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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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번쯤은 제각기 답을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밥, 돈, 의식주, 가족...더러는 국가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는 가볍다. 톨스토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사랑'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사례를 단편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보여주었다.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라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죽어 가던 전직 천사 마하일을 살린 것, 외딴 곳에서 갓 태어난 아이들을 살린 것은 동정이라든가 선량한 마음이라든가 하는 온갖 이름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얼굴의 사랑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몇 번째로 읽었나, 생각해 보니 다른 어떤 작품보다 더 많이 읽었다. 그러나 단언코, 그 때마다 다시 처음과 같은 의문에 빠진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답에 동의하게 된다. 살아가는 고비 고비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다 다른 느낌인데, 그걸 깊이 깊이 생각하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귀결되는 게 신기하고 오묘하다. 

톨스토이는 쉰다섯 편의 단편을 썼다 한다. 그 중 여기에는 8편이 실려 있다. 많이 알려진 '사람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 같은 작품도 있지만 흔히 접해 보지 않은 작품이 더 많다. 기존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톨스토이 단편선> 두 권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접해볼 수 있었는데, 이번의 책은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혹은 필요에 맞게 다시 선별해 나왔기 때문에 다소 부담없이 읽을 만하다. 물론 '지옥의 붕괴와 부흥' 같은 작품은 청소년에게는 어려울 수도,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겠지만 톨스토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찬찬히 읽어 보면 톨스토이라고 하는 대문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신은 진실을 보지만 이내 말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쓴 채 곤장을 맞고 시베리아에서 이십오 년 동안 유형살이를 한 악쇼노프는 마침내 다른 일로 같은 감옥에 들어온 진범과 마주한다. 그리고 진범의 탈출 모의를 눈감아 줌으로써 그를 용서한다. 감동한 진범은 이십오 년 전의 범죄를 자백하고, 악쇼노프는 풀려나지만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억울함'이란 것은 실로 우리 인생을 옭아매는 가장 질긴 밧줄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고생한 보람이 없거나, 악쇼노프처럼 엉뚱한 죄를 뒤집어쓰는 일들은 매일 매일 우리의 감정을 갉아먹고, 때로 스스로 죽음으로 가게 만든다. 이런 삶의 억울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불공평한 현실을! 주인공 악쇼노프의 용서는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나,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결국 죽음이라는(기독교의 구원과 구원받지 못함) 똑 같은 종착점을 향해 달리는 인생에 대한 성찰이라는 걸까. 찰나의 삶보다 영원한 안식에 초점을 두라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톨스토이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다.

톨스토이의 단편들을 제대로 접해 보지 않은 청소년 이상의 이들 모두에게 징검다리로 권해주고 싶은 책. 톨스토이에게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까레니나> 말고도 별처럼 빛나는 단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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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역사를 만나다 - 고대 이집트부터 오늘날까지 패션을 만나다
정해영 글.그림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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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느끼는 신기한 것은, 모든 개별적인 것들의 역사가 결국 역사라는 사실이다. 흔히 미시사라고 하는 책들을 몇 권 접하면서 역사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할까. 하인리히 야곱의 <빵의 역사>나 <커피의 역사>를 보면 그야말로 역사가 보이며, 최근 읽기 시작한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시리즈도 문명사이지만 그 자체로 역사이다. 너무 광막해서 지레 골치가 아픈 역사에 조금은 쉽게 접근하는 방법, 바로 미시사이다. 

이 책도 그렇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책이라 쉽고 편안하지만 패션의 역사를 개괄하는 책이며, 또 하나의 역사책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몰랐던 옛 사람들의 세세한 결을 오히려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책. 왜냐하면 무엇을 입고 살았는가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션은 요즘 아이들의 최대 관심 영역이기도 하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왜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리고 가발을 썼을까, 왜 아마포로 옷도 만들어 입고, 미이라를 감쌌을까, 왜 눈 화장을 진하게 했을까, 등등이 이 책으로 쉽게 이해된다. 환경에 맞추어 살아온 인류의 역사가 주루룩 꿰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도 신분이나 아름다움을 최대한 나타내려 했던 그 오랜 노력들.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 식으로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비잔틴 시대, 로마네스크 시대, 고딕 시대,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로코코 시대, 고전주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 크리놀린 시대와 버슬 시대, 20세기 전반, 20세기 후반 이후까지 인류 복식의 변천사를 망라해 놓았다. 이런 시대 구분은 미술사, 건축의 역사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바로크니 로코코니,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그 둘의 구분이 애매했던 성인들까지도 흥미롭게 들여다 볼만하다. 

