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4
스티븐 애슈비.앨리슨 레너드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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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시리즈인데 앞서 읽은 그리스 편도 그렇지만 솔직히 지루하다.

단순 유물 소개보다는 바이킹 역사에 대한 해설을 좀더 많이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전 세계 박물관에 소장된 다양한 유물들을 선명한 도판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표지 디자인이 아주 매력적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태양의 배라고 해서 파라오의 무덤에 배를 매장시킨 것처럼, 해양민족이었던 바이킹도 배에 시신을 태워 화장시켰다고 한다.

발굴된 배를 조립해 노르웨이 등에 박물관을 세웠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의 일족인 바이킹들은 9세기 무렵 날씨가 따뜻해지자 갑자기 인구가 늘어 경작지가 부족해 배를 끌고 유럽 세계로 침입해 들어갔다.

빙하가 녹아 발트해를 항해하기 쉬웠다고 한다.

침략을 당한 서유럽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바이킹은 영국 북쪽을 점령하여 왕국을 세우고 노르망디와 키예프까지 진출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왜구가 침략해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 셈인가?

흉노 등의 북방민족이 중국을 침략하는 것과도 비슷한 개념 같다.

단순히 배만 잘 다뤄서는 이렇게 강력한 공격력을 가질 수는 없었을텐데 서유럽 세계가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시달린 배경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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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곡 고희동 - 격변기 근대 화단, 한 미술가의 초상
조은정 지음 / 컬처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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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잘 써진 평전이면서도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보통 평전을 쓰다 보면 주인공을 너무 미화시키고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처럼) 호의적인 쪽으로 기술하는 게 문제인데 이 고희동이라는 화가는 미술계의 학자들에게 나쁜 쪽으로 찍힌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나친 비판이 많아 의아했다.

일제 때 독립운동은 못했더라도 딱히 친일을 했던 전적도 없고, 책에 나온대로 화단에서 권력을 휘둘렀으면 부정부패로 돈이라도 모았을텐데 매우 청빈한 것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평전에서라면 이런 부분을 후하게 평가해 줄텐데 이런 부분도 당시 신문 기사를 인용해 약간 비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집이 좁아 제대로 그림을 못 그리나? 이런 식의 간접적인 비판이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저자는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한 인물에 대해 객관적인 비평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술하는 인물에 대한 큰 애정이 없는 것 같아 의아한 대목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권력층과 어울려 화단의 권력을 잡고 특히 6.25 때 부역자들 심사한 것 때문에 미술계에서 극우 인사로 찍힌 것인가?

이승만 정권에 특별히 아부해서 높은 자리를 얻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민주당으로 가 선거로 국회의원이 됐지만. 5.16 으로 곧 쫓겨나고 만다.

대한제국의 관리로 이력을 시작한 긴 생애를 돌아봤을 때 딱히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나름대로 처신을 잘 한 화단의 원로 같은데 박한 평가들이 아쉽다.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미학적으로 성취한 것이 부족한 탓일까?

일본의 제국전람회에서 특선을 했던 김관호 등도 귀국 후 특별한 화가 이력이 없었고 한국 최초 여류화가라는 나혜석의 그림도 미학적으로 얼마나 평가를 받는지 모르겠다.

최초라는 타이틀에 최고까지 요구하기는 좀 어려운게 아닐까 싶다.

본인도 구한말에 발을 걸치고 안중식에게 수묵화를 배운 만큼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훗날 수묵화로 돌아섰다.

한마디로 그는 시대의 변환기에 구시대와 신시대의 양쪽에 발을 걸친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의 회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사진에 항상 두루마기를 입고 나오는 모습도 서구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문화를 더 편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고희동이라는 인물의 이력이 흥미롭다.

역관 집안이었고 작은 아버지는 일어 역관 경력을 시작으로 영친왕을 모시고 일본으로 건너가 훗날 자작 작위까지 받는 이른바 친일파가 됐다.

그러나 같은 역관이었던 아버지는 친일 행적과 선을 긋고 나름 청렴한 관리 생활을 한다.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불어 학교에 입학해 5년 동안 불어를 배우고 우등상도 여러 번 탄 성실한 학생이었다.

민영익 등 보빙사 일행을 모시고 미국에 다녀온 아버지의 판단으로는 불어를 전공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곧 프랑스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일본이 득세하게 된다.

고희동은 궁내부의 관리로 채용되는데 이 때도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따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림 연구를 위해 일본에 파견됐으나 그 사이에 대한제국이 망하자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다니던 동경미술학교를 마저 다니고 졸업해 최초의 서양화가가 됐다.

처음부터 그림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관리로써 파견나갔다가 화가가 된 이력이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훗날 조선에 돌아와서도 서화협회를 조직하고 해방 후에도 대한미술협회를 만드는 등 단체 일을 많이 맡는다.

연설을 아주 잘했다고 하는데 그 덕에 돈을 많이 안 쓰고도 참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한다.

