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잔의 차 - 히말라야 오지의 희망 이야기
그레그 모텐슨 외 지음, 사라 톰슨 개작,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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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발티족과 함께 처음으로 차를 마신다면 자네는 이방인이네. 두 번째로 차를 마신다면 자네는 환대받는 손님이 된 거지. 세 번째로 차를 함께 마시면 가족이 된 것이네. 그러면 우리는 자네를 위해 죽음도 무릅쓰고 무슨 일이든 할 거라네."-123쪽. 

제목인 세 잔의 차의 의미를 드러낸 책 속 대목이다.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죽음을 무릅쓰는 가족이 되는 사람들이라니. 뭔가 가슴이 뭉클하다. 그레그 모텐슨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기로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2009년 그레그는 노벨평화상 후보로 선정되었다. 그레그가 해오고 있는 일은 히말라야 오지를 누비며 여자 아이들에게 학교를 세워주는 일이다. 그건 몸과 마음을 바칠 뿐 아니라 때로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일이다. 미국인인 그가 그 일을 하는 동안 9.11 테러사건이 있었고, 이라크전쟁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납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 그레그가 히말라야 등반가에서 히말라야 오지인들의 친구가 된 것은 조난 덕분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가 발견한 것은 귀한 설탕을 탄 차를 여러 잔 그에게 내놓은 하지 알리과 그 아내,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의 사랑이었다. 그 좋은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이 그레그의 마음을 때렸다. 젊어 죽은 여동생의 혼을 위로하고자 시작한 히말라야 등정과 조난, 발티족과의 만남은 그레그라는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남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읽어도 놀랍지만, 사실 그들은 모종의 계기가 되는 사건을 겪기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언젠가 번역했던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도 분쟁 지역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봉사자들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이며, 그 일을 하게 된 계기 역시 얼마나 일상적인지 그게 더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뭔가 다른 피를 타고났거나, 매우 다른 탄생, 두드러지는 성장과정을 지녔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아니, 그렇게 믿으며 자신이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변명을 한다. '난 그저 평범한 사람이에요.'라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느낀 건, 그들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똑같이 자신의 몸이 귀하고, 가족이 안타깝고, 먹고 살 걱정도 하고, 겁도 나지만, 그럼에도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을 위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일. 모든 엄마들이 자식을 위해 하는 일의 반만 내놓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하지 않는다. 조금 부끄러웠다. 자식을 위한 일은 나를 위한 일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 일인데, 그걸 대수롭게 여기며 살아가는 일상이 말이다. 

사실 상반된 많은 생각들이 오갔지만, 각설하고자 한다. 그레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동전 한 잎이라도 모아보내는 일이 개중 가치로울 것이라 여기기에. 그레그가 한 말 중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 느낀 것을 옮겨 본다. 

"내가 파키스탄의 아이들을 왜 도우려 하는지 어른들에게는 설명하기 힘들었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당장 이해했어요. 아이들은 사진을 보았을 때 추운 날씨에 바깥에 앉아서 선생님 없이 공부하는 곳이 있다니 쉽게 믿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은 파키스탄의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55쪽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테러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할 만큼 밝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에 테러가 생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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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조선을 그리다 푸른도서관 31
박지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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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시간에 '김홍도, 신윤복 등이 있었다.' 정도로만 언급되던 이 화가의 이름이 마치 이웃에 사는 누구인 것처럼 쉽게 불려지는 시대가 되었구나, 싶은 감회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들었다. 그가 풍속화만을 그린 줄 알았던 나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도화서, 어진화상, 의궤 등의 어휘도 김홍도와 쉽사리 연결시킨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통해 김홍도는 또 다른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고, 그와 신윤복의 그림이 어떤 배경을 지니고 그려졌는지에 대한 상상하기가 대유행처럼 되었다. 이 책도 그런 '상상하기'의 한 사례이다. 거기에 김홍도의 일대기가 자연스럽게 덮여 있다. 또, 단순한 일대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홍도의 내면이 잘 얹혀 있다. 이런 인물을 소위 위인전이 아니라 픽션화한 이야기로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런 이야기를 쓰려면 작가는 김홍도와 얼마나 자주 만났으며, 얼마나 자주 김홍도의 꿈으로 들어가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남사당패의 소년 들뫼와의 만남을 꾸며서 무동을 그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홍도를 서당 학동으로 들여보내 서당 풍경을 그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야기마다 신분차별의 애환이 숨어 있다. 중인 신분의 김홍도가 겪었어야 할 애매함과 자괴감, 늘 회색지대에서 우물쭈물해야 했던 갈등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양반에서 천민으로 곤두박질친 들뫼가 당하는 서러움을 지켜보는 김홍도, 속량이 되었으면서도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거부당하는 차돌이과 그 아버지를 지켜보는 김홍도. 

