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사진에 박히다 -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이경민 지음 / 산책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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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보여주는 가장 진솔한 도구가 무엇인가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눈, 마음, 사진... 그러나 사실 눈은 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마음은 더 그렇고, 사진도 어느 각도에서 어떤 순간에 찍느냐에 따라 보여주는 상황이 백팔십도 바뀌기가 십상이다. 또, 일기가 진실하냐, 그렇지 않기가 매우 쉬움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은 때로 자신에게도 자신을 꾸며 보이려 하므로. 그래서 더러 죽음으로 진실을 밝히고자 하나, 죽음 앞에서 꼭 진실하기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신은 없다. 죽는 이의 진실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때 사진을 쳐다보는 것에 매달린 적이 있다. 나름대로 사진이 진실에 가깝고, 진정한 의미의 증언이란 걸 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지금처럼 사진을 바꾸고 꾸미는 일이 쉬워지기 전, 젊은 시절에.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전장을 누비는 종군사진기자의 사진 한 장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지 감탄하고는 했다. 적어도, 진실 혹은 사실에 가까운 매체가 사진이라 여겼다. 

이 책은 그런 의미로 경성이라 우리가 부르는 서울의 지난 시간의 진실(매우 불완전, 불확실하기는 하지만)의 기록이다. 주로 일제 식민치하의 기록으로 점철되었으나 분명히 거기, 그 시간에 존재했던 경성. 슬프게, 혹은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었던 근대의 기록. 당시 '사진 찍다'라는 말은 없었던 듯, 모든 신문기사나 광고가 '박다' '백히다'로 적혀 있어 사실이나 진실을 있는 그래도 '박아' 기록하는 사진 매체의 속성이 더 실감있게 다가온다. 

우리가 기억하는 일제강점기는 잿빛이거나 핏빛이다. 죽어 있거나, 투쟁으로 불타올랐거나 둘 중 하나이다. 항일이거나 친일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게 나는 내내 슬펐다. 그 시절을 어떤 기회로 돌이켜 보게 될 때면.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그 시절은 온갖 천연색으로 꿈틀거렸다. 나는 사진기를 훔치기 위해 벌어진 소소한 사기극을 들여다보며, 그때도 횡행했던 범죄에 분노한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살아 있었구나,라는 느낌에 킥킥 웃었다. 사람이 살자면 좋고 나쁜, 심각하고 조금은 덜 심각한 일들이 와글와글 섞여 있어야 정상일 텐데, 일제강점기라는 말 한 마디에 그 모든 삶들이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사진으로 혹은 신문기사로 들여다보는 그 시절은 그야말로 사람 사는, 그러나 세상이 변화로 급물결치는 그런 모습이었다. 

한용운, 유관순의 사진은 그 비분강개, 우국충정이 그야말로 고요히 가라앉아, 보이는 듯 감춰진 듯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사랑을 이루지 못해 혹은 이루기 위해 목숨을 버린 숱한 정사(情死)의 주인공들이 무슨 말인지를 내게 걸어오는 듯 했고, 그 시절에도 자신의 얼굴과 몸을 내놓고 사람을 모으던 기생들의 삶이 가깝게 느껴졌다.  

사진이 그 모든 걸 하게 했다. 근대라는 시공간이 사진이라는 촉매에 의해 더 심히 물결치며 흘러왔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느낌을 가졌다. 참 독특한 책이고, (문학 지향적인 내게도) 나름대로 의미롭다. 그러고 보니, 책 표지도 예사롭지 않다. 무광과 유광 코팅을 적절히 섞어 사진의 느낌을 잘 살렸다. 공이 많이 든 책이다. 표지에 박힌 저 아름다운 여성이 낯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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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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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대화된 세상에 웬 조선시대의 시가란 말이냐, 테크노에 메탈릭한 노래들이 온몸을 쥐어짜듯이 울리는 세상에! 실제로 음악사에서는 조선에서도 후기로 가면 음악적 변화를 '번음촉절(繁音促節)'이라 하여 휘모리 장단이 유행했다(17쪽)고 하지만 설마 요즘과 견줄만 했을까! 내게 시조는 번음촉절이건, 무엇이 되었건 차분하고 나직이 읊조리는 무엇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차분하고 나직한, 이 책에 실린 조선의 노래들은 그야말로 내 영혼을 훔쳐갔다. 어릴 적 기계처럼 외곤 했던 많은 익숙한 시조들이 이렇게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다니, 탄로가를 읊조리면서는 기어이 눈물이 고이기도 했던가, 아니었던가. 늙는다는 것이 때로 지독히 서럽고 눈물겹지만, 때로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어린 날 이 시조들을 정작 욀 때는 느끼지 못했었다. 참 진한 삶의 노래들. 

