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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1 - 인류의 기원에서 고대 제국까지 ㅣ 생각이 자라는 나무 13
W. 버나드 칼슨 지음, 남경태 옮김, 최준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이 말랑하고 쫀득하려면 비교적 쉽고 재미있어야 할 것이다. 또 굳이 말랑 쫀득하게 만든다는 것은 자칫 어렵고 골치 아프기가 십상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 내용이 원래는 말랑하고 쫀득하지는 않다는 반증. 사실 세계사는 쉬운 내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세계 역사인데, 얼마나 복잡하고 이리저리 얽혀 있을지 뻔하다.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고, 한 사건이 어떤 사건을 촉발시켰으며, 거기에는 어떤 인물과 역학관계가 얽혀 있는지 외던 학창시절이 다시금 떠올라왔다. 그러나 지금 그것들 중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남은 건 굵직굵직한 몇 가지이고, 그것만으로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문제는 세계사라는 제목이 들어간 책을 기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다시 그 복잡함으로 들어가기가 저어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기억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 누가 책을 읽을까.
그런데 이 책은 분명히 청소년을 겨냥해 나왔다. 말랑하고 쫀~득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선뜻 집어들었다.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데,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아이에게 권할 수는 없다는 나름의 방침도 있고 하여 일단 읽자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른 책과 매우 달라보였다거나, 들어가는 글부터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시인 김정환 선생은 술술 읽히는 책을 경계하시기도 했지만 아이들 보라 해놓고 너무 안 읽히면 낭패다 싶어, 처음 삼십분은 좀 고민했다. 우리 애가 읽을까. 세계사를 참 좋아해서 유일하게 백점을 받아온 과목이기도 한데 이 책을 들이밀어 괜히 재미를 떨어뜨려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조금만 인내하니까 잘 읽히기 시작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에서 놓기 싫어지기도 했다. 인류의 기원은 갈래짓기가 내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 돼 좀 그랬는데, 이후 이집트에서부터는 급물살을 타듯 수월하고 재미있게 읽히기 시작했다.
문명사라는 말에 걸맞게 인류의 삶을 지탱하고 발전시켜 온 기술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룩된 문명의 역사가 그야말로 이야기처럼 흘러간다. 읽으며 그 동안 가졌던 생각에 의문도 제기했다. 과연 기술이 발전해오긴 한 것인가? 하는. 그 동안은 정신은 정체되어 있으면서 기술만 발전해 왔다고 여겼는데, 이제는 그마저 의심스럽다. 아이가 태어나 어른이 되어 가면서 여러 가지를 할 줄 알게 된다고 해서 그걸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고대 이집트나 고대 인도, 고대 중국, 고대 지중해, 로마 등의 문명이, 그들의 기술이 지금보다 떨어진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에 소개된 그들의 문명은 한 마디로 놀라움이다. 이집트의 자 큐빗을 보고 나는 책을 놓고 박수를 할 뻔했다. 대단한 고대인들. 농부의 나라 로마가 농경에 유용한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직접 농사를 지을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사물을 이용하는 기술이나 지식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적응에 성공한 뒤로 환경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굳이 기술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26쪽.
알맞게 자세한 문명사.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지도며, 도구나 건축물의 원리를 보여주는 삽화, 아래쪽에 따라다니는 연표 등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어당긴다. 말랑하고 쫀득한 것,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