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는지 모르겠지만, 제발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자신의 온 몸과 마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지 않은 작품에서 독자의 진심어린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 어쩌면 안더쉬의 작품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점은 아직 안더쉬의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으므로 내게 주어진 숙제로 기억해 두어야겠다.  

 

끝으로 책의 뒤에 수록된 관련 인물 정보란을 읽다가 놀라운 부분을 발견했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마가레테 미처리히, 알렉산더 하르보르트 미처리히에 대한 인물 정보가 담긴 부분에서 이런 표현이 보인다.

1946 연합군으로부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관찰하되 전범 의사들의 집단 책임을 무마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임무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그는 전범 의사들의 책임을 숨기지 않고 기술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보고서는 <인간 멸시의 독재>(1947)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잊혔다.”(225)

 

부분이 내게 암시하는 내용은 연합군 혹은 미군이 일본의 전범 의사들에게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나치에 복무한 독일인 의사들이 집단수용소에서 수행한 숱한 인체실험의 결과를 연합국에 전해주는 대신 이러한 요구를 미처리히 부부에게도 했을 같다. 마찬가지로 미군은 일본 731부대에서 행한 잔혹한 인체실험 결과들을 입수하면서 동일한 요구를 하는 움직임은 없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게 것은 미국의 물리학자 맥어웬이 SF소설 <소용돌이에 다가가지 말 것 Spiral> 그러한 정황이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떠올렸던 내용이었다


공중전과 문학 (Luftkrieg und Literatur)은 우리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다시 환기해주고 있다. 역사는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 수 있으며,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이 없다면 역사는 허탈하지만 계속 반복될 뿐이라는 점이다. 과거에서 배운 교훈을 통해 더 낫게 현재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집단의 교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러운 과거를 다시 조명하고, 해석하고 비판하고 그 함의를 나누고 기록되어 끊임없이 이야기되어야만 한다는 명제를 새롭게 확인해보게 된 계기였다.  




오늘날 이차대전 막바지 몇 해 동안 독일 도시들이 겪은 초토화 규모를 그 절반만이라도 제대로 떠올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그 초토화의 참상이 어떠했는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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