탄로가들 뿐 아니다. 술, 사랑, 부부, 애국충정, 삶의 성취, 자연, 부귀 영화, 친구, 세월, 늙음 등에 대한 노래들이 어느 것 없이 구구절절 가슴에 스며든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쩌면 이렇게도 같고 또 같을까 싶다. 기생 홍랑과 최경창의 사랑 이야기는 또 얼마나 절절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 울고 갈만한 사연이 애잔하면서 정겹다. 게다가 옛 글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김용찬 선생이 쉽게 풀어놓아 고개를 끄덕거리며 짚어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김용찬 선생은 미사여구를 동원하지도 않고, 휘감았다 풀었다 하는 긴장미도 넣지 않았으며, 그저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시조를 종류별로 묶어 슬슬 소개해 준다. 한 마디로 편안히 읽힌다. 도드라지는 건 그저 시조, 시조들이다. 한 번을 다 읽고 나면 죽 넘기며 좋아하는 시조만 골라 읽기 좋게, 시조는 파르스름한 색깔로 써 놓았다. 시조를 주제별로 묶은 마디는 스물 일곱 마디이지만,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마디별로 편하게 골라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래뿐 아니라 곁들여진 그림들도 예사로이 봐지지 않는다. 한창 화제가 되는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은 물론 여러 그림들이 노래와 잘 어울려 읽는 맛을 돋군다. 김후신의 <대쾌도(大快圖)>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고 당기며 몇 차인지 모를 한 잔을 하러 가는 무리의 표정이 살아 있다. 

되돌아 보니, 강호를 노래한 시조들이 예전에는 참 이해되지 않았었다. 자연에 묻혀 세상 일을 잊고 살고 싶다는 수많은 노래들이 사실은 임금 곁에서 정사를 논하는 자리를 그리워하는 노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뭔가 이율배반적이라 느꼈었던... 그러나 나이 들면서 가뜩이나 삶의 이율배반이 이해되던 참에, 이 책에 사대부의 의식에 대한 설명이 차근차근 되어 있어 그들의 노래가 바로 내 노래가 되는 느낌. 묘할 정도다. 수기치인(修己治人). 수기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질서를 조화롭게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자연에 머물면서 자신의 내면 수양에 힘쓰는 것을 가리킨다 내면적 수양을 갖춘 이후에 관직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교화하는 치인은 언제나 도덕적 수양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45쪽) 새겨 둘 말이다. 요즘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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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윤밴의 공연을 처음 보시는 분, 심지어 공연을 처음 관람하시는 분도 있는데, 대중적이지 못한 신곡을 부르려니 죄송합니다." 뭐, 이런 말을 윤도현이 중간에 했다. 바로 나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해바라기, 이문세 등의 공연 이후 대중가수의 공연을 안본지, 세기도 힘든 나날이 흘렀으니.
  기분 나쁘라고 한 말도 아니고, 기분 나쁘지 않았고, 그저 노구를 일으켜 거의 쉴 새 없이 스탠딩 관람을 했으니 속시원하다.
  사실은 어제, 관람 날,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아프고 입술이 부르터 징그러운 몰골이 되어 있기에, 관람 포기를 하루 종일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미 끊어놓은 R석 두 장을 포기하기엔 좀 포시라와(??) 보여, 전철을 타고 긴 나들이를 했다. 올림픽공원, 멀고 먼 그곳을 향해. 삼성역에서 내려 잠깐 볼일 보고 거기서 택시를 탔는데, 인터넷에서 분명 동1, 동2문으로 들어가라 한 것을 기억하는데, 기어이 자기가 맞다며 남2문 앞에 내려주고서, 가까우니 걸어가라 한 그 여자 택시기사.... 아픈 나는 긴 길을 또다시 걸었다. 윤밴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딸과 핫도그 하나씩을 걸으며 뱃속으로 밀어넣고 다행히 제시간에 입장.
  그런데, 이게 웬일! 나는 평소와 달리 거의 뛰는 수준(발가락을 떼지 않고 뒤꿈치를 까딱거렸다.)으로 내리 서서 몸을 흔들었다(물론 아주 조금씩). 노래도 쉴 새 없이 따라부르고, 목이 쉬도록 꺄악꺄악도 거리고.
  윤밴은 록의 정신, 잘은 모르지만 비판적이고 반항적이고 할 말 하는 자유혼을 표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게 전해졌다. 신곡 '88'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읽고 울컥하여 지었다고 했다. 반복되는 '팔십팔'에서 '팔'과 '십팔'이 떨어져 들리는 것이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함께 간 중학생 딸이 의외의 엄마를 흘깃거리는데, "즐겨.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너 아니?"라며 나는 계속해서 환호했다. 거참, 젊은이가 자기 일에서 많은 의미를 찾고, 누리는구나...하며 신통한 기분으로 윤밴을 환호했다. 대중과 가까워지고자 하나, 대중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일부 노래들이 윤밴에게는 많이 아프구나, 이런 생각도 했다.
  즐기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 딸은 정작 공연장을 나와서는 "엄마, 기말고사 끝나면 윤밴 앨범 사 줘."란다. 하여간 내숭에 뒷북은. 아무튼 후기. 록 가수는 공연장에서 가장 멋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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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1-2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윤밴 공연가셨군요~ 부럽당!
대중이 알아주지 않는 곡~ 아픈 마음, 알 것 같지만... 제대로 안다고는 장담 못하겠어요.ㅜㅜ

