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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역사를 만나다 - 고대 이집트부터 오늘날까지 ㅣ 패션을 만나다
정해영 글.그림 / 창비 / 2009년 1월
평점 :
요즘 들어 느끼는 신기한 것은, 모든 개별적인 것들의 역사가 결국 역사라는 사실이다. 흔히 미시사라고 하는 책들을 몇 권 접하면서 역사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할까. 하인리히 야곱의 <빵의 역사>나 <커피의 역사>를 보면 그야말로 역사가 보이며, 최근 읽기 시작한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시리즈도 문명사이지만 그 자체로 역사이다. 너무 광막해서 지레 골치가 아픈 역사에 조금은 쉽게 접근하는 방법, 바로 미시사이다.
이 책도 그렇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책이라 쉽고 편안하지만 패션의 역사를 개괄하는 책이며, 또 하나의 역사책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몰랐던 옛 사람들의 세세한 결을 오히려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책. 왜냐하면 무엇을 입고 살았는가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패션은 요즘 아이들의 최대 관심 영역이기도 하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왜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리고 가발을 썼을까, 왜 아마포로 옷도 만들어 입고, 미이라를 감쌌을까, 왜 눈 화장을 진하게 했을까, 등등이 이 책으로 쉽게 이해된다. 환경에 맞추어 살아온 인류의 역사가 주루룩 꿰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도 신분이나 아름다움을 최대한 나타내려 했던 그 오랜 노력들. 상당히 재미있다.
그런 식으로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비잔틴 시대, 로마네스크 시대, 고딕 시대,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로코코 시대, 고전주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 크리놀린 시대와 버슬 시대, 20세기 전반, 20세기 후반 이후까지 인류 복식의 변천사를 망라해 놓았다. 이런 시대 구분은 미술사, 건축의 역사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바로크니 로코코니, 이름은 많이 들어왔지만 그 둘의 구분이 애매했던 성인들까지도 흥미롭게 들여다 볼만하다.
무엇보다 구성이 참 다채롭다. 인터뷰나 탐방, 화제의 상품, 패션센스 Q & A 같은 잡지 형태의 다양한 메뉴들이 곳곳에 박혀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그야말로 전체가 한 권의 패션 잡지 같기도 하고, 패션 대백과사전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나 양이 부담스럽지 않다. 눈높이를 잘 맞추어 놓았다. 게다가 과감한 선과 색,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삽화가 이 책의 압권이다. 이런저런 종이를 오려붙이거나 사진을 오려붙여서 질감을 살린 삽화들을 보고 있으면 패션 디자이너의 스크랩북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아무튼 하나하나가 다 따라그려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20세기 이후의 시대에, 간편한 머리 모양과 옷차림으로 살아가는 일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도 한껏 머리를 부풀리고 엉덩이를 높인 드레스를 입지 못해본 것이 아쉬워지게 만들기도 하는 책. 딸들은 이미 태양왕 시대의 옷을 따라그린다고 법석이다. 여자아이들이 더 반가워하겠지만 남아 여아 공히, 패션을 포함한 예술에 흥미를 가지고 있거나 역사 그 자체에 관심 있는 아이들에게도 사랑받을 만한 매우 재미있고, 내실있고, 독특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