무엇보다 구성이 참 다채롭다. 인터뷰나 탐방, 화제의 상품, 패션센스 Q & A 같은 잡지 형태의 다양한 메뉴들이 곳곳에 박혀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그야말로 전체가 한 권의 패션 잡지 같기도 하고, 패션 대백과사전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양이 부담스럽지 않다. 눈높이를 잘 맞추어 놓았다. 게다가 과감한 선과 색,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삽화가 이 책의 압권이다. 이런저런 종이를 오려붙이거나 사진을 오려붙여서 질감을 살린 삽화들을 보고 있으면 패션 디자이너의 스크랩북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아무튼 하나하나가 다 따라그려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20세기 이후의 시대에, 간편한 머리 모양과 옷차림으로 살아가는 일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한껏 머리를 부풀리고 엉덩이를 높인 드레스를 입지 못해본 것이 아쉬워지게 만들기도 하는 책. 딸들은 이미 태양왕 시대의 옷을 따라그린다고 법석이다. 여자아이들이 더 반가워하겠지만 남아 여아 공히, 패션을 포함한 예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거나 역사 그 자체에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도 사랑받을 만한 매우 재미있고, 내실있고, 독특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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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1 - 인류의 기원에서 고대 제국까지 생각이 자라는 나무 13
W. 버나드 칼슨 지음, 남경태 옮김, 최준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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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이 말랑하고 쫀득하려면 비교적 쉽고 재미있어야 할 것이다. 또 굳이 말랑 쫀득하게 만든다는 것은 자칫 어렵고 골치 아프기가 십상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 내용이 원래는 말랑하고 쫀득하지는 않다는 반증. 사실 세계사는 쉬운 내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세계 역사인데, 얼마나 복잡하고 이리저리 얽혀 있을지 뻔하다.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한 사건이 어떤 사건을 촉발시켰으며, 거기에는 어떤 인물과 역학관계가 얽혀 있는지 외던 학창시절이 다시금 떠올라왔다.  그러나 지금 그것들 중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굵직굵직한 몇 가지이고, 그것만으로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문제는 세계사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기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다시 그 복잡함으로 들어가기가 저어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기억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누가 책을 읽을까.

그런데 이 책은 분명히 청소년을 겨냥해 나왔다. 말랑하고 쫀~득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선뜻 집어들었다.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데,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아이에게 권할 수는 없다는 나름의 방침도 있고 하여 일단 읽자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른 책과 매우 달라보였다거나, 들어가는 글부터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시인 김정환 선생은 술술 읽히는 책을 경계하시기도 했지만 아이들 보라 해놓고 너무 안 읽히면 낭패다 싶어, 처음 삼십분은 좀 고민했다. 우리 애가 읽을까. 세계사를 참 좋아해서 유일하게 백점을 받아온 과목이기도 한데 이 책을 들이밀어 괜히 재미를 떨어뜨려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조금만 인내하니까 잘 읽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에서 놓기 싫어지기도 했다. 인류의 기원은 갈래짓기가 내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 돼 좀 그랬는데, 이후 이집트에서부터는 급물살을 타듯 수월하고 재미있게 읽히기 시작했다.

문명사라는 말에 걸맞게 인류의 삶을 지탱하고 발전시켜 온 기술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룩된 문명의 역사가 그야말로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읽으며 그 동안 가졌던 생각에 의문도 제기했다. 과연 기술이 발전해오긴 한 것인가? 하는. 그 동안은 정신은 정체되어 있으면서 기술만 발전해 왔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그마저 의심스럽다. 아이가 태어나 어른이 되어 가면서 여러 가지를 할 줄 알게 된다고 해서 그걸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 이집트나 고대 인도, 고대 중국, 고대 지중해, 로마 등의 문명이, 그들의 기술이 지금보다 떨어진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에 소개된 그들의 문명은 한 마디로 놀라움이다. 이집트의 자 큐빗을 보고 나는 책을 놓고 박수를 할 뻔했다. 대단한 고대인들. 농부의 나라 로마가 농경에 유용한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직접 농사를 지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이용하는 기술이나 지식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적응에 성공한 뒤로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굳이 기술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26쪽. 

