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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 ㅣ 감성과 이성
고명수.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
고명수/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
“결국, 우리의 사명은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시인과 철학자가 텍스트를 통해 2년 여 시간 동안 소통한 흔적이 여기 있다. <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은 ‘시’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철학자같은 시인과, 시인같은 철학자가 서로의 글을 꼭꼭 씹어 읽으면서 사색하고 화답한 기록이다. 시인이면서 시를 통한 치료효과에 주목하여 이러한 신념을 사람들과 나누는 고명수 교수와 라캉을 전공한 시쓰는 철학자 강응섭 교수가 시를 매개로 조우한 것이다.
우선 내가 파악한 이 책의 큰 흐름은 두 저자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풀어 놓는다는 점이다. 시의 본질은 무엇이며, 무엇을 노래하는가. 그리고 시에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시인이 이야기를 풀면, 철학자는 시의 특징과 인간의 정신을 탐구하는 심리철학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며 화답한다.
“시란 명명 행위입니다.
사물의 이름을 불러 주는 행위이지요.”(81면)
“시 한 편이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언어 이면에 있는 언어 이전의 것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니, 한 편의 시는 인간의 정신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언어활동처럼 짜인 무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26면)
곧 시라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체계로 사물/대상에 의미를 재부여(다르게 바라보기)하여 이를 다시 구성하는 행위이며,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정리해보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철학자가 언급한 바대로 시란 르네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 조셉 코수스의 ‘의자’ 그림과 같이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좀더 나아가 시의 본질적인 기능을 ‘거울’과 ‘창’이라는 사물에 비추어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거울’은 곧 자기 자신을 비추어주어 자기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함의한다. 반면, ‘창’은 시라는 틀을 통해 외부 혹은 내부를 들여다보는 일, 곧 시인이 언급한 ‘말로 마음의 물꼬를 틔우는 것’과 관계한다고 해석해볼 수 있겠다. 특히 시인은 시가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치료의 기능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철학자는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내담자’, 곧 ‘피분석가’와의 상담을 통해 내담자가 이미 가지고 있지만 과거에 잃어버렸던 ‘의미’를 ‘다시 되찾게 해주는 일’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곧 이는 두 사람 모두가 시의 본질적인 기능, ‘거울’과 ‘창’의 역할에 깊이 관심을 갖고 숙고하는 이유일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흐름은 ‘시인’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의 두 저자인 시인과 철학자는 모두 ‘시인’의 역할, 보다 폭넓게 ‘예술가’의 역할을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가파른 삶의 벼랑 위에서도 기꺼이 목숨을 지켜 싹을 틔워 내는 존재가 시인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가 아닐는지요?”(33면)
“경제의 불안, 정치의 혼란, 부조리한 삶의 모든 것들을 조용히 감싸 안아 주는 일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64면)
“그(라캉)의 말을 들으면,
오래전부터 선각자들은 꽉 채워진 마음을 비우고자 했고, 예술가들은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그 간격을 보고서는 괴로워하고 그 아픔을 승화하는 에술적 삶을 살았고…”(125면)
이와같이 시인, 보다 폭넓게 예술가는 예민한 촉수로 사회의 부조리에 주목하고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들여다보며 포옹하는 존재라고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회에 ‘유용해보이지 않은 일들’에 시인은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과 철학자는 모두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고 이를 찾아가는 수행자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시인과 철학자 두 사람이 2년 간 주고 받은 대화의 과정은 시를 매개로 시작되었으나 두 사람의 작업은 결국 불완전하고 삐걱거리는 우리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점, 어느 곳에서인가 잃어버린 우리 자신을 되찾는 일을 시를 읽고, 시를 쓰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를 쓰고 우리의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일을 하는 시인과 정신분석학을 통해 잃어버린 ‘우리’를 되찾는 일을 도와주는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어쩌면 시인의 마음으로 각자의 삶에서 잃어버렸던 ‘균형’을 되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한다. 다시 정리하면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선 각자가 자기 자신을 면밀이 들여다보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틈, 내면의 결핍을 찾아내어 우리의 삶과 관계 등을 온전히 회복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