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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민자들》
(원제: Die Ausgewanderten)
W.G. 제발트(W.G. Sebald) 지음 | 이재영 옮김 | [창비]
“역사는 실증적인 방법에 따라 만들어진 기억이고, 신화적 시간을 폐기하는 지적인 순수 담론이다. 그리고 사진은 확실하지만 덧없는 증언이다.”
프랑스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했던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 《밝은 방》에서 만난 적이 있는 구절이다. 독일의 소설가 W. G. 제발트가 쓴 《이민자들》을 읽은 후 남게된 여운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트가 생전에 남겼다는 4권의 소설집 중 한 권으로서 《이민자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한 권만으로도 나는 이미 ‘제발트의 독자’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민자들》은 4개의 짧은 소설을 담고있다. 네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제목이 암시하듯, 어떤 이유로든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특히 독일인 제발트가 주목하고 있는 이민자들은 독일계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에 대한 가혹한 인종말살 정책을 펼쳤던 조상의 후손으로서, 독일인 제발트가 담고 있는 주제는 매우 드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끌려갔던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어느 일본인이 이토록 절제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드문 것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다만 제발트는 자신의 조상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자세히 밝히지는 않는다. 제발트는 ‘살아남은 이들’, 특히 고향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화자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롤랑 바르트의 책 《밝은 방》은 책 속에서 여러 사진을 놓고 사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시도라고 했다. 이번에 읽은 소설 《이민자들》또한 제발트가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실제 사진을 통해 이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형태를 띤다. 그러므로 옮긴이가 언급한바와 같이 이 소설은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제발트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통해 소설로 재구성했다면, 여기에서는 많은 이들이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진실 여부’의 문제보다 우리는 이 ‘기억’들을 잊지 않고 다음 세대로 들려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보이는 이유다. 바르트가 ‘사진은 확실하지만 덧없는 증언’이라고 할 때, 이 사진은 ‘그 사람이 한 때 정말로 존재했다’는 놀라운 사실 또한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것이 사라질 운명(보다 확실하게는 지구 멸망의 시점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제발트는 실존 인물들 혹은 풍경을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바르트가 떠올렸던 이 ‘덧없음’을 마찬가지로 곱씹었을 것이다.
【’사자(死者)의 귀환’,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
소설의 첫 두 단편 ‘헨리 쎌윈 박사’와 ‘파울 베라이터’의 주인공들은 공교롭게도 자살한 인물이다. 헨리 쎌윈 박사는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이민자로,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려다 영국에 도착하여 정착한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파울 베라이터는 조부모 중 한 명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곧 3/4 이 아리아인, 1/4만이 유대인) 젊은 시절 공부를 마치고 교사일을 시작하자마자 쫒겨난 경험이 있다. 반면 아리아인의 피가 섞여 있었기에 6년 간 기갑포병대에서 복무해야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두 이야기 모두 유대인으로서 ‘고향을 잃은’ 이방인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가해자도 아닌 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했을까?
헨리 쎌윈 박사는 열심히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고 공장주의 딸과 결혼하여 평생동안 꽤 넉넉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혈통때문인지 부인과의 관계는 점점 더 소홀해졌다. 쎌윈 박사의 고백대로 시간이 지날 수록 향수병이 심해진다는 그는 정원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점점 고독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7살에 리투아니아의 한 마을에서 이민길에 오른 그였지만 그 때 봤던 풍경의 기억은 쎌윈 박사의 몸에 각인되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젊은 시절 깊은 우정을 나눴던 베른의 등산안내인 요한네스 네겔리의 돌연한 사망소식은 쎌윈 박사의 기억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방인으로서 타지에 오래 살았지만 어린 시절 각인된 환경을 그리워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기억’이라는 것은 어쩌면 본래 고독한 존재인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인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의 고향 마을도, 요한네스 네겔리도 결국은 쎌윈 박사의 기억으로 들어온 대상들이기에 쎌윈 박사의 고통은 단순한 고향 상실의 문제는 아닐 터이다. ‘관계의 존재’인 인간이 고독하게 살아갈 수는 있어도, 인간이 의지하는 그 무엇에 대해 인위적인 혹은 불가항력적인 ‘단절’이 개입한다면 삶의 의미를 잃게될 수도 있지 않을까. 쎌윈 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 불가항력의 단절로 부유하던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기로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소울메이트와 같았던 사람이 돌연 자신의 삶에서 사라려버렸다. 그리고 자신은 살아남았지만, 자신을 붙들어주는 끈이 끊어져 세상과의 모든 연결 고리가 사라진 순간 살아남은 이들은 ‘고통스런 기억’과 ‘기억의 고통’을 평생 마주해야하는 운명을 지닌다.