알맞게 자세한 문명사.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지도며, 도구나 건축물의 원리를 보여주는 삽화, 아래쪽에 따라다니는 연표 등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어당긴다. 말랑하고 쫀득한 것,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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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09-01-31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일하게 중학교때까지 백점맞은 과목이었어요. 세계사. 지금엔 하나도 기억에 안남아 있지만요. 백점이라 해도 연도가 들어가면 무지 약해지는 과목인데..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손이 잘 안가네요. 왜 그럴까 싶긴 한데. 제 아이들에게 세계사를 골라주어야 할때는 더 말랑한 책이 있겠지요. 근데 정말 말랑하게 쉽게 읽히나여? 제가 하는 공부의 필요에 의해 세계사 가닥을 가볍게 잡아야 하거든요

파란흙 2009-02-07 09:40   좋아요 0 | URL
뭔가 공부를 하시나요? 궁금궁금... 말랑한 쪽보다는 쫀득한 쪽에 무게를 두고 권하고 싶습니다. 읽기가 그리 녹록치는 않지만 흥미 있는 아이들에게는 매우 쫀득하게 읽히리라 여겨져요.^^
 
일년내내 벌받는 1학년 사각사각 책읽기 2단계 시리즈 7
에블린 르베르그 글, 세르쥬 블로슈 그림, 하정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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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완전히 새로운 사회 속으로 뛰어드는 일을 반복하며, 그때마다 내리누르는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한다. 그렇게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를 끝없이 반복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은 무디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스트레스가 뭉툭해져서 그러려니 하는 요령이 생긴다. 어디나 사람이 모인 곳은 다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오는 이제 그걸 처음으로 시작한다. 아직 무디어지기는커녕 얼마나 두려운지 온 몸이 와들와들 떨리고 무서운 꿈까지 꾼다. 첫날 팬티 차림으로 학교에 가서 아이들한테 놀림받는 꿈. 레오는 오늘 1학년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적은 내부에도 있었다. 누나인 에마가 이렇게 말해준 것이다. 일 학년은 "일 년 내내 벌만 서는 바보 학년이란 뜻이야." 레오가 코코아를 마시다가 그만 목이 꽉 멘 것을 가지고 놀려서는 안 된다. 일 학년의 첫날에 어떻게 일 학년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 수 있겠는가. 어떻게 선생님이 곤봉과 쇠사슬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직 겪어보지 않았는데. 

그런데 레오는 참 용감한 아이다. 그런 말을 듣고 겁이 났는데도 용감하게 학교에 가다니. 물론 플라스틱 칼과 포크, 물총을 챙겨가기는 했지만, 그건 겁쟁이가 하는 행동과는 다르다. 겁쟁이는 만일을 대비해 뭘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학교에 안 가버린다. 

용감한 레오가 일 학년의 첫 날에 화장실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비밀이다. 다만 나중에 에마에게 당한 그대로 돌려주었다는 소문은 있다.

참 짧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다. 우리 아이가 레오 또래였다면 학교 가기 전에 몇 번이고 읽어주었을 것이다. 성장 과정에은 늘 이처럼 조마조마하고,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짧고 재미있는 문장, 흥미진진한 줄거리, 그리고 귀여운 삽화까지 국어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참 알맞다.(그나저나 담임선생님 이름이 탱그르란다. 탱그르르르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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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09-01-1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학년에 들어가는 둘째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가. 아마 거짓말이라구 당장 말할걸요. 거짓말이라구 할만큼 요즘 애들은 너무 빨리 커요. 하긴 그 말에 겁을 먹는다면..그것도 걱정이긴 하겠네여.

파란흙 2009-01-21 23:2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적당히 몰라주고, 적당히 알고 그랬으면 하는 건 어리석은 어른들의 마음일 거예요. 학교에 대해 더 겁을 먹는 건 아마 부모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ㅎㅎ
 