파란흙 2008-11-28 16:49   좋아요 0 | URL
한마디로 하자면, 신나는 공연이었어요. 윤밴 입장에서야 중장년층이 좀 많이 와서 기대했던 환호는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저로선 큰 결심하고 몸을 흔든 거랍니다.ㅎㅎ
 
몰로이 대산세계문학총서 75
사무엘 베케트 지음, 김경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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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책 읽기에 길들여져 쉽게 전해지는 재미라든가 이해 가능한 내러티브에만 반응을 하게 된 것인지, 이 책, 계속 눈과 입과 머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잘 빠져들지를 않았다. 들었다 내려놓았다 몇 차례 하다가 마침내 빠져드는 순간, 뭔가 도전에서 성공한 것 같은 성취감이, 불과 수십 쪽을 읽은 단계에서 섣부르게 찾아왔다.  

그리고 내처 읽었다. 단락 구분 없이 마냥 채워진 134쪽은 숨을 쉴 수 없게 했고, 독서를 멈출 수도 없게 했다. 나는 지쳐 가면서 끊임없이 읽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머물렀던 베케트에의 얕은 독서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갔고, 뭔지 모를 둔중한 독서의 희열도 간만에 찾아와 너울거렸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끝간 데 없이 멀리 날아가 버리는 그 어떤 끈을 잡고 더듬거리며 주인공인 몰로이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익숙한 '읍' 혹은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몰로이처럼 나도 어딘지 모르는, 내게 익숙한 읍에서 먼 낯선 곳인지 혹은 바로 그 읍인지도 모른 채 비슷한 그곳들을 거듭 거듭 방황하고 뱅뱅 돌았다. 

독서하는 자의 본분을 챙기느라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베케트 류의 섬뜩한 아포리즘에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도대체 몰로이 너는 누구냐, 네 있는 곳이 어디냐, 너는 진정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댔다. 그리고 그 되풀이되는 작업에 지칠 때쯤 1부가 끝났다. 2부는 모랑의 이야기다. 누군가로부터 007 류의 모호한 지시를 받아 그 일을 수행하는 모랑에게 몰로이를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왜 몰로이이며, 몰로이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랑은 알 수 없다. 혹은 들었는데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책은 이야기한다. 그의 여정 또한 몰로이와 꼭 닮았다. 줄 달린 모자, 자전거, 다리의 통증 또는 장애와 목발, 하녀, 아들... 아니, 처음에는 전혀 닮지 않았었는데 나중에는 놀랄 만큼 닮아 갔다. 어느 순간 몰로이와 모랑를 분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 심지어 나 자신도 그들과 닮았다는 걸 느끼는 서늘함. 

