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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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 끄적여본다. 정말로 오랜만에...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베르크는 ‘유럽인의 편견’이 담긴 이 책을 너그럽게 봐달라고 양해를 구하며 짐짓 솔직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 세계사를 서술해 보았노라 이야기한다. 나아가 빅히스토리 역사가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절친’임을 여러번 강조하며 책에서 인용하고 있다.

동양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1978년 내놓은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에서 우리에게 새롭게 환기해주고 있듯이, 서양이 만들어낸 동양에 대한 ‘허구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다소 불편했다. 다시말하면, 서양을 대표하는 유럽 문명이 분명 동양의 문명에 비해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저자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유럽인의 편견’을 솔직하게 드러낸 점에서 아직도 이 허구적 이미지는 사실 ‘현재진행형’임을 다시 확인해볼 수 있었다.

저자의 ‘절친’ 유발 하라리와 서면 이메일 인터뷰를 했던 박민영 문화평론가가 유발 하라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은 문화제국주의자인가’라고 물었던 대목을 떠올려보게 된다. [경향신문 2017년 7월 13일자 기사 참조] 박민영 선생의 이 질문은 역시 ‘아름다운 성(castle)’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저자 자신의 이름(쇤베르크)를 보여주며 ‘von’이라는 이름(귀족 계급 출신임을 드러냄) 또한 보여주고 싶어하는 저자에게도 물어볼만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거대기업의 총수였던 빌 게이츠가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빅히스토리’ 운동의 선구자 유발 하라리와 매우 친한 친구임을 누누히 강조하는 저자의 적극적인 마케팅 기술이 책 내용보다 더 기억에 남는다.

물론 저자는 책을 많이 본 사람이고, 매우 지적이고 글을 잘 쓰는 저널리스트이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던바대로 스티븐 핑커의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를 너무 맹신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다. 스티븐 핑커는 MIT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저술가로서 거대한 책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인류의 폭력성은 점점 감소했다는 주장을 엄청난 통계와 경제학자들의 자료를 제시하며 해내었다. 그리고 <사피엔스의 미래>에서 보여주듯 매트 리들리와 ‘과학자’팀을 꾸려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이 한팀이 된 ‘인문주의 팀’과의 토론에서 이들을 상대로 이겼다. 이 토론 과정을 자세히 따라가보면 매트 리들리와 스티븐 핑커는 승리하기 위한 토론 전략을 잘 구사했다. 상대방의 질문 회피/자신의 주장 반벅과 보다 다양한 증거와 통계 제시로 설득하기 등등. 이는 과학으로 대변되는 이성의 힘을 과시하고 서양인의 관점이 보다 더 우월함을 인정해준 결과였을까. 아뭏든 이 ‘세계사 농담책’의 저자 쇤베르크는 인간의 역사를 볼 때 폭력성은 단연코 감소해왔으며, 그러므로 인류는 진보하고 있고,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믿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도 대표되는 전세계적인 ‘사피엔스’ 열풍은 곧 마이크로소프트사로 대표되는 글로벌 초거대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영향력에 우리가 얼마나 종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유발 하라리의 국내 펜들이 보면 싫어하겠지만, 하라리의 절친임을 스스럼없이 그것도 여러 차례 밝히는 저자의 이 빅히스토리 저작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이유다.

빅히스토리는 분명 학문적인 구분이나 유행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나는 빅데이터와 함께 거대 기업의 글로벌 마케팅에 작용하기 좋은 역사 관점이 빅히스토리가 아닐까 질문을 던져본다. 빅히스토리는 인류의 큰 역사를 일목요연하고 매우 흥미있는 주제아래 잘 정리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히려 인간 개개인에 대한 고민이 제외되기 싶다. 인간 개개인은 결국 상품소비의 주체이자 대상일 뿐,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된 표현 및 관점은 빅히스토리의 관심사가 아닐 것이다.

예를들어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유럽인이 신대륙에 도착하여 미국의 기원이 되었다는 서술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유럽인들이 북미 원주민(아메리카 인디언)과 충돌하기도 했으나 서부로 진출하여 미합중국이라는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라는 문장으로 역사를 정리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수천만명의 인디언들이 유럽에서 온 백인에 의해 죽어갔다는 이야기는 등장하지않는다. 빅히스토리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가치가 희미해지거나 대상화되기 쉽다. 나는 이런 점에 우려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우려는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서나 나오는 희귀한 양식이 되어버렸다. 빅히스토리 열풍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을 멀리하게 만들지 않을까.

이 책이 주는 ‘세계사 읽는 재미’에도 불구하고, 내 후손들이 인간 자체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하기 이전에 빅히스토리가 말끔히 정리해주는 인간의 성취와 간결한 사건의 흐름 그리고 인류의 희망적 미래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같이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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