쎌윈 박사의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자는 72년 만에 빙하에서 요한네스 네겔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이에 화자는 “사자(死者)들은 이렇게 되돌아 온다”라고 말한다. 쎌윈 박사는 죽음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고, 반대로 네겔리는 죽음의 장소였던 빙하라는 심연으로부터 다시 올라오는 이 현상은 ‘기억’을 매개로 해서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자(死者)의 귀환’ 모티브는 ‘파울 베라이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파울은 화자의 초등학교 은사인데, 나치의 등장으로 실향민이 된 독일인이다. 파울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의 화자에게 전해주는 란다우 부인이 화자에게 사진 앨범을 보여주자, 두 사람의 ‘기억’을 통해 망자들이 소환되고 있다.
“이 앨범에 담긴 사진들을 보다보면 죽은 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했고, 우리가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61면)
《밝은 방》에서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망 직후 어머니의 어릴 적 모습이 담겨있는 온실 사진을 보며 사진의 본질을 거듭 생각했고, 자신이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느끼기도 한다. ‘카메라 앞에, 그리고 사진사 앞에 그리고 그 때, 나의 어머니가 정말로 있었고, 이 어린이가 바로 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도 란다우 부인의 앨범을 보면서 어릴 적 기억하던 은사의 모습과 자신이 모르던 은사의 모습을 맞춰가며 한 사람의 존재를 다시 회상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림 자체에 시간의 흐름을 수반하고 있는 그림과 달리 순간 포착된 사진이 오랜 시간 뒤에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힘일 터이다. 다시 말해 ‘살아남은 자’들은 기억을 통해 ‘고통’을 불러오고, 이를 다시 고통스럽게 기억해야하는 자들이다.
【이민자들의 잃어버린 고향 – 이타카(Ithaca)】
소설이 담고 있는 네 편의 소설 중에서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에 나오는 아델바르트는 유일하게 유대인이 아니다. 하지만 산업화되어버린 삶의 조건 속에서 실업으로 고향을 상실한 인물이다. 아델바르트는 소설 속 ‘화자’의 어머니의 외삼촌이었다. 아델바르트는 실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유대인 은행가의 집사로 일했다. 화자가 아델바르트의 삶을 조사하고 찾아가면서 알게되는 사실 중에 아델바르트의 말년의 모습에 특히 주목해본다. 그는 집사 생활에서 은퇴한 후 자진해서 뉴욕 주(州) 이타카 시에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가 말년을 보내기로 한다. 특히 50년대 초에 미국에서 유행하던 전기충격 요법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과도한 충격요법으로 몸과 정신이 망가져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아델바르트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화자’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은퇴한 정신과 의사인 에이브럼스키 박사였다. 에이브럼스키 박사가 기억하고 있는 아델바르트는 극심한 우울증을 비롯하여, 이와 통상적으로 함께하는 육체적인 퇴락현상이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박사의 말로는 아델바르트가 ‘거듭 세상에 작별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당시에 이미 나는 아델바르트 씨의 그런 태도가 실은 자신의 사고능력과 기억능력을 가능한 한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말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143면)
말하자면 일반적인 우울증과는 달리 자신의 정신을 ‘의도적’으로 파괴 또는 정화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1950년대 정신치료를 위해 전기 요법을 사용한 목적 또한 전기충격을 통해 일종의 기억 저장장치로 보았던 뇌를 ‘포맷’하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염두해 둔다면 좀더 이해가 간다. 아델바르트가 왜 ‘기꺼이’ 무시무시한 정신충격 요법을 받아들였는지 소설 속에 명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몇 가지 짐작해본다면, 아델바르트가 유대인 은행가 코즈모의 집사로 일하던 때 세계 여러 곳을 함께 여행하며 보았던 무언가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산업화의 진행으로 파괴되어버린 인간다움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단서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어느 나라에 가든, 지구상의 어디를 가든 다를 바가 없다. 자동차와 부띠끄 상업, 그리고 온갖 방식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가는 파괴중독증으로 인해 살아남은 곳이 없다.”(147면)
결국 아델바르트는 실업으로 고향을 잃게된, 후기 산업사회의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이 유대인 가문의 집사라는 설정으로 접목이 되어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항상 함께 다니던 주인 코즈모 또한 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인물은 결국 각자 타지에서 삶을 마감했던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아델바르트가 자신의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던 정신병원이 있던 곳이 뉴욕 주(州)의 이타카(Ithaca)라는 장소이다. 이타카는 사실 그리스에 있는 섬의 이름이면서, 호메로스의 저작 《오딧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여 페넬로페와의 신혼생활을 중단하고 전쟁에 참전한다. 그는10년 동안 전장에서 보내고, ‘트로이의 목마’ 계책으로 승리한 후 귀향길에 올랐지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서 다시 10년 간 지중해를 해매는 운명을 맞는다. 이런 맥락을 고려해보면 제발트가 설정해둔 소설 속의 공간 이타카는 타지에서 떠도는 이들, 이민자들이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고향의 은유로서 사용된 것은 아니었을까. 아델바르트의 비망록을 해독하며 그의 자취를 따라가보는 화자는 그리스의 이타카 섬을 지나는 대목도 잠시 나오는 데, 이 부분도 잃어버린 고향에 대해 다시금 환기시키는 장치로 이해된다.