주인공들은 타인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언어는 극히 제한적이고, 왜곡시키고, 파멸로 이끄는 부적절한 도구이다. 그리고 삶이란 것도 그렇다. 베케트를 상징하는 부조리가 또한 삶의 진실이다. 우리는 집, 가정, 어머니라는 존재로 회귀하고자 하나 그것들은 지극히 가변적이고 존재하지 않는다. 내 땅이, 적어도 한쪽 방면으로,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에겐 전혀 싫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물에 젖지 않고서는, 그 다음에 빠지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방향이 적어도 한 곳이 있다는 느낌은 나에게 아늑했다.101쪽. 바다를 발견했을 때 걷기조차 불가능해진 몰로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나마 부족하나마 경계라는 걸 보여주는 바다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몰로이가 순간 십분 이해됐다. 실로 방향성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가? 삶에서?  

베케트는 희곡 작가로 더욱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가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3부작을 집필하면서 느낀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식의 일환으로 가볍게 써낸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가 모국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를 택해 써 낸 작품임을 감안하고 읽어서인지 느낌이 더 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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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 우리 역사 - 가슴 뿌듯한 우리 역사 10장면
강명관 외 지음, 양지은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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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읽기 시작하여,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로만 볼 것인가, 무엇이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새롭다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왕권이 평민이나 천민과 손잡고 귀족들을 경계하며 국력을 굳건히 하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 있음에 대한 이야기.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 이어 살수대첩과 만파식적 이야기는 나라를 사랑하며, 용기와 지혜로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던 조상의 위대함을 재삼 확인시켜 주었고, 한글 창제가 지닌 드높은 의미에 대해서도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원균 이야기. 원균이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간신이 아니었음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고정욱 선생은 그가 얼마나 용맹한 애국자였던가 하는 부분을 다소 충격적으로 전해주었다. 판옥선의 견고함을 이용해 적의 배와 충돌하는 당파를 처음 생각해낸 이가 원균이며, 원균의 작은 승리가 이순신의 혁혁한 전공의 바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랬구나! 

  정조는 왜 그토록이나 매사 꼼꼼하게 기록하였으며, 신하들은 어떻게 임금 앞에서 할말 다 할 수 있었을까? 홍대용, 박제가, 이덕무, 박지원의 실학 정신의 바탕에 국경을 초월한 우정이 자리하고 있었다니! 단 하나뿐인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고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나섰던 눈물 겨운 13도 창의군의 의병 활동. 당시 의병대장 허위는 의병을 일으킨 것이 누구냐는 헌병대장의 질문에 침략한 이토 히로부미라고 대답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다. 유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최익현은 쓰시마 섬에 끌려갈 때 왜놈 땅을 밟지 않겠다며 버선에 조선의 흙을 담아 신고 갔고, 도적의 것은 물 한 방울 먹지 않겠다며 단식 끝에 목숨을 다했다. 

  이쯤에서 나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부끄럽고 감사해서다. 그분들의 깊고 붉은 마음과 그 때문에 겪었을 고초가 손에 잡힐 듯 느껴져서이다. 그리고 노도와 같이 일어났던 4.19 혁명, 이름 없는 조선 어부 안용복의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낸 외로운 투쟁 등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참으로 쉽게 잊어버리고, 모른 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삼지 않는다.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임을 너무 쉽게 부끄러움으로 덮어 버린다. 부끄러운 것은 이 나라가 아니라 일부 소인배들이다. 이 책으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핏줄과 근본을 확인하고, 자긍심과 강한 의지를 지닌 바른 인간으로 자라는 씨앗을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디. 정말 멋지다. 우리 역사, 우리 선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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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11-21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쪽되지 않은 책이 파란흙님을 울렸군요.
전 어린이 책이라 좀 주춤하게 되는데...

파란흙 2008-11-21 11:16   좋아요 0 | URL
하긴, 워낙 잘 우는 인사여서요, 제가. 우리 식구들은 제 눈물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어쨌거나 잘 만들어진 책.

파란 2008-12-03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이들도 제 눈물에 아무 반응이 없더니 이제 주변인사들도 그럽니다. 또 우냐? 전에는 눈물흘리는 모습이 무진장 무안해서 눈동자만 흐려져도 눈에 힘주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장바구니에 넣어 갑니다. 날이 여전히 가을같네요. 불안한 가을이에요

파란흙 2008-12-04 08:26   좋아요 0 | URL
이 책 읽고 우는 사람, 저밖에 없을 텐데. 혹시 나중에 욕하지는 마시고...ㅎㅎ 어쨌든 "또 우냐?" 과인 분을 만나 뵈니 좋군요. 불안한 가을, 정답입니다. 시절도, 계절도 하수상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