양반들은 그를 한낱 중인으로 보았고, 상민들은 그를 그저 중인으로 보았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림 그리는 일 뿐이었다. 영풍 현감으로 있었을 때 그의 자괴감은 더욱 깊어졌다. 어린 김홍도가 관찰자이기만 해도 됐었다면 현감 자리에까지 오른 중인 김홍도는 '뭔가 행동해야 하는' 강박이 컸을 것이다. 양반의 세상에서 중인이 현감 노릇을 하기가 어떠했을지는 불문가지. 파직과 의금부 압송과 뒤이은 사면은 그 자체로 김홍도의 신세를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림으로, 그림 속에서 그는 온갖 애환을 풀었다. 사람과 자연과 풍속을 담아내고 스스로와 남을 위무했다.  

이 책은 몇몇 에피소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는 김홍도의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김홍도를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해 보게, 그런 계기를 만들어 준다. 김홍도를 둘러싼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해서 그야말로 김홍도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느낌이 된다. 김홍도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휑해지는 느낌을 함께 받는다. 긴 구경 끝에 한 위대한 화가의 외롭고 고단한 마지막을 쳐다보고 서 있는 느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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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 유령 스텔라 1 - 피올라 구출 대소동 보자기 유령 스텔라 1
운니 린델 지음, 손화수 옮김, 프레드릭 스카블란 그림 / 을파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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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으로 머리 부분을 묶은 모습이 정말로 그냥 소녀같지만, 스텔라의 몸은 펄럭거리는 보자기이며 너울너울 날아다닌다. 그러니까 유령이다. 재봉 공장 창고에서 다른 옷감 유령들과 함께 살고 있다. 스텔라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천방지축 못 말리는 반항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유령들에게 금지된 장난, 이를테면 하늘 높이 비행하는 것들을 스텔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결국 해버린다. 호기심, 일단 하고 보기 등이 스텔라의 특징인 셈이다. 스텔라는 고아다. 그래서 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결국 찾아나선다. 워낙 행동파인 아이라서, 스텔라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끊임없이 터진다. 밉상이지만 소중한 친구인 피올라가 사람들 손에 들려 가방으로 만들어진 뒤 영국으로 팔려가 버린 것도 스텔라 때문에 일어난 일 중 하나이다. 스텔라의 손에 땀을 쥐는 피올라 구출기. 어리고 힘없는 유령인 스텔라는 영국까지 가서 친구를 구해오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천방지축인 아이. 자식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는 마냥 손뼉쳐 줄 수만은 없을 사고뭉치이기도 한 스텔라다. 그러나 미워할 수는 더더욱 없다. 스텔라같은 감수성과 정의감, 호기심과 용기를 지닌 아이를 어떻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무시무시한 유령이라도 말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유령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우리와 똑같이 생활하고,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생활인일 뿐이다. 언젠가 보았던 <꼬마 유령 캐스퍼>가 생각나지만 그보다도 더 순한 유령들이다. 그래서 책을 접하는 아이들이 유령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다. 흔히 생각하는 무서운 존재에 대해 달리 보기 내지는 '무서움'보다 '조심하기'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스텔라는 삶(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삶이 있고, 유령에게도 삶이 물론 있다.)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간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유령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나 <에밀과 탐정들>, <소년 탐정 칼레> 등에서 엿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이 책에서도 풍긴다. 생각이 남다르고, 감성이 풍부하며, 용감하기까지 한 아이들이 엮어가는 평범하지 않은 모험과 깨달음의 이야기들. 그러고 보면 작가가 노르웨이 사람이다. 딱, 꼬집어 말하기에는 뭣하지만 북유럽 동화라고 묶을 만한 특징들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도 같다. 유령 이야기여서 호기심이 동하고 재미도 있지만, 또 유령으로 한정지을 수 없는 동심의 세계, 어른의 세계, 삶의 비밀 등으로 확대돼 가는 주제가 인상적이다. 삶의 비밀 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 눈높이가 살짝 어긋나는 느낌이 있지만 이어지는 책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10권이 완결이라는데, 양장본의 책이 예쁘게 만들어져서 다 모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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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5-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런적 없는데...ㅋㅋ

파란흙 2009-06-07 20:46   좋아요 0 | URL
그러셨잖아요~ 다 봤어요.ㅎㅎ
 
불을 먹는 남자 올 에이지 클래식
데이비드 알몬드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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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무심코 이모 손을 잡고 따라간 곳은 서커스였다. 몸을 거꾸로 꺾으며, 장대 꼭대기에 서며,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그들은 내내 웃고 있었고,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어린 내게 전해진 그들의 비애가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그저, 그 일을 하는 그들에게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아픈 곡절이 있었으리라는 막연한 느낌이었을지 모르겠다. 혹은 세상의 회오리 속에서 누구도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을까.