아델바르트가 마지막으로 전기충격 요법을 받았던 날, 진료시간을 어긴 그를 찾아간 에이브럼스키 박사에게 창밖을 바라보던 아델바르트가 해준 한 마디는 상당한 여운을 준다.
“나비 잡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무심결에 잊어버린 모양입니다.”(146면)
내게 ‘나비 잡는 사람’의 이미지는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순수한 존재로서, 그리고 보호받고 지켜야될 존재 혹은 가치로 다가온다. 곧 인간다움이 존재할 수 있는 고향을 암시할 것 같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전세계가 획일화되고, 파괴되어가는 인간의 조건 속에서 현대인들은 모두 고향을 상실한 존재와 다름 없다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이는 상징적이긴 하지만 아델바르트가 정신병원이 있는 ‘이타카’로 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트라우마의 공간, 그리고 망각에 대한 저항행위들】
네 번째 소설 ‘막스 페르버’의 화자는 스위스 인으로 영국에 이민가기로 하고 맨체스터에 도착한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화가가 바로 막스 페르버였다. 페르버는 나치를 피해 실향민이 된 유대인으로, 페르버의 부모는 나치의 유대인 강제 이송 열차를 타고, 나치에 의해 살해되었다. 페르버가 기억하기 싫어하는 고통 중에는 나치에 의해 부모님이 살해된 지 한 참 후에 그 소식을 들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페르버가 받은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평생을 안고 살아야하는 숙명이 되었다.
“이따금 나를 엄습하는 단편적인 기억의 영상들은 차라리 강박관념들이라고 해야 할 것야. 내게 떠오르는 독일이란, 머릿속의 광상(狂想) 같은 것이네. (…) 내게 독일인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무시무시한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네도 알아야 하네.”(229면)
페르버의 ‘강박관념’은 결국 그의 몸에 반복적으로 각인되어 트라우마가 되었을 터이다. 몸에 각인되어 지울 수 없는 상처. 그건 페르버가 맨체스터라는 공간을 보자마자 몸이 반응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맨체스터라는 공간은 페르버라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환기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한 때 ‘전 세계로 확산된 산업화의 발상지였지만 어느덧 무연탄색으로 시커멓게 덮여버린 도시, 만성적인 가난과 몰락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도시’로서 맨체스터는 페르버가 앞으로 줄곧 살게 될 도시였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원형극장의 바닥처럼 보이는 이 도시는 ‘가라앉고 있는 도시’의 이미지를 주면서도 또 다른 ‘심연(abyss)’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헨리 쎌윈 박사’에서 등산안내인 요하네스 네겔리가 추락했던 ‘빙하’의 이미지와 상통한다. 곧 네겔리의 빙하도 역시 ‘죽음을 마주하는 공간’이자 ‘사자가 귀환하는 공간’로서의 이미지를 준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에서도 아델바르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이타카의 정신병원’도 바로 ‘막스 페르버’의 맨체스터와 같이, 죽음을 맞이하고 망자를 소환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소설의 어느 주인공도 결국 자신들이 받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자신만의 ‘심연’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주목해볼만한 부분은 ‘파울 베라이터’에서 파울이 자살하는 공간이 ‘철로 위’라는 것과, ‘막스 페르버’가 맨체스터를 바라볼 때 느꼈던 장면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자살행위’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하나의 행위로 전달하는 메시지의 성격이 있다고 본다. 곧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인데, 파울이 누웠던 철로의 공간은 어쩌면 과거에 수많은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날랐던 기차가 가던 길의 모습과 오버랩되고 있다는 말이다. 제발트에 따르면 “철도에서 끝을 보다”라는 의미가 원래 ‘철도에서 평생 직업을 찾다’라는 의미이긴 하지만, 독자로서 나에게는 이 철로가 파울에게는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운명을 환기해주는 기호로 보인다는 점이다. 