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간 공주님 그림책 도서관 44
잔느 윌리스 지음, 유경희 옮김, 로지 리브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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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앞서 <도서관에 간 공주님>이란 책을 먼저 접했다. 글이나 그림, 내용이 좀 독특했던 기억이 있다. 도서관에서 천방지축, 자기 방식으로 책을 즐기는 아이가 나왔었다. 그 책과 글 작가, 그림 작가가 같고 주니어김영사에서 같은 시리즈로 나온다. 당연한.^^;  

주인공인 공주님은 이름이 '라라'라는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다. 사실, 모든 여자아이는 어느 모로나 공주님이다. 요즘처럼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엔, 중국의 소황제까지 아니더라도 남자아이는 왕자, 여자아이는 공주님쯤 된다. 부모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이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 참으로 많은 왕자와 공주. 아이가 스스로 공주연하는 것은, 장점도 단점도 지니고 있다. 좋게는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겨, 귀한 존재답게 바르게 행동하는 바탕이 될 수 있고, 나쁘게는 안하무인, 오만방자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생각이 올바르기만 하면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공주, 좋다는 것. "세상의 딸들아, 너희는 모두 귀하디귀한 공주다." (이야기가 좀 딴 데로 샜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이 책의 공주님 '라라'는 공주병이 사실 조금 심각하다. '내 맘대로 꼬맹이 나라'라는 나라를 매우 실감나게 묘사할 줄 알며, 거기서 키우는 애완동물에 대한 고집이 장난 아니다. 누가 말리랴. 그런데 문제는 애완동물이 '코소'라는 데 있다. '코소'도 아니고. 그림을 보면 영락없는 코뿔소인데, 공주님이 코뽈소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해야 한다. 

이 못말리는 공주님이 학교에 납시면 선생님은 참 난감해진다. 자기 나라에서는 옷을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는 둥, 조회시간에 애완동물의 푹신한 털 위에 앉아야 한다는 둥, 수업시간에는 1+1을 시비빵이라고 하는 둥 이상한 나라의 법칙을 자꾸만 적용시키니까 말이다. 내 맘대로 꼬맹이 나라에서는 숫자를 이렇게 센단다. 호나, 두, 세바, 네보, 다서바, 여서비, 일고바, 여더시, 아호시, 여가, 시비빵! (처음엔 어처구니 없는데 자꾸 세면 중독된다.) 

선생님은 조용하게 근무하는 도서관 사서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걸, 이라고 혼잣말을 하지만 글쎄, 공주님이 자주 거기도 납신다는 걸 아시면 맘이 달라질 거다. 아무튼 온갖 소동 끝에 공주님은 학교에서 돌아가며 돌보는 햄스터를 집으로 데려온다. 공주님은 동물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 그러고보면 착한 공주다. 미워할 수 없는. 엄마는 라라 공주에게 "연극하는 거 좋아하잖아."라고 말하지만 공주님은 이렇게 생각한다. '진짜 공주는 절대 연극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헷갈린다. 혹시 이 아이, 진짜 그 나라에서 온 공주인 건 아닐까? 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즐기는 세상. 그게 '내 맘대로 꼬맹이 나라'일텐데, 너무 많은 아이들이 그곳으로 가지 못한다. 라라 공주님은 그런 아이들을 대신해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은근히 그곳으로 오라고 초대한다. 정도의 문제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어른들에게는 너무 딱딱한 건 아닌지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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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열쇠공 - 올해의 동화 1 미래의 고전 6
푸른아동문학회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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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아동문학회라고 하는 작가들의 모임에서 일 년을 결산하며 낸 창작동화집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푸른책들에서 미래의 고전 시리즈 중 6번, 올해의 동화 1로 나왔다. 시리즈를 보아도 이 책에 상당한 기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제작인 <공주와 열쇠공>은 리뷰어로서도 유명했고, 지금 출판사에서 홍보일을 하고 있는 정민호 작가의 단편. 직접은 아니지만 한 사람쯤 걸러 아는 이름이라 더 반가웠다. 신형건 선생이 작품해설에서 언급했듯이 서양의 전래동화를 읽는 느낌이 독특했고, 모호하지만 뭔지 의미심장해 보이는 주제의 표출방식도 남다르다. 왜 표제작으로 나섰는지 알만했다. 

책을 받아 표제작을 먼저 읽은 다음, 차근차근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 간혹 내 아이들에게 낭독해주기도 하고, 혼자 읽기도 하면서...그랬더니 다른 책을 읽는 사이 사이에 읽었는데, 더 알차게 읽은 느낌이었다. 이야기 하나 하나가 어느 것 빠지는 느낌 없이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치게 심각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고, 적당히 가볍고 무겁고, 재미있고 가슴 뭉클한 느낌들이 간 잘 맞춘 찌개처럼 맛깔스럽게 감겨왔다.그래서, 

작품들을 일일이 언급해 주고 싶어서 쓰는 한줄평.