말하자면 그들은 온몸을 불길에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 책에 나오는 맥널티 아저씨처럼. 전쟁에 끌려나갔던 어린 맥널티는 그때도 다른 소년(혹은 청년)병들 사이에서 부적응자의 티를 냈던 모양인지, 책의 화자인 중학생 로버트의 아버지는 그가 괴롭힘을 당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남을 찌르거나 죽이거나 총질을 해대는 일을, 다른 이들이 태연히 해낼 때 죽어도 못하겠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맥널티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는 전쟁 후에 자기 몸에 꼬챙이를 관통시키거나 불을 먹거나 쇠사슬을 묶어서 빠져나오는 자학적인 행동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길거리 차력사가 되었다.

길에서 맥널티의 쇼를 구경하던 로버트는 탄광촌의 소년이다. 외지고, 세상에서 잊혀진 곳, 조금이라도 미래가 있는 아이라면 자라면서 벗어나야 할 곳. 그러기 위해 로버트는 억압적인 선생님들이 포진한 중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로버트의 친구들은 아예 포기한 진학의 꿈. 그러나 로버트는 점차로 인생의 참 의미가 대처로 나가거나, 대학에 진학하거나 하여, 결국 전쟁을 방치하거나 부추기는 저들 틈에 끼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다. 그 아이의 바람은 그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 아버지가 건강한 것, 맥널티 아저씨가 광기로 인해 함몰되어 버리지 않는 것 정도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저런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내려덮이기 때문이다.

진정 미쳐 있는 것이 누구인가, 맥널티인가 혹은 핵무기를 적재한 로케트를 세상을 향해 겨누고 있는 이들인가. 전쟁은 왜, 누구에 의해 일어나며 누가 전쟁을 치르는가. 배움이나 앎은 무엇에 쓰일 때 진정 가치로운 것인가. 권력이 늘 빠지는 함정을 우리 민초들은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인가... 다양한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소설. 그럼에도 분명히 이 책에 등장하는 킬리 만의 아이들은 아름다웠다. 그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일 터이다. 맥널티가 온 세상의 불을 모두 삼켜 버린 것이었으면, 그나마 그의 죽음이 조금은 위로가 될까? 온 몸으로 불을 먹어치우는 그들에게 바치는 장송곡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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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의 이야기 동양사상 - 동양사상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경일 지음, 황기홍 그림 / 바다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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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동양사상을 들려주는 책 중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을 책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이야기 형식이어서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정도까지의 아이들 누구나가 쉽고,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책. 물론 쉽게 읽힌다고 하여 동양사상이 체화되는 건 아니고, 깊이 이해하려면 이 책도 여전히 모호하고 어렵기는 하다. 그나마 이 정도 쉽게 읽히는 것은 저자인 김경일 교수가 그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쭙잖게 아는 이의 설명만큼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는 걸 여러 책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해서는 적어도 믿음이 간다. 갑골문을 공부해서인지 한자가 지닌 깊은 뜻을 매우 독특하고도 이해 가능하게 풀어놓은 것 역시 미덥다. 아이들이 이 책으로 노자, 장자, 공자, 묵자, 양자, 맹자, 추연, 농가, 한비자, 진시황과 이사, 동중서에 대해 어렴풋하나마 맛을 보고 머리 한쪽에 넣어둘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처럼 동양사상에 문외한인, 어려운 책을 읽기 힘들어 하는 어른들에게도 맞춤하다.

물론 이 책을 읽어도 노자는 여전히 난해하다. 개념이 너무 어렴풋이 잡혀서 '道'와 '德'은 지금도 오리무중인 채로 남아 있다. 아이들은 오히려 더 단순하고 쉽게 받아들이려나.(실제로 초6인 딸은 읽으며 별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가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제목의 책을 저술했다는 지은이 소개 대목은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었는데, 유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느낌이 확신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문외한임을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유교적 전통 속에서 자란 사람으로서는 선뜻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유가가 무리 짓기를 즐겨 남을 배척하는 문화의 근간을 이루어왔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다른 어떤 사상도 만연하면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儒'가 고대 사회의 샤머니즘적인 지식인들, 즉 무당을 의미한다고 하는 부분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이고,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는 유가는 무당을 멀리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적인 즐거움이 쏠쏠한 책이다.   

동양사상을 왜 알아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중국에서 태어난 저 사상들이 한국과 일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지금 우리 생활 속에도 알게 모르게 깊이 스며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물론 유가의 영향이 너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노장이나 묵가, 농가, 법가 중 어느 하나도 우리와 유리된 것은 없다. 이 책을 통해서도 거듭 거듭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동양사상은 옛 것일 뿐 아니라 지금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것. 애석한 것은 우리가 어릴 때는 동양사상이라고 해야 그저 이름을 외는 것 이상으로 이해하지를 못하고 앵무새처럼 노장-무위자연, 공맹-인의예악, 법가-한비자를 거론했었는데, 지금은 이런 책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는데도 아이들은 이름조차 외지 못한 채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는, 동양사상을 향해 건너가는 편안한 징검다리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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