파울은 어쩌면 자신의 일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던 상처와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자신의 일부가 아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기갑포병대에서 나치를 위해 일했던 자신을 속죄하기 위한 행위로서 철로에 누웠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파울의 ‘철로’라는 공간 또한 ‘헨리 쎌윈 박사’의 요한네스 네겔리의 ‘빙하’와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에서 아델바르트의 ‘이타카 정신병원’과 함께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던 사람이 ‘죽음’과 마주하고, ‘사자의 귀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페르버가 몰락하고 있던 맨체스터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밤낮없이 나오던 굴뚝의 연기는 전쟁을 경험한 페르버가 전쟁터에서 불타오르던 인간성 몰락과 문명 파괴의 모습, 유대인 수용소에서 끊임없이 시체를 태우던 그 굴뚝의 풍경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몰락하는 거대한 원형극장처럼 생긴 맨체스터 역시 ‘빙하’, ‘철로’ 그리고 ‘이타카의 정신병원’과 일맥상통하는 구조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페르버가 ‘폐기종’으로 죽어가는 상황도 결국 밤낮없이 나오던 굴뚝의 연기로 몸에 난 또다른 상처에 다름 아닐 것이다.
독일인으로서 저자 제발트는 소설의 여러군데에서,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통해 소설 속에 개입하는 부분이 있다. 많은 독일인들이 선조가 했던 일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게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은폐를 하려고 했는지를 지적하는 대목이다.
“파괴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침묵하고, 모든 것을 감추고, 때로는 실제로 잊어버리기도 했는지요. 그런 것은 그들이 그전에 보여주었던 비열한 태도와 동전의 양면처럼 맞붙어 있는 것이에요.”(65면)
이 말은 파울 베라이터의 말년에 대해 이야기 해주던 란다우 부인의 지적이다. 평범한 독일인들도 전후 자신 또는 선조의 행위에 대해 침묵하고 은폐하려 했던 정황을 독일인의 입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살과 함께 ‘침묵’도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행위로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독일인 후손들의 ‘침묵’은 선조의 행위와 마찬가지인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제발트의 비판인 것이다. 이러한 제발트의 개입은 ‘막스 페르버’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화자는 페르버의 가족이 묻힌 유대인 공동묘지를 방문하는데, 이 대목에서 화자는 저자의 생각을 직접 개입하여 독자에게 전달한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독일인들의 정신적 빈곤과 기억상실, 그리고 과거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린 그들의 교묘함으로 인해 내 머리와 신경이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287면)
화자는 유대인 공동묘지를 방문한 뒤, 묘비에 새겨져있는 사자(死者)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읽고 있다. 이 행위는 보다 적극적으로 망자를 소환하는 의식이기도하고, 망각하고자 혹은 은폐하고자하는 동료 독일인들에 전하는 제발트의 메시지이자, 제발트가 요청하는 집단적인 망각에 대한 저항 행위일 것이다.
책을 덮어도 제발트가 담담하게 전해주는 이야기들의 여운에는 나를 위로해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제발트가 실제로 관심을 갖고 만나고 사진을 수집하고, 이야기를 들었던 이들은 모두 ‘한때 분명히 존재했던’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들 모두 죽었으며, 이들은 모두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고향을 상실한 체 살아갔던 사람들이었다. 그 이유가 나치에 의해서든, 산업사회가 소외시킨 결과였든 간에 말이다. 제발트는 실존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에게 전해주는 소설 속의 ‘화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의 이런 노력 속에는 평범하지만 한 때 삶을 살았던 이들의 아픔에 주목하였기에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 허우적대며 부유하는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 모두는 ‘이타카’라는 고향을 상실한 지구의 이방인이자 이민자일 것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현대인들의 고향은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낸, 이미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서의 유토피아로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