삼촌과 조카(원나연): 동갑내기 삼촌과 조카의 눈물 나는 가족애, 멋진 걸!
알 수 없는 일(이금이):그 아이들도 오갈데 없는 화성 남자, 금성 여자였구나.
혼자일 때만 들리는 소리(조향미):혼자 밥 먹는 해찬이에게 친구가 생긴 기막힌 사연!
공주와 열쇠공(정민호): 자물쇠를 연구하는 일에는 큰 성도 재산도 필요 없구나. 그렇구나.
두꺼비 사랑(강숙인): 달빛이 그처럼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에 대한 애잔한 사랑 이야기
피리 부는 소년(김정):절대로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대장장이의 아들, 작은새의 슬픈 전설.
토끼에게(최금진):토끼를 죽게 한 건 올무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진실.
바느질하는 아이(최은영):할머니와 살아본 아이만이 할머니를 느낀다. 상처의 치유에 대해.
돌덩이(박신향):얼굴을 얻어맞은 아이보다 더 상처 입은, 때린 아이를 쳐다보는 작가의 눈.
두 권의 일기장(오미경):죽음을 불사하는 용기를 내는데 필요한 것은? 엄마들에게 질문함. 

이처럼 외국 동화뿐 아니라 전래동화, 생활동화, 판타지동화 같은 느낌의 작품들이 골고루 실려 있으므로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라도 한 두 개쯤은 폭 빠져 읽을 만한 뷔페 식단같은 책이다. 엄마들이 첫페이지부터 끝페이지까지 다 읽으라고 윽박지르지 않아도 되는 책. 흔한 말이지만 재미, 감동, 교훈이 잘 어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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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15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는데, 저한테는 다른 책이 왔어요.ㅜㅜ

파란흙 2008-12-15 10:42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기대도 했지만 생각보다 더 좋았어요.
푸른책들의 미래의 고전 시리즈, 기획에 퀄리티가 따라가 주는 것 같습니다.
 
수족관 속의 아인슈타인 - 축구하는 금붕어부터 숫자 세는 앵무새까지 동물들의 환상적인 지능 이야기
클라우디아 루비 지음, 신혜원 옮김 / 열대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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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던지 기억해 내기 어려울 정도로(혹은 기억력의 감퇴가 원인일 수 있다) 아주 오래 전에 무슨 글인가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참고자료로 샀던 책 중에 <동물의 언어>라는 것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고래, 벌 그리고 온갖 동물들이 상호 소통하는 방식을 설명해 놓은 책이었다. 그때 생각했었다. '그런 소통을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어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본적 소통을 넘어서서 '사유'라는 걸 가능케 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지적, 감성적 정보의 나눔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언어는 인간만의 고유의 것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은 한 마디로 인간과 여타 동물을 완전히 갈라 생각하는 일종의 오만이었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만이 지닌 그 냄새 나는 오만의 산물. 이 책은 다양한 동물의 소통 및 생활방식을 서술해 놓아서 어찌 보면 그 옛날 <동물의 언어>를 더 구체적이고, 더 맛깔나게 구성한 것처럼도 보인다. 비슷한 부분이 꽤 있다. 그러나 저 책과 비교했을 때 읽기가 무척 재미있고, 내용이 흥미롭다. 술술술까지는 아니어도 솔솔솔 읽힌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동물도 소통을 할 줄 안다.'가 아니라 '동물도 인간과 똑같이 소통하는 존재다.'라는 것이다. 인간이 손을 쓸 줄 알게 되고, 불을 쓸 줄 알게 되고, 점점 더 오래 사는 기술을 익히는 행운을 타고난 것을 다른 동물과 똑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루살이'는 인간이 하루를 살았을 때는 도저히 익힐 수 없는 수준의 정보를 학습할 줄 아는 동물이며, 그건 인간의 삶의 기간이나 삶의 방식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존재라도 학습할 필요가 있는 것은 충분히 학습하는, 인간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이 저자의 기본 시각이다.