매력적인 인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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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 속의 중국과 한국
최소자교수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엮음 / 서해문집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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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지 좀 된 책이라 보존서고에서 빌려 봤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여러 필자들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라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다.

동아시아의 조공 체계가 핵심 주제인 것 같다.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이 사대와 조공 외교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거대한 중앙집권국가를 무려 2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 온 중국이라는 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어야 하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독특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중국이 서양 열강에 의해 개항한 뒤 서양식 외교 관점에서 실제적으로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 문제가 된 이홍장의 경우가 나온다.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바탕 위에서 요즘의 눈으로 보면 불공정한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내정 간섭 등을 하지 않고 문화 교류, 특히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이었던 중국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보 울타리 안에서 변방을 안정시켰던 나름대로 순기능을 했던 체제였다.

오히려 송나라 때 소식 등은 고려가 가져오는 토산물은 보잘 것 없는데 중국으로부터 많은 재화를 얻어 간다고 고려 사신의 입국을 막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명나라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 왜란을 막아 준 예를 봐도 사대외교의 실효성은 확실했던 듯하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빠져 현실을 너무 도외시 한 조선 위정자들의 지고지순한 숭명의리가 답답해 보이기는 하다.

일본처럼 한 발 떨어져 있는 환경이었다면 조선 시대처럼 자발적으로 완벽하게 중국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연행록을 통해 오랑캐라고 비웃었던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적인 화이론을 깨기는 어려웠던 것 같고 오히려 소중화라는, 어찌 보면 본질에서 벗어난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허울뿐인 자존감으로 변모했던 것 같아 안타깝다.

청나라가 중국의 한족 뿐 아니라 서역의 여러 민족들을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이었음을 이해하기는 박지원 같은 깨어있는 지식인들에게도 어려웠을 것 같고, 아무리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남인들이라 해도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불가능했던 것 같다.

대동강 유역에 있던 한 무제의 낙랑군이 고구려의 공격으로 소멸된 후 대릉하 유역을 거쳐 난하 지역까지 교치됐던 과정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의 후손들이 낙랑왕씨, 낙랑한씨 등을 성씨로 삼아 기자의 후예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중국은 낙랑을 수복해야 할 옛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오늘날 동북공정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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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뇌력 낭비 없애는 루틴 - 적게 일해도 폭발적 성과를 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인풋 80가지
가바사와 시온 지음, 신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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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읽기 편하게 편집은 잘 되어 있는데 역시나...

내용은 참 없다.

특별한 내용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자기계발서의 특징은 제목을 참 잘 짓는다는 것, 그런데 제목이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가 썼다는데, 일본 자기계발서 특유의 조잡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좀 민망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풋만 있으면 안 되고 아웃풋을 하기 위해 노력해라가 이 책의 주제이다.

독서의 경우 인풋은 책을 읽는 것이고 아웃풋은 글쓰기, 발표 같은 행위일 것이다.

책을 열 권 읽는 것보다 세 권 읽고 리뷰 세 편 쓰는 게 더 낫다는 말.

당연한 말이긴 하다.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않으면 읽은 보람이 없다.

리뷰 쓰는 것고 좋고 다른 사람에게 강의를 해 보는 것도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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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영 밖으로 달아난 한양 수비군 - 훈국등록 고전탐독 12
윤진영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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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판형에 귀여운 표지가 인상적인 책으로, 짧지만 내용이 알차다.

훈련도감의 일지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도성 군영의 모습을 여러 학자들이 재구성 했다.

우리도 서양처럼 미시사적 접근이 활발해지는 것 같아 역사책 읽기가 아주 재밌다.

양란을 거치고 효종은 북벌을 준비하면서 훈련도감의 인원을 5000명까지 늘렸다.

이들은 군역을 지는 농민병이 아니라 급료를 받는 직업군인이었다.

그런데 처우가 열악해 모집이 어려워 결원이 생기면 의무적으로 지방에서 뽑아 올리는 승호제도를 시행했다.

승호군에 뽑히면 장기 복무해야 하므로 가족이 전부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급자족 시대이니 먹고 살 수는 있으나, 전답을 팔고 상경하면 당장 잘 곳도 없고 적은 급료로 살아가야 하니 승호를 기피했던 풍속이 이해된다.

당시에도 서울 집값은 대단히 비싸서 시골에서 상경한 군인들의 거주지가 없어 항상 문제였다.

요즘 같은 관사 개념으로 숙식처를 제공하기에는 조선 조정의 재정이 빠듯했던 모양이다.

기왕에 포수와 같은 정예병을 키우는 제도이니 급료를 많이 주고 훌륭한 인재들을 유치하면 좋았을 것을, 오죽이나 대우가 형편없으면 강제로 지방에서 착출했을까 싶다.

조선 후기는 양란 이후 큰 무력 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훈련도감의 한양 수비군들은 축성 같은 공사판에 동원됐다.

훈련도감에 소속된 장인들이 수공업 제품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세곡선을 운송하는 가외일을 통해 재정을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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