헤이안 일본 - 일본 귀족문화의 원류
모로 미야 지음, 노만수 옮김 / 일빛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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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겐지 모노가타리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집에 있는 책장을 뒤적거리다 손에 잡힌 책이었다. 지금껏 남아 있는 기억은 참 이해가 안 됐는데도 다 읽었더라는 것. 이해 안 됐던 것은 히카루 겐지라는 주인공의 무소불위라 할 만한 여성편력과 그 모든 사랑이 진심이었더라는 것이었고, 그럼에도 다 읽었던 것은 절절한 심경이 드러난 연애 소설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참 절절하기도 하고, 많기도 한 사랑이라니! 나의 일본 문화에 대한 '참 오버한다'는 느낌은 거기서 비롯됐던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헤이안이라는 시대를 총제적으로 다룬 이 책은 내게는, 그 막연한 겐지 모노가타리에 대한 조금은 이해가능한 해설서이다. 이 책 이전에 나는 겐지 이야기의 무대가 헤이안 시대였더라는 것도 몰랐고, 무엇이 헤이안을 관통하는 정서였던지도 무지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여전히 잘 모르겠다.(그게 이 책의 흠이다. 나름대로 한껏 친절한 어투를 하고 있는 이 책이 일본 문화에 대한 기본지식조차 없는 문외한에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기 십상이라는 것을 저자가 잘 모른다는 것. 좀더 단순화, 명료화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일본 고대의 천년을 한 숟가락에 떠먹겠다는 것 또한 무지한 독자의 과욕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뭔가 느낌은 있다. <모노노케 히메>라는 영화에 대한 이해도 이제와서 좀 더 될 것 같은 느낌. 모노노케 즉 원령과 신도의 결합, 그것과 문학의 관계, 그리고 습속에 미친 영향. 우리 토속신앙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들이 헤이안 시대에는 그야말로 삶을 지배했었다. 과학이 스며들기 전인 천년 이전, 그들은 이해 불가능한 모든 현상을 모노노케에게로 돌렸고, 대적할 수 없는 돌연사나 자연현상을 상대로 불안함을 가시기 위한 온갖 노력을 일상에서 기울였던 것 같다. 그것이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고, 닥쳐온 운명에 조용히 수긍하며, 속으로 쌓여가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과장되게 드러내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 그것이 또한 어느 의미로는 고립을 타고난 섬나라 사람들의 필연적 정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하도 복잡한 인맥과 정치적 상황의 설명 때문에 읽기 쉽지 않았지만 또 재미없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 정리를 포기하고 느낌으로 다 읽었다. 나야 그렇지만 일본 문화나 일본 애니 혹은 일본의 그로테스크한 예술, 표리부동하다고 느끼지만 생존에 필요불가결했던 그들의 예의에 대해 관심 있거나, 공부하고 싶거나 한 이들은 모로 미야라는 이 독특한 작가의 책을 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본인 아버지와 타이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문화를 아우르는 이 여성 작가는 박학다식할 뿐 아니라 문체가 사뭇 유머러스해서 읽는 즐거움이 있다. 다만 그녀의 유머를 얼마나 만끽할지는 독자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마지막으로 생뚱맞은 한 줄 소감. 나도 헤이안 사람들처럼 하루 두 끼만 먹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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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2009-01-06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였는지..기억이 안나는데 세계의 전쟁을 없애려면 민족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민족주의가 전쟁 대부분의 시발이라고 하는 말이 공감이 갔어요. 반감이라 해야 하나 편견이라 해야 하나 일본에 대해 느끼는..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는 기회가 없었는데두요. 책도 한발짝 물러서게 만들게 해요. 넘 편협한 시선에 제 안에도 있다는게. 껄끄럽네요

파란흙 2009-01-07 13:38   좋아요 0 | URL
황석영님도 그런 말씀 했어요.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조금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취지의. 하지만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그걸 벗어나기가 힘들죠. 일본에 대한 복잡한 감정도 해소하기가 쉽지 않고. 실은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순오기 2009-01-0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은 몇 편의 소설로 기억된 게 전부~~
마지막 생뚱맞는 한 줄 소감처럼, 요즘 아침은 안 먹고 점심에 두끼 양을 먹는다니까요.ㅜㅜ

파란흙 2009-01-09 10:34   좋아요 0 | URL
ㅎㅎ. 저와 비슷하신 생활 패턴. 기껏 건너뛰면 꼭 두배로 보충하죠. 일본... 영화 두 편 권해 드려요. <카모메식당>과 <안경>. 같은 감독의 작품인데 아이들과 함께 보셔도 좋을 듯.

순오기 2009-01-09 20:13   좋아요 0 | URL
알라디너들이 '카모메식당'과'안경' 많이 얘기하던데 다 못 본 작품이예요.
비디오가게에 있나 알아봐야겠군요. 아니면 케이블에서 볼 수 있으려나~ 추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