그게 착오였던 것 같다. 우리 기준으로 여타 동물들을 판단했던 것. 침팬지가 약초를 이용하면 본능이고, 인간이 약을 먹으면 과학이라는 우스운 착각.  하긴 제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도 아니기는 하다. 아무튼 책의 부제목처럼 동물들은 가히 환상적인 지능을 지니고 제 삶을 최고의 컨디션에서 살아간다. 도대체 어떤 동물이 얼마나 똑똑하고, 지능적인지는 책에 매우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이들은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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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을 읽어 버린 소년 - 벤저민 프랭클린
루스 애슈비 지음, 김민영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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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어느 한 부분을 완벽히 타고나는 사람이다.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처럼. 그러나 그들은 전문 분야가 아닌 일에는 평범하다. 오히려 범인들보다 더 뒤떨어지기도 한다. 한 분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그런데 반면에 간혹 만능 탤런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천재라기보다는 무한히 멀티플한 관심과 호기심, 에너지, 지구력을 지녔다. 그래서 그들은 타고난 것 이상으로 다방면에서 발군의 재능을 보인다. 한정적 의미로 무소불위라고 할만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그는 불세출의 화가, 조각가였으므로 천재라는 이름과도 부합하지만 동시대의 미켈란젤로와 비교하면 덜 그렇거니와 엔지니어이며, 공연기획자이며, 작가이며, 달변가였으므로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느낀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벤자민 프랭클린에 관한 어린이책을 읽고서 그에 대해 든 느낌이 바로 만능 탤런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남달리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타고난 천성이 그렇고, 평생에 걸쳐 책을 폭식하다시피 읽었다고 하여 대문호감도 아니었고, 대단한 학자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책이라는 매체를 발판으로 조그만 재능을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호기심, 에너지와 의지, 부지런함으로 메워나감으로써 진정한 만능 탤런트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과학자이며, 발명가이며, 저자이며, 사회사업가이며, 행동하는 애국자이자 정치인이며 그 모든 걸 가능케 한 유능한 사업가였다는 사실은 재삼 놀라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바닥에 독서가 놓여 있다는 것도!

이 책을 내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유독 강조한 부분이 독서이다. 제목에서 나타나는 책의 기획의도도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독서가 인격을 기르며, 그저 탁상공론이 아닌 실천과 행동, 비즈니스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벤 프랭클린은 책 읽는 이들이 지닌 정적이고 사변적인 느낌에서 벗어난 인물의 모범적인 예이기 때문이다. 책 읽는 일이 고리타분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행동의 촉매임을 몸으로 보여준 인물. 독서가 모든 것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 

솔직히 플랭클린이란 인물은 독서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인물이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형에게서 달아나 세상으로 뛰어든 당돌하고 저돌적인 인물이 책이라는 양식 대신에 처세만을 익혔다면 그 결과가 어땠을까, 하는 생각.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식습관마저 바꿔 버리는 그런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로 책은 참 대단한 일을 일궈 내는 존재다. 

이 책에는 초록색 글씨로 플랭클린이 한 중요한 말이나 글을 표시하여 따로 찾아 읽기 쉽게 해놓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101쪽, "모든 학문의 위대한 목표와 목적은 인류, 조국, 친구,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공부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시기라 더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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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웃다 - 제6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29
문부일 외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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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웃다 / 문부일

내 알기로 저 표지의 얼굴은 살리에르가 아니라 모차르트다. 천재 옆에서 비참해지는 증후군의 이름이 되어 버린 살리에르가 아닌, 살리에르의 자괴감의 원인 제공자인 모차르트. 

모차르트와 관련된 글쓰기 작업을 두어 차례 하면서 모차르트가, 천재임으로 내놓아야 했던 많은 것들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기에, 살리에르에게 속상해하지 말라고 넌지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살리에르의 얼굴을 만나기는 힘들다. 보이느니 다 모차르트다. 불쌍한 살리에르. 어쩌면 내 얼굴에 살리에르가 그려져 있으려나. 사실 설수혁의 고민은 참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마치 내 고등학교 때나 혹은 그 이후 뭘 써보려고 덤빌 때마다 느꼈던 자괴감과 너무 흡사했다. 그래서 그럴 이야기가 아닌데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열심히 해도 안 될 일이 살다 보면 많지만, 가장 먼저 맞닥뜨린 것이 ‘문학’을 하는 일이었다. 열심히 해 보기도 전에 이미 글을 쓰는 것에 남다른 아이들이 있었고, 그건 책을 읽어서 해결될 일도, 밤새 시를 고쳐 써서 될 일도 아니었다. 그 결과는 고작 그 언저리를 맴도는 것일 뿐이었다. 수혁이가 얼마나 속상했을 지 안 봐도 뻔할 정도. 그 애가 왜 머릿속에 떠오르는 남의 시를 써내게까지 되었는지 알 만하다. 참회 내지 고백의 글이 뒤바뀌고 시는 아니지만 적어도 소설을 향한 빛이 보인다는 결말이 실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수혁의 남은 좌절들이 걱정스럽다. 살리에르가 진짜로 웃을 수 있을까?

6시 59분 / 문부일

중3 권완수는 하루 열네 시간을 돈까스 집 주방에서 보내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아마 완수의 마음에는 운동 부족과 기름진 식사로 찌들며, 비대한 몸으로 생의 중반을 훌쩍 넘겨 버린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완수는 부모의 가게 일을 도우며, 하루 만 원 정도씩을 슬쩍, 챙겨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 혼자 떠나는 바다 너머의 땅이 완수에게 어떤 의미일지, 사실은 그 아버지는 안다. 아버지는 결코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답습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대개의 아버지는. 아버지는 다 안다. 가슴 찡한 이야기다.

잠자리는 기름때에 다리가 엉겨 파닥거리기만 할 뿐 날아가지 못했다. 몸부림치는 녀석을 보며 나는 옆에 있는 신문지를 돌돌 말았다. / “밖으로 보내 줘야지. 날아가지 못하는 것도서러운데 맞아 죽으면 억울하잖아.” / 아빠는 칼로 기름때를 벗기로 그 둘레에 물을 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름때가 녹아 내렸다. 그러자 녀석은 창문을 빠져 나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빠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63쪽-

모래에 묻히는 개 / 강미

고야의 <물살을 거스르는 개>라는 그림이 있다 한다. 최민준은 학생회 부회장에 출마하고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민준네 집의 부유함은 선거운동에 득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더러 ‘부자 행세’라는 말로 상대편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민준이 선거운동에 열심인 것은 자신의 의지이다. 할아버지나 어머니의 말이 결국 자신을 위한 말임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 나서게 되었다고 한다. 적어도 민준은 그렇게 믿는다. 전략본부장 역할을 맡아 하는 창우나 찬조연설을 해준 정수 형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창우나 정수 형의 표정에서 진심이 사라지고, 발가벗겨진 느낌이 찾아오자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이 민준의 귀에 들린다. <모래에 묻히는 개>.

사회의 한 단면을 뚝 잘라 보여주는 듯한 강미 작가의 <모래에 묻히는 개>는 뭔가 섬뜩하고, 그러면서 슬픈 느낌이다. 이 작품, 정말이지 짧은 이야기 속에 사회와 속속들이 닮은꼴을 박아 놓았다.

짱이 미쳤다 / 백은영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짱은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아이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 짱에게는 남보다 더한 카리스마나 혹은 독기나 혹은 잔인함이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면 개중에는 옳은 생각이나 바른 리더십을 가진 아이도 있지 않을까?

영민이 바로 그런 짱으로 비친다. 대적할 자 없이 싸움을 잘하면서도 비행을 하지 않는 아이. ‘멋지다’. 반면에 원래 짱이었던 기철은 영민의 등장 이후 부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도, 기철은 자존심도 없는 걸까?

하지만 점점 더 기철의 멋진 모습이 드러나고,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영민이냐, 기철이냐? 도대체 진짜 짱은 누구야? 짱이 누군지를 알아야 제목에 있는 미친 짱이 누군지도 알 수 있지. 영민이 강한 주먹을 전국체전 권투 선수로 나가 제대로 쓰게 됐다는 결말을 보면 더욱 더 헷갈린다. 짱이 영민인지, 영민을 응원하고 선 기철인지.

이야기는 폭력적인 패거리로 치부되는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내면을 보듬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그저 재미있는 ‘고교 시대’ 정도로 읽힌다. <주몽의 알을 찾아라>에서도 느꼈던 작가 특유의 박진감이 살아 있는 이야기.

열여덟 살, 그 겨울 / 정은숙

매우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 가난하고 와해 직전인 집의 아들 기선, 부유하나 장애를 지닌 승효, 노는 아이로 오명을 날리는 지영은 모두 왜곡된 시선의 피해자다. 그들이 물고 물리고, 서로 부여안고 돌아간다. 정은숙 작가만의 이야기 구조, 그녀만의 문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잘 어울려 멋진 단편이 탄생했다. 장애를 지닌 승효가 K2에 가겠다고 외치는 장면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자기 집을 몰래 드나드는 기선을 지켜보던 아이, 그 친구와 함께 K2에 오르겠다는 아이,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지영을 위해 아주 조금 자신을 드러낸 아이. 그 아이, 승효가 자꾸만 가슴에 남는다. ‘ㅇㅇ고등 학교 남자애들 중에 민지영 허벅지에 있는 검은 화살 문신을 못 봤으면 등신’이라는 말이 도는 아이를 위해 움직이는 건 그나마 없는 집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는 사실(물론 우연히 서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기는 했지만)도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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